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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19화 (19/172)
  • #018.

    깨진 독 7

    “…….”

    “……쮜이?”

    토토는 제 집사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 작은 목소리로 지수를 불러 봤다.

    그럼에도 반응이 없이 자신의 가슴만 꾹 누르고 있는 모습에 토토가 다시 입을 벌린 순간, 성하진이 지수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한지수 가이드.”

    “…….”

    “한지수 가이드? 괜찮습니까?”

    “……!! 아……! 네. 잠시…… 생각을 좀 하느라, 죄송해요.”

    “그렇군요.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성하진이 상체를 살짝 숙여 지수와 눈높이를 맞췄지만, 시선은 얽히지 않았다. 지수가 제 가슴을 꾹 누르며 눈을 질끈 감았기 때문이었다.

    성하진의 시선을 피하려는 의도는 아닌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지금 한지수는 누가 봐도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왜 이러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굉장히 혼란스러워 보였고, 속이 답답한 듯 계속 가슴께 옷깃을 콱 잡아 누르고 있었다.

    성하진은 한지수가 치료 목적의 정신계 세뇌 스킬을 받은 것을 알기에, 그를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지수 가이드. 일단 앉읍시다. 천천히.”

    “…….”

    그는 상대가 놀라지 않게, 아주 천천히 손을 뻗어 한지수의 어깨를 감싸 잡고 소파로 이끌었다.

    지수는 저를 부드럽게 미는 힘에 굳이 저항하지 않았다. 그의 손길이 인도한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다 무릎 뒤가 부드러운 쿠션에 닿은 것을 확인하고 몸에 힘을 풀었다.

    풀썩-

    소파에 앉은 지수는 갑자기 정신이 멍-해짐을 느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성하진 에스퍼…… 제가…… 어, 그…… 들으셨겠지만, 제가 지금…… 정신이 조금 혼란한 상태예요…….”

    “괜찮습니다. 죄송할 문제가 아니니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 네……. 그…… 잠시만…….”

    지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강재윤에 대해 생각하려 하면 생각이 자꾸만 지워지고, 흩어졌다.

    마치 희뿌연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물처럼…….

    어떻게 해도 자신이 잡을 수 없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하고자 하는 대상은 강재윤인데, 그를 인식하고 떠올리려 하면 자꾸만 지워져서 이대로 백치가 될 것 같았다.

    지금은 그를 제대로 떠올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강재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려 했지만, 청개구리 같은 제 뇌는 의지와 상반되게 자꾸만 그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럴수록 지수는 모래성을 쌓기도 전에 거센 파도가 덮쳐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만…… 그만 생각해……. 다른 생각…….’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강재윤에 대해 자연스럽게 잊고, 바로 다른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랐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조절이 안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수의 뇌는 제멋대로 강재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끈질기게 노력했고, 그렇게 그를 떠올리려는 찰나에 반복해서 강제로 기억을 분산시켰다.

    떠오를 듯하면 전부 다 증발해 버리고, 그럼 또 생각하려 하고, 다시 기억이 나기 직전에 증발하기를 반복했다.

    ‘왜 이래. 다른 생각 하자고. 다른 생각…… 재윤이 형…… 말고…… 다른 생각 해. 뭐라도…….’

    분명 자신의 생각인데, 두려울 정도로 제어가 되지 않아서 무서웠다.

    모든 생각이 자꾸만 지워지기만 해서 혼란했다. 눈가가 아팠다. 눈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혼란함에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벌벌 떨리는 손을 겨우 들어 눈가를 훔쳐도 물기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눈물은 나지 않는데, 그렇다면 왜 이렇게 눈가가 아린 걸까? 왜 이렇게 앞이 안 보이는 걸까?

    지수는 갑자기 눈을 찌르는 듯한 통증과 흐려진 시야에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헉……, 허억…….”

    마치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미친…… 뭐야, 이거? 왜 이래……!?’

    진짜로 숨이 턱 막혔다.

    ‘숨이……!’

    호흡은 분명히 하고 있는데, 체내에 산소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어떻게든 숨을 쉬어 보려 했지만, 들숨에 산소가 전혀 실리지 않은 것처럼 가슴이 콱 조여들고 답답했다. 머리가 핑핑 돌며 현기증이 났다.

    “쮜잇!? 쮜!! ……쮸?”

    놀란 토토가 당황해 지수에게 올라타려는 찰나, 성하진이 손을 뻗어 내밀며 토토를 멈춰 세웠다.

    “쮜?”

    고개 든 토토는 성하진이 쉿- 하고 검지를 입술에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입을 바르르 떨었다.

    그가 괜찮으니 얌전히 있으라는 듯한 얼굴로 내려다보자, 털을 펑 부풀린 채 불안해하던 토토가 머뭇머뭇하면서도 서서히 진정했다.

    잔뜩 흥분한 토토의 털은 가라앉기 시작한 반면, 한지수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토토가 달려들지 못하게 우선 진정시킨 성하진은 지수의 옆에 앉아 큰 손으로 가쁘게 들썩이는 등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한지수 가이드.”

    “……흐읍……!!”

    깜짝 놀란 지수가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떨었지만, 등에 닿은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그시 내리누르듯 그대로 잘게 떠는 등을 일정한 패턴으로 보듬었다.

    “한지수 가이드. 괜찮습니다. 천천히 숨 쉬어요.”

    곧 산소 부족으로 죽을 것처럼 헐떡이는 상대에게 건네는 말투치곤 지나치게 차분한 음성이었다.

    마치 놀랄 것 하나 없다는 듯이, 두려워할 것 없다는 듯이, 나지막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아무 일도 아니니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는 듯한 음성에 지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고통을 호소했다.

    “헉…… 허억……, 숨, 숨이, 안, 쉬어, 져……. 흑…… 흐읍…… 숨, 막혀요…….”

    “지금 잘 쉬고 있습니다. 괜찮으니 겁먹지 말아요.”

    연신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는 말에도 쉽게 진정할 수가 없었다. 속이 너무 답답했다.

    이러다 허상의 물에 빠져 익사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숨이 턱턱 막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제 호흡을 전부 빼앗아 가는 것 같았다.

    질식할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낀 지수가 가슴을 콱 움켜잡고 몸을 웅크렸다.

    “흡…… 으읍…….”

    “한지수 가이드. 지금 호흡은 문제없이 잘하고 있습니다. 긴장해서 그래요. 조금만 진정해 봅시다. 자, 다시 천천히 들이마시고. 예. 이제 천천히 내쉬세요.”

    지수는 제 허리부터 목 바로 아래까지 피부를 지그시 누르며 천천히 올라오는 손길을 따라 바들바들 떨며 숨을 들이마셨다.

    웅크리고 있던 등이 조금 펴질 만큼 숨을 크게 머금은 순간, 이번엔 그의 손이 다시 등줄기를 따라 허리까지 천천히 보듬으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내쉬어요. 천천히. 옳지.”

    지수는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지시를 따르려 노력하며 제 등에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의 느릿한 하강에 맞춰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째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속은 여전히 답답하고 몸은 계속 잘게 떨렸다.

    충분한 산소가 폐로 들어오는 것 같지 않아 또 공포감이 번지려는 찰나, 다시 그의 큰 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마신 지수는, 다시 목 뒤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손길을 따라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그의 손길대로 호흡을 반복하자, 제 가슴을 꽉 짓누르기 시작한 무언가가 아주 조금 증발한 게 느껴졌다.

    마치 거대하고 단단한 얼음이 천천히 녹는 것처럼, 버거움이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후우…… 하아…….”

    “잘하고 있어요. 계속 이렇게 하는 겁니다. 자. 또 숨 쉬어 봅시다. 천천히. 옳지.”

    “흐으…… 으으…….”

    지수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자, 바닥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던 토토가 입을 벌리고 지수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성하진이 다시 제 입술에 검지를 가져가 대며 쉿. 하고 작게 주의를 줬다. 그리곤 아직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토토는 입을 꾹 다물고, 성하진의 바짓단을 타고 올라왔다. 그의 허벅지 위에 선 토토는 눈을 감고 벌벌 떨며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노력하는 집사를 바라보며 입을 달싹였다.

    지수는 토토가 애절한 눈빛으로 저를 보는 것도 모르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등을 오르내리는 손길에 따라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계속 같은 속도로 등을 보듬던 성하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한지수 가이드. 눈 떠 보세요.”

    “후…… 하으…… 읏…….”

    “눈 뜨고. 천천히 이 방 안에 있는 것 중 흰색 물건을 딱 다섯 개만 찾아서 말하는 겁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지수는 갑자기 왜 흰색 물건을 찾으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쉬운 일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힘겹게 실눈을 뜨고 거실을 훑은 지수가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후…… 후우……. 저기…… 꽃병…….”

    “예. 잘했습니다. 네 개 더 찾아봅시다.”

    “으…… 흐으으…….”

    여전히 호흡이 가빴지만, 등을 보듬는 손길에 따라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지수가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아…… 제…… 슬리퍼…….”

    “예. 잘 찾았습니다. 이제 세 개 더 찾는 겁니다.”

    “으……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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