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깨진 독 3
제집 앞에 진을 친 기자와 사생들을 피해 오목눈이 새로 변한 토토를 패딩 주머니에 넣고 외출한 기억도, 어딜 가든 에스퍼들이 제게 다가와 추근거렸던 기억도 전부 다 선명했다.
그리고 에스퍼들이 제게 대놓고 질척일 정도로 다가온 이유가 자신의 의도치 않은 가이딩 탓인 것도 알았다. 잠시간 제 상태를 가늠한 지수가 김현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누나…… 혹시 나 지금도 가이딩 중이야?”
그러자 바로 긍정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응. 너 자면서도 내내 방사하더라.”
“…….”
방사 가이딩.
일정한 범위 내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에스퍼에게 마치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리듯 가이딩을 뿌려 대는 행위를 뜻했다.
가이딩이라는 행위는 가이드가 정신력으로 사용하고 제어하는 일종의 스킬이었다. 때문에 중간에 제때 끊고 충분히 휴식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굉장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고, 누적될 시 뇌에 과부하가 발생했다.
과부하 상태가 지속되면 가볍게 졸도하며 끝날 수도 있지만, 심각할 경우 기억 상실을 동반한 온갖 후유증이 생기거나 최악의 경우 뇌사 상태에 빠질 수도 있었다.
지수는 자신이 며칠간 자다 깨다 반복했다고 들었지만, 누군가가 제 손을 잡아 준 아마도 가장 마지막일 기억만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 그 외에 중간에 깼던 기억은 전혀 없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쪽도 좀 놀랐겠네…….’
그동안 내내 울고, 울고, 또 울어서 이젠 눈물이 마른 걸까?
한지수는 정신이 조금 맑은 상태에서 강재윤의 부재를 확실히 인지하고도 눈물이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친형과 친동생, 그리고 러비스 멤버 형들 이야기도 제대로 못 하는데, 이렇게 단시간 만에 스스로 추스른 것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마음이 평온한 것을 보면, 아마도 정신계 에스퍼가 머리를 주무르고 갔을 확률이 높았다.
‘……최성훈 교수님이겠네.’
한국대 병원은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이자, 대격변 당시 정신계 에스퍼로 각성한 최성훈 교수가 있는 곳이었다. 굳이 평화 길드가 아닌 이곳에 입원한 것을 보면 제 추측이 맞다고 생각한 지수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최성훈 교수님이 내 주치의야?”
그가 내 뇌를 주무르고, 가이딩을 강제로 제어하고, 강재윤에 대해 슬퍼하는 것을 강제로 틀어막은 거냐는 모든 내용이 함축된 질문이었지만, 김현아는 담담하게 긍정했다.
“맞아.”
“……뭘 건드리신 건지 모르겠는데…… 기분이 이상해……. 기분이 너무 멍하고…… 아무렇지 않아서…… 그래서 이상해……. 이거 싫어……. 그만했으면 좋겠어…….”
솔직하게 투정하자, 김현아는 그 부분도 긍정하며 설명했다.
“잠시 네 슬픔을 차단했다고 하셨어. 하지만 일시적이라, 곧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가이딩도 최대한 자연적으로 막아 보려 하셨는데, 잘 안되셨나 봐. 계속 방사하게 둘 순 없으니 잠시 뇌가 기능을 하지 못하게 조치하셨고.”
“……그래서 기억이 끊겼구나.”
“응. 근데 어제부터 슬슬 풀렸는지, 다시 방사하더라고.”
“……하아…….”
지수가 작게 한숨을 쉬자 김현아가 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어딘가 답답해 보이는 지수와 시선을 맞춘 그녀가 제 가슴 위의 토토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지금은 좀 조절할 수 있겠어?”
“……아니. 솔직히 지금 가이딩하는 줄도 몰랐어.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들었거든…….”
그간 많은 과부하 상태를 경험했지만, 지금처럼 자신이 가이딩을 하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자가 조절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은 또 처음이었다.
김현아는 혼란해 보이는 지수를 바라보다 토토를 손으로 받치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다가와 토토를 침대맡에 눕혀 주며 그간 근황을 공유해 주었다.
“잠든 김에 토토 데리고 여기저기 좀 다녔어.”
“……그랬어?”
“어. 자꾸 나 따라서 던전 들어가려 하길래, 그냥 데리고 들어갔다 왔어. 두 번.”
“잘했어. 토토가 던전 좋아하잖아.”
정확히는 던전에서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열매를 좋아하는 거였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게다가 김현아가 들어가는 던전이라면 등급도 높았을 테니, 일반 마켓에서 구하기 힘든 열매나 견과류가 많았을 것이었다.
지수는 자신이 며칠간 제정신이 아님에도, 나름대로 훌륭하게 버틴 토토가 대견해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또 뭐 했어?”
“그냥 이거저거. 스킬 측정도 하고. 토토 실드 스킬이 꽤 견고해진 것 같아서 측정해 봤는데 S+ 정도 될 것 같아. 아직 +는 아니지만. 언젠간 +등급까지 도달할 것 같더라.”
“우리 토토 굉장하네.”
토토의 콧등을 쓰담쓰담하자, “쮸우우…….”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김현아는 완전 떡실신한 토토에게 잠시 시선을 두며 말했다.
“굉장하지. 보통 테이밍 몬스터였으면 많이 불안해했을 텐데, 잘 버티더라.”
“…….”
한지수를 탓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막상 본인은 토토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집사로서 제대로 보살펴야 했는데, 며칠간 자신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부산 던전이 소멸한 이후 집에 대체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 부분은 기억이 아예 없었다.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고 하는데, 정신 차려 보니 이미 서울의 자택이었고, 돌아온 집에선 울기만 했다.
며칠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울고, 울고 또 울었으며, 당연히 제대로 된 끼니 역시 챙길 수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 토토의 밥은 꼬박꼬박 챙겼지만 말이다.
평소 술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던지라 알코올에 의지하지도 못했고, 그저 맨정신으로 하염없이 슬퍼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자신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길드 담당자의 연락엔 또 꼬박꼬박 답장해야 했다. 사실 마음 같아선 다 무시하고 잠적하고 싶었지만, 제때 답장하지 않으면 제 심리를 담당하는 길드 담당자가 쳐들어올 수도 있었으니, 열심히 답장해야 했다.
제 집사가 폐인처럼 지내는 며칠 동안, 토토는 내내 집사의 곁을 지켰다. 지수가 흐느끼고 있으면 곁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지수가 쓰러져 까무룩 기절하듯 잠들면 근처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함께 잤다.
지수가 변신 아이템을 사용해 여성의 모습으로 강재윤의 장례식에 갔을 때도, 평소처럼 수다스럽게 울거나 날아다니지 않고 묵묵히 지수의 주머니 속에 얌전히 있었다.
오랜 팬들이 열어 준 시청 앞 추모 공간에 방문했을 때도 꽃 한 송이를 물고 날아올라 놓아두고 왔던 순간을 제외하곤 지수의 어깨에 앉아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지수는 애틋한 눈빛으로 제 반려 몬스터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역시 토토 양도 계약서 쓰자.”
“…….”
“내가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혹시 모르잖아. 이러다 내 뇌에 문제라도 생기면…….”
“야.”
“…….”
뒤에 이어질 말을 막은 김현아는 바로 뭐라 하는 대신 지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신계 에스퍼가 슬픔을 차단한 덕분에 더없이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안광은 죽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흔히 말하는 동태 눈깔도 아닌 것이, 상태가 묘해 보였다.
일시적인 슬픔 억제 세뇌가 풀리면 분명 다시 힘들어할 것이 뻔히 보였기에, 김현아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말했다.
“하……. 씨, 뭐. 그래. 그렇게 해서 네가 마음이 편해진다면 상관없지만, 상세 조건은 내가 달 거야.”
“응. 그렇게 해 줘. 고마워.”
“그리고. 퇴원하면 가이딩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길드 기숙사에서 지내. 알았지?”
“그럴게.”
두 사람은 이후에도 몇 가지 이야기를 정리했다.
결론적으로 지수는 당분간 길드 내 기숙사에서 지내며 외부 활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방사 가이딩 조절이 안 되고 있으니, 잘 때는 최성훈 교수가 개발한 가이딩을 차단해 주는 약을 먹고 자기로 했다.
그리고 퇴원하기 전, 최성훈 교수가 걸어 둔 세뇌를 거둬 달라고 부탁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김현아는 일순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제대로 정신 차린 이후 지수는 강재윤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생각은 해도 금세 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버렸다.
‘강재윤’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생각하면 슬퍼지려다가도, 반사적으로 다른 생각이 떠오르며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그를 떠올리거나 생각하려 하면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잘되지 않았다.
그게 몹시 짜증 났다. 강재윤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울어도 상관없으니 지금은 그저 그를 떠올리고 싶은데, 제대로 되지 않으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제게 걸린 이 세뇌를 빨리 거두고 싶었다. 아직은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평온하게 있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온종일 강재윤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리고…… 또…….
“……하아…….”
강재윤을 생각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순간, 생각이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 강재윤을 밀어냈다. 한지수는 말로 표현 못할 답답함에 입술을 짓씹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어째서 사람들이 세뇌 스킬을 가장 두려워하고 꺼리는지 100% 이해됐다.
그리고 두려워함과 동시에 왜 그토록 세뇌 스킬을 원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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