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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12화 (12/172)

#011.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것 5

쿵- 쿵-

심장 박동이 피부 가죽으로 느껴질 정도로 거칠게 뛰었다. 피가 핑핑 도는 건지 몰라도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지수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저를 부축하고 있는 진보라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지수는 그녀가 제게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평소 저가 아는 진보라 에스퍼답지 않게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억지로 눈을 맞추며 어서 전부 이야기해 달라는 듯이 바라봤지만,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이유는 몰라도 뭔가 석연찮았다. 세 사람 모두 강재윤이 혼자 남았다고 대답하기 전에 지수를 보고 일순 곤란한 기색을 보인 게 특히 그러했다.

물론 이상 게이트를 보고 신경이 곤두서 괜히 헛다리 짚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뭔가 더 있는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형이랑 친하니까, 무모한 짓이라도 할까 봐 그런 건가?’

모르는 것을 추측해 봤자 소용도 없고, 머리 쓰는 건 지수가 잘하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저 안에 강재윤이 혼자 있다는 게 미칠 만큼 불안했다.

공략팀 인원을 전부 다 내보낼 만큼 위험한 와중에 혼자서라도 꼭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생전 처음 보는 저 검붉은 빛 게이트는 절대로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강재윤은 아직 저 비정상적인 게이트를 보지 못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것도 모르고 혼자 저 안에 있는 상황이니, 일단 던전 밖으로 무조건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만이 지수의 머리를 지배했다.

모종의 결심을 굳힌 지수가 인벤토리에서 장비를 꺼내 착용하기 시작했다. 긴장해 형편없이 벌벌 떠는 손과 달리 그 표정은 결의에 차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지수 가이드, 가이드는 진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전 재윤이 형을 한 번에 찾을 수 있으니까요.”

“……!!”

“쮯!?”

지금껏 숨죽이고 있던 토토를 포함한 모두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바라보자, 한지수가 희귀 옵션이 수두룩하게 붙은 가죽 반장갑을 착용하며 말했다.

“재윤이 형이 확인할 게 있어서 남았다고 했죠? 그럼 혼자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잖아요. 재윤이 형이랑 저는 서로에게 이동할 수 있는 귀속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요.”

“지정 타겟 이동 아이템인가요?”

고개를 끄덕인 지수가 이번엔 스마트 워치를 찬 손목에 화려한 보석이 가득 박힌 팔찌를 두르며 말을 이었다.

“대신 같은 곳에 있어야 해요. 두 사람 모두 던전 밖이거나, 같은 던전 안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쿨타임도 없는 상태니 당장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진보라가 저지하려는 말을 꺼내기도 전, 한지수가 급하게 덧붙였다.

“게이트 쪽 몬스터는 처리했다고 하셨잖아요. 진입하자마자 형에게 이동할게요.”

확고한 주장에도 진보라는 고개를 저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처리하긴 했지만,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전부 확인 사살까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듣고 더 몰려들었을 수도 있고요.”

“토토가 S급 실드가 있으니까 그건 괜찮아요. 들어가자마자 실드 치고 바로 형한테 이동해서 상황부터 알리고, 귀환석 사용해 나와 공략팀과 합류하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지금 변동된 등급이랑 지형은 뭐죠?”

이미 재측정도 끝난 터라 어려울 것 없는 질문이었지만, 이번에도 한지수가 원하는 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강재윤에게 이동할 수 있는 스킬이 적용된 반지를 막 착용한 지수가 고개를 들고 아무런 대답도 않는 진보라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는 한지수의 어깨 너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언가에 크게 놀란 듯이 경악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당찬 그녀답지 않게 충격이 고스란히 보이는 표정을 본 한지수는 반사적으로 그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봤다가 어깨를 흠칫 굳혔다.

“……!! 저게 대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원형 링 형태를 유지하던 검붉은 던전 게이트가 마치 종잇장 구겨지듯 기형적인 형태로 찌그러지더니, 새카만 안개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 역시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어어? 저기 좀 봐!”

“저게 뭐야!?”

“뭐야!? 이번엔 또 왜 저래?”

생전 처음 보는 기현상에 현장 인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던전 게이트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마치 슬라임 주무르듯 늘어뜨리고, 뭉치고, 다시 쫙 잡아당기는 것처럼 제멋대로 마구 일그러지고 늘어나길 반복했다.

짓이겨지다시피 납작해진 게이트가 이번엔 찢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길게 쫙 늘어난 순간, 길게 찢어진 게이트 틈새에서 “키에에에에에에에------!” 하고 소름 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크윽!!!”

“쮜잇!!!”

저 기괴한 비명을 들은 이들 모두가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았다. 한지수 역시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골이 찌잉- 울리고 고막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눈을 절반 정도 겨우 뜬 채 고개를 들자 이번엔 게이트가 다시 납작하게 짓이겨진 상태로 변하며 검은 연기를 계속 흘렸다.

“……큭…… 모두…… 도망…… 쳐……!”

누군가가 겨우 외친 순간, 정신 차린 에스퍼들이 벌떡 일어나 주변에 쓰러져 있는 가이드와 힐러를 챙기기 시작했다.

진보라 역시 제 앞의 한지수의 팔을 잡아끌고 박민아와 이수빈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일순, 게이트가 다시 길쭉하게 늘어나며 더 크게 소름 끼치는 비명을 쏟아 냈다.

“으윽!!!”

결국 진보라 역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크윽!”

“아악!”

“으허억!”

첫 번째 소리를 버텨 낸 에스퍼들도 전부 바닥에 쓰러져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저 끔찍한 소리의 정체가 뭔지 몰라도, 듣는 이의 고막을 찢고 뇌를 움켜잡고 주무르는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던 지수는 귀에서 삐----하는 이명이 들림과 동시에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껴 다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져 옆으로 누운 채 멍한 얼굴로 쪼그라들기 시작한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는데도 현실감 없이 그저 혼란했다.

이게 대체 무슨 현상인지도 모르겠고, 저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올 게 뭔지 그저 두려웠다.

아니, 그보다 강재윤이 아직 저 안에 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하게 와닿았다.

저 정체 모를 끔찍한 소리가 새어 나오는 곳에 강재윤이 혼자 있었다.

‘내가 가야 해…….’

어떻게든 일어나려다 또 실패한 지수는 균열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설령 죽는다 해도 여기서 뒤지든 저 안에서 뒤지든 무조건 강재윤 곁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한지수 가이드!!!”

뒤에서 진보라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수는 그대로 계속 기어갔다. 한지수 본인도 자신이 왜 이리 미친 듯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운지 몰랐다.

왜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저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스스로도 몰랐지만, 자신은 지금 당장 저기 들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쮜잇!”

언제 주머니에서 뛰쳐나간 건지, 토토가 한지수의 얼굴 앞으로 와다닥 달려왔다. 제 반려 몬스터를 보고 정신 차린 지수가 토토를 향해 주변을 보란 듯이 팔로 뒤를 가리키며 외쳤다.

“토토야! 실드! 실드 스킬을 사용해! 여기 남아서 사람들을 보호해! 아빠가 금방 재윤이 형 데리고 나올게!”

“쮜이잇! 쮜잇!”

하지만 어째서인지 토토는 제 주인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그대로 뒤로 달려가 지수의 바짓단을 물고 버티기 시작했다. 지수는 S급 햄스터의 강력한 제지에 제자리에서 서너 번 허우적거리다 다리를 흔들었다.

“토토야?! 왜 이래! 하지 마! 이거 놓고 실드부터 펼쳐! 여기 사람들을 지켜!”

“쯔으읏! 쯔읏!”

“한지수 가이드! 위험해요!”

진보라의 비명 같은 외침에 지수의 시선이 제 다리를 붙든 토토에서 게이트로 옮겨 갔다. 허공의 균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검은 연기를 머금고 구체 형태를 띠며 부풀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징후가 좋지 않은 모양새였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에스퍼들이 주변에 힐러나 가이드들을 끌어안고 몸을 숙였다. 진보라 역시 달려와 한지수의 위로 엎드리며 지수의 몸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이, 이거 놔요! 잠깐…… 잠깐만……!”

그녀의 품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힘껏 발버둥 쳤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짧은 사이 거대한 핵이 된 게이트는 점점 더 커지더니 급기야 파지직 파지직 스파크까지 튀기 시작했다.

방어계 에스퍼들이 각자 실드를 펼쳤지만, A급으로 막아 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니라는 것을 현장의 모두가 직감했다.

시커먼 연기를 머금은 구체 핵이 점점 더 크기를 키웠고, 스파크도 핵에 비례해 강렬해졌다. 저 맹렬한 스파크에 닿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크윽……!”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은 진보라가 몸을 더 웅크리며 한지수를 결박하자, 바짓단에서 떨어져 나간 토토가 앞으로 와다닥 달려와 두 발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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