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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10화 (10/172)

#009.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것 3

지금 보는 뉴스뿐만 아니라 다른 채널 카메라를 향해도 웃어 줬는데, 한지수가 호텔에서 뉴스를 보고 있을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이 분명했다.

“…….”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잘 다녀오겠다고 말하는 듯한 여유 있는 모습을 본 지수는 가슴 한구석이 울렁거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생중계는 계속됐고, 강재윤 주변으로 공략팀이 모였다. 브리핑을 이미 마친 건지,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들이 던전 게이트 앞으로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게이트 진입 직전 사진 촬영에 대해 영정 사진을 남기는 기분이라며 꺼리는 이도 많았지만, 요즘은 혹시 모를 마지막 순간을 남기는 것도 좋지 않겠냐며 즐기는 분위기였다.

지금 뉴스 화면만 봐도 팡팡 터지는 플래시에 눈도 깜빡이지 않은 각성자들이 제각각 자신이 밀고 있는 포즈를 취했다.

각성자 협회 소속 각성자들은 공무원답게 각 잡고 서서 입가에 희미한 미소만 짓고 있었지만, 플레임 길드 소속 이민재 에스퍼는 자신의 팬클럽이 자주 쓰는 손가락 모양을 내밀고 익살스레 웃는 중이었다. 그 옆의 평화 길드 소속 이수빈 힐러는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금방 다녀오겠다며 힘차게 인사했다.

강재윤은 별다른 액션 없이 잔잔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잠시간 포토타임을 가진 공략팀이 던전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강재윤을 포함한 평화 길드 소속 에스퍼와 힐러와 가이드가 먼저 입장했다.

이어 각성자 협회 소속 연서준 에스퍼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입장을 마쳤고, 마지막으로 플레임 길드원들이 입장했다.

모든 공략 인원이 입장한 후, 게이트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지수는 두 손을 꼭 모으고 그 장면을 지켜봤다.

‘아무 일 없길……. 제발 아무 일 없기를……. 부디…… 제발…….’

지수가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고 이 생각을 되뇌고 있을 때, 게이트의 일렁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며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게이트 주변을 은은하게 맴도는 빛이 띠는 색은 여전히 연두색이었다. 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등급이 확인됐다며 현장 기자가 발표했다.

-최종 측정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부산 태종대에 나타난 던전의 최종 등급은 D등급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하아아…….”

“쮜이이…….”

지수와 토토가 동시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스럽게도 걱정했던 이변은 없었다.

* * *

“자~ 손님~ 다 왔습니다. 여기서 내리시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안전 운전하세요.”

한지수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였다.

겉모습과 목소리를 바꿔 주는 변신 아이템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지수는 지금 20대 중반 여성으로, 지수의 셔츠 가슴 주머니에 들어가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토토는 오목눈이 새로 보일 터였다.

모습을 바꾸는 아이템은 많아도 목소리까지 바꾸는 아이템은 굉장히 희귀해 지수가 구하기 쉬운 아이템은 아니었다. 때문에 당연히 이 아이템 역시 재윤이 쉬는 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지수에게 제발 밖에 좀 나가라며 선물로 준 아이템이었다.

‘……너무 비싸서 받기 싫었는데, 그래도 쓰니까 편하긴 하네.’

느긋하게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예전엔 깡통 시장이라 불렸던 장소였다.

5년 전 대격변 당시 시장 중앙에 생긴 싱크홀이 폭발해 쑥대밭이 된 후, 1년이 지나 아이템 시장으로 복원되어 다시금 활기를 되찾은 곳.

어제도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괜찮다는 재윤을 끌고 여기서 한바탕 폭풍 쇼핑을 했었는데, 오늘 다시 방문한 이유는 하나였다. 어제 재윤만 신경 쓰느라 토토를 신경 쓰지 못한 탓이었다.

지수는 어제 그냥 스쳐 갔던(그래서 토토가 쮜이잇…… 하고 애처롭게 울게 만들었던) 테이밍 몬스터 용품을 취급하는 가게가 모인 섹션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토토야. 아빠가 오늘 토토 좋아하는 간식 많이 사 줄게.”

“삐잇-!”

시장 중앙에서 한 골목 꺾어 들어가자, 테이밍 몬스터 취급 구역이 보였다.

대장장이 스킬을 가진 에스퍼가 만든 하네스 같은 용품이 주로 보였고, 그 외 던전산 간식과 일본에서 수입해 온 패션 용품도 많았다.

한참 걸어가며 구경하다 보니, 등급이 낮은 몬스터를 판매하는 가게도 보였다. 여기서도 흔한 일은 아닌지, 가게엔 몬스터를 구경하기 위한 사람으로 인산인해였고, 그 모습을 본 지수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딱 봐도 좁은 유리장 안에 작은 몬스터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두드리지 말라는 종이를 붙여 놓았음에도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유리창을 계속 두드렸고, 몬스터는 사람에게 관심 주지 않겠다는 듯이 등을 보이고 있었다.

딱히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라 생각하며 몸을 돌린 지수는 일부러 멀리 떨어진 가게로 향했다.

적당한 가게를 물색하며 도착한 곳은 여러 견과류와 말린 잎을 파는 간식 전문점이었는데, 제법 종류가 다양했다.

[부전동 A급 던전산 열매(마카다미아 류) 50g당 8만]

[부전동 A급 던전산 열매(라즈베리 류) 50g당 9.9만]

마침 진열대 앞쪽에 토토가 좋아하는 핵심 간식 두 개가 보였다.

지수가 이미 소분 포장된 마카다미아 50g 하나와 베리 열매 50g 2개를 집어 들자 가게 사장이 서비스용 작은 견과류 샘플을 챙기며 계산할 준비를 했다.

“토토야, 이것도 사 볼까?”

지수가 다른 견과류도 들어 보이자 토토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삐-!” 하고 울었다.

가게 주인은 이미 지수가 각성자라 인벤토리가 있단 것을 알면서도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확인차 물었다.

“봉투는 필요 없으시죠?”

“네. 여기 이거까지 살게요.”

지수가 고른 물건을 쭉 본 가게 주인이 합산한 금액을 말하려는 찰나, 토토가 흠칫 몸을 굳히더니 “삐이잇-!!!” 하고 울었다.

“토토야? 왜 그…… 읏!”

지수는 짧은 질문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갑작스러운 현기증에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지수는 저만 현기증을 느낀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가게 주인 역시 놀란 얼굴로 가판대를 짚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

“…….”

“지금…….”

“소, 손님, 방금…… 지진……인 것 같죠? 지진이겠죠……? 그렇죠?”

부디 이게 지진이길 바라는 그의 물음에 지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땅울림이 심상치 않다고 말하려는 찰나, 이번엔 땅이 더 크게, 그리고 지속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꺄아악!”

“숙여! 숙여! 이쪽으로! 여기 아래로 들어와!”

“으아악! 지진이야!”

“머리 감싸고! 이 아래로 엎드려!”

시장에 주렁주렁 달아 둔 조명 장식이 챙챙 소리를 내며 출렁거렸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대략 10초 정도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크게 흔들리던 진동이 별안간 뚝 멈췄다.

그러자 비명을 지르고 혼란해하던 사람들 역시 조용해졌다.

“…….”

“…….”

“……삐……?”

지수를 비롯한 몇몇 각성자들이 반사적으로 손목의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아직 아무 알림도 없었지만 뭔가 불안했다. 이상하리만큼 예감이 안 좋았다.

고른 물건을 전부 내려 둔 지수는 인벤토리에서 기다란 아이템을 꺼내며 말했다.

“사장님 이건 다음에 사러 올게요. 그리고…… 일단 바다와 태종대에서 떨어진 곳으로 대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진이 아닐까요?”

지수가 자기도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대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재차 말하려는 찰나,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부산시에 설치된 모든 국영 재난 알림 장치에서 1급 경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 * *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부산시 전역에 메아리치는 사이렌을 들은 지수는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전신에 소름이 퍼지며 심장이 쿵- 내려앉은 것 같았다.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앵-----------------------

1급 경보 사이렌에 이어 삐이이이익-----!! 귀를 째는 듯한 재난 알림이 울렸다. 일순 굳어 있던 지수는, 퍼뜩 정신 차리고 급히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긴급 재난 알림]

부산 태종대 던전 범람 예상

태종대 인근 및 해안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즉각적인 대피 시행

“……!!!”

알림을 확인한 지수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아침에 금방 다녀오겠다고, 곧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던 강재윤의 모습이었다.

그를 떠올린 순간 지수는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자신이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는 것도 몰랐다.

시장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일단 시장을 벗어나려 무작정 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가판대 위에 올라서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초조하게 두리번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파도에 뒤엉켜 정신없이 달린 지수는 어딘지 모를 출구로 일단 빠져나와 숨을 고르며 인벤토리에서 하늘색 장우산을 꺼내 들었다.

저 우산의 용도가 뭔지 알아본 토토가 “삐!!! 삐이!!!” 울었지만, 지수는 바로 우산을 펼치자마자 뒤집어 세우며 우산 속에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뒤집어진 채 지수를 태운 우산이 땅에서 떨어져 둥실 떠올랐다. 발밑이 소란했지만, 신경 쓸 틈도 없이 그대로 태종대로 향했다.

부산 지리를 몰라 스마트 워치로 내비게이션을 확인하고 방향을 조정해 날아가는 내내 지수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오로지 던전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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