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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8화 (8/172)

#007.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것 1

“쮜잇!”

작은 앞발이 강재윤의 손가락을 야무지게 쳐 냈다. 재윤은 토토의 반응이 그저 귀엽다는 듯이 생긋 웃었다.

“음? 하하, 토토야. 왜? 난 여기서 자면 안 돼? 오늘은 지수 힘들게 안 할게~”

“쮝!”

찰싹!

“어이구, 우리 토토 무서워서 난 저쪽 방에서 자야겠네.”

“쮜이잇!”

찰싹! 찰싹!

“하하, 알았어. 그럼 난 여기서 조금만 놀다가 저쪽 방에 가서 잘게.”

“……쮯.”

원하는 대답을 얻어 낸 토토는 그래도 두고 보겠다는 듯이 재윤과 잠시 시선을 맞추더니, 지수가 협탁에 깔아 준 푹신한 수건 위로 올라앉아 던져둔 새우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지수는 새우를 열심히 먹는 토토의 정수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인원이 어중간하던데. 나도 같이 들어가면 안 돼?”

“걱정할 거 없어. 최근엔 1년 넘도록 크게 문제없었으니까.”

“……근데, 꼭 그렇게 방심할 때 큰일이 터지잖아.”

“그래서 A급 위주로 구성했잖아.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이 들어가는데 그렇게 걱정하면, 형 상처받는다?”

“…….”

조금 과장해서 상처받을 만한 발언이긴 했다. 그는 현존하는 염력계 에스퍼 중 가장 강한 에스퍼였으니까. 그래도 걱정이 사그라지지 않은 지수가 머뭇거리자, 강재윤이 자신감 가득한 어조로 강조하며 덧붙였다.

“공략팀 전원 다 베테랑이고, 모든 상황에 철저히 준비했으니 걱정하지 마.”

“……그거야 알지……. 그런데 박민아 가이드도 그렇고, 형이랑 상성 별로인 가이드만 있잖아……. B급 가이드 하나 더 들어간다고 문제 될 거 없지 않을까……? 난 토토도 있고…….”

공략팀에 강재윤만 유일한 S급 에스퍼인데 동행 가이드가 전부 매칭률이 낮은 게 영 마음에 걸렸다.

토토는 이렇다 할 공격 스킬은 없지만, 강력한 방어 스킬과 몇 가지 보조 스킬을 가진 S급 몬스터였다. 그러니 함께 들어가겠다고 더 강하게 어필하려 했지만, 재윤이 완강히 거절했다.

“이미 협회랑 플레임 길드랑 합의된 사항이고, 내가 마음대로 팀원을 충원할 수는 없어.”

“…….”

그럴 권한이 충분하다는 건 지수도 알았지만, 재윤이 저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 역시 알았다.

결국 마지못한 지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거친 손길이 걱정 많은 머리통을 마구 쓰다듬으며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자. 이제 걱정 그만. 생일 선물이나 생각해 둬. 얼마 안 남았잖아.”

“……? 아, 벌써 그렇게 됐네…….”

지수는 자신의 생일인 1월 30일이 훌쩍 가까워진 것을 알고 당황했다.

분명 매일 스케줄러를 확인하고 길드에 출근하고 있음에도, 생일에 대해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재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저가 헝클어 둔 지수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해 주며 말했다.

“사실 일단 하나 사 뒀는데. 그건 내가 개인적으로 주고 싶은 선물이고. 지수 네가 갖고 싶은 것도 말해 줘.”

“벌써 샀어?”

“응. 구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려서 이제야 주는 거긴 하지만, 분명 마음에 들 거야. 기대해도 좋아.”

“……그럼 그거만 받을래.”

강재윤은 매년 한지수의 생일마다 마음이 녹아 있는 정성 어린 선물부터 시작해 값비싼 선물까지 닥치는 대로 아낌없이 퍼 줬다.

특히 대격변 이후엔 다른 멤버들과 지수의 가족들이 챙기지 못하는 만큼 자신이 챙겨 주곤 했으니, 이번에도 필시 어마어마한 선물을 준비했을 게 뻔했다.

S급 비행 아이템, S급 저주 저항 귀걸이, S급 독 방어 코트 등 지수가 평소 몸에 두르고 다니는 것만 해도 값어치를 따질 수가 없었다.

그중 S급 비행 아이템은 지금도 지수에게 팔아 달라고 요청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희귀한 아이템이었다. 문제는 B급 가이드인 지수의 마력이 적어서 비행 유지 시간이 아주 짧다는 거였지만, 그래도 재윤이 준 선물을 다른 이에게 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껏 받았던 어마어마한 선물 목록을 떠올리며 역시 거절하려고 입을 연 순간, 강재윤이 먼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제대로 골라. 거절은 거절한다.”

“아, 형……. 대체 언제 적 유행어를…….”

거절은 거절한다니, 이 무슨 한물간 농담이란 말인가.

한창 러비스가 활동하던 시기에 SNS나 예능에서 종종 쓰이던 유행어였다.

아재 개그 던지듯 오래된 유행어를 사용한 강재윤은 지수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쉽게 생각해. 이번 경매에 나올 아이템도 좋은 것 같던데, 아니면 형한테 뭐 바라는 거 없어?”

“없어.”

“생각도 안 하고 대답하긴. 그래도 안 돼. 올해는 꼭 네가 갖고 싶은 생일 선물을 줄 거야. 작년에도 대충 넘겼잖아.”

“말 안 했다고 선물 더 사 준 건 기억도 안 나? 형이 경매장에서 내 생일 선물용이라고 광고하고 다녀서 아직도 연락이 온다고, 제발 팔아 달라고…….”

“올해도 그렇게 되기 싫으면 생각해 둬.”

“…….”

정말이지, 제 거절을 완곡하게 차단하는 말이었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지수는 제가 버텨 봤자 강재윤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몇 해에 걸쳐 호되게 체험했기에, 천장을 보고 드러누웠다.

‘생일 선물……. 딱히 갖고 싶은 건 없는데. 돈은 나도 잘 벌고.’

물론 S급과 비교할 수 없지만, B급 가이드로 사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아이돌로 활동하던 시절보다 일은 덜 하고, 정산은 더 많이 받았으니까.

애초에 길드 계약 당시 제안받은 조건이 상당히 좋았던 것도 있지만, 평화 길드가 워낙 각성자에 대한 복지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딱히 물질적으로 부족한 게 없었고, 생일 선물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받고 싶은 건 더더욱 없었다.

그래도 재윤이 또 경매장에서 엄한 일을 벌이기 전에 일단은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 볼게.”

“던전 진입하기 전까지 생각해 둬.”

“너무하네.”

“하하, 지수 너는 아슬아슬할 때까지 미뤄 뒀다가 코앞에 닥쳐야 하잖아. 시간 오래 주면 또 어영부영 넘길걸?”

“…….”

솔직히 맞는 말이었다. 과제가 있으면 당장 해치워야 편한 강재윤과 달리, 지수는 한계점까지 미루곤 했으니까.

이후에도 맞는 말만 직구로 날린 재윤은, 지수의 입에서 던전에 진입하기 전까지 생각해 말해 주겠다는 약속을 육성으로 들은 후에야 다른 침실로 돌아갔다.

내내 얌전히 앉아 새우만 먹던 토토는 재윤이 다른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까지 그 뒷모습을 아닌 척, 깜장 콩 같은 눈으로 열렬히 좇았다. 문이 닫힌 후에는 이제 저 에스퍼가 제 집사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는지, 퍽 편해 보이는 자세로 누웠다.

“토토야. 아빠 어떻게 하지? 큰일이네……. 선물로 뭘 달라고 해야 하나…….”

“쮜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을 한 토토가 협탁 쪽 벽에 스위치를 툭- 눌러 방 불을 껐다.

“……잠이나 자라는 거야?”

“쮸!”

“알았어. 자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내일 또 맛있는 거 먹자.”

“쮜잇-!”

힘차게 대답한 토토가 알아서 수건 더미 사이로 쏙 들어갔다. 지수는 어두워진 방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생일 선물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하는 실없는 고민이었다.

‘진짜 필요한 게 딱히 없는데? 평소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자기가 다 해 주면서…….’

강재윤이 아니었다면 이번 오프도 대충 제집이나 강재윤 집 침대에 널브러져 보냈을 게 뻔했는데, 덕분에 부산까지 편하게 오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바다도 보고 푹 쉴 수 있었다.

누가 보면 S급 에스퍼가 그렇게 한가하냐며 놀랄 수 있겠지만, 엄밀히 따져 보자면 강재윤은 늘 바빴다. 그래도 언제나 지수에게만큼은 시간을 내주었고, 지수에게 낼 시간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지극정성인 강재윤이 저가 생일 선물을 고르지 않으면 또 얼마나 유난을 떨지 눈에 선했다. 덕분에 끙끙대며 여러 선물 후보를 정리하던 지수는 1시간이 더 지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수는 꿈에서 해답을 찾았다.

* * *

“여행?”

아직 비몽사몽한 지수와 달리, 새벽부터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은 재윤이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제스처에 눈도 제대로 못 뜬 지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확답을 줬다.

“어. 근데, 형이 여행 갈 만큼 휴가를 낼 수 있다면…….”

“당연히 쉬어야지. 장소는?”

“……음…….”

부스스한 몰골로 대답을 망설이는 모습에 강재윤은 뭐든 다 말하라는 듯이 바라봤다. 그 다정함을 가득 담은 눈동자와 잠시간 시선을 맞춘 지수가 결심한 듯이 말했다.

“산토리니. 그때…… 나 때문에 형도 구경 못 했잖아.”

“…….”

“……어, 그, 뭐냐, 혹시 일정 빼기 힘들 것 같으면 다른…….”

“아냐. 지수야. 형은 좋아. 지수만 괜찮다면 언젠가 꼭 다시 지수랑 가 보고 싶은 곳이었거든.”

“…….”

‘지수만 괜찮다면’

저 말의 뜻을 이해한 지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100%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지수가 언급한 여행지 산토리니는 아이돌로 활동하던 당시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방문했던 장소로,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렸을 때 이온 음료 광고를 보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장소였지만, 아쉽게도 지수에게 있어 산토리니의 추억이라곤 해산물을 잘못 먹고 크게 배탈 나 숙소에 앓아누웠던 것뿐이었다.

어떻게든 프로 의식을 발휘해 촬영은 무사히 마쳤지만, 구경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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