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1화 (1/172)
  • #001.

    프롤로그

    예정된 유예 기간을 미리 고지받아 오랜 시간 대비하고 마지막을 준비한 게 아닌 이상, 대부분의 이별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한평생 그래 왔듯 언제나처럼 아침 인사를 하며 집 현관을 나섰다가 다신 돌아오지 못하게 된 이도 있고.

    ‘많이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떡볶이랑 튀김 샀어~ 길만 건너면 돼~’

    조금 후면 귀가한다고 했으면서, 수많은 계절이 바뀔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게 된 이도 있다.

    ‘늦어서 미안, 10분 내로 도착할 예정이야.’

    또 어떤 이는 사과 끝에 덧붙인 두 손 모아 울상 짓는 귀여운 이모티콘이 생전 마지막 메시지로 남기도 한다.

    한지수 역시 위의 사연들과 별다를 바 없는 이별을 겪었다.

    형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는 ‘차가 덜 막혀서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어. 천천히 와.’라는 내용이었고, 같은 시간 동생이 보낸 메시지는 ‘형, 이따 재윤이 형한테 맛있는 거 사 달라고 해도 돼?’라는 물음과 고개를 갸웃하는 햄스터 이모티콘이었다.

    가족 단톡방에 저 메시지들이 올라온 당시 한지수는 차에서 고개를 떨구며 졸고 있던 탓에 제시간에 답장하지 못했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난 후, 한지수가 보낸 답장은 두 사람의 물음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형, 난 괜찮아. 형은 지금 지율이랑 같이 있는 거 맞지? 내 메시지 보여?’

    ‘형, 난 지금 재윤이 형이랑 사람들이랑 모여 있어. 보조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아서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메시지 보면 어디에 있는지 꼭 써 놔. 알았지?’

    ‘형, 우린 서울 8호 대피소에 있어. 정부 사람들도 만났어. 재윤이 형 덕분에 형이랑 지율이 위치도 알아봐 준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형, 보고 싶어. 지율이도 너무 보고 싶어.’

    ‘지율아. 거기서 형이랑 잘 지내고 있어? 서울은 이제 좀 괜찮아지고 있어.’

    ‘형, 거긴 어때? 안 추워? 난 지금 대구야. 빙궁 던전 공략에 실패해서 3차 진입 대기 중이야. 덕분에 8월 대구에 폭설이 내리고 있어. (사진)’

    ‘형, 잘 지내? 난 오늘 좀 힘들어. 갑자기 형이랑 지율이 대화명이랑 프사가 안 보이고 이렇게 알 수 없는 대화 상대라고 표시되더라.(사진) 물어보니까 이게 1년 넘게 로그인을 안 해서 그렇대. 어떻게 복구도 안 된대. 근데 괜찮아. 혹시 몰라서 스샷 다 떠 놨어. 근데 그냥 기분이 좀 그래…… 보고 싶어…… 매일 보고 싶은데, 오늘따라 더 보고 싶다.’

    ‘지율아, 생일 축하해. 벌써 3년이나 지났네. 재윤이 형도 축하한대. 정말 많이 보고 싶어. 사랑해.’

    ‘형, 생일 축하해. 보고 싶어. 사랑해.’

    ‘형, 지율아, 나랑 재윤이 형이랑 둘 다 나라에서 주는 상 받는다. 대단하지?’

    ‘오늘 꿈에서 형이랑 지율이가 나왔는데, 나만 두고 너무 빨리 걸어서 못 쫓아갔어. 미안해.’

    ‘복ㅗ ㅅ..ㅍ.ㅇㅓ’

    ‘둘 다 내 꿈에 나와서 목소리 좀 들려주라.’

    ‘오늘은 좀 힘든 날이었어. 형이랑 지율이가 오늘따라 더 많이 보고 싶다.’

    ……

    ……

    ……

    거의 6년 가까이 홀로 보낸 메시지들을 쭉 내리던 한지수는 피식 웃으며 액정 제일 밑으로 내려와 키패드를 두드렸다.

    토톡, 톡, 톡톡, 두드려 쓴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글만 전송하기 조금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하트를 끌어안고 달려오는 토끼 이모티콘을 함께 보냈다.

    ‘형. 지율아. 오래 기다렸지? 지금 만나러 갈게. 슬슬 마중 나와.’

    글과 함께 전송된 토끼는 제 몸보다 큰 하트를 끌어안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땀까지 뻘뻘 흘리면서도 뭐 그리 좋은지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이 마치 지금의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간 액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주머니에 넣은 지수는 크게 심호흡하고 고개를 들었다. 캄캄한 밤하늘이 보였다. 무수히 많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쓸데없는 감상에 젖을 것 같아 도리질하며 마음을 다잡은 지수는 제 앞에 이글거리는 던전 게이트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시공간이 뒤바뀐 공간에 진입하자 주변 소음이 싹 차단됨과 동시에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시골이 아닌, 넓은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미 5차 공략까지 끝난 던전은 위험 요소가 하나도 감지되지 않았다. 주변을 쭉 둘러본 지수는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 던전 하늘 중앙의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던전 초기화까지 남은 시간: 15:18 / 던전 입장 인원: 1명』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곧 소멸할 예정인 던전엔 저를 제외한 다른 이는 없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자 허리쯤까지 오는 갈대와 비슷한 식물이 바람에 흔들리며 제 옆구리를 간질였다.

    산책하듯 앞으로 쭉쭉 걸어가던 한지수는 조금 전 봤던 밤하늘과 달리 짙은 핏빛으로 물든 던전 내부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은 하늘은 높고, 바람은 강하지만 적당히 선선해서 기분이 좋았다.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이 제 몸을 떠밀듯이 밀었다.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듯이 바람이 미는 대로 몇 분간 걸은 지수는 절벽 근처 적당한 위치에 멈춰 서서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시간에 쫓겨 급조한 탓에 다소 엉성한 계획이었는데도, 여러 운이 따라 주며 완벽하게 진행되어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후우…… 날 참 좋다.”

    정말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에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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