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40)


#39화

샤워를 마치고 나온 디가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때맞춰 식사를 내온 직원이 물러가고, 넓은 식탁엔 디 혼자 남았다. 2층 테라스에서 투닥거리던 솔이와 돔돌은 융이 산책이라도 갔는지 그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귀찮은 것들.

장군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며 짹짹거리는 녀석들의 잔소리가 떠올라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던 디가 눈살을 찌푸렸다.

‘안 내려오신 지 나흘쯤 된 것 같아요. 세탁실도 이용한 흔적이 없고요. 식사는 하셨을지….’

수저를 내려놓은 디가 물로 입술을 축였다.

죽겠다고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쿨럭, 아닙니다…. 그저 두통… 큭. 최근 두통에 시달려서.’

고작 그따위가 뭐라고…!

디의 감정에 동화된 무형의 기운에 쓸려나간 식기들이 와장창- 깨어졌다.

‘제발… 부탁입니다. 피가… 멈추질 않아요.’

피를 쏟다가 죽어버리든지.

‘그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도무지 피가 멈추지 않네요.’

우지끈-! 날아간 식탁이 벽에 박혀 들었다.

선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 평생 가축보다 못한 신세로 남겨 놓고도 싶었다.

사지를 잘라 목줄 맨 채 끌고 다닐까, 산 채로 내장을 들어내 박제를 해버릴까.

그도 아니면 사지를 잘라 그 잘난 목구멍에 피를 쏟아부어 배불리 먹인 다음, 1구역, 아니, 1구역에서 12구역까지 짐승이란 짐승의 좆 맛은 모두 보여 주고, 발가벗긴 몸을 끌고 광장과 광장을 돌까. 골목 구석구석 보지 못한 사람이 없게 전시한 뒤 산 채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온 광장에 효시를 할까. 아무도 보지 못한 사람이 없게. 아무도.

‘자살이 취미십니까?’

‘대표님도 보셨잖습니까.’

영상이 풀린 걸 몰랐어? 나와 마을 사람들의 피를 바쳐까지 대장군 자리를 지킨 주제에. 지난 1년 6개월간 그 사실조차 몰랐다고? 거짓말.

‘‘선생님’이 스승님과 ‘밤’을 죽였습니다. 그 밤, 대장군 ‘뫼’의 일가를 몰살시킨 건 다름 아닌 ‘선생님’이었습니다.’

그건 당신이 지어낸 거잖아. 잘난 당신이 나 같은 애새끼를 꾀어내려고 아무렇게나 지어낸 망상에 불과하잖아!

퍼펑-! 식당의 유리창이 깨져나갔다.

‘나는 실제로 뇌 기능에 조금 문제가 있거든요.’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몇 개 없어요. 아마도 외상에 의한 기억상실인 것 같아요.’

부릅뜬 눈에 핏발이 섰다.

‘그런데도 디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말하고 싶지 않겠지만, 어차피 나는 다 잊을 테니까.’

‘그러니까… 말해 줘요, 디.’

어느덧 차갑게 가라앉은 잿빛 눈동자에선 일말의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일시에 잠재운 건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내장을 쏟아내며 죽음을 맞이하던 감각이었다.

문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직원에게 저리 가라 손짓한 디가 기운을 이용해 간단히 주변을 치우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5층까지 오르는 건 디에겐 식은 죽 먹기였으나, 계단을 밟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봐, 식은 죽 먹기지?’

‘네. 정말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워요.’

‘하하, 디는 하나를 가르쳐도 열을 배우는구나.’

쿵-!

움푹 파인 벽면에서 날리는 먼지가 사르륵- 바람에 치워지듯 난간 너머로 사라졌다.

빌어먹을. 낮게 욕설을 지껄인 디가 얼마 후 다시 계단을 올랐다. 오를 때마다 쿵- 쿵- 벽이 박살 나는 소리가 성 전체를 흔들었으나, 계단을 되돌아 내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선을 처박아둔 방문을 열고 들어선 디는 헛웃음도 짓지 못했다. 푹신한 침대에 파묻혀 곤히 잠든 선은 고작 5층을 오르는 동안 갈피를 못 잡고 병신같이 굴던 저를 비웃는 듯했다.   

쾅-!

무형의 기운에 쓸린 문이 부서질 것처럼 세게 닫혔다. 그럼에도 꼼짝도 하지 않는 선을 내려다보는 잿빛 눈동자를 스친 건 환멸이었다.

“일어나.”

선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디는 두 번 말하지 않고 침대를 벽에 집어 던졌다. 콰직-! 프레임 째로 날아간 침대가 부서졌다. 이쯤 되면 날렵하게 움직여 봉변을 피했어야 할 선이 보이지 않았다. 부서진 잔해가 쏟아져 내릴 바닥에서 나뒹구는 선의 몸뚱이를 발견한 디가 즉시 힘을 썼다. 힘없이 널브러진 선을 덮치기 직전 허공에서 멈춘 침대 잔해가 휙- 모조리 창문 밖으로 쓸려나갔다.

반쯤 엎어진 선의 등을 내려다본 디가 발끝으로 툭 어깨를 쳤다. 스륵 천장을 보고 눕게 된 선의 얼굴이 창백했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일어나.”

“…….”

결국 힘을 써서 선의 몸을 강제로 일으킨 디가 손을 뻗었다. 단숨에 움켜쥔 목을 벽에 밀어붙이자 축 늘어진 몸이 가늘게 경련했다.

어디선 이런 싸구려 술수를.

목을 부러뜨릴 듯이 힘을 주던 디의 눈가로 비웃음이 스쳤다. 견디다 못한 선이 컥-, 밭은 숨을 뱉으며 두 손으로 디의 손목을 붙잡았다.

“디…, 큭, 크헉, 대…, 대표…, 큭, 큭! 숨….”

창백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끝에 시퍼렇게 질릴 때까지도 미동이 없던 디가 깜빡깜빡 눈꺼풀 뒤로 넘어가는 동공을 확인한 뒤에야 목을 놔주었다.

쿵- 바닥에 떨어진 선이 발작하듯 기침을 해대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가 진정할 시간도 주지 않은 디가 바닥에 흩어진 선의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다.

“허억, 헉! 허윽! 쿨럭! 큽!”

변기 뚜껑을 통째로 걷어 올린 디가 변기 물에 선의 얼굴을 처박았다.

“우욱-! 욱-! 꼬르륵- 끅- 끄읍!”

부지불식간에 당한 일에 숨 쉴 틈을 조금도 찾지 못한 선이 사지를 뒤틀며 제 머리를 움켜쥔 디의 손을 밀어내려 했으나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바닥을 밀어내다 결국 힘이 풀려 쭉 미끄러진 선의 가랑이 사이가 축축이 젖어 들었다. 그걸 알아차린 디가 입매를 비틀며 선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커억! 컥! 큭-! 제, 제발…!”

“그간 얼마나 신나게 굴렀으면 이딴 짓도 쾌감이라고 오줌을 질질 싸댑니까?”

“대, 대표…! 크윽! 끅- 꺼억- 끄으으-!”

간절한 애원은 본 척도 않고 변기 물에 다시 선의 머리를 처박은 디가 무릎으로 가랑이 사이를 꽉꽉 눌렀다. 변기와 디의 무릎에 껴서 이리저리 짓뭉개진 고환이 땡땡하게 부어오르는가 싶더니 축 늘어진 성기에서 정액이 쏘아짐과 동시에 다시 한번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위로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아래로는 나오는 대로 죄다 싸대던 선이 까무러치듯 경기를 일으키며 의식을 놓으려는 찰나를 놓치지 않은 디가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커억! 커억! 컥-!”

상의도 하의도 모두 축축하게 젖은 선이 할딱거리며 두 손으로 제 머리채를 잡은 디의 팔을 붙잡았다.

“제발…, 큭…, 제발 부탁…, 대표…, 대표님….”

“누가 네 대표야.”

싸늘하게 일갈한 디가 다시 머리를 변기 물에 처박으려 하자 경기하는 선이 매달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디는 꼼짝하지 않았다. 열 번을 연거푸 숨이 끊기기 직전까지 선을 처박았다 들어 올린 디가 흠뻑 젖은 몸을 바닥에 내던졌다.

“허윽, 헉! 헉…, 크읍.”

버러지처럼 꿈틀거릴 기력조차 없어 떨리는 숨만 몰아쉬는 선이 제 앞에 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이 방에 처박은 이후로 발길도 하지 않던 남자가 갑자기 쳐들어와 이러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예전의 저를 안다는 뉘앙스로 뱉는 말들이나, 저 눈빛과 행동에 엉킨 감정과 현상으로만 추측할 뿐이었다.

이 남자는 이성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저에게 살의를 느끼면서도 끝내 그러지는 못한다는 사실. 왜? 내가 그에게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러서. 언제? 내 기억이 온전치 못한 시간들 중 하나. 어떻게? 어떻게 해야 사람이 사람한테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거지. 어떻게 해야. 내게 살의를 느끼는 상대의 고통까지 느껴질 수가 있는 거지. 대체 내가 저 남자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어야.

“넌 내 부하직원도 아니고, 심지어 내 회사에서 밥을 빌어먹는 떠돌이 개새끼도 아니지.”

어느새 격렬한 감정을 휘발시킨 남자가 까닥 손짓했다.

“대표? 차라리 주인님이라고 불러. 그게 노예만도 못한 지금 네 처지에 가장 잘 어울리니까.”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선이 기다시피 디에게 다가갔다.

“고작 몸살 따위로 꾀병 같은 걸 부릴 생각이면 집어치워. 네 놈 때문에 비명 속에 죽은 것들이 지하에서 통곡을 할 거다. 두통? 기억이 나질 않아…!”

덜덜덜 떨리는 몸으로 겨우 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선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툭툭,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는 남자는 눈빛만으로도 선을 때려죽일 것 같은 살의를 내보이고 있었다. 비명 속에 죽어? 약탈자…. 동료들이 내 손에 죽었나? 그런데 왜 고통스러워해?

“입 벌려. 발정열인지 뭔 개 같은 수작인지 몰라도, 내가 줄 수 있는 페로몬은 이것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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