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40)


#30화

탕- 탕- 탕-!

날아간 총알 15개가 모조리 디에게 박혀 들었다. 탄창이 비도록 총을 쏘고도 분을 참지 못한 창이 칼을 꺼내 덤벼들려는 찰나였다. 뒤에서 부산스러운 기척이 느껴졌다.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장군님.”

“장군님.”

핏물에 잠겨 꿈틀거리던 디가 움찔했다.

지금… 누구.

누구… 라고….

“고작 이런 싸구려 알파한테 백인부대 쉰넷이 당했다고.”

“면목 없습니다.”

“치워. 냄새가 역하다.”

“네, 장군님.”

“그리고 네놈들은 돌아가는 즉시 훈련에 참여하도록. 백인부대 쉰넷이 저 새파란 알파 하나를 못 당해서….”

차가운 얼굴로 돌아선 대장군이 말을 잇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피 웅덩이를 뒹굴던 디가 어느새 대장군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럴 때까지 디의 움직임을 눈치챈 자가 없었다.

하물며 대장군조차.

‘기척이 사라졌어?’

속내와 달리 냉랭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 디를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흘러내린 핏물이 뚝, 떨어져 대장군, 선의 뺨을 적셨다.

“선…?”

“뭐야? 이 역겨운 알파 새끼는.”

싸늘한 얼굴로 낮게 일갈한 대장군 선이 동시에 휙 손을 쳐 냈다. 단지 그뿐인데도 바위에 맞은 것처럼 휙 날아간 디가 바닥을 뒹굴었다.

커억, 큭! 피를 토하면서도 대장군 선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디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 잿빛 눈동자엔 오로지 선만이 담겨 있었다.

“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기어서라도 대장군 선에게 다가가려는 디에게 채찍이 떨어졌다. 쩌억, 쩌억, 쩌억-! 등을 갈기고 지나간 채찍이 휘리릭 날아가고, 총 대신 칼끝이 겨눠진 순간이었다.

“그만.”

손을 들어 저지한 대장군 선이 부하들을 제지했다. 이를 갈며 디의 사지를 찢어 놓으려던 창은 눈을 부라리면서도 대장군 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칼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거기엔 눈길도 주지 않은 대장군 선이 두어 걸음 다가가 디 앞에 섰다.

잿빛 눈에 쩍쩍 붉은 금이 가 있었다. 피가 고인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고 뒹굴어 피범벅인 이 구역질 나는 알파는,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갖지 못한 것까지 모조리 잃어버린 사람처럼 텅 빈 눈동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본 대장군 선이 물었다.

“나를 아느냐?”

“…선.”

픽 웃는 대장군 선의 입매가 뒤틀렸다.

“그건 지나가는 개새끼도 아는 이름이지. 그것 말고는 더 없느냐?”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은 어… 떻게 됐습니까….”

“죽었다.”

찰나 텅 빈 눈동자에 빛이 들어온 것 같았으나, 곧 깜깜하게 꺼져 버렸다. 구역질 나는 알파가 절망하는 모습에 외려 흥미가 식은 선이 부하들에게 뒤처리를 명하려 할 때였다.

“누… 가….”

알면서도 묻는 구역질 나는 알파를 내려다본 대장군 선이 냉소했다.

“누구일 것 같으냐.”

“…….”

그 짧은 순간 대장군 선은 저 잿빛 눈동자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의문과 혼란, 불신과 분노, 아니길 바라는 간절함과 미어터질 것 같은 죄의식이 해일처럼 밀려 나왔다. 그중 가장 강렬한 감정은 왜라는 의문과 절망보다 더한 분노였다.

“멈춰라.”

또 한 번의 제지에 이번만은 참지 않겠다, 눈을 치켜뜬 창이 달싹거리려던 입술을 다물고 말았다.

소리도 없이 활짝 펼쳐진 은색 검이 밝은 태양 아래서 빛을 냈다. 대장군 선의 오른팔에 감겨 있던 연검이었다. 평소 왼팔에 감고 다니던 붉은 검과는 색도 성질도 달랐다. 붉은 검이 불의 기운을 사용한다면, 은색 검은 물의 기운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백인부대가 미처 준비해 오지 못한 붉은 검 대신 은색 검을 빼든 대장군 선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구역질 나는 알파를 내려다보았다. 범람하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은 잿빛 눈에선 마침내 한 가지 감정만이 떠올랐다.

슬픔.

깊고도 깊어 그 격렬함이 보이지도 않은 완벽한 슬픔이었다.

은색 검을 높이 든 선이 입을 열었다.

“이런 놈들은 확실하게 처치하지 않으면 후환이 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을 가른 은빛 궤적이 그대로 디를 가르고 지나갔다.

“…….”

꾸르륵.

목부터 장골까지. 구역질 나는 알파의 상체를 깊게 가르고 지나간 은빛 궤적 위로 스멀스멀 새어 나오던 피가 마침내 왈칵 뿜어졌다. 이윽고 살과 근육이 갈라진 틈으로 내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털썩, 힘을 잃고 쓰러진 구역질 나는 알파의 시체를 내려다본 대장군 선은 스륵, 만들어 낸 물로 은색 검을 씻어 내고 오른팔에 감았다.

“흰색 순록의 뿔로 분리한 공간이다. 밤나무를 통째로 태우면 이 공간도 알아서 사라질 것이다.”

“저놈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같은 형질자를 팔아넘기려던 놈이다. 실험체로 쓰지도 못할 쓰레기를 뭐 하러 신경 쓰나. 짐만 될 뿐이다.”

“…….”

검을 움켜쥔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창을 내려다본 대장군 선이 덧붙였다.

“분풀이가 필요한 거라면 마음껏 해도 좋다.”

“…아닙니다, 장군님.”

알아서 하라는 듯, 차가운 얼굴로 창을 지나쳐 간 대장군 선이 먼저 공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창이 나오기 직전 정확히 15발의 총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결국 알파의 야만적인 공격성이 백인부대원으로서의 자긍심을 이긴 것이다.

대장군 선은 냉소조차 하지 않았다.

디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죽음을 건너는 중인지도 몰랐다.

‘거듭 겹치는 우연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하죠.’

‘나는 필연보다는 치밀한 계획을 믿는 사람입니다.’

‘디. 정체가 뭐죠?’

‘내가 정말 당신의 ‘선생님’이 맞습니까?’

‘당신이 정말, 스승님과 ‘밤’의 아이가 맞습니까?’

‘디. 나는 디를 죽일 수 없어요.’

‘누구에게도 토끼 이야기를 한 적 없거든요.’

‘그런데요. 그게 정말일까요?’

‘정말 내가, 디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나를 믿어도 되는 걸까요?’

‘이렇게 쉽게 포기해도 되는 걸까요?’

‘‘선생님’이 스승님과 ‘밤’을 죽였습니다. 그 밤, 대장군 ‘뫼’의 일가를 몰살시킨 건 다름 아닌 ‘선생님’이었습니다.’

‘‘밤’은, 나의 아버지. 어쩌면 우리의 아버지일지 모를 ‘밤’은 우리가 꼭 살아 주길 바랐죠.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혼자 살아남은 나는, 너무나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챈 나는 이제라도 ‘선생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죽은 순간부터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거든요. 복수. 스승님과 나의 가족을 처참하게 몰살시킨 상대를 향한 복수 말고는 살 이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군요.’

‘디가 정말 ‘뫼’와 ‘밤’의 아이라면, 나는 살아야 합니다.’

‘꼭 살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다정한 아버지 ‘밤’은 복수보다 그저 살아 주길 바라셨거든요.‘

’그런데 나는 ‘선생님’을 찢어 죽이고 싶어요. ‘선생님’의 사지를 잘라 목구멍에 본인의 피를 쏟아부어 배불리 먹일 겁니다. 1구역 모든 짐승의 좆 맛을 보여 주고, 발가벗긴 몸을 끌고 광장과 광장을 돌 겁니다. 골목 구석구석 보지 못한 사람이 없게 전시한 뒤 산 채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검은 광장과 붉은 광장에 효시할 겁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사람이 없게요.’

‘한편으론 이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디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선… 그건 다 저를 속이기 위한 거짓이었습니까?

쿨럭- 피를 토하는 디의 잿빛 눈이 색을 잃었다.

‘디. 왜 하필이면 지금, 내 앞에 나타난 겁니까.’

‘왜요, 디.’

선생님일 적의 기억을,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다는 말도 모두 거짓이었습니까.

‘숨어 살아요?’

‘내 동의도 없이 비밀을 노출해 놓고선. 디는 대담하거나 어리석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마을 사람들의 동의는 얻었습니까.’

‘믿어 줘서 영광이라고 해야 합니까?’

장난스럽게 웃는 선은 밝은 태양 빛 아래서 아름답게 빛났다. 그 아름다움에 홀려 마을 사람들을 내준 것이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렴. 널 꼭 찾으러 올게.’

‘디. 마이 디어. 날 꼭 기다려 줘.’

‘나는 너에게 꼭 돌아올 거야.’

열 살이 되던 해에도, 선이 사라진 직후 7구역의 약탈자들이 마을을 기습했다. 평범한 구역민은 모조리 죽이고 형질자와 이형자만 납치해 갔다. 7구역의 약탈자들은 디 자신조차도 몰랐던 원형 알파의 형질을 단 한 번의 검사도 없이 확신한 뒤, 디를 낡은 군용 트럭에 태웠다.

‘디. 너에게서 가끔 포도 향이 나는 듯하구나.’

약탈자들이 쳐들어오기 전날 밤, 움막집에서 선이 띄운 작은 불덩이를 빛 삼아 글자 공부를 했다. 획과 음을 가르치던 선이 문득 디의 어깨에 코를 파묻곤 속삭인 한마디였다.

‘어쩌면 너는 원형 알파일지도 모르겠다.’

끝내 소리가 되지 못한 울음이 죽어 가는 몸뚱이에서 단 한마디도 새어 나오지 못한 채 화산처럼 터져 나갔다. 디는 죽어 가면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다. 다시는 살고 싶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