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40)


#15화

기척도 없이 디의 페로몬을 쫓은 선이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섰다. 족히 500살은 넘어 보이는 거대한 느티나무 뿌리 쪽에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거기에 은하수처럼 뿌려진 별 가루가 느껴졌다. 깊고 거친 수풀을 헤치자 길게 갈라진 느티나무의 구멍이 보였다. 풋풋한 청포도 향이 선의 코끝에 닿았다.

상체를 숙여 구멍 안으로 들어선 선이 걸음을 옮겼다. 캄캄한 느티나무 안을 걸을 때마다 청포도 향이 짙어졌다. 마침내 느티나무 구멍과 이어진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은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들어섰다.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 안, 반경 15m 정도의 둥그런 공간에 어린 알파가 커다란 덩치를 잔뜩 구긴 채 신음하고 있었다.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침입자의 기척을 알아챈 디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번뜩이는 눈에서 안광이 비친 찰나, 웅크린 몸을 전광석화처럼 움직인 디가 단숨에 선을 덮쳤다.

쿵- 돌바닥에 내던져지듯이 쓰러진 선은 그로 인한 고통에 신음하기보다는 저를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는 어린 알파의 짐승 같은 눈알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집채만 한 호랑이처럼 거대한 덩치로 선을 낚아 누른 어린 알파는, 당장이라도 선을 물어뜯을 것처럼 그르렁거리며 고통스레 포효했다.

* * *

이성이 사라져 버린, 그저 한 마리 짐승에 불과한 어린 알파가 선의 까만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나는 선을 그렇게 취급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아닙니다. 그러려고 선을 청한 게 아니에요.’

진심 어린 목소리가 선의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그때의 모습은 터럭도 찾아볼 수 없는 발정기의 알파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선이 이내 한숨을 쉬었다. 두 손을 뻗어 디를 끌어안자 거칠게 요동치던 몸이 올가미에 걸린 괴수처럼 덜컥 멈추었다. 이 정도면 잠깐 정신을 차릴 정도는 될 것이다. 발정 난 알파에겐 기별도 가지 않을 테지만, 없는 것보단 나은 해갈이었다.

받은 게 있어서 보답하는 겁니다. 이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굵은 목에 한 손을 감고, 다른 손으로는 터질 듯 팽창한 등을 둘러 안자 헉- 숨을 들이켠 디가 벌겋게 물든 두 눈을 부릅떴다.

“…선?”

충격으로 흔들리는 시뻘건 눈동자와 눈을 맞춘 선이 고통스레 일그러지는 입매를 제 입술로 가만 훑어 주며 속삭였다.

“네, 디.”

“여… 여긴… 어떻, 큭!”

우성 오메가와 전신을 붙이고 있어도 이성이 되돌아온 순간은 찰나였다. 곧 난폭한 본능이 어린 알파의 이성을 집어삼키고, 연이어 우성 오메가를 물어 삼킬 것이다.

“내가 디의 페로몬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었나 보죠?”

“…오지 말았어… 야죠.”

“내가 왜요?”

부드럽게 웃은 선이 고통과 흥분으로 흠뻑 젖은 등을 쓸어 안으며 물었다.

“디에게 생명을 빚졌는데, 이 정도는 해 드려야죠.”

“큭! 나는….”

“나를 이렇게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고요?”

“…….”

비아냥처럼도 느껴지는 선의 반문에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어린 알파의 눈동자가 돌덩이처럼 굳어 버렸다. 이 어린 알파는 왜 이렇게 상처를 쉽게 드러내는지 모르겠다. 매번 이러는 건지, 저에게만 이런 건지. 감이 좋은 선은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서 디를 안아줬잖아요.”

“…….”

“내가 이렇게 안아 주지 않았으면, 디는 벌써 나를 뼈 한 조각 남기지 않을 기세로 씹어 삼켰을 거예요.”

“내가… 그렇게 싫어요? 큿.”

신음과 함께 혼탁해지는 어린 알파의 눈을 마주한 선이 다시금 입을 맞추었다. 도로 맑아지는 회색 눈엔 고통의 흔적이 역력했다. 1초에도 수십 번씩 전신이 으깨지고 저며지는 고통보다 선의 냉소가 더 고통스러워 보이는 게 의아했다.

“디. 속상해하지 말아요. 그럴 이유가 없어요. 나는 디를 싫어할 일도, 좋아할 일도 없으니까요.”

이 잿빛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즉시 떠났을 텐데.

“이건 보답이에요. 날 살려 준 보답.”

“크읏…!”

“날 안으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선….”

“이렇게 혼자, 힘들게 버틸 필요가 없어요, 디.”

“선… 생님….”

“네, 디.”

“싫어요… 싫어….”

“그럼 별수 없겠네요.”

디를 끌어안은 손을 풀어 가볍게 떨어져 나간 선이 애석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디가 나를 강간하도록 놔둘 수밖에요.”

와락 일그러지는 디의 얼굴이 축축하게 젖어 갔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섞였다.

“나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기억도 못 하면서….

“디. 그런 걸로 울 필요도 없어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은 선이 흠뻑 젖은 디의 얼굴을 가만 쓸어 주었다.

“나는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거든요.”

“선생님은… 날 떠날 거죠…? 이번에도…. 큭.”

“네, 디. 그러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어서 선택하세요.”

눈물을 닦아 주던 손길이 떨어져 나가자 또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디의 눈동자가 혼탁해지길 반복했다. 가까스로 붙잡은 이성이 끊어지기 전에, 선은 마지막 친절을 베풀 듯 한마디 덧붙였다.

“디의 성인식을 강간으로 시작할지, 화간으로 시작할지. 나를 괴로운 기억으로 남길지, 조금은 괜찮았던 기억으로 남길지.”

“크흐윽.”

“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고개를 저은 디가 스스로 물러났다. 이미 갈가리 찢긴 옷은 간데없고, 드러난 디의 맨몸은 갓 생긴 상처들로 피투성이였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바위에 머리를 찍고, 몸을 내던진 탓이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일주일의 발정기를 보냈을 것이다.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기꺼이 발정기 도구로 이용당해 주겠다는데도, 그러려고 저를 청했으면서.

‘나는… 아닙니다.’

그래요. 믿어 볼게요. 어차피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니까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넘긴 선이 몸을 일으켰다. 단단한 바위벽에 몸을 던지던 디가 이번엔 마구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퍽, 퍽, 퍽-! 돌이 튀고 바위벽에 금이 감과 동시에 디의 손에서도 핏물이 튀었다.

“디는 정말 고집이 세네요.”

팔에 감은 연검을 빼 구석에 던진 선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래요. 내가 디를 강간하는 것으로 해요.”

마지막으로 발목에 감은 벨트까지 벗고 한 걸음 내디뎠다.

“그것 말고도 내가 저지른 악행은 셀 수도 없으니까요.”

마침내 쩌적 갈라진 바위벽이 돌무더기가 되어 디를 집어삼키려는 순간이었다. 손을 뻗어 디를 낚아챈 선이 육중한 몸을 가득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돌무더기가 무너져 뿌연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공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에게 와락 쏟아진 디를 보듬어안은 선이 가만 시선을 내렸다. 성난 범처럼 팽창되어 미친 괴수처럼 폭발 직전인 디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선… 생님…. 선생님… 선….”

아파요. 너무… 아파요.

“알아요, 디.”

죽어서도 끝날까 싶은 고통을 선 역시 겪고 견딘 적 있었다.

여전히, 산 채로 잡아 뜯기는 발정기의 고통보다 저와의 입맞춤이 더 고통스러워 보이는 디의 뺨을 감싸 안은 선이 코끝을 맞추며 작게 속삭였다. 더운 숨결이, 비누 냄새 섞인 어떤 향이, 디의 코끝을 적시고 상처 입은 몸 구석구석을 적셔 갔다.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이었다.

“아마 나는 머잖아 디를 잊을 거예요. 이 기억도 나는 분명 잊을 테니까, 디. 제발 그만 울어요.”

“으흐윽.”

“적어도 앞으로 일주일은 같이 있을 수 있잖아요?”

눈을 맞추며 빙긋 웃은 선이 다시금 입술을 겹쳤다. 피로 축축하게 젖은 디의 입술을 가르며 붉은 혀가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디의 이성이 날아가고, 거대한 몸이 선의 희디흰 몸을 태풍처럼 휩쓸었다. 우성 오메가의 짙은 페로몬이 좁고 습한 동굴을 삽시간에 에워쌌다.

어린 알파의 첫 발정기였다. 고문과도 같은 고통이 살과 뼈를 저미다 못해 영혼까지 침투하기를 견디기만 했던 발정기가 아닌, 푸르른 하늘빛 페로몬이 아픈 곳을 구석구석 어루만져 주는 첫 발정기였다. 그것만으로도 디는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디… 정신이 들어요?”

낮게 가라앉은 선의 목소리는 사포에 갈린 것처럼 거칠고 끊어질 듯 가냘팠다.

“디… 흐윽-!”

온갖 애액이 끈적끈적하게 엉겨 붙은 커다란 성기가 사방에 점액질을 튀기며 엉덩이 사이로 거칠게 박혀 들어갔다. 크게 벌어진 선의 입에서 새액새액, 약하디약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전신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차갑고 딱딱한 돌바닥과 육중한 몸 사이에 끼어 수십 번, 아니, 수천 번은 족히 아래가 쑤셔지고 내장이 들리길 반복했다. 선의 두 손으로도 다 잡히지 않는 디의 성기는 첫 삽입부터 항문을 짓이기며 좁은 내벽을 터트릴 듯 단번에 파고들었다. 배꼽이 들리고 내장이 찌부러지는 충격에 선은 오줌을 지리며 신음을 삼켰다.

원형 알파의 발정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난폭했으며, 거칠고 사나웠다. 길들지 않은 괴수가 몸속에서 날뛰고, 성난 범이 커다란 이빨로 목을 물어 사정없이 흔들어 대는 기분이었다. 깜빡깜빡 쉼 없이 밀고 들어오는 디의 위력에 못 이겨 드문드문 정신을 놓았던 선이 땀으로 흠뻑 젖은 디의 머리카락을 힘없이 쓸어 넘겼다. 그 아래 선명히 드러난 시뻘건 눈동자는 지금까지 원 없이 잡아먹은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도 부족한 것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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