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씨발, 좆집이나 달고 다니는 오메가 새끼도 대장이라고. 밸도, 좆도 없는 알파 새끼 취급당한 게 엊그젠데, 마침내 그 치욕을 갚을 수 있겠군요. 우리 위대하신 대장군님.’
‘오메가면 오메가답게 얌전히 똥구멍이나 쳐벌리고 궁둥이나 흔들 것이지, 총질에 칼질이 다 뭡니까.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주제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 이 쫄깃한 구멍을 가지고 여태 대장군 노릇이라니요. 하핫! 우리 위대하신 대장군님은 아무래도 소질을 잘못 찾은 것 같습니다.’
‘목구멍에 총알부터 한 방 먹여 주기 전에 어서 입을 여시죠, 대-장군님.’
한때 목숨 바쳐 제게 충성을 맹세했던 백인부대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겹쳐졌다. 배신감과 분노 뒤에 드러난 민낯은 마음속 깊이 묻혀 있던 굴욕감과 멸시였다. 알파는 오메가를 발정기용 노리개나 수태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형질처럼 뿌리 깊게 박힌 알파의 본성이었다.
더구나 사냥꾼이 아니었으면 범죄자로 전락했을 알파들만 우글거리는 백인부대였다. 평소 대장군 선의 충직한 부하이자 손과 발을 자청하던 그들은 속죄 주간을 빌미 삼아 마음껏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런 건 선의 가슴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전우애와 유대감이란 동등한 위치에서만 발동되는 심리적 장치와 같았다.
선에게 충성한 그들은 ‘오메가’가 아닌 대장군에 오를 정도로 비상한 머리, 독종보다 더한 근성, 그리고 전쟁의 화신과도 같은 ‘사냥꾼’ 선의 전투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압도적인 위력에 눌린 알파는 모욕감을 충직함으로 감추었다. ‘오메가’를 대장군으로 모시는 데 그 누구보다 더한 치욕을 느꼈을 그들은, 깍듯한 태도와 충성으로 저속한 속내를 덮었다.
알고도 그 자리에 ‘선’을 추인한 건 선생님이었다. 알고도 그 자리에 오른 건 다름 아닌 ‘선’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어서. 그때는 그랬다.
“디.”
이 어린 알파 역시 알파였다.
“어차피 디는 나를 안을 겁니다.”
디의 뺨을 매만진 손이 미끄러져 단단한 턱을 감싸 안았다. 연이어 고개 숙인 선의 코끝이 디의 귓불에 닿았다.
“페로몬 향이 짙어지고 있어요.”
원형 알파인 디는 본인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눈동자를 움직여 디를 바라본 선이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잿빛 눈과 마주했다.
“발정기가 시작되면 디는 나를 안고 성체가 될 때까지 성행위를 계속할 겁니다. 알파의 생리가 그렇듯, 디가 만족할 때까지, 페로몬이 완성될 때까지, 나를 착취하다시피 범하며 오메가의 페로몬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겠죠.”
차분한 선의 음성은 나긋나긋하고 발음은 정확했다.
“죄책감을 가지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디, 그건 형질자인 우리에겐 당연한 일입니다. 그저 조금 융통성을 발휘하자는 거죠.”
문득 오래전 느꼈던 그 비누 냄새가 디의 코끝으로 흘러들었다. 원형 알파인 디는 다른 형질자의 페로몬을 맡지 못했다. 이건 선 고유의 체취인지도 몰랐다.
“지금부터 길을 들이면 디의 발정기에 적어도 복상사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겸사겸사 나도 좀 더 빨리 회복하면 좋고요.
“디는 어차피 이러려고 나를 청한 거잖아요.”
“선.”
“네, 디.”
“나는… 아닙니다. 그러려고 선을 청한 게 아니에요.”
“내가 디의 오메가라면서요.”
“…….”
“나를 소유한 디는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선에게 당신을 그렇게 취급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대신 디는 입을 다물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선에게 전해지지 않을 마음을 아는 얼굴이었다. 아마도 진심이겠지, 지금은.
선은 발정기의 알파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성이 휘발되고 짐승만도 못한 본능만이 가득 찬 발정기의 알파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디가 설치한 부비트랩이 영원히 나를 보호할 순 없어요.”
디가 사냥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울타리가 낮은 집을 비운 사이, 선도 놀고먹지만은 않았다. 집 주변으로 정교하게 설치한 부비트랩은 어지간해서 발견하기 어려웠지만, 선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외출 시에는 작동하지 않는 침입자 방지용 부비트랩이었다.
거기서 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린 알파는 정말 제가 도망가지 않을 거라 믿는 건지, 아니면 도망갈 수 없을 거라 자신하는 건지. 집을 에워싼 부비트랩이 이게 전부라면, 선은 언제든지 집 밖을 나설 수 있었다. 물론 선생님이 보낸 감시자들이 보고만 있진 않을 테지만.
“그래요, 선생님이 보낸 감시자들은 별도의 지시를 받기 전까진 지켜만 볼 겁니다.”
다시금 디의 귓불에 입술을 붙인 선이 작게 속삭였다. 뜨거운 숨결이 귓바퀴를 타고 디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불현듯 선을 꼬옥 안고픈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디가 선의 숨소리에, 차분한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러나 호시탐탐 여길 노리는 침입자들은요? 다른 구역의 약탈자와 사냥꾼은 어쩔 생각입니까.”
1구역의 대장군 선이 일개 오메가로 전락해 별 볼 일 없는 변경부대원의 소유가 됐다는 소식은 전 구역에 알려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속죄 주간 영상이 풀린 사실까진 알지 못했지만, 선은 저잣거리 비렁뱅이마저 바닥에 떨어진 제 이름에 침을 뱉고 욕설을 갈기며 농락할 것을 알았다. 대장군이 아닌 ‘선’은 누구나 가지고 놀다가 버릴 수 있는 천박한 오메가에 불과했다.
“매일 밤 풍기면서 들어오는 피 냄새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우성 알파에겐 나를 하사할 리 없으니, 당신이 성체도 되지 못한 원형 알파란 사실 역시 저들은 알고 있겠죠. 디에게 발정기가 오면 우리는 무사할 수 있긴 합니까?”
저 촘촘하게 깔아 둔 부비트랩이 경계하는 건 변경부대원인 디에게 원한을 가진 다른 지역의 사냥꾼일 수 있고, 오메가 선을 노리는 1구역을 포함한 전 구역의 약탈자일 수도 있었다. 변경부대원의 의무를 다한 디가 매일 밤 뒤집어쓰고 오는 핏물의 주인은 선의 짐작대로 그들 중 하나가 맞았다. 어느 날은 ‘미친 귀신’ 디를, 어느 날은 오메가 선을 노리고 달려들었다가 목숨을 잃고 짐승 떼의 먹이가 되었다.
“더는 디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없을 때,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약을… 구하고 있어요.”
해명하는 디가 달빛 아래서 유난히 더 위태로워 보이는 선의 허리를 감아 안으며 거듭 말했다.
“나는 되다 만 알파라 선을 낫게 해 주는 데 한계가 있어요. 오히려 선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죠. 나와의 성행위보다 약이 선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번엔 집 네다섯 채는 거덜 낼 생각인가 보군요.”
“선, 몸이 차요.”
선을 안은 그대로 몸을 누인 디가 턱까지 이불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본인이 거대한 담요라도 된 것처럼 선을 꼭 끌어안았다.
“발정기가 오기 전에 약을 구해 올게요.”
“…….”
“누구도 선을 다치게 할 수 없어요.”
결국 진정으로 선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건, 선 본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린 알파의 말뜻은 그게 아닐 터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를 지켜 주고 보호하겠다는 다짐에 선은 쓴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고집이 센 어린 알파의 품에 몸을 기댄 선이 곧 어깨에서 힘을 뺐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병색이 짙은 선은 머지않아 조용히 잠들었다. 그 규칙적이고 나른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 디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달그락-
인기척에 번쩍 눈을 뜬 선이 민첩하게 몸을 움직였다. 판판한 벽을 더듬어 이음새를 열자 이중으로 잠긴 벽장이 드러났다. 디가 평소 무기를 보관하는 장소였다. 내부를 가득 채운 무기를 재빨리 훑은 선이 단검 하나를 찾아 손에 쥐었다. 총기는 요란했고, 소음기를 사용하면 감시자들의 레이더에 걸릴 것이다.
단검을 거꾸로 쥐어 손목 뒤에 감춘 선이 문 옆에 붙어 밖을 살폈다. 달그락, 달그락. 이제 누구보다 익숙해진 디의 기척은 아니었다. 디는 거대한 덩치와 육중한 몸을 하고도 선조차 잘 눈치채지 못할 만큼 움직임이 가벼웠다.
지금 밖에서, 추정컨대 부엌에서 요란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인물은 형편없는 사냥꾼이거나, 일반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일반인으로 위장한 침입자거나.
기척만 보자면 일반인일 테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은 선은 장지문을 열고 나가 마루를 밟고 부엌 쪽으로 다가갔다.
“으어헉-!”
막 쌀을 솥에 앉히고 돌아선 여자가 부엌문 앞에 선 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