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40)


#7화

마루에 뛰어올라 방문을 닫아걸고, 흠뻑 젖은 선을 마른 수건으로 닦았다. 그사이 붉게 젖은 이불은 선의 생명을 씹어 삼킬 괴수의 아가리 같았다.

허겁지겁 상자를 뒤져 지혈제를 찾아낸 디가 힘없이 벌어진 선의 가랑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마른 가루가 치덕치덕해질 때까지 내벽에 지혈제를 덧바르는 디의 얼굴에선 괴로움이 묻어났다.

제가 원형 알파가 아니었다면, 최소한 열성인 변형 알파라도 됐다면, 선을 좀 더 빨리 회복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닷새를 꼬박 끌어안고 별 지랄을 다 해도 선을 더 이상 회복시킬 순 없었다.

그저 입술을 겹치고, 피부 구석구석 입을 맞추고, 최대한 닿는 면적을 넓혀 몸을 부대끼고, 근육에 부드럽게 힘을 줘 끌어안는 게 전부였다.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 개의 알을 삼켰다가 쏟아 내길 반복했을 구멍에 제 성기를 집어넣는 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디의 치유 능력이 뛰어났다면 첫 번째로 시도했을 일이다. 그러나 디는 헤벌어져 알을 쏟고, 피를 흘리고, 내벽을 쏟아 낸 선의 구멍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성체도 되지 못한 원형 알파임을 처음으로 감사했다.

선의 몸속에 열성 알파만도 못한 치유력을 가진 디가 성기를 밀어 넣는 건 또 다른 고문이었다.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선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참혹하게 유린하는 행위였다. 디는 선에게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디에게 선은 첫 소유물이자….

“디.”

“…….”

‘자연의 확산’ 이후 지구의 5분의 1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숲에 뒤덮이고, 물에 잠기고, 빙하와 사막에 둘러싸였다. 남은 5분의 1 지역을 12구역으로 등분해 살아남은 인간은 일종의 기생충과 같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가발전을 거듭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조차 기생충다웠다.

그리고 1구역에 버려진 원형 알파 디는, 기생충에 들러붙은 부스럼이나 다름없었다.

‘네 이름은 뭐니?’

‘부스럼이요.’

‘부스럼이 무슨 뜻인 줄 아니?’

‘무슨 뜻이에요?’

‘종기, 살아 있는 것을 좀먹는 세균이란다.’

‘…….’

‘사람에게 붙일 만한 이름이 아니지.’

‘그렇지만 다르지 않은걸요. 내 이름을 지은 사람이 아주 똑똑한가 봐요.’

‘아니, 그렇지 않아.’

“디.”

“네, 선.”

“좀 더운데요.”

이불에 꽁꽁 싸맨 채로 선을 꽉 끌어안고 있던 디가 시선을 내렸다. 차갑게 식은 몸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던 선의 까만 눈동자가 촉촉했다. 심신이 다친 와중에도 명료하고 총기가 살아 있는 눈이었다.

“선의 체온이 오르지 않아서요.”

“난 원래 체온이 낮은데.”

“알아요.”

“어떻게?”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선의 기민함이 반갑고 경이로웠다. 내심을 숨긴 디가 무표정한 얼굴로 끌어안은 몸을 슬그머니 놓아주었다.

“지난 열흘간 선을 보살폈으니까요.”

“그사이 또 나흘이 더 지났습니까?”

“네. 선은 나흘간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어요.”

“이번에도 죽을 뻔한 걸 살려 주셨군요.”

“선.”

“네.”

“선은 내 오메가예요.”

“알아요.”

“나는 수단을 가리지 않을 거고요.”

“듬직하네요.”

웃으며 하는 말엔 비아냥이 아닌 고마움이 깃들어 있었다. 저를 혼자 두고 이불 속을 빠져나가는 디를 올려다본 선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원형 알파는 천성적으로 뼈대가 굵고 체구가 장대했다. 거기다 최소 15년간 사냥꾼 노릇을 했을 디의 육체는 오래전에 멸종한 범의 화신 같았다. 풍기는 위력만으론 호전적인 백인부대 녀석들도 감히 쉽게 덤벼들 수 없을 것이다.

“…….”

오래된 상처와 낙인으로 빈 곳이 없는 디의 맨몸에서 눈을 뗀 선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정돈되지 않은 방 안에서 이곳에 있을 수 없는 물건을 발견한 선은 진심으로 놀랐다.

“디.”

“네, 선.”

머리부터 발목까지 제 몸을 감추듯 새까만 옷을 걸친 디가 선을 돌아보았다. 저도 모르게 흐트러진 잿빛 머리카락을 올려다본 선이 이내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

“12구역에 자주 다닙니까?”

“…변방 사냥꾼이니까요.”

“12구역 관리 담당은 중앙부대일 텐데요.”

“중앙부대는 항상 바빠요.”

“…위험 지역을 기피하는 재주가 뛰어나기도 하고요.”

중앙부대는 1구역 중앙 의원들이 지휘권을 가진 핵심 부대 중 하나였다. 백인부대가 약탈자들을 토벌하는 게 주 임무였다면, 중앙부대는 의원들을 보호하고 12구역의 괴수를 박멸하는 게 주 임무였다. 그러나 중앙부대의 임무는 8대2의 비율로 나뉘었다.

의원들을 보호하는 8을 제외한 2만이 12구역에 투입돼 괴수들이 저지선을 넘지 못하도록 힘을 썼다. 그 때문에 12구역은 매일 인력난에 시달렸고, 그 인력난을 메꾸는 건 외곽 구역민 보호가 주 임무인 변경의 사냥꾼들이었다. 물론 세 부대의 기본 임무는 선생님과 1구역의 수호였다.

선생님의 빛과 소금 같은 노력으로 안정을 찾은 1구역이었지만, 그것이 유토피아로의 꽃길은 아니었다. 1구역 역시 다른 구역처럼 비합리와 비상식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인간이 멸종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본성이기도 했다.

그 본성을 억누르는 건 시스템과 위력이었고, 폐허였던 1구역에 위력을 모으고 시스템을 세운 건 선생님이었다. 무려 100년의 노력과 실패와 도전이 반복된 결과가 1구역의 현재였다.

“12구역은… 알려진 만큼 위험한 곳이 아니에요.”

“디의 몸에 남은 상처엔 12구역의 지분이 충분하지 않은가 보죠?”

“…….”

본의 아니게 디의 상처를 목격한 사실에 웃으며 유감을 표한 선이 방구석에 내팽개쳐진 고무 덩어리를 가리켰다. 12구역의 울창한 수목에서만 구할 수 있는 강력한 치유제가 껍데기만 남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괴수종에서도 악랄하기로 유명한 용종이 알을 까는 산사나무의 열매였다. 대충 세어도 무려 열댓 개는 되어 보였다. 금전으로 환산하자면 1구역 중앙지구에 집 서너 채는 너끈히 장만하고도 남을 가치였다. 그걸 디는 온전히 선을 치유하는 데 썼다.

선은 철이 들기 전부터 사람을 향한 불신과 의심을 숨 쉬듯 체득했다. 선은 그것을 본인의 치부이자 결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거두고 키우고 사랑을 준 스승 ‘뫼’는 불신과 의심은 치부도 결핍도 아니라 했다. 어떤 상황도, 누구도, 쉽게 믿지 않고 탐색하고 관찰하는 건 선의 재능이자 생존 능력이라며 가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군갈 믿고 사랑하는 건 매일 하는 훈련의 결과처럼 더디고 느려도 괜찮다고. 그저 꾸준하고 진실되기만 하면 된다고.

성체로 각성하지 못한 원형 알파 디가, 발정기를 함께할 우성 오메가를 살리기 위해 극진히 보살피는 건 당연한 행위였다. 그러나 암시장에서 우성 오메가 두엇은 사고도 남을 치유제를 열댓 개씩이나 갖고도 선을 요구한 건 부자연스러웠다.

거기다 사냥꾼인 디는 본인이 성체가 되지 못한 원형 알파임을 밝히면서까지 선을 요구했다. 망가진 선을, 너무 망가져 원형 알파인 디를 성체로 만들어 줄 확률이 낮은 오메가 선을, 목숨과 바꾼 것과 마찬가지였다.

“디.”

“네, 선.”

순간 선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선의 의구심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얌전히 이불 밖에 앉은 어린 알파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읽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물 같은 친화력으로 상대의 속마음을 쉽게 간파하는 건 선이 가진 많은 능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디에게선 악의도 호의도 읽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디의 호의와 호감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능력까지 망가진 게 아니라면 디의 행동은 거짓 없는 진심이란 뜻이었다.

“디가 원한 건 우성 오메가가 아닌 ‘나’ 선이었나요?”

“…네.”

“왜인지 답해 줄 수 있습니까?”

“선은 내 오메가니까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디는 해 줄 수 있는 모든 답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선은 쉬어야 해요.”

“…….”

선은 어느새 깨끗한 것으로 바꾼 이부자리에 눕히려는 디의 손길에 순순히 몸을 맡겼다. 뛰어난 사냥꾼일수록 영역표시에 확실하고,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결여됐다. 뛰어난 사냥꾼일 게 분명한 어린 알파 역시 그러한 성질이 다분할 것이다.

“디.”

“네, 선.”

“왜 삽입을 안 했습니까?”

아무리 원형 알파라 해도 간접적인 접촉보다는 직접적인 삽입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치유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나 디는 그러는 대신, 집 세 채를 죽을지도 모를 오메가에게 치덕치덕 처발랐다.

“어쨌든 지금보다는 그럭저럭 쓸 만해졌을 텐데요. 발정기를 같이 보내려면 내가 그보다는 더 쓸 만해져야 할 텐데, 왜 삽입하지 않고, 철부지처럼 몸을 비비기만 하고, 저 비싼 약을 하수구나 다름없는 제 몸에 쏟아부은 겁니까? 저 약을 쏟아부을 거라면 차라리 삽입이라도 하는 게 더 효과가 있었을 텐데요. 디는 성체가 되기 위해서 날 청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선을 그렇게 취급하고 싶지 않아요.”

선을 돌아보는 디의 얼굴에서 참지 못한 분노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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