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40)


#6화

그 외 몇 가지 사실이 더 적혀 있었지만 디의 관심 밖이었고, 선에게 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1구역의 사냥꾼은 무엇도 소유할 수 없을 텐데요.”

“당신은 포상이에요.”

“…….”

“약탈당한 우성 오메가 다섯을 무사히 회수한 포상.”

공교롭게도 그 우성 오메가 다섯을 보호하지 못한 건 선의 책임이었다.

약탈 사실을 보고받은 즉시 움직이려는 시각, 때마침 들이닥친 부하들에게 반역자로 체포되어 즉결 심판을 받았다. 선은 재판도 없이 사형을 선고받고 속죄 주간에 던져졌다. 일주일간 백인부대 전원이 선의 속죄 주간에 동원됐으니, 약탈자를 쫓은 건 변경의 사냥꾼일 것이다.

그제야 기억에 없는 어린 알파의 얼굴과 지나칠 정도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집 주변의 고요함이 이해됐다. 어린 알파는 변경부대원일 것이고, 여긴 중앙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일 것이다.

“아이들은 괜찮습니까?”

약탈당한 우성 오메가 다섯은 열 살 남짓의 어린애들에 불과했다.

“오메가들을 묻는 거라면, 다친 곳 없이 멀쩡해요.”

“그렇군요.”

선은 다행이라는 말 대신 디의 가슴에 등을 더 깊숙이 묻었다. 회복 능력이 뛰어난 우성 오메가는 알파와의 접촉면이 깊고 넓을수록 더욱 빠르게 나을 수 있었다. 발정기에 사용하려고 저를 포상으로 청했다면, 그리고 발정기가 머지않았다면, 이 어린 알파가 이렇게 저를 극진히 보살피는 이유로는 타당했다. 빨리 회복하는 데 선 역시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삽입은 별로 내키지 않겠죠.”

한쪽 손을 가랑이 사이에 밀어 넣은 선이 아까부터 제 엉덩이를 쿡쿡 찌르는 디의 커다란 성기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움찔하는 디의 왼손이 욕조 테두리를 움켜쥐었다. 그 반동에 자극받은 디의 손등이 꿈틀거리자 딱지가 앉지도 않은 잇자국에서 핏방울이 주룩 떨어졌다.

접촉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힘을 회복하는 건 알파 역시 다르지 않았다. 형질에 따라 치유 능력의 차이가 크고, 성체도 되지 못한 원형 알파 디는 선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테지만, 어쨌든 오메가와 알파의 치유 능력은 상호 작용이었다.

“내가 디의 오메가가 된 지 얼마나 됐습니까?”

“…오늘까지 엿새.”

그럼에도 디의 손에 남은 잇자국이 낫지 않은 건 눈앞의 어린 알파가 그간 치료 외의 행위는 하지 않았든가, 망가진 선이 오메가의 기능을 완전히 잃었든가, 둘 중 하나였다.

“뭐 하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 회복에 힘써 보려고요.”

“당신….”

“선이라고 불러요.”

“…….”

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선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느새 흐려진 수증기 사이로 어린 알파의 덜 여문 턱이 비쳤다. 깎아 놓은 것처럼 반듯하고 보기 좋게 각진 턱은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더욱 단단해지고 알파 특유의 강한 남성성을 드러낼 것이다. 성체가 되지 못했음에도 사냥꾼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육체에서 유일하게 어린 알파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건 구슬처럼 투명하게도 보이는 잿빛 눈동자였다.

“읏.”

눈살을 찌푸린 어린 알파의 목울대를 타고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어 번 주무르는 사이 무섭게 발기한 어린 알파의 성기를 가랑이에 끼운 선이 양쪽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어린 알파와 달리 홀딱 벗은 선의 허벅지에 뜨겁게 달아오른 성기의 열감이 느껴졌다. 손으로 주무르고 허벅지에 끼우는 것만으로 어린 알파의 성기의 굵기와 길이가 심상치 않은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삽입도 가능은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선은 일찌감치 그 시도를 포기했다. 삽입을 내키지 않아 하는 어린 알파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었고, 제정신으로 저 부피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 선은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

“하아… 선.”

“네, 디.”

꽉 조인 허벅지를 앞뒤로 추삽질하듯 움직이며 기댄 뒤통수를 어린 알파의 어깨에 문대던 선이 가만 눈을 떴다. 맑은 회색 눈이 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욕조 테두리를 움켜쥐었던 손은 어느새 선의 배를 감싸 안은 채였다. 제 아랫배를 지그시 누르는 힘에 추삽질을 멈춘 선의 미간으로 금이 갔다. 고작 그 힘만으로도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통증이 솟아오른 탓이었다. 그 반응을 금세 알아차린 디가 손에 힘을 빼며 나직이 타일렀다.

“그만해요.”

“…디.”

“네.”

“나를 어떻게 회복시킨 거죠.”

“…….”

갖가지 방법으로 조각난 뼈들은 처형대에 설 때만 하더라도 분명 그대로였다. 눈을 뜬 지금은 부러진 뼈가 깨끗이 붙고 욱신거리는 감각만 흔적처럼 남았을 뿐이었다. 복수 찬 것처럼 부푼 배를 빼곡히 차지한 알들은 제때 빼내지 않았다면 시멘트처럼 굳어 선을 죽였을 것이다.

저를 품에 안고 튀어나온 배를 누르며 알을 빼내던 디의 안타까운 음성은 선명히 기억했다. 그러나 그건 간헐적인 기억 중 하나일 뿐이고, 어린 알파가 저를 어떻게 이렇게나마 회복시켰는지는 일말의 기억도 없었다.

알을 빼낸 뒤 성기의 삽입을 통한 점막 접촉을 예상했다. 구멍은 회복될 새도 없이 망가졌을 테지만, 선의 뼈는 붙고, 살갗을 가른 상처는 아물고, 뒤죽박죽이 된 내장은 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그게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었을 터였다.

현재 제 몸의 상태를 비추어 보아도 선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른 곳은 제법 회복됐지만, 아랫구멍에서만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으니까.

“디.”

“…….”

이번에 어린 알파는 대답 대신 커다란 손으로 선의 턱을 감싸 안았다. 선의 얼굴을 제 쪽으로 잡아 돌린 디가 가볍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이렇게요.”

“…….”

입을 맞추고, 혀를 섞어, 입 안의 점막들을 집요하게 빨아 주었다. 그것으로 부족해 상처투성이 몸을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구석구석 핥지 않은 곳이 없었다. 디는 행여 선이 그대로 부서질까, 사라질까 두려워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바람 앞의 등불처럼 선을 보살폈다.

“…이 손은 내가 물어뜯은 겁니까?”

아마도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알들을 쏟아 낼 때. 어린 알파 스스로 물려 줬든, 선이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물어뜯었든, 범인은 선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도 낫지 않았네요.”

접촉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힘을 회복하는 건 오메가와 알파 어느 하나가 독식하는 것이 아닌 상호 작용이었다. 알파가 오메가를 치유할 수 있다면, 오메가도 알파를 치유할 수 있었다.

“걸레짝이었던 내가 이렇게 낫는 동안 디는 물린 자국 하나 치유 받지 못했어요.”

그 말인즉, 망가진 선이 오메가의 능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사실을 뜻했다.

“아깐 뭣도 모르고 한 말인데, 정말 앞으로 디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겠네요.”

원형 알파인 디는 우성 오메가와 발정기를 보내야만 성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성 오메가와 발정기를 보내는 건 시작일 뿐이었다.

원형 알파는 30세 이전에 우성으로 각성하지 못하면 형질이 뒤틀려 절명했다. 성체가 되어 페로몬을 뿜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우성 오메가와 각인을 하고 우성 알파로 각성해야만 생명을 유지하고 본연의 힘을 다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형질자가 인구의 0.1%도 되지 못하는 현재, 그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인구 감소로 오메가 약탈자들이 기승을 부린 지 100년, 각 구역에선 우성은커녕 열성 오메가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형질자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한 원형들의 생존율은 말할 것도 없었다.

변방의 사냥꾼, 페로몬도 제대로 뿜지 못하는 원형 알파가 목숨을 걸고 선생님에게 오메가를 청한 이유로는 매우 타당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순순히 이 어린 알파에게 저를 넘겨준 이유 또한 선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망가진 오메가는 원형 알파를 각성시켜 줄 수 없었다. 손쓸 수 없이 망가진 오메가 선은 선생님에게 어떤 위협도 될 수 없었다.

“디.”

“…….”

“밑에서 또 피가 쏟아지네요.”

선의 말대로 투명한 물 위로 붉은 핏물이 아지랑이처럼 섞여 들었다. 삽입으로 점막 접촉을 한 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으로 접촉해 저를 회복시킨 것이라면, 왜 밑에선 끊임없이 피가 멈추지 않고 새어 나오는 걸까. 이번에도 역시 선은 쉽게 답을 찾았다.

“혹시 내 배 속에 착상된 알이 있었습니까?”

다 게워 내지 못한 알 하나가 수정된 그대로 배 속에 착상이 되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유산 후유증이겠군요.”

그 말을 끝으로 선은 정신을 잃었다. 핏물을 발견한 즉시 선을 안아 들고 욕조를 빠져 나온 디의 발걸음이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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