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40)


#5화

그가 두어 걸음 더 내딛자 마침내 빛을 받은 얼굴이 드러났다. 어린 알파였다. 반사적으로 경계한 선의 긴장이 자연스레 풀렸다. 어쨌든 저 어린 알파가 선을 해치진 않을 것이다. 쓸모가 있어 데려왔을 테니까. 신체적 상해를 입힐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보살피지 않았을 터였다.

“아직 누워 있는 게 좋아요.”

“…….”

어린 알파의 충고가 옳았다. 슬쩍 다시 이불을 덮은 선의 축축한 가랑이 사이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아마도 핏물일 것이다. 일주일의 속죄 기간 내내 선은 알을 품고 낳고 깨기를 수천 번 반복했다. 밑은 너덜거리다 못해 만신창이였다. 어린 알파의 이런 어설픈 병구완으로는 낫기 어려운 상해를 입은 뒤였다.

“내 이름은 선입니다.”

“…….”

“그쪽은요?”

대장군 선의 이름을 모르는 사냥꾼이 있을까. 게다가 선을 여기까지 끌고 와 살려 낸 건 바로 어린 알파 디였다. 그럼에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통성명을 하자는 선은 살아 있는 전쟁의 신이나 대장군이 아닌, 선량하고 상식적인 일반 시민처럼 보였다. 빈틈없이 망가진 와중에도 보석같이 빛나는 눈동자는 어느 명문가의 귀공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디.”

그러나 디는 눈앞의 선이 저토록 꼿꼿할 수 있는 건 신처럼 추앙받던 대장군이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선은 시궁창에 버려진 아이였을 때부터 선량한 마음과 차가운 머리,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당신의 알파.”

“…그렇군요.”

다분히 도발적인 선언에도 물끄러미 디를 올려다본 선이 나직이 읊조렸다.

“그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도무지 피가 멈추지 않네요.”

겸연쩍은 듯 웃으며 도움을 청하는 선의 얼굴이 백지장이었다. 반듯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주룩 흘러 허옇게 보풀이 일어난 입술을 적셨다. 더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선의 허리를 받아 안은 디의 코끝에 검은 머리카락이 닿았다. 미처 닦아 내지 못한 피와 땀에 젖은 선에게선 오메가의 짙은 내음이 풍겼다. 흑단 같은 머리카락에 코끝을 묻을 듯 고개를 숙인 디가 이내 거리를 벌리며 조심스레 선을 눕혔다.

고작 눕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낮게 신음하는 선의 하반신이 아예 다 젖어 버렸다. 멎지 않은 핏물이 또 한 번 왈칵 쏟아진 탓이었다.

디가 알아챘다는 사실을 깨달은 선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선의 수치심은 선의와 악의를 매우 잘 구분했다. 기꺼이 도움을 받으려 다리를 넓게 벌린 선은 축축한 베갯잇에 뺨을 비비다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허락을 해석한 디가 선의 하반신을 덮은 이불을 천천히 걷어 냈다.

찌걱, 찌걱-

마른 수건을 움켜쥔 디의 손이 가랑이 안쪽을 훑을 때마다 피막이 문질러지고 내벽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생생하게 울렸다. 무릎을 세울 힘도 없어 그저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만 있는 선의 미간이 다시금 이지러졌다. 밑에서 또 무언가 뭉텅이로 왈칵 쏟아져 나왔다. 이번엔 핏물이 아닌 탁한 정액 덩어리였지만, 디는 알리지 않았고 덕분에 선은 알지 못했다.

백인부대원들은 일주일의 속죄 주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처형대에서 간발의 차로 목숨을 건진 선은 지난 닷새간 사경을 헤맸고, 100명의 부하에게 세포까지 짓밟힌 몸은 회복이 더뎠다. 뭉개진 얼굴도, 아무렇게나 잘린 머리카락도, 살갗이 찢기고 뼈가 부러져 조각조각 난 몸도 겨우 닷새 만에 제 모습을 찾기엔 무리가 있었다. 몸 안팎이 전부 망가진 선은 말 그대로 168시간 내내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다.

어느 정도 고비를 넘긴 지금까지도 확장된 그대로 다물어지지 않은 요도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피 섞인 소변이 줄줄 샜고, 벌건 속살을 보이며 핏물과 정액을 간헐적으로 쏟아 내는 항문엔 평균 성인 남자보다 훨씬 크고 굵은 디의 주먹도 쉽게 드나들었다.

지금도 그랬다. 탄력 없이 헤벌어진 선의 괄약근이 퉁퉁 부은 채로도 부드럽게 디의 주먹을 감싸 물었다. 치료와 위생을 목적으로 한 디의 손을 삼킨 선의 내벽은 반사적으로 이물질을 조였다. 잔혹하고 폭력적인 행위에 강제로 길들여진 선의 내장은 이물질을 밀어내기보다 빨아들이는 걸 택했으나 소용없었다. 다 늘어진 고무줄 같은 탄성이 디의 주먹을 힘없이 감쌀 뿐이었다.

형편없는 조임이었지만, 그 따뜻하고 축축한 감촉에 눈이 뒤집힌 백인부대원들은 한 꺼풀 남은 인간의 탈마저 벗어던지고 발정 난 짐승처럼 날뛰었다. 그들은 쉼 없이 밀어 넣은 알들로 산처럼 부풀고 우둘투둘하게 튀어나온 선의 뱃가죽을 마구 차고 눌러대며 속죄의 시간을 즐겼다.

선이 비명을 지르면 환호성을 지르며 왁자하게 웃었고, 비명을 지르다 못해 까무룩 혼절해 버리면 도로 깨어날 때까지 더욱 악랄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본래의 이목구비는 찾아볼 수도 없이 뭉개진 얼굴에 주먹을 갈기고, 불룩한 배가 출렁거리도록 철썩철썩 손찌검을 날리고, 끝내는 촉진제를 사용해 배 속의 알들을 강제로 쏟아 내게 만들었다.

구멍이란 구멍에서 온갖 애액을 다 뿜어낸 선이 경기를 일으키며 알을 낳았다. 하도 후려 맞아 빨갛다 못해 거멓게 멍든 엉덩이 사이에서 수백 개의 알이 와르르 쏟아졌다. 수정에 성공한 알도, 실패한 알도, 성공하려다 만 알도 있었다.

그들은 선에게 일일이 살아남은 알을 골라내게 했다. 그리고 골라낸 알을 선의 손으로 터트리게 한 뒤 알에서 흘러나온 점액질을 윤활제 삼아 좆질을 계속했다. 그런 행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

깜빡 의식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린 선의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손끝 하나 까닥일 수 없던 선은 목도 가누지 못해 디의 팔뚝에 기댄 채였다. 그 찰나의 순간에 디를 알아차린 선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디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에게 안겨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는 선의 팔다리가 힘없이 덜렁거렸다.

“발정 주기가 어떻게 됩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선을 내려다보면서도 디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별다른 뜻은 없다며 어깨를 으쓱이는 시늉을 한 선이 다 부어터진 입술을 거듭 달싹거렸다.

“이 상태로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디라고 불러요.”

선이 뭐라든 대꾸하지 않을 것 같던 디가 부엌문을 어깨로 밀고 들어서며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강압적이지도, 무례하지도 않은 어조에서 느껴지는 디의 호의적인 태도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는 선이 빙긋 웃었다.

“그래요, 디.”

3분의 1쯤 부기가 빠진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으나, 디도 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당만큼 넓은 부엌 한가운데엔 성인 남자 둘은 거뜬히 들어가고도 남을 나무 욕조가 있었다. 뜨겁게 데운 물이 가득 찬 욕조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왔다. 제가 의식을 잃은 동안 끓였나 보다, 스치듯 생각한 선이 의아한 기색을 띠었다. 선을 안은 디가 그대로 욕조에 몸을 담갔다.

“…….”

아무래도 몸까지 씻겨 줄 모양이었다. 지나치게 호사스러웠다. 본래도 깔끔한 선에겐 반가운 상황이었지만, 디의 대접은 융숭하기까지 해 자연히 의구심이 들었다. 디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앉게 된 선이 전신을 적셔 오는 물을 내려다보았다.

무릎을 세운 선의 다리를 감싸듯 양옆에 딱 붙은 디의 두 다리도 수면 위로 툭 불거져 있었다. 허벅지 굵기만큼이나 뼈가 크고 단단해 보이는 디의 무릎에 젖은 바지가 수초처럼 엉겨 붙었다. 욕조 테두리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손엔 크고 작은 흉터가 불규칙적으로 남아 있었다.

대부분 오래된 상처인 것으로 보아 이 어린 알파가 제법 훌륭한 사냥꾼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모든 사냥꾼이 그러하듯 디의 삶도 핑크빛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나 원형 알파에다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어린 알파는 매일같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아마도 제가 남겼을 게 분명한, 갓 생긴 잇자국으로 너덜너덜한 디의 왼손을 내려다본 선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손 대신 걸레를 밀어 넣지, 미련하게. 단 일주일 만에 함부로 굴려지는 데 익숙해진 선이 쓴웃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혹시 발정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겁니까?”

원형 알파는 우성 오메가와 발정기를 같이 보내야만 페로몬이라는 향을 피울 수 있었다. 일종의 성인식이었다. 열성도 베타도 아닌 우성 오메가만이 원형 알파의 발정기에 두꺼운 알 껍질을 깨줄 수 있었다. 우성 오메가와 발정기를 보낸 원형 알파는 그제야 향을 피우고 진정한 성체로 거듭났다.

이제 막 22세가 된 디는 꽤 늦된 편이었다. 그리고 우성 오메가인 선은 눈앞의 어린 알파가 성체가 되지 못한 원형 알파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껍질을 깨지 못한 원형 알파의 페로몬을 맡을 수 있는 건 우성 오메가 고유의 능력이었다.

“선생님의 친서에는 무어라 적혀 있었습니까?”

‘멈추시오! 선생님의 친서입니다!’

죄수를 강탈해 가는 어린 알파에게 총구를 겨눈 위병들을 온몸으로 저지하며 뛰어든 교정관의 외침이 원형 알파의 페로몬에 뇌수를 강타당해 기절한 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어린 알파에겐 질문에 답할 의무가 없었으나, 선의 예상대로 그는 순순히 답해 주었다.

“당신이 내 오메가로 살아갈 것이라는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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