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40)


#4화

마침내 알 하나를 움켜잡은 디가 오른손을 쑥 뽑아내는 순간,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선이 오줌 줄기를 뿜으며 털썩, 혼절해 버렸다.

“…….”

이번에 꺼낸 알도 수정이 되지 않은 채 반쯤 굳어 있었다. 저 많은 알이 내장에서 그대로 굳어 버린다면 선이 죽는 건 시간문제였다. 빌어먹을 백인부대 놈들이 저 좁은 배에 알을 많이도 싸질러 놨다. 저건 번식 행위가 아닌 고문의 잔재일 뿐이었다.

여전히 울룩불룩한 뱃가죽을 내려다본 디가 죽은 알을 툭 내던지며 발길을 돌렸다. 이내 키트 하나를 들고 와 거듭 선의 허벅지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00cc 주사기로 촉진제를 섞은 글리세린을 빨아들이며 선의 가랑이를 들여다보았다.

알을 뽑아내는 손에 한껏 딸려 나온 내벽이 장미꽃 같은 주름을 내보이며 구물구물 파도치고 있었다. 회음부를 타고 줄줄 흐르는 피에 섞인 점액질이 탁하다 못해 끈적거렸다. 오메가가 받아 낼 수 있는 수정알을 한계 이상 밀어 넣은 부작용이었다.

하나하나 뽑아내다 보면 언젠가 저 배 속이 텅 빌 테지만, 선의 신경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점성 짙은 수정액과 핏물로 흥건한 바닥엔 앞서 디가 뽑아낸 수십 개의 알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무릎으로 알들을 치우고 제대로 자리를 잡은 디가 피스톤을 끝까지 당겨 채운 주사기를 들었다.

밖으로 흘러나온 내벽을 밀어 넣어주자, 간신히 오므라든 항문이 세로로 길게 벌어졌다. 탄성을 잃은 근육이 주사액을 게워 내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항문 주름을 오므려 쥔 디가 주사기 끝을 깊이 밀어 넣었다. 기절한 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스톤이 눌리고 주사액이 주입될수록 선은 온 신경에 불이 붙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깨어날 것이다. 그걸 알고도 디는 피스톤을 눌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제 오메가를 죽일 순 없었다.

주사기가 비어 갈수록 선의 회음부가 팽팽해지고, 축 늘어진 불알이 땡땡해졌다. 아랫배부터 명치 바로 밑까지 울룩불룩한 배가 요동치며 점점 더 부풀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풍선처럼 빵빵해졌을 때 주사기를 뺀 디가 주먹만 한 마개로 항문을 틀어막았다.

마침내 신경부터 깨어난 선이 진저리를 치며 눈을 떴다. 목구멍으로 알을 뱉어 낼 듯 토악질하려는 선의 입을 틀어막은 디가 상체를 바짝 붙였다. 한 손으론 항문에 쑤셔 박은 마개를 찍어 누르고, 다른 손으론 선의 입을 찍어 누른 디의 숨결이 부릅뜬 선의 눈알을 적셨다.

“참아요.”

“으….”

“5분만.”

눈알을 적시며 고인 눈물이 투둑, 찢어지는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정신을 잃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저 고통을 견디며 피눈물을 흘리는 선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잿빛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었다.

당신을 살릴 것이다.

그 맑은 눈동자에 담긴 굳건한 의지에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왈칵 신물을 게운 선의 등허리가 들썩거렸다. 그러나 디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선을 내리눌렀다. 5분까지는 아직 20초가 남았다. 디는 제 밑에서 발악하듯 몸부림치는 선을 찍어 누르며 숫자를 세었다.

…셋, 둘, 하나.

이윽고 선에게 실었던 체중을 덜어 낸 디가 항문에서 마개를 빼내자 수백 개의 알이 봇물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올리며 배 속에 든 알을 뿜어내는 선의 사지가 뒤틀렸다. 허여멀건 정액이 쏘아지고, 오줌이 쏟아지고, 항문에서는 촉진제에 뒤섞인 알들이 둑 터진 댐처럼 터져 나왔다.

자리를 바꿔 선의 등을 차지하고 앉은 디가 들썩거리는 선을 압박하듯 끌어안았다. 턱을 붙잡아 고정하고 크게 벌어진 선의 입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재갈을 휘감고 안으로 말려 들어간 혓바닥을 내리눌렀다. 벼락 맞은 것처럼 경기하던 선은 어느 순간부터 파들파들 떨기만 했다.

“히익, 힉.”

폐부에서부터 쓸려 나온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사이 사정없이 물어뜯긴 디의 손가락에서 울컥울컥 핏물이 쏟아졌다. 그 핏물이 선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탈진을 막아 주었다.

“흡, 흣.”

주사액과 함께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알들은 모두 반쯤 굳은 채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시멘트처럼 굳어 배체(胚體)인 선의 내장부터 죽였을 것이다. 산처럼 쌓인 알 위로 뒤늦게 툭툭 떨어진 알 두어 개가 흐물흐물 미끄러졌다.

개좆같은 백인부대 새끼들.

살의를 띤 디의 눈동자가 움푹 꺼진 선의 뱃가죽에 닿았다. 미처 쏟아 내지 못한 알들이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선은 작은 경련조차 일으키지 못했다. 알들이 밀려 나오는 압력에 항문 밖까지 쏟아져 나온 내벽은 축 늘어져 피 섞인 촉진제와 죽은 알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

쇼크 직전인 선의 얼굴을 내려다본 디가 헤벌어진 입에서 손가락을 뺐다. 핏물과 엉겨 붙은 침이 길게 딸려 나왔다. 움켜쥔 선의 턱을 좀 더 올려붙였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각인은커녕 발정기 한번 같이 보내지 못한 오메가에게 디의 체액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테지만, 쇼크 정도는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신음하듯 가늘게 떠는 선의 혀를 휘감으며 접촉 범위를 늘렸다. 쩌업, 쩍, 마찰음 새로 핏물이 섞이고 침이 섞이고 숨결이 섞였다. 더욱더 깊이, 굶주림을 해갈하듯 선의 혀를 옭아매고 입 안 구석구석을 핥으며 목구멍까지 범한 디가 좀 더 부드럽게 선을 고쳐 안았다. 이윽고 손을 뻗어 천천히 선의 뱃가죽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쓸어내렸다.

끅, 끅. 선의 비명이 맞붙은 혀를 타고 디의 목구멍까지 넘어왔다. 그러나 디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한 알까지. 체내에 남은 알이 선의 몸 밖으로 빠져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고 뱃가죽을 쓸어내렸다. 기어코 마지막 한 알까지 배설하고서야 선은 지옥 같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깊은 잠에서 깬 선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햇빛이 얼룩처럼 들이친 낮은 천장, 얇은 장지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전신을 공기처럼 감싼 적당한 온기. 빨갛게 충혈된 눈을 느리게 깜박인 선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쳐 죽여도 시원찮을 반역자 새끼.’

선의 직속 부하이자 백인부대 부대장인 삭의 일갈이 머릿속을 후려쳤다.

‘네가 쥐새끼처럼 농락한 병신들한테 내장까지 짓밟힌 기분이 어때?’

깨질 듯한 두통에 머리를 감싸 쥔 선이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10평 남짓의 단출한 방엔 옷걸이 대신 벽에 박힌 못 서너 개와 천장 가운데에 달린 백열등이 전부였다. 문득 이불을 걷은 선이 제 가랑이를 쏘아보았다. 선의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이부자리가 핏물로 흥건했다. 두툼한 요는 물론, 새로 갈아입혔을 바지도 빨갛게 물든 채였다.

‘참아요.’

선은 저를 살린 어린 알파의 잿빛 눈을 똑똑히 기억했다.

 

‘5분만.’

어쩐지 안타까움이 가득 서린 음성까지.

안면이 있었던가. 그러나 선의 기억엔 없는 얼굴이었다. 반면 1구역의 대장군으로 10년을 보낸 선은 눈이 달린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일방적인 친근감, 일방적인 동경, 일방적인 동정, 일방적인 경외. 그간 피부처럼 느껴 온 시선이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그 시각 선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일주일의 속죄 주간은 선의 심신을 자근자근 밟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거대한 증오와 분노가 한데 뒤섞인 외침이 선의 의식을 두들겨 깨웠다. 삶의 욕구에 불씨를 당겼다. 나는 이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네놈들 뜻대로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반쯤 죽은 알들이 가득한 뱃가죽을 내려다보며 선은 읊조렸다.

기회. 찰나의 기회만 있으면 되었다. 다 뜯겨 나간 열 개의 손톱 중 유일하게 남은 왼쪽 검지 손톱을 뽑아 움켜쥐었다. 위병의 급소, 불알을 찍고 허리에 찬 대검을 뽑아 들기만 하면 됐다.

선은 빠르게 계획을 수립한 뒤 기회를 노렸다. 마침내 빈틈을 찾아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불청객이 선을 옭아맨 목줄을 끊고 낚아챘다. 별안간 어린 알파의 냄새가 선을 훅 덮쳤다. 뇌수를 정통으로 강타한 알파의 페로몬에 선은 코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었다. 선은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남아서….

그러나 생각을 맺기도 전에 선은 완전히 의식을 놓았다. 등 뒤에서 빗발치던 총소리와 고함 같은 기억만이 희미하게 남았다.

반려로 삼겠다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가지고 놀 장난감? 대장군이었던 선을 농락해 능욕하려는 욕망일 수도 있었다. 어린 알파의 의도를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부자리 옆에 놓인 세숫대야와 수건, 물병 등에서 간병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의도에서건 어린 알파는 선을 살려 내고자 했고, 끝내 성공했다. 반려든 뭐든 살아 있어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저를 살려 둔 선생님의 의도는 쉽게 추측할 수 없었다.

“윽.”

하체에서부터 올라오는 둔중한 통증과 전신을 적시는 한기를 뒤늦게 느낀 선이 미간을 찌푸린 찰나였다. 달칵, 열린 문으로 커다란 덩치가 구겨지듯 들어섰다. 환한 빛을 등지고 나타난 남자는 그늘에 휩싸인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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