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해가 뜨기 전부터 광장에 모여들었던 구역민의 야유가 거세어졌다. 새벽부터 차례차례 목이 잘려 나가는 죄인들의 피를 먹으며 흥분을 키운 구역민은 성난 짐승과도 같았다.
당장 저 간악한 배반자를 처단해야 한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에게 참수형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사지를 잘라 능지처사를 해도 모자랄 놈! 소리를 지르고, 침을 뱉고, 각종 오물과 돌 같은 것들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반역자 선이 지나간 자리엔 구정물과 핏물이 한데 뒤섞여 질척한 자국을 남겼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누군가의 선창에 두 눈을 벌겋게 부라린 군중들의 고함이 하나가 되어 소용돌이처럼 붉은 광장을 휩쓸었다. 면적 6만㎡ 광장의 돌바닥이 다 들썩거리는 듯했다. 두 명의 위병에게 질질 끌려 나온 선은 제 발로 서지도 못했다. 감옥에서 처형대까지 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구역민의 분노를 정면으로 맞닥뜨린 바람에 몰골이 더 처참해졌다.
돌을 맞은 머리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고, 이리 뜯기고 저리 뜯겨 너덜거리는 죄수복은 제 기능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밤의 장막처럼 물결치던 까만 머리카락은 마구잡이로 잘리고, 더러운 것들이 덕지덕지 엉겨 붙은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일그러진 채였다. 도자기처럼 희었던 피부도, 우수에 찬 눈빛도, 그린 듯이 아름답고 강인했던 자태도 일체 찾아볼 수 없었다. 일주일의 속죄 주간을 거친 반역자 선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처형대에 무릎을 꿇린 선은 중심을 잡지도 못해 기우뚱 넘어갔다. 동시에 군중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에 호응하듯 선의 목덜미를 거칠게 낚아챈 위병이 허리춤에서 채찍을 빼들었다. 쫘악- 쫙- 굵은 가죽에 유리 조각을 박은 채찍이 선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죄수복이 찢어지고 떨어져 나간 살점이 사방에 튀었다. 찢어진 옷깃 사이로 불룩한 배가 비쳤다.
때마침 어디선가 시작된 환호가 삽시간에 광장을 뒤덮었다. 의기양양해진 위병이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는 선의 목에 밧줄을 감았다. 맞은편 밧줄을 처형대 기둥에 감고 팽팽하게 당겼다. 밧줄이 당기는 힘으로 무릎을 꿇고 앉게 된 선은 마치 성벽에 매달린 포로의 시체처럼 보였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목이 쳐들리며 언뜻언뜻 비치는 선의 맨얼굴에 군중들이 광분하기 시작했다.
감히 선생님을! 감히 우리를! 반역자! 배반자! 사지를 찢어 죽여라! 살점을 저며 죽여라!
광란의 한가운데 홀연히 등장한 디가 해묵은 피로 검게 변한 계단을 밟고 처형대에 올랐다.
“누구냐!”
뒤늦게 디를 알아채고 버럭 소리 지른 위병이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나 가볍게 채찍을 피해 위병의 공격을 무색하게 만든 디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당황한 위병이 얼굴을 붉히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순간에도 반역자 선에게 직진한 디가 등에 찬 마체테1)를 꺼내 들었다. 저에게 날아들 것이라 예감한 위병이 본능적으로 움츠린 순간 해를 받아 번쩍인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아악!
누군가는 비명을,
와아아!
누군가는 환호를 일제히 질러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공을 가른 칼날은 그들의 경악과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팽팽한 밧줄이 잘리자 끈 떨어진 인형처럼 픽 쓰러진 선을 받아 안은 디가 뒤를 돌아보았다. 얼어붙은 것도 잠시 “저놈 잡아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위병의 외침에 군홧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저에게 총을 겨눈 세 명의 위병과 처형대 주변을 빙 에워싼 경비대원을 일별한 디가 휙 몸을 날렸다.
아앗!
누군가 내지른 외마디 비명만이 디가 다녀간 흔적을 대신했다. 디의 뒤꽁무니를 쫓아 하늘로 쏘아 올린 총알 또한 디를 맞추기는커녕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서른두 명의 사냥꾼이 다시금 장전하고 총구를 겨눈 찰나였다.
“멈추시오!”
낡고 허름한 교정국 건물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온 교정관이 돌돌 만 족자를 마구 흔들며 외쳤다. 격발 직전 명령을 철회한 위병이 홱 뒤를 돌아보았다. 헥헥, 거친 숨을 토하며 겨우 처형대에 오른 교정관이 꽉 움켜쥔 족자를 위병에게 건넸다.
“뭡니까?”
“헉헉, 선생님의 친서입니다!”
즉시 자세를 바로한 위병이 두 손으로 족자를 받아 들었다. 동시에 총구를 내린 경비대원들도 일사불란하게 예를 표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어깨와 구조물을 밟아 가며 휙휙 날아 자취를 감춘 디에게 사납게 원성을 지르던 구역민의 소요도 점점 잦아들었다.
차분한 얼굴로 친서를 읽어 내리는 위병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끝자락에 찍힌 선생님의 인장까지 확인한 뒤에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교정관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네. 저도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
재차 친서를 내려다본 위병이 굳은 얼굴로 처형대 아래를 돌아보았다. 이 내용을 공표하면 군중들은 벌떼같이 일어설 것이다. 그런 걸 예견한 듯 현명한 선생님은 당근을 던져 주었다. 아니, 당근이라기엔 지나치게 모욕적이고 잔인한 처사였다.
그래도 지난 10년간 1구역의 버팀목이자 영웅이었던 인물이다. 선생님이 1구역의 희망이자 등불이라면, 대장군은 든든한 방파제였다. 그랬기에 선생님과 1구역을 배반하고 7구역에 팔아넘기려 한 죄는 거열형에 처해도 부족했다.
그러나 속죄 주간 영상을 공개하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구역민의 분노를 잠재우고, 완전히 거세하지 못한 선망을 깨부수기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선생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해야지만 대장군 선을 향한 구역민의 마지막 환상을 깨뜨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대장군 선은 구역민에게 깊은 사랑과 신뢰를 받았으며, 1구역을 넘어 전 구역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본래 애정을 바탕으로 한 분노가 더 불같은 법이었다. 그 불이 꺼지고 냉각기가 찾아왔을 때 구역민들은 이미 처형당한 선을 떠올리며 괴로워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래도 우리 장군님이었는데. 연민과 후회가 고개를 들면 선생님을 원망하는 구역민이 생길지도 몰랐다.
작은 틈은 언제가 분열을 야기하기 마련이니, 그 틈마저 메워 버리려는 의도였다. 선생님의 선견지명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침중한 얼굴로 군중을 내려다본 위병이 마침내 선생님의 친서를 공표했다.
하나, 반역자 선의 처형은 보류한다.
둘, 반역자 선은 오메가 선으로 살아갈 것이다.
셋, 금일 오후 12시 30분. 반역자 선의 속죄 주간 영상을 공개할 것이다.
공표될 때마다 아우성을 치고 야유하던 군중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말로만 듣던 속죄 주간 영상.
그것도 대장군이었던 오메가 선의 속죄 주간 영상.
오후 12시 30분까지는 채 20분이 남지 않았다. 군중은 너도나도 휴대 전화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아직 처형대에 남은 열 명의 범죄자들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우르르 광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이목은 1구역 공영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채널로 돌아갔다.
머지않아 대장군이었던 오메가 선의 속죄 주간 영상이 1구역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었다.
그 영상이 1구역 전역을 휩쓸고, 경계 너머 전 구역에 전파되기까진 고작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속죄 주간 영상이 방영되는 동안 그 누구도 살아남은 오메가 선의 행방엔 관심이 없었다.
4. 어린 알파
다리를 벌리고 누운 선의 배는 복수 찬 환자처럼 불룩했다. 달걀 크기의 동그란 윤곽들이 당장이라도 얇은 뱃가죽을 뚫고 나올 것처럼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선의 가랑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은 디의 두 손이 시뻘건 핏물로 번들거렸다. 라텍스 장갑을 낀 두 손이 다시금 허벅지 사이로 기어들어 갔다.
힘없이 벌어진 항문을 쑥 파고든 왼손이 넓게 벌어지자 구멍도 넓게 벌어졌다. 벌겋게 붓고 헐어 버린 내벽이 훤히 보였다. 그 틈으로 오른손을 깊이 밀어 넣은 디의 손목이 항문 입구에 걸렸다. 움찔, 이미 몇 차례 정신을 잃고 졸도한 선이 경련했다. 직장을 뚫고 들어간 손끝이 결장 입구에 닿았을 땐 눈을 뒤집으며 거품을 물었다.
“끄윽, 끅.”
입에 물린 재갈을 비집고 성대를 긁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벌써 한 시간째. 기력이 다한 선의 경련이 잦아드는 찰나를 놓치지 않은 디가 오른팔에 체중을 실었다.
“아악-!”
결장을 강제로 비집고 들어간 손끝에 탱탱한 알의 표면이 닿았다. 손목까지 삼켜진 디의 오른팔이 점액질로 번들거렸다. 곧이어 상박 근육이 튀어 오르고 투둑, 선의 항문을 찢은 팔뚝이 팔꿈치까지 밀어 넣었다.
전신을 팽팽하게 당기며 비명을 지르는 선은 사지가 묶인 채였다. 등허리가 휘고 목울대가 돋아나며, 사지 근육이 터질 듯 꿈틀거렸다. 온몸을 흔들며 요동치는 선의 비명은 발작적이었다.
아랑곳하지 않은 디는 제 손이 비집고 들어간 배 속에만 집중했다. 꽉꽉 물어 오는 성난 내벽의 압박에 개의치 않고 천천히 손가락을 펼쳤다. 이성이 완전히 나간 선이 고개를 마구 휘저으며 알 수 없는 소리들을 질러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