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어차피 받지 못할 보상 때문에 나태해질 사냥꾼을 대비하겠다는 의미였다. 어떤 사리사욕과 개인의 영달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선생님과 1구역의 안녕을 위해 충성하는 사냥꾼에겐 모욕과 같은 언사였다. 그런 모욕을 감수하고도 네 오메가를 원하느냐는 질문 앞에서도 디는 흔들림이 없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단단하고, 어린 범처럼 형형한 눈으로 선생님을 마주한 디는 실제 어린 알파였다. 커다란 덩치와 근육질의 몸으로도 다 숨길 수 없는 풋풋함이 앳된 얼굴에 남아 있었다. 어린 것은 그럴 수 있었다. 더구나 어리고 세상에 피붙이 하나 없는 원형 알파라면, 제 오메가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디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한 선생님이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내가 허락하는 건 오메가 하나입니다. 그대의 오메가가 산란해 새끼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우리 1구역의 아이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아이도, 세 번째 아이도, 마지막 아이까지. 그대가 소유할 수 있는 건 오직 저 오메가 하나뿐입니다. 알겠습니까?”
배석한 의원들은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이젠 대장군도 반역자도 아닌 오메가 ‘선’은, 일주일의 속죄 주간을 보내면서 오메가의 기능을 대부분 상실했다. 더는 산란할 수도, 착상할 수도, 새끼를 배어 낳을 수도 없었다.
즉, 한때 우성 오메가였던 ‘선’은 이제 원형 알파의 정을 온전히 받아 낼 수 없다는 의미였다. 1구역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생기지도 않을 아이의 소유권을 빼앗으며 만에 하나의 혼란까지 방지했고, 어린 알파는 그런 오메가라도 갖길 원했다.
“또한 오메가의 소유권은 다른 누구에게 이전할 수도, 판매, 대여할 수도 없습니다. 부대장 디가 전사할 시 오메가 ‘선’의 소유권은 자동으로 1구역에 귀속되며, 즉시 사형이 집행될 것입니다.”
인자하고 현명한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철두철미했다. 마지막 조건까지 들은 어린 알파 역시 주저함이 없었다.
“좋아요.”
나직한 선생님의 긍정에 장내가 다시 술렁거렸지만, 누구도 반대를 외치거나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 선생님을 경애하는 의원들 역시 한번 내려진 결정엔 한마음 한뜻으로 성심을 다해 따랐다.
“형질 검사를 시작하죠.”
선생님의 명령에 시립해 있던 참모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전용 키트를 든 참모 하나가 디 앞에 섰다. 디는 순순히 제 손을 내밀었다. 굵고 단단한 손가락에 바늘을 찔러 피를 낸 참모가 떨어지는 핏방울을 키트에 정확히 담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디는 우성 알파가 아니었다. 애초 원형 알파가 우성이긴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한 결과를 차분히 기다린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오메가 ‘선’을 변경 14부대 부대장 디에게 하사하겠습니다.”
길어진 행사 시간과 고민스러운 상황이 힘에 부친 듯 다시금 등을 기댄 선생님이 한숨처럼 덧붙였다.
“하지만 갈 길을 잃은 1구역민의 분노는 달래 줘야 해요.”
뿌득, 누군가 이를 가는 소리가 정적에 금을 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분노일지 충격일지 모를 반응에 주목하지 않고 이미 내린 결정을 공표했다.
“속죄 주간 영상을 공영 방송에서 방영하도록 하죠.”
이번엔 좀 전보다 반향이 더 컸다. 예상했던 사람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도, 심지어는 모가지가 달랑달랑한 상황에 안절부절못하던 구와 유발도, 그 공표가 주는 충격에 신음을 삼키지 못했다.
이 끔찍한 결정을 내린 선생님 역시 고통스러운 듯 두 눈을 내리감으며 자리를 파했다.
* * *
“너 진짜 저 반역자 새끼하고 한패가 아니야?”
중앙의회를 빠져나오자마자 디에게 달려든 구는 멱살 한번 잡지 못하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씨발, 개새끼야!”
장난으로나마 디의 뒤통수를 후리기는커녕 옷깃 한번 잘라 본 적 없는 구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울분을 토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씨발놈의 새꺄! 어떻게 속죄 주간 영상을 풀게 만들어!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그러고도 네가 1구역 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어! 씨발, 개새끼! 그냥 죽어 버리게 놔두지! 치욕스럽게 살아남는 것보다 반역자 새끼로 죽는 게 낫다는 걸 정말 모르냐? 누가 이기적인 알파 새끼 아니랄까 봐! 저 씨발! 각인 오메가만 가질 수 있다면 그게 산송장이든 썩은 시체든 상관없다는 거냐! 야, 이 씨발놈아 어디 가! 어디 가냐고 이 개새끼야!”
울분을 터트리다 못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구를 물끄러미 내려다본 유발이 터벅터벅 걸어가 그 곁에 앉았다.
“언제는 좆같은 반역자 새끼라며.”
“뭐, 이 새꺄?”
버럭 화를 내는 구를 심란한 얼굴로 쳐다보던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구역질 나는 오메가 새끼, 추천한 놈부터 보좌한 놈까지 싹 다 젓갈을 담아 버려도 시원찮다고 해놓고.”
“야, 이…!”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구가 애꿎은 허공만 치며 에이, 씨발! 욕설을 뱉었다. 그 곁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유발이 우울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우리 대장님이었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아니지.”
“대장은 무슨 대장이야! 선생님을 암살하려고 했다고! 심지어 7구역 버러지들한테 팔아넘기려고 했다잖아!”
“그러니까.”
“뭔 소리야?”
“깔끔하게 죽여 버리면 되는데 왜 살려 주냐고. 속죄 주간 영상까지 공개하면서.”
“…….”
“우리 같은 놈들 때문에 그래. 좆같은 반역자 새끼 말고, 우리 대장이었던 대장군님께 어중간하게 미련이 남은 놈들이 1구역에 한둘이겠어? 정 떼게 하려고 이번 일을 빌미 삼아 그 영상을 공개해 버리는 거지.”
“저 씨발놈은 그걸 알고도 저 좋자고 오메가를 갖겠다는 거고!”
“저 좋자고 그랬을까? 원형 알파는 각인을 해야 살아남아. 그런데 우리 대장님, 아니, 오메가 ‘선’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을 거야. 너도 속죄 주간에 벌어지는 일을 잘 알잖아?”
“씨발.”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구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각인도 못 할 오메가를 뭐하러.”
디가 원형 알파인 게 알려지면 좋아지는 건 하나 없이 온통 불리한 일만 벌어질 게 뻔했다. 당장 발정기가 오기라도 하면 디는 무방비 상태로 적에게 노출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7구역 놈들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박멸 수준으로 처단하고 다닌 ‘미친 귀신’이 원형 알파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디의 목을 따려고 달려들 놈들이 1구역 전체를 구석구석 채우다 못해 미어터지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 주제에 제 정체를 밝히고 오메가 ‘선’을 포상으로 받아 냈다.
단순히 대장군 ‘선’을 흠모해서? 아니면 이제 한낱 오메가가 돼 버린 ‘대장군’ 선을 능욕하기 위해서? 어느 쪽이든 전 구역에 이름을 떨치고, 반짐승이나 다름없는 1구역의 백인부대를 이끌던 ‘대장군’ 선에겐 치욕적인 처사였다.
그 어느 쪽을 용납하기도, 납득하기도 어려운 구가 복잡해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악- 괴성을 질렀다. 그나마 좀 속이 시원해진 얼굴로 쌍욕을 뱉었다.
“그나저나 그 씨발놈, 원형 알파였어. 그래서 그렇게 무식하게 힘이….”
“에이, 그건 아니다. 걔가 힘만 세냐? 웬만한 사냥꾼은 걔한테 다 발렸는데. 백인부대원도 걔를 이기긴 힘들걸?”
“개씨발 잡놈의 새끼.”
“그래도 난 살아남으셔서 좋다.”
“씨발놈아, 너도 살아남고 싶으면 입단속 해. 반역자가 살아남아서 좋다니, 지금 당장 내가 보안부에 찔러 줄까?”
되지도 않는 협박에 콧방귀도 뀌지 않은 유발이 까마득한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3천 개의 계단을 훌쩍 내려간 디가 검은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의 목적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처형이 벌어지고 있을 붉은 광장이었다.
원래라면 오메가 ‘선’은 오늘 정오, 다른 범죄자들과 함께 참수형에 처해질 예정이었다.
디는 인파를 헤치며 붉은 광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광장 중앙을 차지한 처형대는 이미 앞서 참수당한 범죄자의 피로 흥건했다. 지난 100년, 하루도 빠짐없이 죄인의 피를 먹은 처형대는 검은 광장의 돌바닥보다 더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성인 남성의 허리 높이, 1m, 3m 너비의 직사각형 벽돌로 쌓아 올린 처형대에 열 명의 죄인이 꿇어앉은 채 목을 내밀고 있었다. 마지막, 열한 번째 죄인이 위병들에게 끌려 나왔다. 반역자 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