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40)

  • #1화

    1. 사냥꾼 D

    선은 디가 처음으로 소유한 물건이었다.

    하도 맞아서 뭉개진 얼굴,

    마구잡이 가위질에 싹둑싹둑 잘린 머리카락,

    다비드 같은 몸에 뒤엉킨 정액,

    매질과 발길질에 보랏빛으로 멍든 살갗,

    성인 손가락 하나는 쉽게 드나들 만큼 확장된 요도,

    심상치 않은 크기로 부푼 고환.

    찢어져 한껏 벌어진 항문은 붉은 속살을 다 드러낸 채 피 섞인 정액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열흘간 100명의 부하에게 머리카락 한 올까지 윤간당한 선은 걸레짝이 되어 디에게 던져졌다.

    디에게 선은 포상이었다.

    약탈자들이 납치한 우성 오메가 다섯을 산 채로 회수한 공을 인정받아 갖게 된 최초의 물건.

    선은 디의 첫 소유물이었다.

    2. 대장군 선

    디는 날 때부터 알파였다.

    성장기에 발현한 변형 알파가 아닌, 태 속에서부터 형질을 보유한 원형 알파인 디는 탯줄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남쪽 도시에 버려졌다.

    하층민들이 구더기처럼 득실득실 모여 사는 남쪽 도시에서도 제일 후미지고 더러운 1구역. 그곳에 버려진 디는 시궁창을 둥지 삼아 버러지처럼 자랐다.

    ‘선생님’은 1구역의 구원자였다. 다른 구역민에게 버러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1구역민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 주었으며, 폐허인 1구역을 정비해 1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로 재건했다.

    디는 1구역의 변방 사냥꾼이었다. 도망간 알파와 오메가를 붙잡아 주인에게 돌려줌으로써 무너진 체계를 복구하고 유지하는 데 일조했다.

    그 모든 일은 선생님을 위해서. 사냥꾼들은 어떤 금전적 대가와 개인의 영달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선생님과 1구역의 안녕을 위해 임무에 임했다.

    선은 변형 오메가였다. 전 구역에서 몇 개체 되지 않는 우성 오메가이자 100명의 직속 사냥꾼을 통솔하는 대장군이며 현존하는 최고의 형질 사냥꾼이었다.

    바로 일주일 전까지는 그랬다.

    「대장군 선, 반역」

    최근 일주일간 1구역의 온 미디어를 도배한 헤드라인을, 디는 선의 처형 당일에 접했다. 깨진 유리 너머 대형 모니터를 꽉 채운 선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본 디가 잿빛 눈을 빛냈다.

    “씨발.”

    “좆같은 반역자 새끼.”

    이번 작전에 같이 동원된 사냥꾼 구와 유발이 최대의 경멸을 담아 욕설을 뱉었다.

    “감히 선생님께 칼을 겨눈 것으로도 모자라 7구역에 넘기려고 해?”

    “구역질 나는 오메가 새끼한테 중책을 맡긴 결과가 반역이라니, 그 새끼 추천한 씨발놈들부터 싹 다 잡아서 족쳐야 돼. 살점을 저며다 젓갈을 담아도 시원찮을 새끼들.”

    선은 지난 100년간 유일한 오메가 출신 대장군이었으며, 역대 21명의 대장군 중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그보다 더 황홀한 격투술로 살아 있는 전쟁의 신이라고도 불렸다. 1구역민은 선생님을 경애하는 만큼 선을 흠모했으며, 사냥꾼들은 선생님께 충성하는 만큼 선에게 복종했다.

    그런 그가 반역을 꾀하다 발각되어 오늘 정오, 중앙광장에서 사형에 처해질 예정이었다.

    3. 포상

    구는 보직 변경을, 유발은 면죄부를, 그리고 디는 오메가를 청했다.

    구와 유발, 그리고 디는 외곽 변경 부대 소속이었다. 일주일 전, 1구역 중앙에서 다섯 명의 우성 오메가를 훔쳐 달아난 범죄단을 마지막까지 추적해 조직 전원을 사살하고, 사상자 하나 없이 우성 오메가를 회수했다.

    오늘이 그들의 귀환일이었다.

    공훈을 높이 산 선생님은 그들에게 직접 포상을 내리기로 했다. 외곽이 지긋지긋한 구는 중앙으로의 보직 변경을, 미래가 두려운 유발은 면죄부를, 그리고 선이 갖고 싶었던 디는 사형 직전의 오메가를 청했다.

    이에 회장은 발칵 뒤집혔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1구역 법에 따라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속죄 주간이 아니었다면, 벌써 일주일 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인물입니다.”

    “다른 죄도 아닌 반역죄입니다. 선생님을 해하려고 했다고요!”

    “그뿐입니까? 7구역 쥐새끼들과 결탁해 선생님을 산 채로 넘기려고 했습니다. 그런 자를 일개 변경 대원에게 넘긴다? 백인부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구역민의 분노는 어떻고요. 그들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성 오메가를 상처 하나 없이 다섯이나 탈환해 왔습니다. 중앙 대원들도 성공하지 못한 임무를 단 일주일 만에, 7구역의 심장까지 쫓아 들어가 완벽하게 회수해 왔습니다. 변경 대원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사냥꾼은 무엇도 소유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님을 위해서만, 1구역의 안녕을 위해서만 임무를 다한다. 1구역 소속 대원의 유일무이한 철칙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가정을 꾸려 일가를 이룰 수도, 돈과 권력을 탐할 수도 없었다. 하다못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들꽃 하나, 풀 한 포기 제 것으로 삼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인지라, 인간의 욕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그들의 가혹한 희생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소유권을 제한받고 금전적인 보상만 받지 않을 뿐, 그 외 누릴 수 있는 특권은 모두 부여받았다. 1구역의 사냥꾼은 평생 단 1원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들은 모든 것을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제한된 소유권엔 사람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저들의 공은 치하받아 마땅하지만,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사형 집행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은 반역자라면요. 저는 오히려 반역자를 부상으로 청한 변경 대원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감히 누가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여기 변경 대원이, 저 파렴치한 반역자와 뜻을 같이한 무리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중앙지부 의원의 주장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마치 제 목을 조르는 듯한 수십 개의 눈동자와 무거운 침묵에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구가 겨우 디를 곁눈질했다.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욕을 바가지로 퍼붓고 뒤통수가 뭐냐, 아예 디의 모가지를 따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축배를 들어도 모자랄 판국에 감히 뭘 달라고? 미친놈! 눈깔을 파다가 지져 먹어도 도로 붙을 새끼! 저 대가리에 총 맞고도 멀쩡히 살아남아 내 속만 뒤집을 새끼!

    울분에 차 속으로 욕이란 욕은 다 퍼붓는 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반면 벌써 반역자로 몰려 처형장에 끌려가는 상상까지 다다른 유발은 당장 오줌이라도 지릴 것처럼 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작 말 한마디로 장내를 발칵 뒤집은 디 하나만이 태연했다. 아니, 격론이 오가는 내내 그런 디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선생님까지 둘이었다. 노쇠한 몸을 상석에 기대앉은 선생님이 푸석푸석한 입술을 열었다.

    “그를 원하는 이유를 말해 봐요.”

    피로에 절어 다 쉰 목소리였지만, 누구 하나 듣지 못한 이가 없었다. 상석을 중심으로 양쪽에 죽 늘어선 의원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디라고 했죠. 변경 14부대 부대장, 디. 반역자인 그를 왜 원합니까?”

    옆에 조아려 앉은 구와 유발과는 사뭇 다른 덩치로 왼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춘 디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구릿빛 피부에 차가운 은발, 잿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그는 선생님의 거대한 그림자와 수십의 칼날 같은 시선 앞에서도 담담히 응했다.

    “제 오메가를 갖고 싶습니다.”

    뻔뻔스럽기까지 한 대답에 조용했던 장내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급기야 저놈을 끌어내라는 성난 고함까지 나온 순간이었다.

    “원형 알파….”

    선생님의 낮은 읊조림에 떠들어 대던 이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디 부대장. 원형 알파가 맞나요?”

    “네.”

    급작스레 밝혀진 비밀에 가장 놀란 건 근 1년을 동고동락한 구와 유발이었다. 잔뜩 주눅이 든 상황에서도 놀라 자빠질 것처럼 반응한 그들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디가 긍정의 표시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마저 불경스러워 더 참지 못한 의원 하나가 거품을 물려는 찰나 선생님이 다시 말했다.

    “원형 알파는 각인 오메가 없인 살아남을 수 없죠.”

    그래서 우성 알파보다 더 희귀체였고, 전 구역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1구역에서도 원형 알파이자 우성 알파의 형질을 지닌 이는 지난 100년간 뫼가 유일했다. 뫼는 오늘 처형 예정인 반역자 선의 전임 대장군이었다.

    웅성웅성, 의원들의 동요가 커졌다. 그 소란스러운 침묵 속에서 얼마간 생각에 잠겼던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우성 알파라면, 애석하게도 청은 들어줄 수가 없어요.”

    “선생님!”

    뒷말을 예견한 의원이 반발했다. 그 소란을 가벼운 손짓 하나로 제지한 선생님이 거듭 말했다.

    “그러나 우성 알파가 아니라면, 좋습니다. 대장군도, 반역자도 아닌 오메가 ‘선’을 포상으로 드리죠. 다만, 부대장 디는 앞으로 어떤 공훈을 올리든 단 하나의 보상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보직을 변경할 수도, 면죄부를 청할 수도, 상위직에 오를 수도 없습니다.”

    오메가를 소유하는 한 평생 외곽을 벗어날 수도, 면죄를 보장받을 수도, 계급 상승을 꿈꿀 수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공훈을 올리지 못하면 오메가를 압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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