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28)화 (128/133)

128.

“흐으, 으…….”

이건오의 몸이 잔뜩 해진 누더기처럼 변하고 나서야 진표성이 발길질을 멈췄다. 몸을 제대로 굽히지도, 펴지도 못한 채 이건오가 앓는 소리를 냈다.

피 섞인 타액이 입가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비참한 몰골을 마주하면서도 진표성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말해. 네가 알고 있는 정보.”

오히려 더 냉정한 태도로 이건오의 입술 주변을 워커 앞부분으로 툭 건드렸다.

“말……하면…….”

이건오가 눈을 느릿하게 깜박거렸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희망인데, 그걸 말해 버리면 제 손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못 차렸네. 너한테 선택권 따위는…….”

진표성이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눈두덩이까지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릴 때였다.

“커억…….”

이건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몸 상태를 살피고 싶었으나 시야에 한계가 있었다. 턱 아래에 느껴진 날카로운 감각이 정수리까지 꿰뚫고 나온 건 순식간이었다.

“팀장!”

진표성이 옥상 난간에서 내려와 걸어오는 한수호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오를 살려 둔 건 그에게 연민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이들을 납치한 놈이니 애초에 살려 둘 생각 따윈 없었다.

하나 놈은 정강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아직 정강필을 붙잡지 못한 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정보일지도 몰랐다.

“아니, 이렇게 죽여 버리면 어떡해!”

샛노란 눈동자가 당황스럽게 생기를 잃어 가는 이건오와 표정이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는 한수호를 번갈아 살폈다.

“쓸모없는 놈이니까.”

“이 새끼, 정강필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고!”

이건오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흐려져 갔다. 머리통을 정확하게 꿰뚫어 버린 그림자는 그의 주변에서 스르륵 사라지고 있었다.

“나도 알아. 오면서 들었으니까.”

진표성이 당황해 목소리를 높여도 한수호는 제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진표성의 눈매가 뾰족해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존경하는 팀장이지만 방금 전에 그가 한 행동은 명백히 실수였다. 진표성이 답답한 마음에 옥상 바닥이 움푹 파이도록 발을 구를 때였다.

“정강필 붙잡았어. 그러니까 그만 좀 흥분 가라앉혀.”

“뭐?”

이어진 한수호의 말에 진표성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흥분해 목에 핏대까지 섰다가 단단한 어깨가 맥없이 아래로 늘어졌다.

“서동연한테 연락 온 거 확인했어.”

“팀장은 진짜…….”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짜고짜 이건오를 죽이고 자신이 생난리를 피운 후에야 얘기해 주는 행태에 기가 막혔다.

“진짜 정강필인 거 확실해?”

“서동연 말로는.”

한수호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다가 이나리를 마주했다. 이나리에게 아이들을 넘기고 얼마 되지 않아 통신 아티팩트에 불이 들어왔다.

서동연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이현과 함께 있을 때 온 연락에서 서동연은 정강필을 붙잡았으나 아무래도 꺼림칙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붙잡은 이가 도플갱어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믿기 어려운 말이었으나 그동안 정강필이 저지른 일들이 있어 헛소리로 치부하기도 힘들었다.

그 때부터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다. 바로 연락이 온 걸 보면 이번에야말로 정강필을 확실하게 붙잡은 걸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서동연은 본론을 말하는 대신 구구절절 상황 설명을 늘어놨다.

‘실험대 밑으로 비밀 통로가 있더라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아주 잘 실천했어.’

‘그래서 결론은.’

또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려는 듯해 한수호가 서동연의 말을 끊었다.

‘냉정하기는. 아무튼 통로로 내려갔는데 그 안에 정강필 본체랑 도플갱어들이 있지 뭐야. 윽. 지금 생각해도 완전 소름 돋네.’

서동연의 말로는 정강필이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도플갱어들을 여럿 만들었단다.

‘본체를 어떻게 확인했지?’

‘하나씩 팔을 부러뜨렸는데? 반응 다른 놈이 본체일 거라 생각하고.’

서동연다운 대답이었다. 한수호는 이어 진표성이 있는 쪽으로 향하며 이건오에 대해서 그에게 물어봤다.

‘머리에 해골 문신 있는 놈. 너를 배신한 놈인 거 맞나.’

‘뭐야? 그 새끼 아직 살아 있어? 어쩐지 기분이 계속 찜찜하더라니!’

서동연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목소리만 들으면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뛰어올 기세였다.

‘죽여도 되겠지.’

‘뭘 당연한 걸 물어. 기왕이면 고통스럽게 부탁해. 확실하게 머리통 쑤시는 거 잊지 말고.’

통신 아티팩트가 끊긴 후 이동 속도를 높였다. 이건오가 진표성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곧바로 숨통을 끊어 놨다.

서동연이 정강필을 붙잡은 이상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하등 영양가가 없을 테니까.

“돌아가자.”

한수호가 진표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진표성은 이건오의 숨이 확실히 끊어졌다는 걸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야 움직였다.

“서동연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

“우리 쪽으로 곧장 이동하라고 했어.”

“놈들 이동 속도면…… 금방 도착하겠네.”

인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다.

일반 사람의 걸음 속도라면 한참 걸리겠으나 놈들은 하프 좀비였다. 좀비들 또한 기본적으로 하프 좀비들의 기운이 느껴지면 피해 가는 성향이 있다.

“……팀장은 괜찮나?”

“뭐가.”

“아니, 그냥…….”

진표성이 어느새 많이 길어진 뒷머리를 엉망으로 헤집으며 말을 골랐다.

자신도 정강필과의 추억을 떠올리자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가 이현을 납치해 가고 이현에게 한 짓을 안 후로 이를 갈고 있기는 하지만, 막상 그를 죽일 순간이 오면 망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하물며 정강필은 한수호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서동연이 그를 데려오면 필연적으로 한수호는 그와의 악연의 고리를 스스로의 손으로 끊어 내야 한다.

“이미 끝난 인연이야. ……미련도 없어.”

진표성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어물거렸지만 한수호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았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시스템을 정상으로 돌릴지만 생각해.”

좀비 치료제가 만들어졌어도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여전히 세상은 좀비들로 뒤덮여 있고 사람들을 지켜 줄 에스퍼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 그래야지.”

그렇기에 진표성은 한수호의 속마음을 건드는 말을 더는 꺼내지 못했다. 과거였다면 무리해서라도 그를 위로했겠지만 그에게는 동료보다 훨씬 더 마음을 깊이 나눈 연인이 존재했다.

“수호 형!”

김솔을 품에 안고 달래고 있던 이현이 한수호를 발견하고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새까만 눈동자 안에 한수호를 향한 마음이 그득 차오르는 게 진표성에게도 보였다.

“……나는 투명 인간처럼 취급하고.”

진표성이 한수호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팔을 뻗으면 바로 손끝이 닿을 만한 위치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도착했는데도 이현의 두 눈은 한수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솔이 무사히 구해 줘서 고마워요. 애가 많이 놀랐나 봐요.”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의젓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가 지금은 이현의 목을 꼭 끌어안고 어깨 위에 이마를 비비고 있었다.

“……가이드, 진짜 속상하다. 나는 눈에도 안 보이는 거냐고.”

결국 진표성이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다. 자존심이 상해 입을 꾹 다물고 있을까 했지만, 그랬다가는 이현이 언제까지고 한수호만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아, 미안해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솔이 말로는 엄청 무서운 하프 좀비라고 하던데.”

이현이 눈을 접어 웃으며 얼굴에 난처한 빛을 띠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한수호가 위험한 일에 휘말렸을까 봐 연구소 입구에서 계속 서성거렸다.

김솔이 무사히 돌아온 걸 확인한 후에도 아이를 달래면서 시선은 계속 저 멀리 두었다.

“확실하게 숨 끊어 놓고 왔으니까 걱정하지 마.”

진표성도 이현이 부채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속상한 티를 낸 건 아니었다. 잠깐이지만 그의 눈동자에 자신만 온전히 담겼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가이드도 서동연한테서 연락받았어?”

“네. 형한테 먼저 연락한 거죠?”

서동연은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알았다. 긴급한 보고는 한수호에게 먼저 한 뒤에 이현에게 연락해서는 정강필을 생포했다는 소식만 전한 후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 갔다.

“이제 정말 마무리 지을 때가 온 것 같아요.”

처음 알파 1팀에 팀 가이드로 파견 나가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당시의 임무가 이토록 오래 이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불과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체감상으로는 수년이나 지난 것 같은데 실제로 흐른 시간은 한 계절도 채 되지 않았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이 남았어.”

좀비 치료제의 핵심적인 재료가 이현의 피라는 사실은 아직 이현과 한수호, 두 사람만 알고 있었다.

한수호가 말하는 부분이 뭔지 알 것 같아 이현의 속눈썹이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걱정하라고 한 말 아니야. 미안해.”

김솔을 안아 들고 있는 이현의 팔마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김솔이 아이이기는 해도 오래 안고 있으면 무거울 법도 했다.

한수호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김솔을 데려갔다. 김솔도 자신을 안아 주는 이가 한수호라는 걸 확인하고는 얌전히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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