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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26)화 (126/133)

126.

두 사람이 빠르게 이동한 여파로 인위적인 바람이 불어왔다. 이현이 이마 뒤로 훅 넘어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떨리는 숨을 길게 내쉴 때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팀장이랑 진표성이 갔으니까 애들 무사히 데려올 거예요.”

다른 에스퍼들을 이끌고 아이들의 흔적을 찾고 있던 이나리가 이현에게 다가왔다.

“……네.”

이현이 이나리의 위로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현에게 S급 에스퍼의 능력이 없는 이상 한수호와 진표성의 뒤를 쫓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애써 담담한 척하고 있지만 희게 질린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숨이 길게 늘어졌다.

* * *

“냄새가 이쪽으로 이어지는데…….”

진표성이 인적이 끊긴 한 초등학교 앞에 멈춰 섰다. 교문은 어디선가 가져온 나무판자와 차 문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덧대어진 상태였다.

군데군데 말라붙은 피가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에스퍼들을 만나기 전 생존자들이 요새처럼 사용하던 장소였다.

“이 사이즈, 딱 애들이 지나갈 만하지 않아?”

아직 아이들을 납치한 게 한 놈인지, 아니면 여러 놈인지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다만 진표성은 이상하게도 납치범이 한 명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수호가 발견한 옷자락에 묻은 체취도 한 사람의 것이었고.

“아무래도 개인이 벌인 행동처럼 보이는군.”

한수호의 예리한 시선도 문 앞에 나 있는 발자국 하나에 닿았다. 맨발인 듯 족적 같은 건 없었다.

범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렇다면 불어오는 바람에 진즉 지워졌을 것이다.

여전히 선명한 족적이 남아 있다는 건 찍힌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지금부터 최대한 소리 죽여서 이동하지.”

보통 사람이 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라고 해도 세 명이나 데리고 움직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죽였다면 모르겠지만.

그러나 한수호는 잔인한 상상은 애써 밀어 뒀다.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김솔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발견한 아이의 시신도 없었고.

“팀장이나 조심해. 나 먼저 들어간다.”

진표성이 능력을 끌어올리며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담을 가뿐히 넘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한수호 또한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은밀하게 운동장에 발을 디뎠다.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일반 좀비들과 좀비 몬스터, 그리고 들짐승들의 사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장면이었지만, 문제는 사체들의 가슴 부근이 하나같이 헤집어져 있다는 거였다.

다른 장기는 멀쩡하게 있는데 딱 하나의 장기만이 사라진 게 유독 눈에 띄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두르고 있는 학교에 다가갈수록 비릿한 피 냄새와 사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중앙 문은 유리가 다 깨져 문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유리 밟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어둠에 잠긴 학교 내부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으.”

한수호와 진표성이 허공에서 시선을 맞췄다. 자그마한 신음 소리가 희미하지만 귓가에 잡혔다.

아이들이 아닌 건물 안을 배회하는 좀비가 내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목소리에서 생기를 감지했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위층이었다. 피 묻은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계단에 발을 디딘 순간 한수호가 그림자를 조용히 일으켰다.

* * *

“솔이가 아빠 해. 내가 엄마 할 거야. 민영이는 아가야.”

“내가 왜 아가야! 나도 아빠 할래.”

“싫어. 지우는 솔이가 아빠인 게 좋아.”

김솔이 난처하게 웃으며 친구들을 바라봤다. 더벅머리가 귀여운 남자아이의 이름은 이민영이었고,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자아이의 이름은 신지우였다.

두 아이 모두 김솔과 동갑이었다. 이현과 재회한 후 김솔은 여느 때보다 밝게 지내는 중이었다. 또래 친구가 많은 이유도 한몫했다.

“우리 이제 돌아갈까?”

김솔이 걱정스러운 눈동자로 주변을 훑어봤다. 휑한 공간 안에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가져온 잡동사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솔아, 아직 주변은 많이 위험하니까 연구소 근처에서만 놀아야 해. 알았지?’

자신의 볼을 매만지며 오늘 아침에 이현이 신신당부하던 말도 떠올랐다. 이현은 일이 바빠 김솔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그래도 밤에는 김솔이 잠들 때까지 곁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하지만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연구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찌감치 철든 아이는 이현에게 떼쓰는 대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오늘도 가장 친한 친구 두 명과 놀던 중이었다. 갑자기 신지우가 모험하러 가자면서 김솔의 손을 잡아끌었다.

곁에 있던 이민영도 덩달아 끌려왔다. 다른 아이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봤지만 신지우의 얼굴에는 설렘이 한가득했다.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던 김솔과 이민영도 신지우가 적극적으로 주변을 탐방하자 곧 두려움을 잊고 노는 데 집중했다.

어쩌다 보니 어른들의 눈을 피해 먼 곳까지 와 버렸다. 아직 어둑해질 시간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현은 혼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한수호는 위험한 장소에 아이들끼리 놀러 나온 김솔의 행동을 알게 되면 호되게 혼낼 것만 같았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잘생긴 얼굴까지 떠오르자 김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답게 토실한 뺨이 창백해졌다.

“빨리 돌아가자. 어른들이 걱정하실 거야.”

“우리 아직 엄마, 아빠 놀이 한 번도 못 했는데…….”

신지우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이를 하기 싫다는 이민영 때문에 소꿉놀이는 시작도 못 했다.

김솔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유독 귀엽고 귀티 나는 데다, 나이에 맞지 않게 차분한 분위기가 저절로 또래 애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신지우는 김솔과 소꿉놀이를 할 엄두 같은 건 내지도 못했다.

놀이를 시작하기 무섭게 다른 애들이 주변으로 몰려와 서로 자기가 엄마를 하겠다고 욕심부릴 게 분명했으니까.

“나, 난 혼나기 싫어!”

김솔의 말에 이민영이 먼저 정신을 차렸다. 벌써부터 자신을 보며 엄한 표정을 짓는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알았어.”

이민영까지 마음이 돌아선 눈치라 신지우가 시무룩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직.

“어……?”

하지만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이들만 있던 공간에 무언가가 밟히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퀴퀴한 냄새가 훅 풍겨 왔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오랜 시간 쌓인 먼지 냄새와 희미하게 썩는 냄새가 뒤섞여 있었으나 그보다 더 강하게 코끝을 파고드는 냄새가 있었다.

“히익……!”

낯선 인영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이민영이었다. 남자는 한쪽 얼굴이 뭉개져 있다시피 했는데 머리카락이 밤송이처럼 삐쭉삐쭉했다.

채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얼굴은 꿈에서 마주칠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흐으, 으…….”

신지우의 커다란 눈동자 가득 눈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김솔이 두 주먹을 굳게 쥐며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고 멀리까지 나온 건 맞지만, 큰 소리를 내면 에스퍼들은 제 소리를 듣고 올 게 분명했다.

다만 낯선 남자가 당장이라도 해코지할 것 같은 분위기를 두르고 있어 섣불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억…….”

“울음소리라도 내면 이 꼬맹이가 죽는 꼴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될 거야.”

김솔이 입술을 짓씹었다. 어떻게 할 새도 없이 이민영의 뒷덜미가 남자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남자는 빈말이 아니라는 듯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흡사 사람이 아니라 좀비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따라와.”

김솔은 훌쩍이는 신지우의 손을 잡고 남자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남자가 걸치고 있는 상의 끄트머리 부분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덜렁거리는 게 보였다.

“……민영이는 내려 주세요.”

자연스럽게 남자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이민영은 작은 얼굴이 온통 달아오르도록 울음을 참고 있었다.

가장 직접적으로 남자의 살기에 노출된 영향인지 경기라도 일으킬 듯 눈동자가 두려움에 잔뜩 질렸다.

“제가 대신 붙잡혀서 갈게요.”

남자는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김솔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먼지와 피로 뒤덮인 얼굴에 비열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래, 그럼.”

“흐윽…….”

이민영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상처를 아파할 겨를도 없었다. 자신 대신 남자의 손아귀에 붙잡힌 김솔을 보자 얼굴이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꼬맹이들, 빨리 따라와.”

남자가 김솔을 손에 든 채 고갯짓했다. 방금 전에 김솔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신지우가 이민영의 손을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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