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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18)화 (118/133)

118.

“치료제 만드는 게 혹시 너한테 위험한 일이야?”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침묵은 곧 긍정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수호가 이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고개를 숙였다.

서로의 얼굴이 눈동자에 비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시선을 피할 수도 없는 거리라 이현은 마른침만 목 뒤로 삼켰다.

항상 자신을 볼 때면 다감한 빛으로 물들어 있던 검녹색 눈동자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명백한 질책의 의미를 담고 이현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었다. 그러다 반대로 한수호가 위험한 일을 자처하는 걸 지켜만 봐야 하는 제 심정이 어떨지 상상해 봤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발치까지 툭 떨어져 내리는 절망감이 들었다. 그제야 이현은 제가 하려는 행동이 얼마나 한수호에게 잔인한 일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이현이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한수호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덤덤하게 말해야 하는데 자꾸만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한수호의 깊은 시선이 어물거리는 이현의 입술 위에 머물렀다.

“좀비 치료제를 만들려면 제 피가 꼭 필요하거든요.”

이현의 피는 특수하다. 그의 부모님이 하나뿐인 아들을 직접 실험대 위에 올릴 만큼. 한수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한수호도 내심 좀비 치료제에 이현의 피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거라 짐작하기는 했다.

정강필도 그와 비슷한 이유로 이현을 납치해서 실험까지 한 거니까.

그러나 이현이 지금 보이는 반응으로는 단순히 피가 필요한 게 아닌 듯 보였다.

좀비 치료제를 완성하면 그대로 생산하면 될 텐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한수호가 혼란스러워하는 듯하자 이현이 불규칙적으로 튀어 오르는 호흡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핵심적인 요소가 제 피인데 피를 복제하는 건 어려운 일이거든요. ……치료제를 만들려면 제 피가 계속해서 필요할 거예요.”

이현이 만들려는 좀비 치료제는 좀비에게 주사하는 게 아닌 아직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 주사하는 약이었다.

좀비에게 물려서 좀비 바이러스가 체내에 투입돼도 그들처럼 되지 않게 하는 약.

정강필이 벌인 일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는 이현이 연구소를 떠났을 때보다도 적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현 한 사람의 피만으로 그들 모두에게 주사할 치료제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혈을 받는다고 해도 그게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 이현은 살면서 수혈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변수를 최대한 제거해야 하는 상황인데 타인의 피를 수혈받았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목표로 하던 좀비 치료제를 완성하는 데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약을 아주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제 피는 계속해서 필요한 상황이니까…….”

그렇다고 약을 만들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자신에게 해답이 있는데 그 해답을 외면할 만큼 이현은 모질지 못했다.

실험을 해 봐야 알겠지만 대한민국 내에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양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현은 여러 번 혈액 부족으로 인한 쇼크가 올 것이다.

게다가 이 얘기가 외부로 퍼져 나간다면 타국에서도 좀비 치료제를 얻기 위해 대한민국에 찾아올 텐데.

타국의 사람들까지 구한다고 생각하면 이현은 평생 병상에서 지내야 할 수도 있었다.

“그걸 왜 네가…… 감당하는데…….”

한수호는 입을 열었다가 복잡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 거칠어지는 숨을 내리눌러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고. 이현은 부모가 저지른 일 때문에 괴로워하며 살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기억의 공백과 의문 어린 부모님의 죽음은 이현을 고통스럽게 했다.

기억을 되찾은 후에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한수호는 이현의 속이 멀쩡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겠는가. 인간에게 환멸을 느낄 만한 일을 겪고도 인류를 위해 저 자신을 희생하려는 이현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이현도 다른 사람이 제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도록 놔뒀을지도 모른다. 어렵게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았다.

제 곁을 내내 맴돈 한수호와 함께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치료제를 만드는 일을 외면한다면 이현은 점점 멸망해 가는 세상을 보면서 괴로워할 게 분명했다.

한수호 또한 자신을 보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겠지. 본인의 안위보다 이현만을 생각하면 살아온 사람이니까.

“그래도 최대한 제 피를 복제해 보려고 해요. 아직은 추측일 뿐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이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염치없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실컷 그를 걱정하게 해 놓고 이제 와서 괜찮다고 말해 봤자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방법 찾을 거야. 그러니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한수호는 이현을 말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현은 제 소유물이 아니다.

그가 위험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안전한 곳에 가둬 두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올라도 절대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이현이 자신을 원망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이현이 머뭇거리다 발뒤꿈치를 들어 한수호의 입술 위에 짧은 키스를 남겼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한수호가 눈을 둥글게 휘어 보였다. 그러다 잠깐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을 찾아 고개를 숙여 깊은 입맞춤을 이어 갔다.

떨리는 숨결을 남김없이 받아먹으며 이현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역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모든 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강필을 찾는 것.

* * *

“일단 약은 완성됐는데…….”

약의 정확한 효과를 알려면 임상실험을 해야만 했다. 사람들을 잡아 와 실험했던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 갈 것 같아 이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이현이 완성된 약을 두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을 무렵.

“이현아.”

한수호가 이현이 있는 실험실을 찾아왔다. 사설 연구소에 온 뒤로 3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이현은 밤낮없이 실험에 매달렸고, 다른 이들은 동료들에게 연락하는 한편 연구소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우와.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이현이 한수호의 뒤쪽에서 나타난 꼬마 아이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솔아! 이쪽은 가면 안 된다고 했잖아!”

이어 아이의 엄마가 나타나 해솔이라 불린 여자아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단단히 주의시켜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다만 이쪽에는 위험한 물건들이 많으니 앞으로도 오지 못하도록 교육해 주십시오.”

“네. 그럴게요.”

여자는 지나칠 정도로 한수호의 눈치를 보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엄마의 모습에 여자아이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 엄마와 함께 보금자리로 돌아가면 한바탕 혼날 것 같았다.

“으아앙…….”

“뭘 잘했다고 울어! 울기는!”

덜 혼나기 위해 울음을 터트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이현이 연구 가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실험에 집중한 나머지 자주 끼니를 거르자 한수호가 중간중간 먹으라면서 넣어 준 사탕과 초콜릿 같은 것들이 손에 잡혔다.

“잠시만요.”

오랜 기간 보지 못한 김솔이 떠올랐다. 지금도 상황이 여의찮아 짧게 통신 아티팩트로 김솔의 목소리만 들었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여자아이를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던 여성이 이현의 부름에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한수호뿐만 아니라 이현의 눈치도 봤다.

그녀가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등 뒤로 숨겼다. 꼬질꼬질한 셔츠 소맷귀를 문지르는 손길이 부산스러웠다.

“아이 이름이 해솔인가요?”

“……네. 김해솔이요.”

김솔과 성도 같았다. 김씨는 대한민국에서 흔한 성이기는 하지만 나이도 비슷한 아이를 보자 김솔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해솔아, 사탕이랑 초콜릿 좋아해?”

이현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이는 오랜 시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듯 볼이 홀쭉했다.

이현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간식거리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간절함으로 일렁거렸다.

반쯤 벌어진 입가를 타고 침까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거 줄게. 그러니까 울지 말고 엄마랑 같이 손잡고 가는 거야. 할 수 있지?”

“네에…….”

김해솔이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을 고사리손으로 문질렀다.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도 아이가 앙증맞은 두 손을 슬며시 이현의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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