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일행을 나눠야겠어.”
한수호는 지금 나오는 대화 주제를 피하고 싶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다.
이현이 왜 자신의 뒷조사를 했냐고 캐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걱정돼서 한 행동이라고 포장하기에는 제 행동이 스스로에게도 음습해 보였던 것이다.
일행을 나누자고 얘기한 건 서동연을 이현에게서 떼어 놓기 위함이었다. 다 같이 서대문구로 이동하기에는 벙커에 있는 생존자들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게다가 정강필을 뒤쫓을 인원도 차출해야만 했다.
“나랑 김이현 가이드, 진표성, 그리고 김진수까지 서대문구로 가지.”
“그건…….”
이낙균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한수호의 결정이 최선에 가깝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는 진표성이 김진수와 함께 가는 게 전력에도 도움이 되고.
“나는 신부랑 같이 가고 싶은데?”
다들 한수호의 의견을 수용하는 눈치였지만 서동연은 곧바로 오른손을 들어 올려 반박했다.
“정강필을 쫓는 일도 중요하니까 너한테 맡기는 거야.”
이현만 아니라면 그를 쫓는 건 자신이 했을 거다. 그만큼 정강필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것이 모두에게 상처뿐인 전쟁을 하루라도 먼저 종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너도 정강필 꼭 잡고 싶잖아.”
“……그건 그렇지.”
듣고 보니 한수호의 말이 또 틀린 건 아니라서 서동연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반박하지는 않았다.
“서동연이 정강필 뒤를 쫓고. 나머지는 벙커로 가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줘.”
정강필이 이끌고 온 놈들은 대다수 건물 잔해에 파묻혔다. 그러나 그가 도망친 이상 또 언제 많은 수의 적을 데리고 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쪽은 걱정하지 마시고 먼저 출발하세요.”
임태한의 말에 한수호가 진표성에게 눈짓했다. 진표성이 김진수를 등에 업었다.
“김진수,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
“눈이라도 뜬 거 보고 싶었는데.”
“형…….”
함께 떠나지 못하는 알파 1팀이 김진수의 곁에 모여 작별 인사를 했다. 반드시 건강해진 모습으로 재회할 거라고 믿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기에 마음이 착잡했다.
“다들 왜 이렇게 울상이야. 진수 형도 한 독기 한다고. 걱정하지 말고 각자 맡은 일 하면 돼.”
진표성이 신파극을 찍는 듯 울상인 동료들을 둘러보며 담담한 태도로 그들을 위로했다.
자신도 김진수와 함께 가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들처럼 걱정에 쉬이 발길을 떼지 못했을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찢어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래야 저놈들도 분산되지.”
서동연의 말에 각자 전투 준비를 했다. 방수포로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S급 좀비 몬스터 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세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곧 위치를 들킬 것 같았다.
“무사해야 돼요.”
이현이 알파 1팀을 둘러보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그래도 탈출하기 전에 에스퍼들의 폭주 위험 수치를 낮춰 놔서 다행이었다.
“김이현 가이드도요.”
임태한이 이현의 걱정에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현과 오랜만에 재회했으나 회포를 풀 겨를도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호감이 가던 사람이었다. 한수호와 이현 사이에 강한 인연의 끈이 없었다면 진지하게 관계를 발전시켜 나갔을지도 모른다.
한수호를 바라보는 이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한수호만 종종 애틋한 눈길로 이현을 살피고는 했는데 이제는 둘 다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된 오래된 연인처럼.
새로운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단순한 호감일 때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임태한의 시선이 진표성에게 스치듯이 닿았다 떨어졌다.
자신과 달리 진표성은 이현에게 꽤 진지한 감정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서동연도 이현을 신부라 부르며 질척대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면 통신 장비로 연락하고.”
한수호가 여분으로 남은 통신 아티팩트를 꺼냈다. 정강필의 공격에 지니고 있던 아티팩트가 망가진 서동연이 냉큼 하나를 챙겼다.
“죽고 못 살던 에스퍼 놈들이랑 한 팀이 될 줄이야.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봐야 해.”
이나리가 통신 아티팩트를 귀에 꽂으며 서동연을 흘겨봤다. 그러나 목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서동연과 입씨름해 봐야 혈압이 오르는 건 자기뿐이라는 걸 경험으로 깨달아서였다.
“끼히이이익!”
“눈치챘네.”
작별의 시간은 S급 좀비 몬스터가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내지르면서 끝났다. 서동연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난 일단 저쪽으로 갈게. 하프 좀비들 본거지 아니면 협회장 쪽에 정강필이 갔을 것 같으니까.”
가장 먼저 튀어 나간 건 서동연이었다. 잔상이 흐릿하게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를 따라 S급 좀비 몬스터가 길쭉한 목을 허공으로 쭉 빼며 탁한 눈알을 빛냈다.
“팀장님, 반드시 진수 살려서 데려와 주세요.”
“그래.”
이낙균의 말에 짧게 대답한 한수호도 서대문구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의 뒤를 진표성이 바짝 따라붙었다.
“우리도 가자. 이놈은 내가 챙길게.”
임태한이 강지우를 옆구리에 끼었다. 김종현을 채찍으로 휘감은 이나리도 임태한의 곁에서 주변을 경계했다.
“제가 시선을 끌어모을게요.”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진 한수호와 진표성의 뒷모습에서 어렵게 시선을 떼어 낸 이낙균이 마력을 일으켰다.
세 사람이 덮고 있던 방수포가 새빨간 화염에 활활 타올랐다.
“키히힉!”
“캬하아―!”
“그으, 크히익……!”
임태한이 바람을 일으켜 불타오르는 천이 넘실거리며 움직이도록 했다.
시력이 퇴화한 좀비들도 움직임을 감지할 만큼 화려한 불길의 향연에 다들 흥분해 목울대를 울렸다.
각자 다른 길로 떠나는 동료에 대한 걱정은 남아 있어도 살아남기 위해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 * *
“흐으, 으…….”
“팀장, 잠깐만.”
김진수가 또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진표성이 먼저 걸음을 멈추고 한수호도 그의 곁에 서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시꺼먼 그림자가 네 사람의 몸을 좀비들에게서 가렸다.
다행히 서대문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좀비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무시하고 갈 수준은 아니지만 좀비 웨이브에 뒤덮였던 협회 부근에 비해서는 널널했다.
“진수 형, 정신 좀 차려 봐.”
이곳까지 도달하면서 김진수는 30분에 한 번씩 발작을 일으켰다.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뒤틀면서 피 섞인 거품 침을 흘렸다.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면 그 사이로 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취를 감추었다.
“으으…….”
진표성이 뺨을 두들겨 봐도 김진수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앓는 소리만 내는 모습에 진표성이 답답한 숨을 토해 냈다.
“형,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이현이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였다.
연구소장이 김진수에게 먹인 약이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문제는 몸속에 이미 흡수된 독 성분이 끊임없이 신체 내부를 손상하고 있다는 거였다.
“회복 포션 얼마나 남았죠?”
“거의 다 떨어져 가.”
진표성이 품속에서 회복 포션을 꺼내 김진수의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김진수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먹인 결과 회복 포션의 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우리 얼마나 남은 거지?”
회복 포션의 도움으로 김진수의 낯에 조금이나마 혈색이 돌고 나서야 진표성이 고개를 들었다.
“저 건물인데…….”
이현이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왔을 때와 너무도 다른 광경에 침음을 흘렸다.
멀쩡한 건물이 없었다. 해가 저물어 가기 시작해 지상에 내리쬐는 주홍빛 노을 사이사이로 이미 말라붙은 핏자국들이 가득했다.
좀비가 되지 못할 정도로 잡아먹혀 잔해만 남은 시체들이 썩어 들어가며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이현의 아지트가 있는 건물 주변에 유독 그런 잔해들이 많았다. 언뜻 피 묻은 교복의 흔적도 보여 이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옥상 쪽으로 진입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한수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건물 주변을 훑었다. 잔해들도 많지만 좀비들이 건물 외벽에 몸을 계속해서 들이받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서 이현이 원하는 자료를 찾아야 하는데 괜히 좀비들의 이목을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러면 이 건물 위로 올라가지, 뭐.”
네 사람은 현재 골목길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김진수가 발작을 일으켜 잠시 그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숨어든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