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서동연과 강지우가 빠르게 사라진 후 임태한이 한수호를 바라봤다.
“팀장님도 김이현 가이드랑 먼저 올라가시죠.”
임태한이라면 믿고 등을 맡길 수 있었다. 한수호가 얼음 발판을 이용해 출구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늘빛이 점점 가까워지며 퀴퀴하고 탁했던 공기가 상쾌하게 바뀌어 갔다.
그러나 막상 지상에 올라가 마주한 상황은 생각보다도 심각했다. 어떻게 보면 지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째 일이 쉽게 풀린다고 했어.”
서동연이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에스퍼들이 방향을 틀어 놨던 좀비 웨이브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소음이었다.
주변은 땅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좀비 떼로 우글거리고 있었다.
“키히이익―.”
“캬햐악!”
“크르르…….”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좀비들의 향연이었다. 하늘은 새파란데 그 아래 펼쳐진 건 썩은 육신의 물결이라 도대체 어디로 길을 뚫어야 할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빈틈이라고는 없이 빽빽하게 지상을 메운 좀비들은 희뿌연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먹잇감을 찾아 쉼 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서동연이 눈매를 좁히며 그나마 뚫기 쉬워 보이는 방향을 가늠했다.
“좀 있으면 들킬 거야. S급 좀비 몬스터들은 유독 기감이 예민하니까.”
인근 수 킬로미터는 족히 좀비들이 장악한 상황이라 목적지를 정해 놓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지상에 올라온 이낙균이 주변에 나뒹구는 방수천 하나를 집어 몸을 은폐하고 있었다. 이후 나온 이들도 방수천 아래에서 몸을 웅크리고 상황을 살폈다.
건물이 무너져 잔해가 쌓인 덕분에 뚫고 나온 지점이 웬만한 작은 동산 꼭대기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쪽에 먹잇감이 있다는 걸 아직 눈치채지 못해서인지 좀비들이 잔해로 만들어진 산 끄트머리만 깔짝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무지막지하게 무너지네.”
임태한이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후 황두학이 통로를 지탱하고 있던 힘을 풀었다. 얼음벽이 간신히 막아 내고 있던 잔해물이 통로 안쪽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서동연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저 아래에서 서동연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기어 나온 하프 좀비 둘이 지상을 향해 올라오면서 악을 질렀다.
“사, 살려 줘……!”
“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에도 황두학은 냉정하게 놈들을 잔해 더미 속에 파묻었다.
“냉정하네. 한수호가 부하들은 아주 잘 뒀어.”
서동연이 기특하다는 듯 황두학의 어깨를 두들겼다. 황두학의 외모는 유독 순하고 어려 보여서 교복을 입어도 어울릴 법했다.
그가 알기로 알파 1팀에서 가장 전투 경험이 적을 텐데.
그런 그도 냉정하게 행동할 때는 망설임이 없으니 왜 그동안 하프 좀비들이 인간들 영역을 다 차지하지 못했는지 그 저력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앞으로는 허락 없이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황두학이 서동연의 손이 닿았던 어깨를 툭툭 털어 냈다. 정강필이 모든 일의 배후이기는 해도 서동연이 밑 작업을 한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김종현에게 당했던 상처가 있던 부위가 욱신거리는 것만 같았다. 이미 흉터조차 없이 사라진 뒤인데도 불구하고.
“그래그래, 사나운 치와와 같네.”
“뭐라고요?”
황두학은 이나리가 왜 서동연과 말씨름을 할 때 화를 주체하지 못했는지 알게 됐다. 서동연은 정말 사람 신경을 긁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
“저, 할 얘기가 있어요.”
이현이 한수호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주변 지형지물을 떠올리면서 탈출로를 떠올리던 한수호가 곧바로 이현의 눈동자를 마주 바라봤다.
“응. 이현아. 몸은 좀 어때?”
이현의 가이딩 덕분에 한수호는 능력을 한계까지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몸 상태가 가벼웠다. 그러나 이현은 혈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창백했다.
“괜찮아요. 제가 계속 고민해 봤는데…….”
자신을 향한 걱정에 이현이 한수호를 안심시키기 위해 엷게 미소 지어 보였다. 심장께에 뻐근한 통증이 일기는 하지만 버틸 만했다.
과거, 그리고 정강필에게 붙잡혀 실험당했을 때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 아픔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김진수 에스퍼, 이대로 두면 정말 위험할 것 같아서요.”
이현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이낙균의 품에 기대 있는 김진수에게 닿았다. 여전히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늘게 경련하는 몸과 부르튼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앓는 소리가 아니라면 시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 내 불찰이야.”
정강필에게 해독약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놓치고 말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에게서 해독약을 얻어 내야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누구도 쉽게 정강필을 붙잡지 못했을 거예요.”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자였다. 죽은 사람으로 위장해 계획을 꾸민 것만 봐도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게다가 한수호에게 그는 대부였다. 그런 존재를 의심하는 건 세상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현은 한수호가 정강필에 대한 미련을 정리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자신은 어떠했던가.
부모가 자신을 실험대 위에 올리고 온갖 실험을 해도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 할 때까지 정을 끊어 내지 못했다. 못난 자신 때문에 한수호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런 자신에 비하면 한수호는 냉정하게 정을 끊어 내야 할 때 망설이지 않았다.
“형, 그것보다…… 최대한 빨리 제 아지트로 가서 부모님 유품을 살펴봐야 될 것 같아요.”
이현이 정강필에게 붙잡혀 실험을 당하면서 무력하게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가 연구소장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하프 좀비의 세포 구조는 정말 신기해. 그리고 이현이 네 세포도.’
처음에는 정강필이 어떤 약을 만들려고 하는지 몰랐다. 좀비 치료제를 만든다고 하기에는 그가 하프 좀비의 세력을 아군으로 끌어들인 게 이상했다.
‘노화를 늦추는 비결이 이 안에 담겨 있단 말이지.’
그러다 정강필이 흘리듯이 했던 말이 귀에 꽂혔다. 하프 좀비가 되면 노화가 기이할 만큼 느리게 진행됐다.
일부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듯 육체가 젊어지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연구소에도 그들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한 논문이 꾸준히 올라왔다.
하프 좀비를 실험체로 두고 실험하는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좀비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실험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현은 그들이 암암리에 노화를 늦추는 약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이현은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연구원의 호기심이 어떤지 알기에 제 연구에만 집중했었다.
“정강필은 좀비 치료제를 완성하는 데 관심이 없어요. 아무래도 그는 노화를 늦추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인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권력이 높은 자일수록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한 도전이었다. 과학이 과거와 비교해 엄청나게 발전한 지금도 그 부분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정강필이 어떤 희망을 본 건지는 몰라도 그의 꿈은 꿈으로만 그쳐야 한다. 이현이 생각했을 때 사람이 평생 늙지도 않는 삶을 사는 건 좀비 사태와 비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재앙이었다.
“신부가 역시 똑똑하네. 그거 맞을 거야. 내가 정강필한테 불로불사라도 꿈꾸냐고 물었거든? 그랬더니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더라고.”
황두학을 놀리는 데 흥미가 떨어진 서동연이 이현에게 다가왔다. 이현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귀한 보석이라도 들여다보는 듯 반짝거렸다.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불로불사 때문에 이 모든 짓을 벌였다고?”
이나리가 목소리를 높였다가 근처에 있는 좀비들 몇이 키히익, 포효하는 소리를 듣고는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임태한이 지상에 올라온 후부터 바람을 움직여 소음과 산 자의 냄새를 지우지 않았다면 진즉에 발각됐을 거다.
“아지트라면 서대문구에 있는 거 말하는 거지?”
“어떻게 알았어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었다. 한수호는 이현이 놀란 듯하자 잠시 침묵했다.
“이거 음흉한 새끼네. 신부 뒷조사한 거였어.”
차마 이현이 하지 못한 말을 서동연이 입에 올렸다. 이현은 한수호가 그동안 제 주변을 맴돌았다는 걸 알게 됐다.
기억을 되찾고 나니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넘겼던 일들이 한수호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기분 나쁠 법한 일이지만 한수호가 한 행동이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졌다.
이현이 자신의 말에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이자 서동연이 가볍게 혀를 쯧 찼다. 두 사람 사이가 돈독해 보여 흔들려고 일부러 꺼낸 말인데 별 소용이 없는 듯했다.
“서대문구면 여기에서 꽤 걸릴 겁니다.”
임태한이 이현과 한수호의 대화 내용을 듣고 난 후 거리를 가늠해 봤다. 사방이 좀비들로 뒤덮인 형국이라 전투를 하면서 움직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