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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10)화 (110/133)

110.

한수호와 진표성, 아니면 임태한이라도 같은 편이 됐다면 훨씬 더 수월하게 제가 목표한 걸 이룰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서동연이 조금만 더 순종적인 성격이었다면 이건오가 그에게 반기를 들어 하프 좀비를 장악하는 걸 놔두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도 속담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란 말이지. 사람들이 수없이 경험한 게 인생의 지혜가 되어 구전되는 거니까.”

정강필의 여유로운 표정에 진표성의 미간이 찌푸려졌을 때다.

“크르르…….”

“컹! 컹!”

공간을 꽉 채울 생각인 건지 이번에는 좀비 몬스터들까지 잔뜩 나타났다. 그들을 부리는 하프 좀비들까지 무더기로 모습을 드러내자 이낙균이 초조한 시선으로 적들과 정강필을 힐끗댔다.

김진수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해독약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어째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다시 자신들에게 불리해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숫자 앞에는 장사 없다는 속담.”

정강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내린 신호를 받은 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설마 나한테 좀비 몬스터를 들이밀려고?”

서동연이 좀비 몬스터 열댓 마리를 끌고 제게 다가오는 하프 좀비 둘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새끼들이 단체로 뇌가 어떻게 된 게 틀림없었다. 자신을 배신하고 이건오한테 붙었을 때부터 멍청하다는 건 입증하기는 했지만.

“캐갱, 캥…….”

진득한 살기를 풀자 서동연에게 이를 드러내던 좀비 몬스터들이 뒷걸음질 치며 꼬리를 내렸다. 좀비 몬스터들은 일반 좀비보다도 상위 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느꼈다.

기세에 눌리면 식욕이 사라지고 본능을 거슬러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그 본능이 우선하지만 하프 좀비는 반은 좀비여서 그런지 마치 몬스터일 때처럼 상위 포식자로 그들을 인식하는 거였다.

데리고 온 좀비 몬스터들이 서동연에게는 소용이 없자 하프 좀비들이 그들을 다른 놈들에게 보내고 동료를 불러 모았다.

둘이서 덤볐다가는 단숨에 머리통이 꿰뚫리고 말 테니까.

순식간에 서동연의 주변이 하프 좀비들로 가득해졌다. 하나같이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하면서도 제법 살벌한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여럿이서 덤비면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본데. 같잖아 죽겠네, 진짜.”

서동연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 키득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하프 좀비들이 제 죽을 자리도 모르고 찾아온 게 우스웠기 때문이다.

“아,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수는 무리일 겁니다.”

덜덜 떨면서도 가장 앞에 서 있던 하프 좀비가 꿋꿋이 말했다. 항상 두렵게만 보이던 자가 이건오에게 밀려 도망치는 모습을 봤다.

그때의 그 또한 지금 못지않은 살벌한 기세를 내보였으나 어마어마한 숫자 앞에 장사 없었다.

“그때랑 다른 게 뭔지 아냐?”

마치 하프 좀비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서동연이 오른쪽 주먹을 가볍게 휘둘렀다. 즐겁게 휘어진 눈이 주변을 훑었다.

서동연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그를 둘러싼 하프 좀비들의 눈도 덩달아 움직였다.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며 죽어 가는 동료들이었다.

“으아악!”

“커흑…….”

산발적으로 터진 비명 중에 적들의 것은 없었다. 말 그대로 일방적인 학살이 주변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보이지? 저게 S급 에스퍼들 위력이라니까. 게다가 쟤네가 지금은 나랑 같은 편이라고.”

특히 진표성은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은빛 털이 잔상처럼 남은 곳에서는 여지없이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머리가 꿰뚫린 사체들이 바닥에 무더기처럼 쌓여 갔다. 에스퍼들과 하프 좀비들 중 능력이 강한 자들이 진표성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나리와 황두학의 서포트에 맥을 못 췄다.

“적일 때는 진짜 성가셔 죽을 것 같았는데. 같은 편이니까 세상 든든하더라고.”

하프 좀비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서동연의 목소리는 만담이라도 나누는 듯 여유로웠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점점 사나워졌기 때문이다.

“컥…….”

“어, 언제 여기까지…….”

아무도 섣불리 서동연에게 달려들지 못할 때였다. 누구든 그에게 다가간 순간 첫 번째 희생양이 될 게 자명했으니까.

그러나 서동연은 그들에게 마음을 다잡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신 등을 돌려 가장 근처에 있던 하프 좀비 하나의 머리통을 터트려 버렸다.

꽉 쥔 주먹 사이로 피에 젖은 뇌수와 눈알이 흘러내렸다.

“왜 가만히 있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덤벼들어야지.”

서동연이 입가가 찢어질 듯 웃었다. 혀를 내밀어 방금 죽인 놈의 피를 맛봤다.

“퉷. 맛 더럽게 없네.”

그러나 오만상을 찌푸리며 피 섞인 침을 내뱉었다. 잠깐 제 힘에 취해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던 건데. 아무리 그래도 피를 핥는 건 별로였다.

“으아아아!”

공포에 질린 하프 좀비들이 서동연을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서동연이 다시 하프 좀비 무리를 규합하는 순간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에서 서동연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러지 못했다가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만큼 끔찍한 여생을 보낼 게 분명했다.

그동안 서동연에게 반기를 들었던 이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규모가 작았기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는 이들의 흰자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건오가 잔인하다 말하지만 적에게 더 자비 없이 구는 건 서동연이었다.

산 채로 가죽이 뜯기는 고통은 변절자들이 경험한 수많은 고통 중 하나였을 정도니까.

“그래그래. 이래야 재미있지!”

걱정했던 이현도 무사하고 자신이 아니어도 한수호가 정강필을 붙잡아 줄 게 분명하니 서동연은 마음 놓고 날뛸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 할 일은 적들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줄이는 거였다. 이곳에 있는 놈들은 모두 이건오에게 붙어 자신을 배신했으니 살려 둘 필요도 없었다.

“대부님, 그동안 보고 싶었습니다.”

비명과 뼈와 살이 분리되는 소리가 난무하는 다른 곳과 달리 정강필과 한수호 사이에는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서동연과 진표성을 대할 때는 여유를 잃지 않던 정강필이 한수호와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친 순간에는 표정을 잃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한수호가 거칠어지려는 숨을 골랐다.

“왜 그러셨냐고 묻지 않겠습니다.”

사실 그와 재회하기 전에는 수도 없이 질문했다. 마치 그가 눈앞에 서 있는 것처럼.

자신과 이현의 사이가 어떤지 알면서 왜 이현을 그토록 잔인하게 괴롭혔는지. 그가 그동안 자신에게 보여 줬던 모든 행동은 정말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것들뿐이었는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많았지만 그의 얼굴을 다시 보니 모든 의문은 가슴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아 갔다.

“그동안 키워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한수호가 정강필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한수호는 제 친부모를 모른다. 눈을 뜬 순간부터 세상에 혼자였다.

그렇기에 정강필이 자신의 대부가 되었을 때 한수호는 그를 진심으로 친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이현의 존재보다 그가 소중한 건 아니었지만 이현 다음으로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투박한 손으로 가끔씩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어깨를 두드려 줄 때면 존재조차 모르는 아버지를 떠올렸으니까.

그러나 이미 그와 자신은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뒀다. 한수호는 이현을 이렇게 만들고 제 동료들을 수없이 죽음으로 몰고 간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든 한수호의 눈동자에는 정강필을 향한 미련이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속은 말도 못 할 정도로 곪아가도 얼굴 위로 드러나는 감정은 없었다.

그와 달리 정강필은 동요하는 감정을 채 숨기지 못했다. 사실 이렇게 일이 지지부진해질 줄 몰랐다. 한수호가 눈치채지 못하게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협회장을 꼭두각시로 내세운 건 그 때문이었다. 생각보다도 이현에 대한 한수호의 감정이 컸다. 서동연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하프 좀비도 막강한 전력이 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이상 후퇴는 없었다. 이제 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어긋난 관계라는 걸 인정할 때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한수호의 눈동자는 차갑기만 했으니.

“EP-00에 대한 해독약, 가지고 계십니까?”

한수호가 지금 가장 급한 걸 찾았다. 김진수부터 살려야 한다. 연구소장은 분명 정강필에게 해독약이 있다고 말했다.

“글쎄. 어떤 걸 얘기하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말이다.”

“저, 저, 저……!”

달려드는 적들을 불꽃으로 태우는 와중에도 들려오는 정강필의 목소리에 이낙균이 목 뒤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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