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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09)화 (109/133)

109.

한수호가 상대하는 건 정강필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 가장 많은 적들이 포진해 있었기에 힘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품에 있는 이현이 다칠까 봐 방어에 더 집중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서동연의 경고를 듣고 정강필의 행동을 막기 위해 곧장 그림자를 일으켰지만 한 끗 차이로 그의 손을 스치고 말았다.

“아쉽게 됐군.”

정강필이 보란 듯이 서동연에게 웃어 주며 손에 든 버튼을 누르려 할 때였다.

쿠르릉―.

그의 위쪽 천장이 급작스럽게 무너져 내렸다. 정강필도 이것만큼은 예상하지 못한 듯 놀란 얼굴로 무너져 내린 천장을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한참 찾았네.”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건 얼굴에 검댕이 묻어 있는 진표성이었다. 반쯤 수인화 상태여서 몸 곳곳에 돋아난 은빛 털도 꾀죄죄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진표성의 등장에 다들 상반된 반응을 내비쳤다. 아군은 S급 에스퍼의 합류에 반가워했으나 적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이미 지금도 자신들 쪽의 수가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중이었다. 하나같이 열댓 명이 달라붙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없으니 도리어 힘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에스퍼들 중에서도 전투할 때 흉포하기 이를 데 없다는 진표성이 나타났다. 일부 에스퍼들은 떨리는 손끝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말아 쥐어야만 했다.

“……표성이구나.”

정강필도 진표성의 등장에 놀라기는 했으나 잠시뿐이었다. 제게는 지금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도구가 있으니까.

하지만 손에 든 걸 작동시키기 위해 누르자 허공을 움켜쥐는 느낌이 났다.

“혹시 이거 찾아?”

“도대체 언제…….”

정강필도 괜히 S급 에스퍼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전투 경험이 많기도 했다. 그런데도 진표성이 제 손에 든 물건을 가져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아저씨, 감이 좀 떨어진 것 같은데? 노망나서 그런 거 아니야?”

진표성이 입꼬리를 얄밉게 끌어 올리며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허공에 던져 올렸다 받아 내기를 반복했다.

물건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일그러진 정강필의 눈도 따라붙었다. 정말 진표성의 말대로 순간이지만 몸의 감각이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진표성, 나이스 타이밍!”

이낙균이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걸 참아 내며 오른손을 주먹 쥐어 허공에 대고 크게 휘둘렀다.

처음 알파 1팀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사고만 치던 골칫덩이가 언제 저렇게 성장해서 위험을 막아 내는 멋진 일을 하는지 감회가 새로웠다.

“뭐야? 여기 왜 이렇게 개새끼들로 바글바글해?”

“야. 나도 엄밀히 따지면 갯과거든?”

“언제는 개 취급하지 말라면서?”

진표성은 혼자 나타나지 않았다. 뻥 뚫린 천장에서 이어 이나리가 어깨에 무언가를 짊어지고 나타났다.

“아니, 김종현은 데리고 갔으면서 왜 저기 바깥쪽에다 내팽개친 거예요? 이 새끼 도망갔으면 어떻게 하려고?”

땅에 착지한 이나리가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한수호와 임태한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제야 임태한은 자신이 통로에 들어서기 전 김종현을 그 앞에다 놔뒀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다. 미세하게 잡힌 폭발음에 최대한 빨리 안쪽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탓이다.

“누나, 우리가 찾았으면 된 거죠. 그러다 나중에 한 소리 들으면 어쩌려고요.”

마지막으로 위쪽에서 빠져나온 황두학이 식겁한 얼굴로 이나리의 팔을 붙들었다. 이럴 때 보면 평소에 왜 이나리와 진표성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가끔씩 이렇게 꼭 상사한테 대들듯이 말하고는 했다. 제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따지고 보는 거였다.

신경 줄이 보통 사람 같은 황두학 입장에서는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보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일이었다.

“아무리 팀장님이랑 부팀장님이어도 실수한 건 실수한 거지.”

“내가 진짜 못살아…….”

곧 죽어도 자신의 말이 맞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이나리 때문에 황두학이 이마를 짚었다. 정강필의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혔다.

심각했던 전투 상황이 알파 1팀의 나머지 인원이 나타나면서 바뀌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저쪽의 페이스대로 계속해서 끌려가고 만다.

“내가 보낸 선물은 잘 받았나? 상태를 보니까 거의 죽기 직전인 것 같기는 하지만.”

정강필은 진표성에게 제가 준비해 놨던 비장의 수를 빼앗기고도 여유로운 태도를 잃지 않았다. 잠깐 당황했으나 그뿐이었다.

그에게는 이들을 뒤흔들 만한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까.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김종현을 거론한 순간 그나마 누그러져 가던 분위기가 단번에 살벌하게 굳어 갔다.

“저 새끼가……!”

김종현의 배신은 여전히 알파 1팀의 역린이었다. 채 아물지도 못한 상처를 대놓고 쑤시는 발언에 이낙균의 목에 핏대가 섰다.

“으으…….”

때마침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김종현이 눈을 떴다. 양쪽 눈에 혹이라도 달고 있는 듯 눈이 부어 실눈을 뜨는 게 고작이었지만.

“저, 정강필 에스퍼……?”

흐릿한 시야에 정강필이 들어오자 김종현이 기어서라도 그에게 가려 했다.

“어딜 가려고.”

이나리가 김종현을 묶고 있는 채찍의 끝을 잡아당겼다. 팔이 등 뒤로 묶여 있는 탓에 김종현이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쓰러졌다.

코가 깨져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김종현은 곧바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배신한 걸 들킨 뒤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런데 지독한 놈들은 죽을 지경이 되면 회복 포션을 먹여 회복시키고 또다시 죽기 직전까지 사람을 몰아붙였다.

“저 좀 사, 살려 주십시오…….”

다 새어 나가는 발음으로 김종현이 정강필에게 애원했다. 그가 김종현에게 접근한 장본인이었다.

욕심이 많은 성정에 알파 1팀에 속해 있으면서도 소속감을 덜 느꼈다고는 하나 김종현도 웬만한 뒷배경 없이 알파 1팀을 배신할 생각 같은 건 못 했다.

한수호와 임태한, 진표성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들과 수없이 많은 임무에 함께 나가며 쭉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강필은 그런 세 명보다도 더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실제로 몇 년 동안이나 죽은 자로 위장해서 살면서 알게 모르게 협회를 장악했다.

그 대단하다는 협회장조차 약점을 잡아 수족처럼 부리는 모습에 김종현은 그의 편에 설 생각을 했던 거다.

“이런. 쯧쯧. 다들 나보다 더 독하구먼. 그래도 동료였던 이를 이 모양으로 만들다니.”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김종현의 모습에 정강필이 혀를 찼다. 김종현 덕분에 알파 1팀을 궁지로 몰아넣기는 했다.

그리고 그 일로 김종현의 쓸모는 다했다. 그가 살아남아 제 쪽으로 왔다면 한 자리 줬겠으나 알파 1팀에게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붙잡힌 건 그의 능력 부족이다.

그런 사람을 구해 주는 건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사람이 욕심에 맞게 능력도 뛰어났다면 좋았을 것을.”

“당신……!”

김종현은 자신을 경멸하듯 내려다보는 정강필의 눈초리에서 그가 자신을 구해 줄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절로 이가 갈렸다.

그의 제안에 자신이 무슨 짓까지 했는데……!

“아저씨, 우리 이제 재미도 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날뛰려는 김종현의 등을 밟아 움직임을 제어한 진표성이 노란빛 안광을 번뜩이며 웃었다. 그가 이현을 데리고 사라진 순간을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한수호에게 무사히 안겨 있는 이현을 본 순간 들었던 안도감마저도 분노로 뒤바뀔 만큼 믿었던 이에게 또 한 번 배신을 당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을 때 그를 이현에게서 떼어 놔야만 했다. 당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중이었어도 이현과 그를 함께 놔뒀으면 안 됐다는 후회가 그동안 얼마나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갔던가.

촤아악―.

“밀린 빚 청산 좀 할까?”

가슴속에 켜켜이 쌓였던 분노를 표출할 시간이 왔다. 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음모를 꾸미고 일을 진행해 왔는지는 몰라도 그건 잡아 놓은 다음에 알아내면 될 일이었다.

“하하하. 이것 참. 이만한 수를 가지고도 밀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오른팔의 상처를 감싸 쥐며 정강필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진표성이 달려든 순간 능력을 일으켜 살갗만 베인 거지만 면적이 커서 그런지 피가 꽤 많이 났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 위로 싸늘한 빛이 스쳤다.

“너희들 중 한 명을 내 편으로 끌어당겨야 했는데…….”

아쉽게도 협회장은 S급 에스퍼지만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렸다. 권력에 심취해 현장에 직접 나가지 않는 세월이 쌓이자 가진바 능력은 여전해도 현역으로 뛰는 A급 에스퍼보다도 못한 정신력을 보였다.

가족들이 좀비가 된 이후로는 정신마저 불안정한 상태로 변해 버렸고. 그 때문에 자신이 그를 이용하기 쉬워졌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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