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00)화 (100/133)

100.

타앙―.

총구에서 쏘아진 마력 탄이 이현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귀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감각에 새까만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현아!”

한수호가 곧바로 이현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김태진의 주변에 우글거리던 좀비들 중 일부가 두 사람이 있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가장 큰 소리는 김태진의 총구에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마력 탄이 문을 두들기면서 소음이 다른 곳으로도 번져 간 거였다. 거기에 한수호가 큰 목소리를 낸 것이 시발점이 되어 좀비들이 두 사람의 존재를 인식해 버리고 말았다.

“캬하아악!”

“크히익―!”

게다가 이현의 귓가에서 흘러나온 신선한 피가 좀비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한수호가 손을 들어 이현의 귓바퀴를 감싸 쥐었다. 귀가 반절이 찢어진 터라 쉽사리 지혈될 것 같지 않았다.

이현의 얼굴이 아프게 일그러졌다. 귀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통증보다도 망설임 없이 제게 총을 겨눈 아비의 행동이 마음을 난도질했다.

“하아, 하…….”

한수호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출입구는 하나인데 김태진이 없으면 빠져나갈 수 없다. 그에게 다가가려고 해도 김태진이 계속해서 이현과 한수호가 움직이는 방향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총구에서 터져 나오는 소음에 그의 주변에 몰린 좀비들이 반, 이현의 피 냄새에 이끌린 좀비들이 반으로 실험실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키햐악!”

가장 지척에서 달려드는 좀비 몬스터의 머리를 근처에 있던 링거대로 후려쳤다. 링거대 끄트머리에 몬스터의 눈알이 걸려 흐물흐물해져 있던 신체 부위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이대로는…… 가망이 없다.

한수호가 아래로 축 가라앉으려는 팔에 애써 힘을 주고는 다른 팔로 이현의 허리춤을 단단하게 붙들었다. 이현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좀비들만 상대해도 벅찬데 김태진이 두 사람을 죽일 기세로 총을 난사하고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김태진의 총알이 두 사람을 위협하는 좀비들을 해치워 주고 있다는 거였다.

한수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의 시선이 이성을 잃고 날뛰는 김태진에게 닿았다. 저 사람을 죽여야 한다. 아니, 무기를 빼앗고 죽기 직전의 상태로 만들어야 된다. 그래야 이현이 살아서 이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이현아, 여기에 잠시만 있어.”

“형……!”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분일초가 다급한 상황에서 머뭇거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한수호가 일반 좀비들이 갇혀 있던 케이지 안으로 이현을 밀어 넣었다.

오유화의 시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녀의 흔적을 봤다면 이현의 정신이 또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한수호가 가장 근처에 있던 일반 좀비의 머리채를 잡아 방패로 삼았다. 좀비가 고개를 돌려 칵칵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수호의 팔을 씹으려고 했지만 한수호가 어찌나 필사적인지 소용이 없었다.

달려드는 좀비들과 날아오는 마력 탄을 좀비로 막아 내며 김태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이익!”

김태진은 한수호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자 발을 구르며 목에 핏대가 서도록 이를 악물었다. 마력 탄 사용량을 알려 주는 계기판이 아까부터 깜박거리고 있었다.

이제 사용할 수 있는 마력 탄의 양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직 좀비들이 꽤나 많이 남아 있으니 이제는 마력 탄을 남발하는 대신 한 발, 한 발 아껴서 사용해야 할 때였다.

“너, 이 새끼……!”

한수호가 좀비들이 몰린 앞쪽이 아닌 케이지 뒤쪽으로 들어가 김태진과 마주했다. 김태진이 다급하게 전방을 향해 겨누고 있던 총구를 움직여 한수호를 겨냥했으나 한발 늦었다.

한수호가 손에 쥐고 있던 일반 좀비를 김태진에게 던지는 바람에 몸을 피하다가 바닥으로 넘어지고 만 것이다.

일반 좀비는 좀비들의 이빨과 마력 탄에 몸이 걸레짝이 된 상태인데도 살아 움직였다. 머리통은 멀쩡하게 남아 있는 덕분이었다.

“캬아아―!”

일반 좀비가 눈앞에 보이는 김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사지가 멀쩡한 곳이 없어 턱으로 바닥을 찧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턱에서 떨어져 나간 썩은 살점이 바닥에 궤적을 남겼다.

“저리 꺼져!”

하필 넘어지면서 총을 놓치고 말았다. 김태진이 총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총신의 끄트머리에만 손끝이 닿기에 먼저 지척까지 다가와 아가리를 벌리는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발로 차 냈다.

일반 좀비의 머리가 등에 뒤통수가 닿을 정도로 꺾였다. 이미 목의 살점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가 덜렁거리는 목뼈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시야가 뒤집힌 일반 좀비는 허공을 향해 포효하다가 희뿌연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근처로 다가온 한수호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신체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제자리에서 버둥거리는 게 다였다.

“너……!”

김태진이 간발의 차이로 한수호에게 총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수호가 방아쇠에 손을 올려 바르작거리는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쐈다.

짧고 강한 발사음에 좀비들이 아우성을 치며 케이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한수호가 총구를 김태진이 있는 방향으로 옮겼다.

“쏘, 쏘지 마……!”

상황이 역전되자 김태진은 태세를 전환했다. 양손을 머리 옆으로 들어 올리고 한수호에게 비굴한 눈빛을 보냈다.

“따라 나와.”

한수호가 김태진에게 케이지 뒤편으로 이어지는 문을 눈짓했다. 김태진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한수호가 시키는 대로 했다.

“크햐아악―!”

“좀비들이 있는데 어떻게 밖으로 나가나.”

좀비들 대다수는 케이지 앞쪽에 몰려 있었으나 일반 좀비 두 마리는 뒷문 근처로 다가와 팔을 뻗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탕, 타앙―.

총소리가 빠르게 두 번 이어졌다. 이마에 구멍이 난 일반 좀비들의 몸이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새롭게 난 총소리에 앞쪽에 있던 좀비들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움직였다.

“내가 뒤에서 엄호할 거니까 이현이가 있는 케이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명령조에 김태진의 눈매가 매섭게 일그러졌으나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김태진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케이지 문을 열고 나갔다.

앞쪽에서 달려드는 좀비들의 모습에 김태진이 머뭇거리자 한수호가 총신의 끝으로 그의 등을 툭 밀었다. 총구는 마력 탄이 쏘아져 나간 여파로 뜨거웠다.

이질적인 감각에 김태진이 어깨가 튀어 오를 정도로 놀랐다가 재차 등을 쿡쿡 찌르는 총신에 이현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이현아, 조심해서 나와.”

한수호의 말에 이현이 주춤거리며 케이지 안에서 나왔다.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김태진의 눈초리에 이현이 희게 질리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빛만 보면 이현이 가해자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원망이 그득했다.

“캬히익!”

“으…….”

한수호가 김태진의 등을 찔러 가까이 다가오는 좀비 몬스터와 마주하도록 했다. 원숭이를 닮은 몬스터가 펄쩍펄쩍 뛰며 김태진을 물어뜯기 위해 접근했다.

김태진이 차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좀비 몬스터의 이빨이 김태진의 손끝을 스치고 나서야 한수호가 움직였다.

한수호가 마석이 있는 위치를 마력 탄으로 날려 버린 후 김태진을 문 앞으로 향하게 했다.

이현은 제 옆에 세운 뒤에 한수호가 총구를 사방으로 움직이며 달려드는 좀비들을 처리했다. 케이지에서 문까지 가는 길을 따라 썩은 피와 살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당장 열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한수호가 문의 열림 장치가 있는 데까지 당도한 김태진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이제 좀비들의 수는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총신에서 깜박이는 불빛의 속도도 그가 처음 총신을 집어 들었을 때보다도 빨라졌다. 한수호는 본능적으로 무기가 효용을 다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안 열려.”

김태진도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현이 곁에 있는 이상 어차피 한수호는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멍청한 놈이라고 속으로 조소하면서 이현을 구슬릴 말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착한 아들은 몇 마디 말이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테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김태진의 홍채를 인식하면 열려야 하는 문이 미동도 없었다. 그제야 김태진의 시야에 자신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문의 상태가 들어왔다.

마력 탄의 힘에 문이 망가진 것 같았다.

타앙―.

한수호가 곧바로 김태진의 발치를 겨냥해 총을 쐈다. 실내화의 옆면이 터져 나갔다. 새하얀 양말 위로 핏물이 빠르게 번져 가자 김태진이 발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진짜 안 열린다고……!”

김태진이 억울한 얼굴로 항변했다. 한수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직 남아 있는 좀비들의 수는 열.

그나마 아홉은 다리 쪽에 문제가 있어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한수호가 개중에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개체의 머리를 조준해 쐈다.

이어서 다른 좀비 몬스터의 마석을 쏘려고 하는데 마력 탄이 터지는 소리 대신 방아쇠가 걸리는 소리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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