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왜! 왜! 도대체 왜!”
김태진이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채 시체가 놓여 있는 철제 침대를 굳게 쥔 주먹으로 연속해서 내리쳤다. 그럴 때마다 침대는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그 위에 눕혀져 있는 시체는 당장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져 내릴 듯 몸이 무력하게 흔들렸다.
“캬아아악!”
“크히익!”
시끄러운 소리에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들이 괴성을 질러 댔다. 오랜 시간 신선한 고기를 섭취하지 못해 다들 굶주릴 대로 굶주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먹잇감이 큰 소리를 내며 흥분하자 그들 또한 케이지 안을 뛰어다니며 음울한 소리를 냈다.
케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여도 반발력에 몸이 케이지 안쪽으로 내동댕이쳐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놈들은 끊임없이 케이지 바깥쪽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썩은 피와 살이 케이지 주변으로 점점이 흩뿌려졌다. 어떨 때는 근육이 늘어진 신체 기관이 툭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자신이 내지르는 소리 때문에 좀비들이 발광하는 상황 속에서 김태진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다시 한번 악을 질렀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냐고!”
그의 발치에는 방금 전 살아 있는 인간에게 사용했던 주사기가 빈 채 나뒹굴고 있었다. 김태진의 광기 어린 눈이 시체가 되어 버린 실험체에게 닿았다.
오랜만에 구한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들 중 마지막이었다. 시체가 너무 많이 나와 한동안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다. 김태진은 오유화와 함께 이론 위주로 실험을 이어 갔다.
이현과 한수호가 아직 살아 있기에 그들을 실험체로 삼아도 되지만 두 사람은 일회성으로 소모하기에는 아까웠다. 한쪽은 아들이고, 다른 쪽은 오랫동안 온갖 실험을 버텨 낸 실험체니까.
최근 좀비 치료제를 거의 완성 단계에 가깝게 만들어 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임상실험뿐이었다. 이론으로는 완벽하다고 해도 실제로 효과가 없으면 그 연구는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협회 사람에게 특별히 부탁해 살아 있는 인간 백 명을 얻어 냈다.
‘이 정도 숫자면 충분합니다.’
처음에는 그랬다. 가상으로 돌렸던 시뮬레이션에서는 분명 좀비 치료제를 맞은 인간은 좀비에게 물려도 좀비화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흑―.’
그러나 첫 번째로 실험한 인간은 좀비에게 물린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시체가 됐다. 김태진과 오유화는 실패를 자양분 삼아 바로 다음 실험을 끊임없이 이어 갔다.
변수를 최대한 제거해 가면서 실험을 지속했는데 방금 마지막 실험체가 죽어 버렸다. 김태진이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실험체의 모습을 찍어 놓은 영상을 확인했다.
“머리 좀 식혀요. 커피 한잔 마시면서.”
눈이 반쯤 돌아 버린 김태진에 비하면 오유화는 차분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아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심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현을 케이지 안에 가둔 후 두 사람은 그동안 각자 보유하고 있던 연구 자료들을 모아 서로의 지식을 합쳤다.
연구소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니 자존심을 부리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것 같아 두 사람 모두 극적인 합의를 한 거였다.
하지만 막상 힘을 합치자 김태진이 실험을 주도적으로 하고, 오유화는 보조하는 역할이 되어 버렸다.
오유화는 그게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좀비 치료제 완성품도, 아니 완성품이라 생각했던 약물도 성공했다면 김태진의 주요 업적으로 발표됐을 것이다.
“아무래도 실험체를 더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정강필한테는 제가 얘기해 볼게요.”
오유화가 머릿속으로 이번 실험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면서 귀찮은 일을 자처했다. 두 사람은 실험에 관련된 게 아니면 다른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귀찮아할 정도니 정강필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오죽하겠는가.
“……아니. 실험체가 아직 있잖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김태진의 어깨를 두드린 후 몸을 돌리던 오유화가 움직임을 뚝 멈췄다.
“지금 뭐라고……?”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느새 고개를 든 김태진은 케이지 한구석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오유화도 김태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 실험을 우리 이현이한테 한다는 소리는 아니죠, 당신?”
지금까지 이현을 실험체로 삼는 데 동의했으면서 오유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안 될 게 뭐야. 그동안 실험이 실패한 건 평범한 인간한테 했기 때문일지도 몰라.”
제정신이 아니다.
좀비 치료제 자체가 평범한 사람에게 효과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두 사람은 실험을 거듭하면서 이현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한수호도 몸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튼튼했지만 피 자체는 일반인과 같았다. 그런데 이현은 실험을 거듭할수록 피의 성분이 조금씩 달라졌다.
인간과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 하프 좀비는 모두 조직세포가 조금씩 달랐다. 에스퍼와 가이드 같은 능력자들도 다른데 이현은 그들 모두와도 차이점을 보였다.
그렇기에 피를 뽑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약물을 이현의 몸에 주입해 조직세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본 거였다.
“이 실험은 안 돼요.”
오유화가 이현에게로 향하려는 김태진의 앞을 막아섰다. 이현이 특별하다고 하더라도 좀비에게 물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완성품이라고 생각했던 좀비 치료제는 실패했다.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에 맡기기에는 오유화에게 이현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그러나 김태진의 머릿속은 온통 좀비 치료제 완성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모정을 완전히 저버리지 못한 오유화와 달리 김태진은 이현의 목덜미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었던 그날부터 이현을 특별한 실험체로만 보기 시작했다.
괴로워하는 이현을 보면 잠시 마음이 약해지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실험 결과에 눈이 멀어 인간적인 마음 따위는 제쳐 뒀다.
“비켜.”
“윽…….”
김태진이 자신을 막아선 오유화를 거칠게 밀어 낸 뒤 이현이 갇혀 있는 케이지로 향했다. 이현은 몸을 웅크린 상태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오유화가 넘어지는 순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유화는 시신이 올려진 철제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친 후 바닥으로 쓰러졌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머리 주변으로 피 웅덩이가 고이기 시작했다.
신선한 피 냄새에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좀비들이 더 난리를 치며 실험실 안을 괴성으로 가득 채웠다.
“엄마…….”
이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오유화를 불렀다. 오유화가 이현에 대한 정을 완전히 끊어 내지 못했듯 그건 이현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현은 김태진에게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김태진의 얼굴은 지옥 속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 같았다. 연구 성과에 눈먼 이의 얼굴은 욕심과 아집이 뒤엉켜 더없이 흉측했다.
“……이리 와.”
한수호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몸을 움직였다. 케이지 문 가까이 서 있는 이현의 팔을 잡아끌어 제 뒤로 숨겼다.
덜컹.
이현과 한수호는 열 수 없는 문이 김태진의 손짓 한 번에 쉽게 열렸다. 걸치고 있는 가운 주머니 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낸 그가 한수호에게 다가갔다.
김태진은 말도 없이 한수호의 목을 향해 전기충격기를 가져다 댔다. 그러나 한수호는 평소처럼 무력하게 당하는 대신 손날로 김태진의 손목을 쳐 버렸다.
김태진의 손에 들려 있던 전기충격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이 새끼가.”
생각지도 못했던 한수호의 반항에 김태진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가 이번에는 펜 모양의 제압 봉을 꺼내 들었다. 김태진의 손길 몇 번에 제압 봉이 그의 팔길이보다 길게 늘어났다.
“실험체 주제에.”
김태진이 제압 봉을 든 손을 크게 휘둘렀다.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제압 봉이 한수호의 머리를 겨냥했다. 한수호가 왼팔을 들어 올려 제압 봉을 막아 냈다.
팔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한수호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제압 봉에 특수한 처리를 한 탓에 뼈에 금이 갔다.
“혀, 형…….”
이현이 한수호의 허리춤을 잡고 불안한 소리를 냈다. 방금 김태진의 공격을 막아 낸 한수호의 왼팔이 아래로 추욱 늘어졌다.
“……나는 괜찮으니까.”
한수호는 뒤돌아보는 대신 제게 재차 휘둘러지는 제압 봉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왼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시야가 흐릿해졌으나 아직은 멀쩡한 손으로 제압 봉의 끄트머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이익……!”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의 콧잔등을 깨물어 버리듯이 한수호도 초인적인 힘을 냈다. 김태진은 한수호에게 힘으로 밀릴 줄은 몰랐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도록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냈다.
손의 뼈도 잘못된 걸까. 뇌가 저릿할 정도의 고통을 느끼며 한수호는 아예 제압 봉을 잡은 손을 앞으로 잡아당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