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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95)화 (95/133)

095.

정신이 완전히 무너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현이 꿋꿋이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지금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남자 덕분이었다.

“형…….”

섧게 우는 이현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수호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 등허리가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이현의 간절한 부름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현이 한수호 덕분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했듯 그건 한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이 안에 들어온 이후로 마음을 나눈 이가 없었다. 김태진이 한수호를 홀로 가두다시피 하기도 했고 케이지 안에 들어오더라도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가 되어 나갔기 때문이다.

한수호에게는 그들을 구할 힘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그런 삶 속에서 인간다운 교류가 이루어지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현이 들어왔다. 김태진과 오유화는 이현을 한계까지 밀어붙일 뿐 죽게 놔두지는 않았다. 자신의 아들까지 실험체로 사용하는 모습에 치가 떨렸다.

이현을 향한 연민이 가슴속에 피어오른 건 한수호도 인지하지 못하는 새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누군가를 연민하는 게 웃긴 상황인데도 그랬다.

저 새까만 눈동자에 자신이 담기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럴 때면 지난한 삶 속에서도 생명력이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한수호가 입술을 달싹이며 이현에게 해 줄 말을 골랐다. 말주변이 없는 자신을 잘 알아서였다. 게다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 자체가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기도 했다.

“……잘 버텼어.”

한수호가 몸을 굽히고 앉아 커다란 손을 이현의 정수리 위로 툭 얹었다. 성대가 다쳐서 거칠어진 목소리가 상처투성이인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어지럽게 엉킨 머릿속에서 간신히 고른 위로의 말이었다.

“무서웠어요…….”

한수호의 서투르면서도 다정한 위로에 새까만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이현이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실험대 위에 올라가기만 하면 온몸이 끝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다정했던 부모님과 시선이 부딪칠 때마다 온몸이 두려움으로 덜덜 떨렸다. 자신을 안온하게 지켜 주는 줄 알았던 존재가 한순간에 제게 고통을 주는 존재로 변해 버렸다.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었다. 이현은 아직 살면서 좀비와 몬스터에게 위협을 제대로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다 부모님 덕분이었다.

부모님의 지원과 보호 아래 이런 세상 속에서도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두 분 다 천애 고아였지만 뛰어난 머리로 연구원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랬던 부모님이 사람들을 실험체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들처럼 되어 버렸다.

태연하게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현이 두 손으로 제 정수리를 쓰다듬고 있는 한수호의 손을 끌어 내려 붉은 상흔이 가득한 손바닥에 뺨을 댔다.

한수호의 손바닥이 이현의 눈물로 젖어 들어갔다. 무해하게 전해지는 온기에 한수호의 눈빛이 한층 짙게 가라앉았다.

엄지를 움직여 멈추지 않고 눈물을 흘려 대는 눈가를 문질렀다. 이미 많이 울어 눈가가 온통 붉었다. 이대로라면 여린 피부가 짓물러 아플 텐데도 눈물은 멎을 줄 몰랐다.

“……눈 아파.”

고심하다 꺼낸 말은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한수호의 얼굴 위로 드러나는 표정은 없었지만 그는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조금 더 다정한 표현이 있을 텐데. 왜 이런 말밖에 자신은 해 주지 못하나 자괴감마저 들었다.

“형이 만져 주니까 하나도 안 아파요.”

그러나 이현은 말주변 없는 그의 모습에 말간 웃음을 터트렸다. 울면서 안정제의 효과가 더 떨어진 건지 이현의 눈매가 아까보다도 더 둥글게 휘어졌다.

눈물을 머금고 빛나는 까만 눈동자가 아주 오래전에 봤던 밤하늘을 닮았다.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무수히 박힌 밤하늘이 이현의 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켜 주고 싶은데.”

한수호가 고개를 숙여 둥그런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댔다. 서로의 코끝이 스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서로 색도, 모양도 다른 눈동자가 같은 빛을 담고 서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한수호의 말이 이현의 멍든 가슴을 두들겼다.

자신이 한수호를 이곳에서 구해 주고 싶듯이 한수호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져서였다.

극한까지 몰아붙여진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유일한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 갔다. 이현이 제 뺨을 감싼 한수호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쳤다.

손 크기가 차이가 나 한수호의 손을 온전히 덮지는 못했지만 제 온기가 그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저는 이렇게 형이 버텨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이현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처음 지하 실험실에 들어왔을 때 봤던 광경을 잊지 못하고 악몽을 꾼다.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진동하던 지독한 피비린내와 미동도 없이 피바다 속에 널브러져 있던 수많은 사람들.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무 말도 없이 죽어 버린 눈으로 이현을 바라보다가 한 사람씩 입술을 달싹였다.

‘네 부모 때문이야.’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저 너무 무서워요…….’

‘너도 죽어!’

‘우리를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시체들이 하는 말은 일관적이지 않았다. 목소리도, 말투도 다양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이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술을 움직이는 건 똑같았다. 가판대에 올려진 생선처럼 흐리멍덩하던 눈동자에 어느덧 번뜩 빛이 돌았다.

꿈속에서 이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제게 쏟아지는 비난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손끝 하나조차 까딱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향한 수십 개의 시선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걸 버텨야만 했다.

어느덧 제 신발 밑창에서 찰랑이던 새빨간 피가 발목에 이어 무릎을 지나 가슴께까지 순식간에 차오른다.

시체들은 피바다 속에 잠기는 대신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올라 얼굴만 반쯤 내민 상태로 끊임없이 이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는 죽고 싶지 않았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실험실에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너희 부모는 악마야. 죽어서는 지옥에조차 떨어지지 못할 거야.’

죄송하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현은 망가진 인형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침내 피가 인중까지 차올랐을 때는 이현도 차라리 저들과 같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꿈에서 깨면 꿈보다 더 지독한 현실이 이현을 나락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테다.

그럴 바에는 피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익사해 죽는다고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꿈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도 없었다. 이현은 반복되는 악몽에 신경 줄이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져 있었다.

‘……눈을 떠.’

느려지던 호흡이 완전히 잦아들기 전에 이현을 깨운 건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아주 오랫동안 악을 쓰면 그렇게 될까 싶을 정도로 거친 목소리가 이현을 현실로 끄집어냈다.

이현이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형이 없었다면 전…….”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마주하는 얼굴이 지금도 제 앞에 있다. 울먹이는 제 목소리에 가지런한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한수호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살아 있는 눈동자의 떨림으로 가장 큰 감정 변화를 내보일 만큼 그는 고통스러운 실험을 겪을 때도 이를 악무는 게 다였다.

그랬던 그가 제가 무슨 말을 하면 흙의 표면을 뚫고 싹을 틔우는 새싹처럼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진즉 숨이 멎었을 테니까.”

커다란 눈동자 가득 차올랐던 눈물이 재차 수척해진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자 한수호의 미간에 희미한 빗금이 그어졌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늘 똑같아 보일지라도 이현은 그가 현재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중한 눈길이 눈가와 충혈된 눈동자에 닿아 왔다.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너무 울어서 혹여 아프지는 않을지. 이미 여러 번 탈수 증상이 오기도 했고 울다가 혼절한 경우도 많으니까.

“그러니까 형, 우리…… 꼭 여기서 같이 벗어나요.”

이현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미쳐 버린 부모님이 제정신을 차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이 무언가 수상함을 느껴 이 안에 들어왔던 것처럼 누군가 제 실종에 대한 의문을 느끼고 찾아올 가능성도 있을 거라 믿었다.

“……응.”

현실성 없는 말에도 한수호는 이현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목울대를 울려 작지만 강한 울림을 냈다. 이현이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띠었다.

한수호의 대답까지 들으니 머지않은 미래에 좁디좁은 케이지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유로워진 미래는 이현의 바람대로 한 발자국 앞까지 다가왔다. 이현의 예상과는 현저히 다른 형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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