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이현아,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부탁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오유화의 표정이 곤혹스러운 빛으로 물들어 갔다. 오유화의 시선이 분주하게 초췌한 이현의 안색과 예전보다도 확연히 말라 버린 몸에 닿았다.
그녀에게 모성애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제가 열 달을 배에 품었다가 자연분만으로 낳은 아이였다. 바쁜 와중에도 이현을 잘 키워 내려고 아등바등한 세월도 있었다.
다만…… 그녀도, 남편도 연구에 대한 욕심을 저버리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이현의 피를 가지고 실험한 건 처음에는 정말 별게 아니었다.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젊은 사람의 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유화와 김태진은 이현의 피를 가지고 실험할수록 다른 이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걸 발견했다.
그 때문에 오유화는 염치 불고하고 이현의 건강에 무리가 갈 만큼 피를 뽑아내고는 했다. 처음에는 신기한 반응을 보이는 이현의 혈액세포에 호기심이 치밀었을 뿐이다.
문제는 이현의 조직세포를 좀비 바이러스와 융합하면서 나타난 반응에 오유화와 김태진의 머리가 회까닥 돌아 버렸다는 거다.
안 그래도 최근 두 사람의 연구소는 이렇다 할 만한 실적을 내지 못해서 하반기에는 연구비가 삭감된다는 통보를 들은 상태였다.
협회 쪽에 줄이 닿아 있어 그 사람이 도와주고는 있지만 그는 인정(人情)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저로서는 후원하는 대상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자선사업가는 아니니까요. 두 분을 대체할 박사님들은 얼마든지 있고요.’
얼마 전에도 직접 연구소까지 찾아와 속히 눈에 띌 만한 연구 성과를 내보이지 않으면 후원하는 연구원을 교체한다고까지 넌지시 얘기했다.
두 사람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는 좀비들에게 주사하는 것보다 아직 좀비로 변하지 않은 이에게 주입하는 방향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좀비에게 물려도 더 이상 좀비로 변화하지 않는 약을 개발하기만 한다면 날이 갈수록 증식하는 좀비들을 해치울 수 있고,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갈 게 분명하니까.
몬스터들도 던전에서 나오는 것들은 모두 멀쩡했다. 인간부터 좀비 바이러스에서 해방되면 좀비 몬스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여겼다.
세상이 이렇게 되면서 국가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은 음지에서 증식하듯이 퍼져 갔다. 일당 10만 원의 공고만 올려도 실험에 지원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시작해야겠어.’
‘그러다 들키면요?’
‘다들 암암리에 하는 거 몰라? 그동안 우리만 정직하게 연구했던 거라고.’
먼저 실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건 남편이었다. 오유화는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그녀 또한 인간을 직접적으로 실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데이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는 두 사람 다 밤잠을 설쳤다. 그러나 살인도 익숙해지는 걸까. 둘은 죽어 가는 목숨보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질의 데이터에 더 강한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현이 피가 더 필요한데. ……가능하면 이현이한테도 실험하면 좋고.’
‘당신 미쳤어요?’
남편이 이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어떻게 하나뿐인 자식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생각을 하냐고 그를 힐난했다. 그러나 그녀도 내심 현재 연구 중인 약을 이현에게 주입했을 때의 데이터에 대한 욕심이 났다.
“……미안하다.”
오유화는 간절함으로 일렁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결국 외면했다. 이현이 지하 실험실로 들어온 순간부터 자신과 남편은 인긴이기를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평생 이현에게 자신들이 한 짓을 들키지 않았으면 모를까. 그들은 이현의 경멸 어린 시선을 마주한 순간 같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를 완성하자고. ……하나뿐인 아들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치료제의 이름은 이현의 이니셜을 본떠서 만들 거였다.
좀비 바이러스에서 해방된 인류가 평생토록 이현을 칭송하면서 살아가도록.
“엄……. 으읍…….”
오유화를 부르려던 입은 구속구에 막혀 억눌린 신음만 토해 냈다. 이어 오유화는 이현의 몸에 진정제를 놨다. 이현의 정신이 삽시간에 몽롱해졌다.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는 이현을 휠체어에 옮긴 후 그녀가 케이지 앞으로 이동했다.
수많은 실험자들로 넘쳐났던 케이지 안에는 이제 두 사람밖에 없었다. 한 명은 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현이고, 다른 한 명은…… 이 실험실에 제일 처음 데려왔던 남자애다.
“얌전히 있어. 이따 저녁은 영양분 풍부한 걸로 챙겨 줄 테니까.”
원래 케이지 안에는 간이 화장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현이 케이지 안에서 생활하게 되면서부터 차가운 바닥 위에는 매트리스가 깔리고 몸을 덮기에 충분한 담요가 놓였다.
물은 언제든지 마실 수 있도록 한쪽에 생수병을 박스째로 가져다 놨다.
오유화는 이현을 케이지 안으로 밀어 넣고 재빠르게 케이지 문을 닫았다.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남자애의 시선은 언제 마주해도 소름 끼쳤다.
가장 많은 실험을 당했으면서도 몸이 튼튼한 건지, 정신을 잃은 적은 많아도 숨이 끊어진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현처럼 그의 신체나 혈액이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오유화와 김태진은 남자애를 비교군으로 두고 이현을 실험하는 중이었다.
불법 실험을 자행하면서 시체가 너무 많이 나왔다. 그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한다고는 하나 세상에서 유리되어 살던 게 아닌 이상 실험체들이 어느 날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좀비들과 몬스터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실종은 매일같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들이 어느 순간 좀비가 됐거나 좀비들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는 뜻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이현과 남자애가 실험을 잘 버텨 주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유화는 마지막으로 눈이 반쯤 감긴 이현을 살피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지하 실험실을 빠져나갔다. 오늘 얻은 데이터를 가지고 자신의 연구실로 올라가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남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의 등 뒤를 살기 어린 시선이 그림자처럼 길게 따라붙었다.
“형, 괜찮아요……?”
한수호의 정신을 일깨운 건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고통에 신음하면서 거칠어졌던 목소리는 회복 포션의 도움으로 평소처럼 맑은 울림을 냈다.
이현이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며 자신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유화가 안정제를 약하게 놓은 모양이었다.
이현의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무엇을 하고 싶어 그러나 계속 지켜보니 미세하게 위로 올라간다. 덩달아 둥글게 휘어지는 눈매에 한수호가 옅게 가슴을 들썩거렸다.
그들은 이현에게는 회복 포션을 아낌없이 사용하지만 한수호에게는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찔끔 사용할 뿐이었다.
이현은 그들의 하나뿐인 아들이고, 대체 불가능한 실험체지만 자신은 몸이 유달리 튼튼할 뿐 특별할 게 없으니까.
이현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한수호가 입술을 떼었다. 오랜 시간 사람다운 말을 하지 못해 말라붙은 입술은 단어 하나조차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흐으…….”
매트리스 위에 널브러져 있던 이현이 몸을 움직인 건 그때였다. 안정제의 여파로 당장 까무러쳐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이현은 고집스럽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앞으로 휘청거리는 몸을 따라 한수호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한수호의 몸도 만신창이였다. 신음을 흘리지 않는 게 최선일 정도로.
“하아……. 진짜 몸에 힘이 하나도 없네…….”
간신히 무릎을 모아 안은 이현이 한수호를 보며 엷게 웃어 보였다. 케이지 구석에 앉아 있는 한수호에게 다가가고 싶은데 몸을 움직일 만한 힘까지는 생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형……. 오늘은 꼭 형을 풀어 주고 싶었는데…….”
새까만 눈동자가 금세 눈물로 뒤덮여 갔다. 이현이 눈을 깜박일 때마다 굵은 눈물방울이 후드득 마른 뺨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현의 입술이 서럽게 일그러졌다.
엄마, 아빠.
어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다는데. 이현의 부모는 자신들의 연구를 위해 이현을 차디찬 실험대 위에 올려놨다.
부모님이 지하에 감춰 놨던 비밀을 마주한 이후 이현은 부친의 조치로 정신을 잃었다. 이후로 이현은 이곳 지하 실험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명 학교에서도 연락이 왔을 텐데 부모님이 무슨 조치를 한 건지 이현을 찾으러 이곳까지 오는 이는 없었다.
실험이 끝나면 케이지 안에 동물처럼 갇힌다. 바깥에 연락할 만한 수단은 진즉에 빼앗긴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