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이현의 추측이 틀렸다고 해도 괜찮았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좀비 몬스터와 일반 좀비가 가득 든 케이지를 봤을 때는 기함하기는 했지만 이곳은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를 연구하는 연구소였다. 실험체로 좀비들이 있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갇힌 케이지였다. 이현이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케이지 가까이 다가갔다.
케이지에 갇힌 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신선한 핏물에 좀비 몬스터와 일반 좀비가 난동을 부렸다. 회색빛 눈을 희번덕거리며 피 냄새가 느껴지는 곳으로 손을 뻗고 주둥이를 들이밀고 있었다.
치이익―.
“크햐아악!”
“갸아아악!”
그들이 케이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그들의 피부가 케이지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반발력 때문이었다. 고통은 느끼지 못해도 그들은 그 힘 때문에 케이지를 부수고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평소라면 좀비들의 살기 어린 하울링에 이현은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을 거다. 아직 학부생이라 이현은 본격적으로 좀비에 대해 연구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이현이 직접 좀비를 마주하는 일만큼은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좀비를 지척에서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이현은 좀비보다도 부모님이 저지른 과오를 직접 목격한 일로 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분들은…… 사람이잖아요…….”
케이지 안에 널브러져 있는 이들은 남녀노소 다양했다. 자신보다 앳된 얼굴도 있는 터라 이현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미 발갛게 부어올랐을 무릎은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새까만 색에 가까운 푸른 멍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현은 신체에서 느껴지는 아픔보다 누가 심장을 쥐어짜기라도 한 것처럼 먹먹한 기분이 드는 가슴께를 붙잡았다.
“다…… 죽은 거예요……?”
세 번째 케이지 안에는 미동도 없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들 새하얀 실험복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서로가 흘린 피로 가득한 바닥에 물들어 새하얀 빛은 일부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현이 혹시라도 숨을 쉬는 이가 있을까 싶어 눈동자를 절박하게 굴렸다. 분명 처절한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이현이 들어오기 전에 무슨 실험을 한 건지는 몰라도 옅게라도 가슴이 들썩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동그란 눈동자 가득 차오른 눈물이 막을 새도 없이 희게 질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현이 눈을 깜박일 때마다 구슬 같은 눈물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심장이 뚝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하염없이.
“쿨럭…….”
이미 숨을 거둔 이들처럼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던 이현이 고개를 홱 돌렸다.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서.
네 번째 케이지 안은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안에 갇힌 이들로 바글거리는 다른 케이지와 달리 시야에 걸리는 게 없어서였다.
그런데 조명조차 찾아들지 않을 만큼 어둑한 구석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는 존재가 보였다. 기침 소리는 그에게서 흘러나온 거였다.
“사, 살아 있어요……?”
이현이 힘이 풀린 다리를 질질 끌어 케이지 앞으로 다가갔다. 손바닥과 무릎이 다른 케이지에서 흘러나온 피로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갔다.
이현의 목소리에 반응한 걸까. 모아진 무릎 위에 푹 숙이고 있던 고개가 천천히 위를 향해 들렸다.
눈꺼풀을 가릴 만큼 덥수룩하게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의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방금 전에 힘없이 흘러나온 기침 소리와는 정반대로.
광대뼈가 도드라질 만큼 마른 얼굴에 꼬질꼬질한 외양에도 남자의 또렷한 이목구비만큼은 눈에 띄었다.
이현과 또래인 듯 남자의 외양은 소년과 청년의 경계선에 걸쳐져 있었다. 뼈가 두드러질 정도로 살이 내린 얼굴과 허옇게 부르튼 입술은 그의 외모를 더 날카롭고 퇴폐적이게 부각할 뿐이었다.
한 번이라도 스치듯이 봤다면 뇌리에 강하게 박힐 만큼 선이 뚜렷한 얼굴에 이현의 가슴이 옅게 들썩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이현은 눈이 마주친 순간 남자를 외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남자의 시선에 온몸이 속박된 기분이었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현이 손을 뻗어 쇠창살을 만지려 할 때였다. 남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잘 빚어진 인형처럼 표정이 없던 남자의 얼굴에 왜 동요가 떠올랐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목뒤에서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아…….”
이현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몸을 지탱할 힘을 모두 잃은 것처럼 마른 몸이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미안하다.”
부친이 무섭게 굳은 얼굴로 이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물거리는 이현의 시야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건 그의 손에 들린 주사기였다.
* * *
“흐으, 아……!”
이현이 괴롭게 몸을 뒤틀었다. 그래 봤자 상체가 조금씩 들썩이는 게 다였다. 목부터 시작해 온몸을 결박한 끈 때문이었다.
“이현아,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정말로 환청이 아닌 걸까.
들을 때마다 가슴이 포근한 담요에 덮이기라도 한 것처럼 안온했던 목소리가 지금은 귓전에 철판을 가져다 대고 손톱으로 긁어 내리는 듯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커윽…….”
이현의 입에는 짐승한테나 쓸 법한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 입을 동그랗게 벌리게 만든 구속구를 비집고 검붉은 피가 쏟아지듯이 흘러나왔다.
배 속에서 들끓던 피가 식도를 타고 입까지 역류한 거였다. 이현의 검은자위가 뒤로 넘어갈 듯이 자취를 감추자 오유화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여보, 우리 이제 그만해요. 이현이 이러다 정말 죽겠어요.”
오유화가 서둘러 회복 포션을 가져와 이현의 입 안에 넣으려고 할 때였다.
“기다려. 아직 반응 제대로 못 살폈으니까.”
김태진이 냉정한 손길로 오유화의 손을 쳐 냈다. 이현의 가느다란 목 위로 검은빛에 가까운 핏줄이 솟아올랐다. 오유화도 다시 이현에게 회복 포션을 먹이려다가 그 모습에 홀린 듯이 시선을 돌렸다.
“처음 보는 반응이야. 다들 이 단계를 버티지 못하고 죽었으니까.”
김태진의 눈동자 위에 자그마한 희열이 불꽃처럼 번져 갔다. 그리고 그 불꽃은 잔인하게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현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던 오유화에게로 옮겨붙었다.
“……이 실험만 끝나고 얘 회복시키는 거야. 동의하지?”
“당연한 소리를. 설마 내가 내 손으로 아들을 죽이겠어?”
이명이 울리는 귓전으로도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 소리는 여과 없이 파고들었다. 차라리 실험의 부작용으로 귀가 멀어 버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현의 눈가를 타고 육체적인 고통이 아닌 마음이 찢겨 형상화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핏줄이 터져 나가는 고통도 끔찍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실험에 대한 욕망에 더 큰 무게를 두는 무정한 부모의 태도가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흐, 으…….”
김태진은 기어코 이현한테 새롭게 나타난 반응을 모조리 촬영하고 기록한 후에야 오유화를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유화가 서둘러 이현에게서 구속구를 떼어 냈다. 이현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턱에 힘을 바짝 줘 구속구 표면은 온통 잇자국으로 가득했다.
오유화는 익숙하게 타액과 피로 흥건한 구속구를 카트 위에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곧장 회복 포션을 힘없이 벌어져 있는 이현의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쿨럭, 쿨럭…….”
“이현아, 힘들어도 삼켜야 해. 그래야 버틸 수 있어.”
안타까운 음성으로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실험이 끝나서가 아닌, 이현이 앞으로의 실험도 견뎌야 하기에 몸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정말 모친의 것이 맞는 걸까.
이현은 실험대 위에 올려진 후 수도 없이 했던 생각에 사로잡혔다. 고장 난 인형처럼 동공이 풀린 이현의 얼굴을 오유화가 깨끗한 거즈를 가져와 닦아 냈다.
보기 흉할 정도로 이현의 얼굴과 목을 뒤덮었던 검은 핏줄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대신 이현의 얼굴은 다량의 피를 뽑힌 사람처럼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엄, 마…….”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현은 회복 포션의 도움으로 또다시 몸이 회복되고 말았다. 갈가리 찢기는 듯했던 내장의 고통도 화한 기운이 온몸으로 번져 나가며 사라지고 있었다.
“응. 이현아. 엄마 여기 있어.”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이현의 눈동자에 오유화가 다정히 시선을 맞춰 온다. 이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뻗어 오유화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제발, 저 좀…… 풀어 주세요…….”
회복 포션은 먹여 주면서도 오유화는 이현의 몸을 속박하고 있는 끈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현이 있는 힘껏 몸부림을 쳐도 몸을 묶고 있는 끈은 느슨해지기는커녕 더욱더 단단하게 이현의 몸을 옥죄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