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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92)화 (92/133)

092.

“엄마, 저 왔어요.”

이현이 모친의 이름이 적혀 있는 연구실 문을 두들겼다. 모친이 열어 주는 게 아니면 이현은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부친의 연구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끔은 자식조차 믿지 못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속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현도 연구원의 꿈을 꾸는 터라 어느 정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했다.

부부인 그들조차 자신의 핵심적인 연구 자료는 홀로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공통적으로 주고받는 자료가 아니라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동반자면서도 실적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이현이 한 손에 들고 있는 쇼핑백을 내려다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 갑작스럽게 수업이 휴강이 됐다. 교수님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까 고민하다가 발걸음을 돌린 건 끼니조차 제때 챙기지 않는 부모님이 생각나서였다.

맛 좋기로 소문난 수제 도시락집에 가 도시락 세 개를 산 후 연구소로 발길을 돌렸다. 쇼핑백의 표면을 만져 보니 아직 도시락은 뜨끈뜨끈했다.

식어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되지만 이현은 지금 이 상태로 부모님에게 드리고 싶었다. 겸사겸사 부모님과 함께 얼굴을 마주 보고 식사도 하고.

“핸드폰 연락도 안 받으시고…….”

오기 전에 모친과 부친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두 분 다 받지 않으셨다. 다행히 연구소 1층 입구는 이현의 지문이 등록되어 있어 연구소 안으로 들어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빠도 없고…….”

모친의 연구실에 올라오기 전에 이미 부친의 연구실을 들렀다. 그의 연구실 또한 문이 굳게 닫힌 채였다. 이현이 아무리 문을 두들기고 부친을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휴게실에서 기다려야 하나.”

연구소가 3층으로 되어 있는 만큼 휴게 공간도 구비되어 있었다. 이현이 연구소에 올 때 괜스레 빨리 떠나기 싫으면 미적거리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현이 휴게실 테이블 위에 사 온 도시락을 올려놓은 후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저번에 왔을 때 마주쳤던 낯선 남자가 남긴 말이 내내 이현의 가슴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연구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호기심.”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이현에게 종종 하시던 말씀이었다. 호기심이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원동력이나 마찬가지라고.

이현은 애써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라고 해도 같은 건물 내인 건 마찬가지일 텐데 이상하게도 불길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지하로 내려갈수록 코끝을 은은하게 스치는 퀴퀴한 먼지 냄새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현은 발소리를 죽여 가며 지하에 있는 굳게 닫힌 문 앞으로 다가섰다.

이현은 천성이 순했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있으면 거기에 반항하기보다 순종하는 걸 택하는 아이였다.

이 공간도 분명 부모님은 이현에게 허락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동안은 가끔씩 호기심이 치밀어 올라도 자신을 보고 화를 낼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선해 호기심을 외면하고는 했다.

그런데 낯선 남자가 던진 말이 평온하게 흘러가던 이현의 일상에 돌멩이를 던졌다.

그 사람은 부모님과 꽤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 전까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이상한 사실도 이현의 일탈적인 행동에 한몫했다.

“후우…….”

이현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문은 한눈에 봐도 일반적인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지 않았다.

부모님의 연구실 문보다 더욱 단단한 재질로 보였다. 부모님의 말로는 실험체들을 가둔 공간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좀비가 탈출하면 큰 문제가 생기니까.

그런데 왜 두꺼운 문 너머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상한 기분에 오돌토돌 소름이 인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훑어 냈다.

“아…….”

어렵게 마음을 먹고 문을 밀었지만 이현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이현에게는 이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연구실도 본인들의 지문과 홍채 인식으로만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해놓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이 이현에게 내려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지하의 공간을 이현이 드나들도록 조치를 했을 리 없다.

그런데 그동안 지하에 대해 홀로 생각해 온 상상력이 무럭무럭 자라나 이현의 이성적인 판단을 흐렸다.

문이 밀리는 느낌 없이 손바닥에 반발력이 되돌아왔다. 차가운 문의 감촉에 이현의 어깨가 파르르 떨린 순간이었다.

“어제 완성한 약 가져올 테니까 살아남은 놈 움직이지 못하게 잘 묶어 놔.”

이현이 미는 힘에는 미동도 없던 문이 안쪽으로 확 열렸다. 문에 손을 대고 있던 이현의 상체가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이현이?”

“……아빠.”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수염이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는데 오늘 마주한 부친의 턱에는 거뭇거뭇한 수염이 밤송이 표면처럼 올라와 있었다.

눈 밑은 짙게 그늘이라도 진 것처럼 얼굴의 다른 부위보다 유독 피부가 거무스름했다. 가느다란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올라온 흰자위를 보니 그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실험에 매달린 게 분명했다.

“네가 왜 여기에…….”

김태진이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의 가슴팍 위로 손을 올렸다. 이현을 밀어 내기 위함이었다.

“으아아악―!”

그러나 안쪽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고함 소리에 이현도, 김태진도 이내 몸이 굳고 말았다. 분명 부모님은 이현에게 이 지하실에는 실험하는 데 필요한 실험체들, 즉 좀비 몬스터와 일반 좀비만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현도 부모님이 좀비들을 실험체로 사용한다는 데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만 보면 달려들어 피와 살을 으적으적 씹어 먹는 괴물들을 연민하는 것도 웃기고.

하지만 방금 이현의 귓전에 벼락처럼 날아든 비명 소리는 분명 고통을 느끼는 사람의 것이었다. 생애 마지막 외침인 듯 처절한 울림에 숨이 턱 막혔다.

이현의 떨리는 시선이 무섭도록 굳어 버린 김태진의 얼굴 위에 닿았다. 형형한 눈동자가 한순간 강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이현의 팔을 잡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이게 무슨…….”

두 눈 가득 들어오는 광경에 이현은 침음을 삼켰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현실이 맞는 걸까. 지하실 안에는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아주 오랜 시간 피가 흐르고 흘러 공간 자체에 배어 버린 냄새는 한번 맡는 것만으로도 골이 뒤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우윽…….”

이현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목 안 가득 차오른 신물이 입가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오금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몸이 무너져 내렸다.

바닥과 강하게 부딪친 무릎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픔보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욕지기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당신 미쳤어요? 이현이를 이 안에 데리고 들어오면 어떡하자는 거예요?”

오유화가 사색이 된 얼굴로 이현에게 다가왔다.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식은땀에 푹 젖은 이현의 이마를 닦아 내는 손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 얘가 실험체가 내지른 비명 소리를 정확하게 들었는데 그대로 돌려보내라고? 그랬다가는 언젠가 우리를 공격하는 화살이 되어서 돌아올 게 분명한데도?”

김태진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인 듯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그라고 이현을 이곳에 끌고 오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이현은 제 아들인 만큼 영민했다. 비명 소리 하나만으로도 이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금방 유추해 낼 게 분명했다.

“엄마……. 아니죠……?”

이현이 제 안색을 살피기 바쁜 오유화를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오유화가 이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비틀었다.

이현의 이마 위에 가득 맺힌 식은땀을 닦아 내던 손길도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이현이 그녀를 밀어 내고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욱 안쪽으로 향하는 이현의 팔을 김태진이 잡으려 했으나 이현이 그답지 않게 거칠게 뿌리치는 바람에 그 또한 황망한 표정으로 밀쳐진 제 손을 내려다봤다.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피비린내는 케이지 안에 갇힌 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캬하아악!”

“크르르…….”

이현이 발걸음을 옮기자 쇠사슬이 철그렁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공간에 울렸다. 무언가를 가둬 두는 데 사용하는 케이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널찍이 떨어져 있는 케이지는 총 네 개였다.

가장 큰 케이지에는 다양한 종류의 좀비 몬스터들이 회색빛 눈알을 번뜩이며 살아 움직이는 먹잇감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가져다 대려고 했다.

다른 케이지는 일반 좀비들로 가득했다. 이현은 그들의 목에 하나같이 연월일시가 적혀 있는 목걸이가 걸려 있다는 걸 발견했다.

숫자는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이현은 이내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됐다.

……좀비가 된 날짜였다. 날짜가 최근으로 갈수록 일반 좀비의 부패도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으니까.

그도 아니라면 이곳에 실험체가 되어 들어온 날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날짜는 연구소가 세워진 시기보다도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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