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퍼어어어엉―.
지척에서 울리는 고막이 찢어질 듯한 폭음에 폭탄을 던진 연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일부 연구원의 고간은 짙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소리만 요란했을 뿐이다. 임태한은 이곳에 김진수의 상태를 낫게 해 줄 이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기에 폭발의 여파가 연구원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바람 안에 가두었다. 소리는 그 때문에 더 증폭됐지만.
“이낙균, 한 명씩 심문해서 해독약 찾아내.”
“네!”
이낙균이 업고 있던 김진수를 조심스럽게 철제 침대 위에 올려놓은 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다가갔다.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는 협회 내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던 낯익은 얼굴들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쩌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 됐냐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마음을 다잡듯이 이낙균이 목울대를 강하게 울렸다. 이어 그가 가장 앞에 있던 연구원의 팔을 잡아 앞으로 끌어냈다.
“연구소장님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임태한도 연구소장을 본격적으로 심문하기 시작했다.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연구소장을 그 위에 앉혔다. 연구소장이 앉은 의자를 김진수가 누워 있는 철제 침대 쪽으로 끌고 왔다.
철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채 옆에 놓여 있는 날카로운 메스를 집어 올려 손가락 사이에 넣어 빙글빙글 돌렸다.
일반 사람은 스치기만 해도 살이 갈라질 날카로운 날이 아슬아슬하게 임태한의 손가락 위에서 움직였다. 제 손이 아닌데도 연구소장은 전등의 빛을 반사하는 날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흐익…….”
메스의 날이 멈춘 건 연구소장의 목젖 앞에서였다. 임태한의 손 위에서 노닐던 메스가 어느새 연구소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실험을 하셨더군요. 에스퍼에게 치명적인 독에 대해서.”
“그, 그건…….”
“설마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말하시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하프 좀비 세력이 협회 깊숙이 침투했다고는 하나 무려 에스퍼에게 치명적인 독을 개발하는 연구에 연구소장이 개입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연구소장은 연구원들 중 가장 뛰어난 존재니까.
설사 몰랐다고 해도 당장 해독약을 만들어 내라 압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임태한은 연구소장의 반응으로 그가 정말로 독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해독약 어디 있습니까?”
임태한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김진수는 현재 시체나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희미하게 흘리던 신음 소리조차 어느 순간부터 잦아들더니 지금은 창백한 안색에 검은 핏줄만 문신처럼 피부 위로 도드라져 있었다.
“진짜 모르는…….”
끝까지 잡아떼려던 연구소장의 말문이 막힌 건 목젖을 겨냥하고 있던 메스의 날이 제 손가락 마디를 파고들 때였다.
“아아악……!”
왼손 약지 마디가 눈꺼풀 한 번 깜박하기도 전에 끊어졌다. 순식간에 피로 물드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연구소장이 고통 어린 신음을 내질렀다.
임태한의 턱 근육이 불거졌다. 그 때문에 고통 속에 잠겨 있다가 죽어 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키지 못한 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게다가 이현 또한 피에 젖은 채 반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 짓을 한 게 누구인지 예측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우스웠다. 그들이 느낀 고통에 비하면 손가락 한 마디 떨어져 나가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텐데.
“이제는 말할 생각이 좀 드십니까?”
연구소장이 생리적인 고통 때문에 눈물로 젖은 눈을 들어 올렸다. 임태한은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진짜로 나한테는 해독약, 크윽…….”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지 않을 것 같자 메스를 한 번 더 움직였다. 약지의 손가락 한 마디가 또다시 사라졌다.
턱에서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가 갈렸다. 고통을 참기 위해 연구소장이 상처 입지 않은 다른 쪽 손에 힘을 줘 봤지만 손안에 들고 있는 열쇠 자국만 손바닥에 날 뿐이었다.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심해져 갔다. 순식간에 식은땀과 눈물로 젖어 든 얼굴을 쓸어내렸다.
“저, 정강필한테 있어…….”
피가 맺혔다 뚜욱, 뚝 떨어져 내리는 날붙이가 다시 제 손가락을 썰어 버릴 것 같았다. 연구소장은 정말이라는 듯 간절한 시선으로 임태한을 올려다봤다.
“나도 피해자야. 정말 시키는 대로만…….”
연구소장이 채 말을 잊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손가락이 한 마디 잘렸을 때와는 비교도 하기 힘든 핏물이 바닥에 웅덩이처럼 고여 들었다.
임태한이 아예 연구소장의 왼손을 잘라 낸 거였다.
“그러면 새롭게 해독약을 만드세요. 그것도 아니면 정강필이 있을 만한 장소를 대시든가. 그조차도 아는 게 없다면…….”
워커 굽 아래에서 핏물에 젖어 있는 연구소장의 손이 짓밟혀 완전히 으스러졌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연구소장이 숨을 헐떡거렸다.
“상태가 나아질 만한 무슨 조치라도 당장 취하라, 이 말입니다.”
임태한이 김진수를 눈짓으로 가리키자 연구소장이 허둥지둥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알았으니까 제발…… 목숨만 살려 주게.”
평소 단정하게 뒤로 넘기던 회색빛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연구소장의 얼굴은 잠깐 사이 족히 10년은 늙은 듯했다.
덜덜 떨리는 오른손으로 깔끔하게 잘린 왼손을 지압했다. 피가 너무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몇십 분만 지나도 과다 출혈로 죽을 만큼.
임태한이 주변을 굴러다니던 천을 하나 들어 연구소장의 가슴팍으로 던졌다. 연구소장이 손목의 단면을 천으로 감싸 지압하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실험 도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부팀장님, 이 두 사람이 독약 연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낙균이 연구원 두 명의 목덜미를 잡아 임태한 앞에 대령했다. 임태한은 워커 바닥에 들러붙은 살점들을 바닥에 떼어 내는 중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연구소장과 한 몸이었던 육편에 연구원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지금 당장 해독약 만드세요. 증상 완화하는 치료제라도.”
“히끅, 네…….”
“네, 네!”
임태한과 이낙균이 한쪽으로 비켜섰다. 연구소장은 약물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카트를 끌어와 가장 먼저 제 팔에 주사부터 놨다.
머리가 고통 때문에 돌아가지 않아 마취주사부터 놓은 거였다. 이어 항생제까지 투입하고 나서야 연구소장은 김진수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EP-00를 직접 에스퍼에게 투여한 건, 나도 처음 보는데 말이야.”
“저,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요…….”
연구원들이 임태한과 이낙균의 눈치를 보면서도 금세 두려움을 잊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김진수를 살폈다. 이낙균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연구소장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고통에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면서도 김진수의 굳게 닫힌 눈꺼풀을 들어 올려 눈동자의 색을 살폈다.
김진수를 치료하기 위해 그들에게 내보인 건 맞지만 호기심이란 감정이 이토록 끔찍한 것인 줄 비로소 알았다.
이낙균 못지않게 임태한도 분노로 이성이 간당간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가 연구소장과 연구원들의 행동을 가만히 놔두는 건 그들이 김진수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돼 가고 있지?”
김진수를 살피는 이들만 분주한 분위기 속으로 한수호가 끼어들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연구소장이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한수호의 품속에 안겨 있는 이현을 보고 어깨를 떨었다.
한수호가 회복 포션을 발라 멀쩡해진 상태였지만 이현의 옷을 갈아입힐 겨를은 없었다. 여전히 피가 말라붙은 실험복을 입고 있는 탓에 축 늘어진 이현은 연구소장의 눈에 시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해독약을 정강필이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임시 조치라도 취하기 위해 실험을 지시한 상태입니다.”
임태한이 한수호의 곁으로 다가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빠르게 축약해 전달했다. 한수호의 시선이 연구소장의 얼굴 위에 길게 머물렀다.
그의 반응으로 보아 그가 이현을 실험하는 데 일조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찢어발기고 싶다는 듯 한수호의 그림자가 불길하게 일렁거렸다.
“쿨럭, 쿨럭…….”
“진수야!”
얼어붙어 있던 연구소장이 다시금 움직인 건 김진수가 한차례 검은 피를 토해 내면서부터였다. 이낙균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김진수의 곁에 다가왔다.
한동안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만 있던 김진수의 상태가 더욱더 악화됐다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이전에 토해 낸 피의 양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또 검은 피를 토해 냈다.
에스퍼가 아니라 일반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피가 모자라 죽었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몸속에 피가 부족한 상태였다.
“일단 수혈부터. 혈액 보관함에 있는, 혈액 다 가져와.”
“네, 연구소장님!”
연구소장은 김진수가 이 자리에서 죽는 순간 제 목숨도 끝장나리라는 걸 예감했다. 김진수의 상태를 호전시켜야 제 목숨 줄도 늘어날 터.
완전히 가시지 않은 통증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연구소장이 실험 기계들을 작동시켰다. 다행히 폭발에 휘말린 건 자잘한 도구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