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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81)화 (8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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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괜찮아질 거야. 내가 꼭 그렇게 만들게.”

임태한이 곁에 다가온 김유진의 정수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김진수는 현재 의식을 잃은 상태로 신음 소리를 옅게 흘리고 있었다.

“……네.”

김유진이 바닥을 향해 축 늘어진 김진수의 손끝을 매만지다 뒤로 물러났다.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김유진은 현재 일행 중 멀쩡한 축에 속했다.

“저한테 기대세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가이드에게 다가간 김유진이 그녀의 팔을 들어 제 어깨에 걸쳤다. 회복 포션은 상태가 심각한 사람들에게만 제공됐다.

경미한 부상은 다들 피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도록 천으로 동여맨 게 다였다. 임태한이 바람을 움직여 일행의 피 냄새를 다른 곳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다 머리가 지끈거려 볼 안쪽 살을 깨물어 흐려지려는 정신을 일깨웠다.

평소였다면 이 정도 마력을 사용한 것 가지고는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이미 무리를 했다는 게 문제였다.

“좀비 웨이브가 이쪽으로 몰려옵니다!”

설상가상 좀비 웨이브가 점점 일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거리가 좀 있는 터라 일행이 좀비 웨이브의 레이더망에 완전히 걸린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를 쓰지 않으면 좀비 웨이브의 방향이 완전히 일행 쪽으로 틀어질 수 있었다. 마력을 계속해서 사용한 탓에 온몸이 당장이라도 가이딩을 받으라 아우성쳤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임태한이 더 무리를 해서라도 좀비 웨이브의 방향을 틀기 위해 마력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저희가 다른 쪽으로 좀비 웨이브를 이동시켰다가 돌아올게요.”

이나리가 눈치 빠르게 임태한에게 다가와 말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 이대로는 다가올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임태한의 능력에만 의존하기에는 좀비 웨이브 말고 다른 위험이 닥칠지도 모른다.

물러났던 하프 좀비들이 또다시 달려들 수도 있었고.

“몸조심해. 무리하지 말고.”

“걱정 마세요!”

이나리와 이낙균이 빠른 속도로 일행에게서 멀어져 갔다. 황두학도 따라가려고 했지만 아직 안색이 창백하다는 이유로 김종현이 들어 있는 자루와 함께 남게 됐다.

좀비 웨이브에 포함된 좀비들의 수는 눈에 다 담기에도 힘들 지경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코끝을 파고드는 지독한 썩은 내 때문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음울한 하울링은 중첩되어 공간을 진동시킬 만큼 오싹했다. 평범한 담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당장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진득한 살기도 가득했다.

“장난 아니네. 오금이 저릴 지경이야.”

“이렇게 겁이 많은 줄 알았으면 차라리 두학이 데려올 걸 그랬나 봐.”

“뭐? 아니거든!”

이나리가 긴장을 풀 겸 가볍게 던진 농담에 이낙균이 발끈했다. 평소 무뚝뚝한 성정을 생각하면 오늘따라 말이 많았다.

이낙균도 그런 제 모습을 인식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전방의 좀비 떼들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현재 좀비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식할 위치에 도달한 상태였다.

무리의 선두에 있는 좀비 몬스터의 크기가 건물 3층 높이만 했다. 제 얼굴만 한 눈동자가 반쯤 썩어 데구루루 굴러가는 걸 보면서 이낙균이 마른침을 삼켰다.

“좀비들을 어떻게 유인하려고?”

“이렇게.”

이낙균의 질문에 이나리가 채찍으로 사방에 널려 있는 잔해들을 들어 좀비들이 몰려 있는 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일반 성인 남성도 바닥에서 들어 올리기 힘들 콘크리트 덩어리가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퍼어억. 개중 하나는 덩치가 거대한 좀비 몬스터의 눈알에 정확하게 날아가 박혔다.

“캬하아악……!”

졸지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눈구멍에 박게 된 좀비 몬스터가 거대한 발을 구르며 괴성을 질렀다.

“크햐악―!”

“캬아아악―!”

“그어아……!”

좀비들은 고통은 느끼지 못하지만 이나리가 확실하게 제 존재감을 드러낸 터라 먹잇감을 인식한 것이다.

“……단순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이네.”

이낙균이 침음을 삼켰다. 더 가까이 다가갈 필요도 없었다.

“멍때리지 말고 이쪽으로 와요! S급 좀비 몬스터들도 있다고요!”

이나리가 이낙균을 향해 손짓했다. 이나리는 아예 일행이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무리에 속한 개개의 좀비는 웨이브의 방향을 틀지 못한다.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선두에 선 일부가 방향을 틀면 뒤쪽 무리는 선두가 움직이는 대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자리와 끄트머리에 있는 놈들은 떨어져 나갈 수 있으나 무리 전체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였다.

“언제까지 이동해야 하지?”

이낙균이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이나리에게 물었다. 꽤 오랜 시간 좀비들을 이끌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중간중간 위험한 상황도 있어서 두 사람은 잔뜩 예민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한순간의 방심이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였다.

“백 미터만 더 이동한 다음에 도망가요. 부팀장이 흔적을 남기긴 했을 테지만 그 위로 좀비들이 지나가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하프 좀비들은 분명 통신 아티팩트를 이용해 아군과 연락을 했다. 하지만 이나리와 이낙균이 지닌 통신 아티팩트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그러면 저쪽 건물을 기점으로 방향을 틀자.”

이낙균이 앞쪽에 있는 20층짜리 건물을 가리켰다. 좀비 웨이브는 현재 협회를 쓸다시피 한 다음에 협회 정문을 지나쳐 움직이는 중이었다.

2―3층짜리 건물은 좀비 웨이브가 지나간 순간 살이 발라진 생선 가시처럼 변했다. 일부 좀비는 벽이 인간의 살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씹어 대서 이빨 자국이 남아 있는 곳도 상당수였다.

“준비해.”

“저는 이미 준비됐거든요.”

이낙균은 이나리의 호흡이 거칠기는 해도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다는 판단하에 먼저 건물을 돌아 화염을 일으켰다.

길거리에 무방비하게 놓여 있던 차 다섯 대에 불길이 순식간에 옮겨붙었다.

퍼어엉, 펑, 퍼엉. 동시다발적으로 차에서 큰 굉음과 함께 화려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잠시 동안 좀비들에게서 흘러나오던 소음마저 지워 낼 만큼 엄청난 폭발음이었다.

회색빛 동공들이 굉음이 터져 나온 곳에 못 박히듯이 고정됐다. 잠깐 동안의 정적 후 터져 나온 건 폭발음 못지않은 괴성이었다.

“캬하아아아악……!”

선두에 있던 좀비 몬스터 한 마리가 불타오르는 차에 몸을 던진 게 시작이었다. 선두 주자에 이어 뒤따라오던 좀비 떼들이 불에 몸을 던지는 부나방처럼 불꽃을 향해 움직여 갔다.

불길이 썩어 가는 몸뚱이를 집어삼키는 순간까지는 눈 몇 번 깜박이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허억, 헉…….”

“이쪽으로 흔적이 이어져요.”

이낙균이 흔적을 찾아 이동하는 이나리의 등을 보면서 지난 과거를 반성했다. 이나리보다 체력이 좋지 않다는 게 충격이었다.

“여기에서 흔적이 끊어진 것 같은데…….”

이나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공사장이었다. 건물이 올라가던 도중에 근처에서 게이트가 터져 공사가 중단된 곳이었다. 이어지는 흔적이 있나 살폈지만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지하에 있는 거 아니야? 부팀장님이 벙커라고 했으니까.”

이낙균이 바닥에 홈이 파여 있는 곳이 있나 세세하게 살폈다. 그러다 수상해 보이는 균열이 흔적처럼 남은 곳에서 걸음을 멈췄을 때.

“누나! 형!”

바닥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황두학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내 말이 맞지? 여기가 다른 곳이랑 흔적이 달랐다니까.”

이낙균이 어깨를 으쓱이든 말든 이나리는 황두학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어 주고는 그를 따라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완전 공동 숙소네.”

길게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자 거대한 동공이 나타났다. 흡사 개미굴처럼 가운데는 동공으로 비어 있고 벽을 따라 작은 구멍들이 나 있는 공간이었다.

“너는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어디 아파?”

“그게…….”

이나리가 채찍을 바닥에 내려놓고 욱신거리지 않는 곳이 없는 몸을 가볍게 스트레칭했다. 쉬지 않고 움직였더니 온몸의 근육이 뭉친 기분이었다.

폭주 위험 수치가 너무 올라 있어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공동을 둘러보는데 시야에 황두학의 침울한 얼굴이 걸렸다.

“……문제가 생겼어요.”

“무슨 문제? 오면서 무슨 일 있었어?”

이낙균도 황두학에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도착했는데도 임태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임태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두 사람이 임태한을 찾으려고 발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크으윽…….”

“오빠, 제발 정신 좀 차려 봐…….”

근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나리와 이낙균이 거짓말처럼 걸음을 멈췄다. 소리는 오른쪽에 나 있는 구멍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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