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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80)화 (8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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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뒤쪽으로 하프 좀비 하나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김진수는 이미 앞쪽과 오른쪽에서 접근하는 하프 좀비 둘을 상대하느라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등 뒤로 접근하는 하프 좀비의 능력이 뛰어난 게 문제였다. 황두학이 곧바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곧 자신의 주변으로도 하프 좀비들이 재차 달려들어 발이 묶여 버렸다.

“커흑…….”

결국 김진수가 하프 좀비의 공격에 등을 길게 베이고 말았다. 그나마 황두학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한 발자국 앞으로 몸을 움직여서 다행이었다.

김진수가 이어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콰아악.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하프 좀비의 무기 끝이 박혀 들었다.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등에서 흘러내린 피가 뚜욱, 뚝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아……. 진짜 군침 도네. 에스퍼 피가 이렇게 달콤했을 줄이야.”

김진수의 등을 베어 낸 하프 좀비가 들고 있는 무기의 날에 혀끝을 댔다. 날이 날카로워 혀에 핏방울이 맺혔지만 아픔보다는 피 맛에 더한 희열을 느끼는 듯 보였다.

서로 색이 다른 두 눈동자가 식욕으로 번들거렸다. 이어 그가 주변에 있는 다른 하프 좀비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잡아. 한 놈 정도는 맛봐야겠으니까.”

김진수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몸을 움직여 날아드는 하프 좀비들의 공격을 피했다. 동생과 다른 생존자들을 구할 때 마력을 과도하게 사용해 버렸다.

가이딩을 받을 틈도 없었으니 현재 김진수의 폭주 위험 수치는 당장 가이드 센터에 실려 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높았다.

“흐으…….”

흙이 가득한 공간이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몸을 피하기도 마땅치 않은 공간이었다. 설상가상 아군보다 적군이 많았다. 조금만 틈이 생겼을 뿐인데 무시하기 힘든 부상을 입고 말았다.

“형, 조금만 기다려요……!”

황두학이 심장 부근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고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주변의 대기가 얼어붙으며 수십 개의 얼음 화살을 만들어 냈다.

망치를 받아 낸 손에서도 심상치 않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보다는 김진수를 구해 내는 게 우선이었다.

“크르르―.”

“캬하악……!”

일반 좀비들까지 나타나 상황이 악화됐다. 하프 좀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반 좀비의 공격도 성가신 건 마찬가지였다.

“쪽수에는 장사 없다는 말. 틀린 게 아니라니까.”

김진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던 하프 좀비가 즐겁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오른손에 든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날에 맺혀 있던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자 일반 좀비들이 신선한 피 냄새에 반응해 그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김진수가 주변을 둘러보다 비어 있는 가이딩실 안으로 들어갔다. 피 냄새를 쫓아 들어오는 일반 좀비들을 잔해에 섞인 흙을 움직여 밀어 냈다.

황두학도 김진수가 가이딩실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는 가이딩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프 좀비들과 일반 좀비들이 하나같이 진드기처럼 몸에 달라붙어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황두학보다 먼저 가이딩실 안으로 들어온 건 김진수의 등을 검으로 베어 낸 하프 좀비였다. 하프 좀비는 김진수와 달리 양손이 피로 물들어 있을 뿐 멀쩡했다.

숨소리조차 평온해 헉헉거리는 김진수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만 고생하고 싶지 않아? 아무리 A급 에스퍼라고 해도 피로는 똑같이 느낄 텐데.”

“……개소리.”

김진수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달려드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하나씩 터트렸다. 움직일 때마다 등 쪽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조금씩 움직임이 느려졌다. 상처가 깊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피가 멎지 않았다.

“내가 날에다가 독을 발라 놨거든. A급한테도 효과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너 보니까 그런 것 같다.”

“윽…….”

하프 좀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기증 때문에 김진수의 몸이 휘청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건들거리던 하프 좀비가 검 끝을 김진수의 가슴을 향해 찔러 넣었다.

“형……!”

가이딩실 문까지 근접했던 황두학이 놀라 김진수를 불렀다. 이곳까지 오면서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 봤자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들과의 전투였다.

하프 좀비와의 전투는 알파 1팀에서 몇 년을 구른 김진수조차 사지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김진수의 세상이 느리게 흘러갔다. 검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김진수가 몸은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였다. 검의 끝이 상의를 지나 살갗을 뚫고 파고드는 시점이었다.

“커어억……. 아, 아파……! 아아악……!”

하프 좀비의 정수리 위로 벼락이 내리꽂혔다. 제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를 느낄 새도 없이 하프 좀비의 코가 녹아내렸다.

“잘 견뎠어.”

이어 임태한이 시끄럽다는 듯 오른손에 들고 있는 철근에 번개의 힘을 실어 던졌다. 비틀거리며 괴성을 지르던 하프 좀비가 벌레처럼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고통에 하프 좀비의 흰자위가 붉어져 갔다. 임태한의 공격에 어떻게 된 건지 재생 능력조차 더디게 진행됐다.

임태한이 비틀거리는 김진수의 팔을 들어 제 어깨에 걸쳤다. 황두학도 근처로 다가와 김진수의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진수 괜찮으니까 바깥쪽으로 길 뚫자. 벙커로 가야겠어.”

“벙커요?”

“좀비 웨이브도 피하고 부상자들도 살펴야 하니까. 팀장이 알려 준 벙커 중에 가장 큰 곳으로 이동할 거야.”

임태한이 죽어 가는 하프 좀비를 보면서 잠시 고민하다 그대로 등을 돌렸다. 아무리 하프 좀비라고 하더라도 세포까지 벼락으로 지져 놓았으니 회복할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단칼에 죽이는 게 그의 입장에서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임태한이 가이딩실에서 나와 바람의 힘을 움직여 복도 가득한 좀비들을 건물 바깥으로 밀어 냈다.

“다들 이쪽으로 와!”

“무슨 일인데?”

“후퇴하라는 명령이야!”

하프 좀비들도 임태한 일행처럼 가이드 센터를 빠져나가고 있어 다행이었다. 건물의 진동이 처음 좀비 웨이브의 존재를 느꼈을 때보다도 심해졌다.

임태한이 옥상으로 향하면서 마주한 동료들의 시신에 이를 악물었다. 시신을 수습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부팀장! 이곳에서 계속 버티는 건 무리 같아요!”

옥상에 올라가자 이나리가 임태한에게 바로 다가왔다. 그녀가 가리키는 쪽에서 어마어마한 좀비 물결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새까맣게도 보이는 좀비 무리는 눈앞에 있는 생명체라면 존재를 불문하고 다 먹어 치울 것 같았다. 옥상에는 가이드 센터에 잡혀 있던 에스퍼와 가이드들이 부상자들을 챙기고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진수 오빠, 괜찮아요?”

“응…….”

임태한에게 부축받고 있는 김진수의 등이 피투성이인 걸 보고 이나리가 입고 있던 정복의 재킷을 벗어 김진수의 등허리를 압박했다.

“피가 왜 이렇게…….”

이미 흘린 피가 많은데도 이나리의 재킷도 빠르게 피로 젖어 들어갔다. 임태한이 부축하고 있던 김진수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회복 포션 남은 거 나리한테 있지?”

“네.”

“진수한테 먹여.”

이나리가 임태한의 말에 곧바로 회복 포션을 꺼내 김진수에게 조금씩 먹이기 시작했다. 상처에도 회복 포션을 바르기 위해 재킷을 들췄다가 안색이 심각해졌다. 상처 부위를 따라 살색이 검게 변질되어 있어서였다.

“여기에 있던 하프 좀비들도 갑자기 물러난 건가?”

“네. 걔네는 통신 아티팩트가 작동되는 것 같더라고요.”

옥상에도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나리가 최대한 막았지만 이곳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재킷에 덮여 있는 시신을 보는 임태한의 눈동자 위로 소름 끼치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벙커로 이동할 거야. 팀장하고 다시 연락이 닿을 때까지. 진수도 안전한 곳에서 몸을 회복해야 하고.”

“팀장 쪽이랑 연락 닿았어요? 언제요?”

“아까 잠깐.”

임태한이 에스퍼들을 불러 모았다.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임태한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지금부터 벙커로 이동할 겁니다. 한수호 팀장님이 알려 준 곳이에요.”

임태한의 결정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프 좀비들이 물러갔다고는 하나 언제 다시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동료들을 여럿 잃었다. 가이드 중에서도 사상자가 많이 나와 에스퍼들의 눈동자는 하나같이 분노와 좌절로 얼룩져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분은 부상자부터 부축합시다.”

임태한의 말에 에스퍼들이 최소 한 명에서 최대 세 명까지 부상자들을 챙겼다. 임태한도 김진수를 등에 업었다.

“김종현도 데려가야겠죠?”

“일단은.”

이나리가 김종현이 들어 있는 자루를 끌고 왔다. 임태한이 꿈틀거리는 자루를 차가운 눈길로 내려보다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벙커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게 그이니 선두에서 움직여야 했다.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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