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79)화 (79/133)

079

임태한의 귓가에 처절한 비명 소리가 날아들었다. 에스퍼에게 가이드의 존재는 역린이나 마찬가지다. 제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길뿐더러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존재였다.

이수천의 명령 직후 들려온 비명 소리였으니 가이드의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임태한의 눈동자 위로 현재 복도를 맴도는 것보다 더욱 흉포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뭐야?”

바람에서 그치지 않았다. 임태한을 중심으로 눈이 멀 듯한 벼락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내 팔……!”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던 하프 좀비들의 몸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번쩍이는 섬광에 하프 좀비들 중 일부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피할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인간이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무력해지듯 하프 좀비들은 임태한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전투 능력을 상실해 갔다.

“이 새끼가……!”

이수천이 복도 바닥을 박차고 임태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수천에게도 섬광이 날아들었으나 그는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한 후 임태한의 지척까지 파고들었다.

“크헉…….”

이수천이 피한 섬광은 그의 뒤에 있던 하프 좀비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갔다. 새까맣게 타오르는 가슴을 쥐고 무너지는 하프 좀비에게서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지독하게 피어올랐다.

“아주 찌릿찌릿하네.”

임태한이 이수천의 주먹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주먹의 힘이 얼마나 센지 살짝 스쳤을 뿐인데 볼에 생채기가 났다.

그러나 따끔한 통증은 임태한을 위축시키기보다 더욱 거칠게 날뛰게 할 뿐이었다. 임태한의 주먹 주변으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찌릿할 뿐일까.”

“씨이발…….”

번개를 휘감은 주먹이 이수천의 가슴 한가운데를 후려쳤다. 이수천이 입고 있던 옷이 순식간에 녹아내려 살점에 들러붙었다. 번개 모양의 흔적이 남은 가슴을 부여잡고 이수천이 비틀거리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자신을 제외한 하프 좀비는 임태한의 공격 한 방조차 제대로 받아 내지 못했다. 좁은 복도 안에 하프 좀비들이 흘리는 신음 소리가 음울하게 울려 퍼졌다.

이수천이 흰자위가 새빨갛게 충혈되도록 임태한을 노려봤다. 하프 좀비가 된 후 이토록 무력감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철옹성이라 불리던 협회 본부에 쳐들어왔을 때도 에스퍼들은 가이드를 인질로 잡자 제대로 힘조차 쓰지 못했다.

그런데 임태한은 이수천이 그동안 만났던 에스퍼들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대로 있으면 결국에는 전멸이라는 걸 아는지 인정사정없이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가이드가 한 명씩 죽을 때마다 네놈들 수십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거야.”

“크윽…….”

임태한이 이수천의 목을 손으로 쥐고 그대로 벽에 처박았다. 손에서 피어오른 스파크가 얼굴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으아아악…….”

살점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이수천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을 쳤다. 팔을 들어 올려 제 목을 쥔 임태한의 손을 뜯어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강해지는 악력에 사지를 버둥거렸다.

“큭…….”

임태한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이수천이 당하고 있자 남아 있던 하프 좀비들이 임태한의 등 뒤로 달려들었다. 이미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다 쓰고 있는 탓에 폭주 위험 수치는 무섭게 치솟는 중이었다.

속에서 역류하는 핏물을 도로 삼켰으나 입가를 비집고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다들 달려들어!”

이수천을 제외하고 가장 서열이 높은 하프 좀비가 악을 지르며 임태한을 공격했다. 임태한이 바람을 운용해 다가오는 하프 좀비들을 밀어 내고는 있지만 한 손으로 쏟아지듯 내리는 비를 막는 건 역부족이었다.

하프 좀비들이 들고 있는 무기의 날이 점점 임태한의 등에 가까워졌다. 하프 좀비들이 칼날 같은 바람에 갈려 나가면서도 동료가 죽은 빈자리를 다른 이가 빠르게 채운 결과였다.

무기의 날이 실시간으로 바람에 갈려 나가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임태한이 할 수 없이 이수천의 목을 움켜쥔 채로 몸을 피했다.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

생각보다 하프 좀비들 무리에서 이수천의 위치가 중요한 모양이었다. 놈들은 포기를 모르는 것처럼 임태한의 뒤를 바짝 쫓았다.

아슬아슬한 추격전이 이어지던 도중이었다. 가이드 센터 건물이 크게 뒤흔들렸다. 균형을 잡지 못한 일부 하프 좀비가 바닥으로 넘어질 정도로 강한 진동이었다.

“부팀장님!”

생존자들을 데리고 몸을 피했던 김진수가 다시 복도에 나타났다. 김진수의 뒤쪽으로 이낙균과 황두학도 모습을 드러냈다.

“지긋지긋한 새끼들이!”

과묵한 성격의 이낙균이 욕을 할 정도로 복도에는 하프 좀비가 넘쳐났다. 이곳까지 오면서도 많은 하프 좀비들을 도륙했으나 죽여도, 죽여도 수가 줄어들지 않는 게 바퀴벌레 못지않았다.

“좀비 웨이브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김진수가 달려드는 하프 좀비의 머리통을 뒤돌려차기로 날려 버리며 임태한에게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지금 나리가 바깥쪽에서 살아남은 동료들을 모아 옥상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이수천의 명령이 하프 좀비들에게 전해진 이후 하프 좀비들이 가이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에스퍼들은 눈이 돌아 버렸다.

제압당한 상황에서도 가이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탓에 가이드뿐만 아니라 에스퍼들도 하프 좀비들의 손에 죽어 갔다.

때마침 결박된 A급 에스퍼들부터 풀어 주고 있던 이나리가 재빨리 손을 썼지만 희생자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김진수가 건물에서 나와 이나리와 합류하고 안쪽의 상황을 전했다. 가이드들의 죽음에 미쳐 날뛰는 이낙균과 황두학을 임태한 쪽으로 보낸 건 이나리의 판단이었다.

A급 에스퍼들이 풀려나면서 하프 좀비들과 상대할 만한 전력이 생긴 까닭이었다. 무리의 리더가 임태한인 이상 그가 사경을 헤매는 일이 발생하면 큰일이니까.

“……더 빨리 와야 했는데.”

김진수의 고함 소리를 들은 이수천이 녹아내린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마치 좀비 웨이브가 다가올 걸 알았다는 듯이. 죽어 가면서도 임태한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반짝 빛났다.

“커억…….”

임태한의 손이 이수천의 턱 밑을 파고든 건 그때였다. 기묘한 빛으로 번들거리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빛을 잃어 갔다.

“그리고 통신 아티팩트가 잠깐씩이지만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김진수가 통신 아티팩트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임태한이 눈짓을 하자 그가 곧바로 통신 아티팩트를 임태한이 있는 쪽으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아티팩트가 이수천의 피로 범벅이 된 커다란 손에 안착했다.

지지직. 지직―. 임태한이 마력을 불어 넣기 무섭게 통신 아티팩트에 불이 들어왔다. 하프 좀비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이곳으로 오면서 임태한은 통신 아티팩트로 한수호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어 연락된 건가?

통신 아티팩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임태한이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분노로 달아올랐던 머릿속이 잠시나마 차분해진 기분이었다.

“진표성.”

―……장?

통신 아티팩트는 불안정한 상태로 연결됐다.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여전히 목소리가 전달되는 걸 방해하고 있었다. 임태한은 통신이 오랫동안 이어지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들 무사해? 무사한 거 맞지? ……고 말 좀 해 봐!

잠시 생각에 빠져 말하지 못했을 뿐인데 진표성이 난리를 떨어 댔다. 임태한이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결코 멀쩡하다고 할 만한 행색은 아니었다. 자신만 해도 가슴팍이 배 속에서 역류한 피로 물들어 있었다.

“무사해. 걱정하지 마.”

하지만 죽은 이는 없다. 회복 포션이 있다면 금방 회복할 부상이었다.

“부팀장님! 이곳에서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황두학이 물줄기로 하프 좀비들을 밀어 내면서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아직 좀비 웨이브가 가이드 센터까지 다가온 건 아니었다. 하지만 땅의 진동이 강해지고 있었다.

가이드 센터에 잡혀 있던 이들 중 부상자들의 수도 많았다. 안전한 장소를 찾으려면 그만한 시간이 또 필요할지도 모른다.

―……행이야. 지금 위치가 어디야?

임태한이 진표성의 물음에 답하려고 할 때였다. 통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려 주듯 빛이 나던 통신 아티팩트에서 빛이 사라졌다.

“진표성?”

통신 아티팩트를 흔들어 보고, 마력도 다시 집어넣어 봤지만 먹통이었다. 임태한이 할 수 없이 통신 아티팩트를 갈무리하고 몸을 움직였다.

“으윽…….”

황두학이 하프 좀비 둘에게 둘러싸여 벽으로 처박혔다. 하프 좀비가 들고 있는 망치로 황두학의 머리를 내리쳤다.

골이 뒤흔들리는 통증에 고개를 털던 황두학이 아슬아슬하게 손을 들어 망치를 쥐었다. 손을 중심으로 둔통이 팔을 타고 번져 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얼음 화살을 만들어 내 자신을 둘러싼 하프 좀비들의 머리통으로 날려 보낸 순간이었다.

“진수 형……!”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