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이현이 조금씩 돌아오는 정신에 미간을 찌푸렸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찌르르한 고통에 한동안 숨을 골라야만 했다.
“……하.”
눈을 느릿느릿하게 깜박일수록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에 기가 찼다. 무수히 상상만 했던 장면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졌다.
“진짜…… 미치겠네…….”
오랜 시간 물을 마시지 못해 목소리가 칼칼했다. 이현이 마른세수를 하기 위해 손을 올렸다가 손목에도 구속구가 채워져 있는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싶어 발목을 바라보니 발목도 비슷한 구속구로 감싸져 있었다.
다행히 사지가 결박된 걸 제외하면 고개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시야를 가리는 안대도 없어서 이현은 빠르게 제가 갇힌 공간을 살폈다.
“설마 강준도 데려온 건가…….”
이현이 갇힌 케이지 좌측으로 강준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사지 또한 이현처럼 결박된 상태였다. 정강필이 하려는 실험이 뭔지 예상이 갔다.
새로운 종으로 보이는 강준과, 기이한 능력을 보이는 자신의 DNA를 추출해 실험하고 싶은 거겠지. 거기에 더해 아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실험체에게 주입할 수도 있고.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은 했어도 막상 눈앞에 닥치자 가슴이 답답했다. 케이지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죽어 가던 실험체들의 눈동자까지 떠올라 더더욱.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이현이 짝, 소리가 나도록 제 볼을 내리쳤다. 가만히 있다가는 정강필에게 휘둘려 그가 원하는 역할을 하다 생을 마감할 게 분명했다.
“……과거에도 한번 겪었던 일이라고 했어.”
이현에게 연구소 지하로 내려가게끔 호기심을 심어 준 이였다. 이현은 정말 그의 말대로 자신에게는 금단의 장소였던 지하로 내려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 안을 샅샅이 살폈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없었다. 누군가 갇혀 있던 흔적이 남은 케이지와 실험 도구, 자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을 뿐.
무언가 생각이 날 듯 말 듯 했다.
눈에 보이는 안개를 향해 손을 휘저어 봐도 막상 손안에 잡히는 건 없는 것처럼, 확실하게 떠오르는 게 전무해 몹시 답답했다.
자신도 실험체였던 걸까. 하지만 부모님의 연구소였다. 부모님이 연구원으로 있는 연구소에서 자신이 실험을 당했다고 하기에는…….
“으, 아아…….”
이현이 머릿속을 가로지르는 끔찍한 통증에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몸부림칠 때마다 구속구가 덜그럭거렸지만 그보다도 귓가에 울리는 이명이 더욱 커 손목이 쓸리도록 몸을 뒤틀었다.
‘우리 아들, 한 번만 더 해 볼까?’
고운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이현은 언제나처럼 그 목소리에 슬픔과 그리움을 느끼는 대신 벌레가 혈관을 돌아다니는 듯한 혐오감을 느꼈다.
‘고작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해서 어떡하니.’
오랜만에 떠오른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이토록 차갑고 잔인하게 느껴지는 걸까.
목소리에 이어 떠오른 광경은 온통 핏빛이었다. 코끝을 파고드는 지독한 비린내에 이현이 헛구역질을 했다.
“우윽, 윽…….”
어쩌면 자신은 아직도 그 공간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지독히 생생한 감각에 이현이 처절할 정도로 몸을 떨었다.
“이런.”
그때 문이 열리고 정강필이 들어왔다. 정강필은 연구원처럼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상태가 심각한 이현을 발견하고 그가 곧장 주사기에 안정제를 넣어 이현에게 다가갔다. 굳게 닫혀 있던 케이지 문이 그가 홈 버튼에 엄지를 올리자 소리 없이 열렸다.
“악몽을 꾸는구나.”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현의 얼굴을 살피는 눈동자에 다정한 빛이 어렸다. 이현이 간신히 실눈을 뜨고 그런 정강필을 바라봤다. 눈물로 얼룩진 눈이 온통 혼란스러운 빛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기억하는 게 더 좋기는 하지만, 안 해도 상관없단다. 어차피 실험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커다랗고 투박한 손이 이현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이현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정강필의 손을 쳐 내려 했다.
“흐윽…….”
하지만 곧바로 바닥에 얼굴이 짓눌리고 말았다. 정강필은 손쉽게 이현을 제압하고 가느다란 팔을 잡아 고정했다.
“따끔할 거다.”
주사기 안에 들어 있던 약이 순식간에 이현의 혈관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현이 남은 힘을 끌어모아 반항하려고 했지만 금세 몸이 늘어져 무용한 몸부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필요한 것들을 준비한 사이에 깨어날 줄은 몰랐네.”
정강필이 축 늘어진 이현을 품에 안아 들고 일어났다. 그러더니 차가운 철제 침대 위에 눕혔다.
어떤 종류의 약을 사용한 건지는 몰라도 이현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무력하게 눈을 깜박이는 것뿐이었다. 입술도 열리기는 했지만 혀가 굳어 말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움직이면 다치니까…….”
정강필은 이어 침대에 연결된 구속 끈을 이현의 몸 전체에 둘렀다. 이미 손과 발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데도 목부터 가슴, 허리, 허벅지, 종아리, 발목까지 끈이 꼼꼼하게 감겼다.
“흐으…….”
“잘됐구나. 마침 저놈도 깨어났어.”
강준까지 깨어난 듯 보이자 정강필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현을 고정한 끈을 한 번씩 더 확인한 후에 강준도 데려와 이현의 옆에 눕혔다.
“이게, 뭐야…….”
강준도 졸지에 이현과 같은 모습으로 철제 침대 위에 올려졌다. 같은 모양의 침대 사이에서 정강필이 실험 도구들을 점검했다.
달칵. 정강필이 스위치를 누르자 이현과 강준의 얼굴 위로 환한 빛이 찌르듯이 쏟아져 내렸다. 두 사람이 빛을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동공 반응부터 확인해 보자.”
그러나 둘은 억지로 눈꺼풀을 벌리는 도구 때문에 눈물이 차오르도록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정강필이 가볍게 혀를 쯧, 차고 새하얀 거즈로 이현의 눈을 닦았다.
눈이 마른 순간 스포이트의 끝에서 투명한 액이 떨어져 내렸다. 화한 느낌에 이현의 눈동자가 재차 눈물로 뒤덮였다.
“오랜만에 하니까 서투르구만.”
정강필이 이현의 동공 변화를 확인하면서 키보드를 두들겼다. 익숙한 타자 소리에 이현이 손끝이라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으으읍…….”
“너는 시끄러울 것 같으니까 입부터 막는 게 낫겠지.”
억눌린 강준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정강필은 강준의 입을 틀어막은 후 이현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실험을 반복했다.
“동공 반응은 큰 차이가 없는데…….”
관찰 결과를 살피던 정강필이 고심하는 듯했다.
“피부터 일단 뽑는 게 낫겠어.”
채혈 도구가 순식간에 이현과 강준의 팔에 연결됐다. 따끔한 통증마저 둔하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몸에 힘이 없는데 피까지 다량 뽑히자 이현은 눈앞이 아득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이현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고 나서야 정강필이 피를 뽑던 걸 멈추고 핏방울이 맺힌 상처 위에 밴드를 붙였다.
“이거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실험이 어렵겠는데.”
정강필은 이현과 강준에게서 뽑아낸 피 중 일부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하다가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현이 시선을 옆으로 돌려 강준을 바라봤다.
강준 또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이현에게 억울한 눈빛을 보냈다. 능력을 잃은 것도 모자라 개처럼 취급받다 이제는 실험체까지 되어 버린 상황이라 울분이 터졌다.
“흐음…… 한 명 정도는 데려와도 괜찮겠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던 정강필이 실험실에서 모습을 감췄다.
“으읍……!”
강준이 이때다 싶어 몸을 버둥거렸다. 이현도 강준을 보고서 사지의 끝부분부터 움직이려고 해 봤지만 여전히 꼼짝할 수 없을 만큼 기운이 없었다. 안정제에 이어 피를 다량 뽑힌 결과였다.
강준이라도 구속구를 풀어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다. 힘이 강한 실험체들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특수 제작된 끈이라는 걸 알면서도 얼마 되지 않는 가능성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서동연에게 납치됐을 때보다도 더한 절망감이 이현의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그러나 강준은 끈 하나도 풀어내지 못했다. 옴짝달싹 못 하게 묶여 있던 끈이 아주 약간 헐거워진 게 다였다.
강준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해졌다. 무시무시한 수의 좀비들이 몰려오는 장소에 홀로 남겨졌을 때부터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절망감이 빠른 속도로 그의 마음을 좀먹었다.
그때도 강준은 제 몸을 구속한 쇠사슬을 풀기 위해 피부가 바닥에 쓸리도록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입 안에서 피 맛이 느껴질 정도로 악을 쓰고 몸부림을 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좀비들이 점점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고 진동이 느껴질 때마다 강준은 자신을 무력하게 만든 이들을 저주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해일에 덮쳐진 것처럼 흔들리는 건물과 함께 영원히 죽음의 늪으로 침몰할 것만 같았다.
진표성이 막아 놓은 문도 불길한 소리를 내며 들썩였다. 기어코 문 앞에 놓인 것들을 밀어 내고 좀비들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을 때 강준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휴,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죽기 직전에 구하러 온 이는 기다리던 이가 아니라 다른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