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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74)화 (74/133)

074.

“그러다 죽으면 큰일이지 않겠니.”

정강필이 옅은 걱정을 내비쳤다. 강준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귀한 실험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좀비들이 협회 쪽으로 따라오면 큰일이니까, 다른 데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어.”

지금도 좀비 웨이브에 휩쓸린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좀비들은 건물 잔해에 깔려 죽어 가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동했다.

좀비들의 피와 살점이 페인트처럼 외벽에 칠해진 건물들의 모습은 멸망한 세상 그 자체였다.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인간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 좀비들의 무자비한 행렬에 폐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진표성이 이곳까지 오면서 마주했던 시신을 떠올렸다.

시신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일반 좀비들 중 일부는 외양 또한 멀끔했다. 좀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진표성이 일행들을 둘러봤다. 이현의 상태가 가장 심각했지만 김솔과 신민우, 김민지도 만만치 않았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상태로 쉬지 않고 달려온 탓이다.

이동하는 중간에 최대한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도 피로는 누적되기만 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해서였다.

이대로라면 좀비 웨이브에 휩쓸려 일행 중 누군가는 지금까지 봐 왔던 일반 좀비로 변할지도 모른다.

“저쪽 건물 옥상에 두면 제법 버틸 거야.”

한수호가 일대에서 튼튼하게 지어진 것으로 유명한 건물을 가리켰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강준을 이용해 좀비들을 분산시키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으읍……!”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 놨다. 그 탓에 강준이 억눌린 소리만 냈다. 진표성이 몰려드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징검다리 삼아 한수호가 알려 준 건물 쪽으로 이동했다.

콰악. 건물 안에 들어가 계단을 타고 오르기보다 바로 외벽에 발끝을 박아 넣어 일직선으로 올라갔다. 건물 안에도 좀비들이 우글했다.

좀비들을 하나둘씩 해치우면서 나아가기보다는 외벽을 타고 오르는 게 훨씬 더 빠른 길이었다.

무거운 자루를 들고 있기에 손 하나는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신 진표성은 몸이 휘청거린다 싶으면 다른 쪽 손을 벽에 박아 넣었다.

손끝이 쿠키인 양 콘크리트 외벽을 파고들어 갔다. 진표성이 순식간에 옥상에 도달해 숨을 골랐다.

옥상 중앙으로 걸어가 자루의 입구를 열었다. 눈물범벅이 된 강준의 모습이 드러났다.

“으으읍! 우읍……!”

강준은 진표성과 시선이 마주치자 더욱더 격하게 사지를 버둥거렸다. 자신에게 들이닥칠 일을 예감한 사람처럼 눈동자에 절망의 빛이 가득했다.

“걱정하지 마. 죽게 안 놔둘 거니까.”

강준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의 팔다리를 묶고 있는 구속구에 연결된 사슬의 끝을 건물 바닥에 박아 넣는 손길이 억셌다. 진표성은 이어 옥상 정원에 조경용으로 놓인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들고 와 사슬 위에 얹었다.

강준이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사슬은 팽팽하게 당겨지기만 할 뿐 끊어지지 않았다. 우울한 시선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진표성을 좇았다.

진표성은 옥상 문 앞에 여러 자재들을 끌어다 쌓고 있었다. 쇠사슬 위에 놓인 바위처럼 무거운 것들이 테트리스처럼 문 앞에서 작은 동산을 이뤘다.

진표성이 옥상 난간으로 가 주변 상황을 살폈다.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회색빛 물결이 밀려들고 있었다.

좀비 떼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탓에 그들의 목적지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S급 좀비 몬스터들이 방향을 이쪽으로 조금씩 트는 게 보였다.

S급 좀비 몬스터들의 뒤로 다른 좀비들도 따라붙었다. 마치 해일처럼 밀려드는 좀비들은 진표성도 경악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진짜로 강준이 끌어들이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현재 이현이 있는 방향으로는 좀비들이 이동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타당한 생각이었다. 진표성이 옥상 난간을 두들겨 봤다.

“……위험할 수도 있겠네.”

건물 곳곳에서 보호 아티팩트의 힘이 느껴졌다. 건물이 튼튼하다고는 하나 좀비들의 수가 워낙 많았다. 게다가 S급 좀비 몬스터라면 아무리 튼튼한 건물이라도 반파시키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준을 다시 데리고 일행에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강준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마음과 일행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은 같은 저울에 달 수 없을 만큼 무게가 달랐다.

진표성이 할 수 없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강준과 시선을 마주쳤다. 상처 가득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으나 잠시뿐이었다.

“야, 조금만 버티고 있어. 협회 쪽 확인하고 바로 구하러 올 거야.”

“으으으읍……!”

강준의 두 눈이 새빨개졌다. 입을 막아 놓은 천도 일부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철그렁철그렁, 쇠사슬이 요란하게 옥상 바닥을 두들겨 댔다.

“그렇게 소리 내면 건물 안에 있는 것들도 몰려온다.”

“…….”

진표성이 겁을 주고 나서야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강준의 눈가를 따라 굵은 눈물방울이 뚜욱, 뚝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버리는 거 아니야. 진짜 최대한 빨리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참아.”

한숨을 내쉰 진표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적거릴 시간에 빨리 볼일을 보고 되돌아오는 게 나으리라. 멀어져 가는 진표성의 그림자 위로 눈물 젖은 시선이 길게 따라붙었다.

* * *

“협회가 무너진 게 맞는 것 같네요.”

“그러게. 큰일이구만.”

다들 협회 쪽으로 다가가면서 예상한 일이지만 실제 두 눈으로 목도하고 나니 착잡했다. 협회 본부는 몬스터가 쏟아지는 게이트가 열리고, 좀비 사태까지 발생한 후 대한민국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협회 본부를 중심으로 삶의 터전이 새롭게 형성됐을 정도로.

그런데 지금 협회는 멀쩡한 건물을 찾아 보기 힘들 만큼 모든 곳이 반파된 상태였다. 남아 있는 거라고는 이미 움직일 수 없게 된 사체들뿐이었다.

“아무래도 좀비 웨이브가 이곳도 휩쓸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도로 건물들이 무너진 건 말이 안 되지. 폭탄이 터졌다고 하기에는 남아 있는 흔적들이 다르고.”

한수호가 협회에 남은 흔적들을 유심히 살폈다. 알파 1팀을 비롯한 다른 팀들이 파견 나갔다고는 하나 협회에는 기본적으로 일정 수 이상의 에스퍼들이 상주한다.

“제일 멀쩡한 건물이 가이드 센터네요.”

다른 곳들은 다 무너져 내려 골조만 남은 것들도 수두룩한데 유일하게 가이드 센터만 한쪽 벽만 무너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만 여기에 있어요.”

“네.”

한수호가 품에 안고 있던 이현을 바닥에 내려 주고 빠른 속도로 가이드 센터 쪽을 향해 움직였다. 군데군데 놓여 있는 시신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부는 얼굴이 낯익었다. 협회에 소속된 직원들이었다. 한수호의 뒤로 진표성도 따라붙었다. 정강필만이 자리에 남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진표성의 판단이 맞았다. 좀비 웨이브를 일으킨 좀비들뿐만 아니라 일대의 좀비들이 강준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주변에 좀비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수가 적었다.

“……동료들이야.”

진표성이 푸른 핏줄이 불거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가이드 센터에 가까이 다가가자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에스퍼 정복을 입은 이들이 보였다. 일부는 가이드 정복을 입고 있었다. 새하얀 가이드 정복은 말라붙은 피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눈도 감지 못하고 죽었어. 일반 좀비나 좀비 몬스터에게 당한 게 아니야.”

진표성이 시신들의 곁에 다가가 한 명씩 눈을 감겨 줬다. 애석하게도 다들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눈동자에는 희뿌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사람일 때 죽은 거였다. 몸에 남아 있는 자상과 교살의 흔적에 진표성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프 좀비들이군.”

한수호가 범인들을 곧바로 추리해 냈다. 예상했던 일이다. 서동연이 말한 것들과 정강필이 알려 준 정보를 조합하면 협회장을 비롯한 수뇌부가 하프 좀비 측에 넘어갔으니까.

하프 좀비들이 협회 본부를 습격했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생존자들은 어디로 이동했을까.”

진표성이 시신들을 수습하는 동안 한수호는 흔적을 찾았다. 분명 알파 1팀은 협회에 도착했다. 임태한과 팀원들이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아남은 상태로 어딘가에 있을 게 분명했다. 이동한 흔적을 찾아 그들과 합류해야만 한다.

“끄흑…….”

한수호의 귓가에 이질적인 소리가 맺힌 건 그때였다. 지척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한수호는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찾아 청력을 기울였다.

“진표성, 너는 여기에 있어. 나는 안쪽 좀 살펴보고 올 테니까.”

“그래. 조심해, 팀장.”

진표성도 수상한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시신들을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한 명, 한 명 묻어 주진 못해도 좀비들에게 더는 밟히지 않도록 조치라도 취해야 했다. 후에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 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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