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73)화 (73/133)

073.

“저쪽에서…… 건물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요?”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이현의 시야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좀비들을 처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던 에스퍼들의 시선이 이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휙 돌아갔다.

언뜻 보면 검은색 파도로도 보이는 것들이 뿌연 먼지를 피워 올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파도라면 밀려 들어왔다가도 되돌아가야 하는데 검은색 파도는 끝도 없이 일행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다들 떨리는 시선으로 기이한 현상을 보면서 침음을 삼켰다. 김솔의 손 아래 잡힌 이현의 옷자락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저건 건물이 아니라…….”

“……좀비 떼야.”

협회 본부 건물과의 거리가 불과 1km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아도 알파 1팀과 협회 내의 사람들이 걱정돼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진표성이 하던 말을 정강필이 이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아연한 기색으로 물들었다.

“우회해야겠습니다.”

현재는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최대한 해치우면서 협회로 향하는 최단 노선을 따라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좀비 떼들을 뚫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저만한 수를 아무런 희생 없이 뚫고 가는 건 아무리 알파 1팀이라 할지라도 불가능했다. 지금과 같은 전력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좀비들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S급 좀비 몬스터들도 수가 열 마리를 넘어가.”

진표성이 빠르게 좀비들의 전력을 파악했다. S급 좀비 몬스터의 수가 그 정도고, A급 좀비 몬스터의 수는 그 몇 배를 웃돌았다. 하급 좀비 몬스터와 일반 좀비는 수를 세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크햐아아악……!”

“크르르…….”

여전히 주변에서는 각양각색의 좀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한수호가 전방이 아닌 측면의 좀비들을 그림자를 세워 밀어 내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신호를 받은 진표성이 한수호가 가리키는 방향의 좀비 떼들을 도륙했다. 정강필은 이번에는 후방으로 움직여 등을 덮치려고 달려드는 좀비들을 밀어 냈다.

“저, 저, 좀비들……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 같은데요…….”

수천 마리의 좀비들이 한 번에 움직이는 광경은 자연재해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좀비들이 내뱉는 음울한 하울링에 주변의 대기마저 진동했다.

신민우가 한수호를 따라 움직이다 말고 뒤돌아봤다 오금에 힘이 풀려 땅에 주저앉았다.

“지금 정신 놓고 있을 때예요?”

신민우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러 달려드는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도끼로 내려찍으며 김민지가 윽박질렀다. 신민우가 정신을 차리고 김민지를 도와 팔을 허우적거리는 일반 좀비의 턱 아래를 칼로 쑤셨다.

“좀비 웨이브야. ……협회 쪽이 무사할 가능성이 더 낮아졌구만.”

정강필도 좀비 웨이브를 직접 목격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만큼 저 규모로 좀비들이 뭉쳐 다니는 건 생각보다 흔하지 않았다.

특히 인간들이 여전히 살아가는 지역은 에스퍼들이 주기적으로 좀비들을 청소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은신처로 삼았던 벙커에 몰려든 좀비들의 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많았다. 하지만 지금 파도처럼 밀려오는 좀비들은 그때와 비교하기도 힘들 만큼 수가 어마어마했다.

“결계가 전체적으로 다 뚫린 거야.”

진표성이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서대문구뿐만이 아니었다. 이현 일행은 협회로 향하면서 심혈을 기울여 설치했던 결계들이 군데군데 파손된 걸 발견했다.

결계를 원래대로 돌릴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행은 달려드는 좀비들만 상대하면서 최대한 빨리 협회에 도달하는 목표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캬하악……!”

진표성이 손을 휘둘러 달려드는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반으로 갈랐다. 손톱을 타고 걸쭉한 피와 뇌수가 흘러내렸다. 이미 날카로운 손톱은 좀비들의 체액으로 뒤덮여 원래의 색을 알기 힘들 만큼 검붉게 물든 상태였다.

벙커를 나설 때부터 각오하기는 했지만 진표성조차 지친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일정이 고됐다. 이현과 김솔은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이현은 틈틈이 능력을 사용한 탓에 입술마저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진표성이 한수호에게 다가갔다.

“팀장, 어떡할 거야? 협회 쪽으로 계속 이동할 거야, 아니면 다른 쪽으로 가서 일단 숨을 돌릴 거야?”

한수호가 우회한다고 말했지만 그게 협회에 계속해서 간다는 뜻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좀비 웨이브를 피해 잠시 한숨 돌릴 장소를 찾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부팀장과 연락은?”

“여전히 안 돼. 틈틈이 시도하고는 있는데…….”

임태한과 잠깐이나마 통신을 했기에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했다. 협회 본부랑 가까워질수록 연락이 닿을 가능성도 높아지리라 예상했는데, 여전히 소식불통이었다.

“협회 본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어떤 상황인지는 제대로 파악해야 해. 그래야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

한수호가 무겁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협회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얼마 남지 않았다. 좀비 웨이브에 휘말린 일대의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지만 않으면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도 가능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협회 본부 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야만 했다.

“그러면 팀장이 가이드 좀 품에 안아. 저러다 쓰러지겠어.”

진표성이 이현을 눈짓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이현을 부축하고 싶었지만 진표성은 늑대 수인 에스퍼였다. 전투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현을 품에 안으면 손발이 묶여 버리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진표성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수호에게 이현을 맡기는 이유였다.

한수호는 이현을 품에 안고도 능력을 사용하는 게 가능하니까.

“김이현 가이드,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괜, 찮아요.”

“그러다 쓰러집니다.”

진표성이 말하지 않아도 한수호는 이현을 부축할 생각이었다. 그만큼 현재 이현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좀비 웨이브를 본 후 이현이 가이딩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다 사용한 탓이다.

덕분에 일행은 훨씬 수월하게 협회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좀비 웨이브가 지척에 다다르지 않았을 때 발견한 것도 다행이었다.

좀비들의 수가 많은 만큼 그 기세는 어마어마했으나 다행히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달려오는 좀비들이 서로의 몸에 부딪쳐 넘어지기 일쑤였다.

일반 좀비와 모양도, 크기도 다른 좀비 몬스터들이 뒤섞여 있어 좀비들 무리는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도 혼잡했다.

“아저씨…….”

김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현의 상의를 붙잡고 흔들었다. 자신의 몸을 받치고 있는 이현의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어서였다.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손을 뻗어 이현의 얼굴 가득 맺힌 식은땀을 닦아 주는 일이 더 중요할 만큼. 김솔은 온 마음으로 이현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현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한수호에게 안겼다. 이러다가는 자신뿐만 아니라 김솔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대부님, 속도를 좀 높여야 될 것 같습니다. 두 사람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 걱정하지 마.”

한수호가 신민우와 김민지를 정강필에게 부탁했다. 정강필이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자루를 진표성에게 건넸다. 기절한 강준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자루를 건네받은 진표성의 한쪽 눈썹이 위로 들렸다.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진표성이 자루와 좀비 웨이브를 번갈아 바라봤다.

“강준이 좀비들을 끌어모으는 효과가 있으면 이놈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벙커에서 나선 후 진표성과 한수호, 정강필, 그리고 이현까지 강준과 좀비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벙커 주변에 우글거리던 좀비들은 한동안 이현 일행을 뒤쫓아 왔다.

외뿔 구렁이부터 일반 좀비들, 하급 좀비 몬스터들까지.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따라오는 놈들도 있겠지만 외뿔 구렁이는 거의 발작할 기세로 따라붙었다.

결국 외뿔 구렁이를 한 마리씩 처리하고 나서야 이동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지 않았다면 외뿔 구렁이가 내지르는 비명에 일대의 좀비들이 눈밭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테니까.

게다가 진표성과 한수호는 아직 좀비들을 끌어모으는 게 강준인지, 이현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강준을 이용해 실험하면 그 부분에 대한 의문은 확실히 풀릴 것 같았다.

한수호도 진표성의 말에 고민에 빠진 순간이었다. 이현도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강필은 이채를 띤 눈으로 이들이 내릴 결정을 잠자코 기다렸다.

“으으읍……!”

때마침 강준이 자루 안에서 깨어났다. 자신을 두고 진표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듯이 자루가 들썩이도록 몸부림치는 게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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