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전복을 먹을 때만 해도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막상 진표성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저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김민지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가 지내는 방으로 들어갔다.
신민우가 걱정하는 진표성은 별생각이 없었다. 거의 비워져 있는 냄비를 보는 얼굴에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현이 밥 한 공기는 먹었겠거니 생각이 들어서였다.
“벙커 안에 설치해 둔 경고 시스템에 신호가 들어왔어. 동트기 전에 바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한수호와 진표성만 남게 되자 정강필이 말 못 했던 부분을 얘기했다. 다른 이들이 들으면 괜히 불안에 떨까 봐 하지 못한 말이었다.
“몇 시간은 버틸 수 있는 거야?”
“응. 이곳은 지을 때 특별히 튼튼하게 지었거든.”
벌써 어둑해졌다. 다들 눈을 붙인다고 해도 몇 시간도 자지 못할 터.
정강필은 먹는 둥 마는 둥 끼적대는 한수호와 진표성을 보면서 방을 가리켰다.
“다 먹고 너네도 들어가서 쉬어. 회복 포션 마셨다고 해도 피로가 풀리지는 않으니까. 불침번은 내가 서마.”
“괜찮습니다.”
정강필의 제안을 한수호가 바로 거절했다. 한수호는 지금도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정강필이 괜찮다고 했으나 여전히 벙커의 천장은 불길하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진표성과 지상에 올라가 꽤 많은 수의 좀비들을 처리하고 내려왔는데도 좀비들의 기세가 사나웠다. 변수의 변수가 거듭되는 상황이었다.
이현이 좀비들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되는 지금,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리 없었다.
“이현이 일에만 관련되면 고집불통이 되는 건 여전하구나.”
정강필이 혀를 쯧쯧 찼다. 한수호를 억지로 재울 수도 없으니 한수호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둬야만 했다.
두 사람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듣던 진표성이 팔짱을 꼈다. 내내 궁금하던 부분이었다.
“팀장, 진짜 가이드랑 예전에 잘 알았던 거야? 아저씨는 어떻게 알아?”
진표성이 한수호와 알고 지낸 기간만 따져도 꽤 오래됐다. 그런데도 진표성은 이현이 알파 1팀에 임시 가이드로 파견 올 때까지 별다른 접점 없이 지냈다.
그리고 그건 한수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한수호가 개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한수호는 기본적으로 쉬는 기간에도 바쁠 때 처리하지 못했던 일을 마무리했다.
‘워커홀릭’이라는 단어가 협회 내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현을 마주한 순간부터 자신이 아는 팀장 같지 않더라니. 자신은 모르는 과거가 있는 게 분명했다.
“……오래된 인연이지.”
한수호는 침묵했다. 진표성의 질문에 대답한 건 정강필이었다. 그러나 정강필의 대답도 진표성의 의문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너무 애매한 답변이었으니까.
“가이드는 기억을 못 하는 거네. 팀장만 알고 있는 과거고.”
진표성은 스스로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을 짜깁기해 이현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유추해 냈다.
“팀장은 가이드가 기억을 되찾기를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는 것 같고.”
그렇다는 건 이현이 잃어버린 기억이 결코 이현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는 거다. 그 생각까지 도달하자 진표성은 묵직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은 한수호와 이현의 사이를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야 하나, 애가 탔다.
“표성이가 언제 이렇게 똑똑해졌나.”
정강필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깰 겸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진표성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흩트려 놓기도 했다.
“아, 지금 머리 상태 완전 엉망인데. 아저씨는 비위도 좋아.”
제대로 씻지도 못한 상태였다. 자신도 제 머리카락이지만 피와 오물로 덮여 있어 만지기 싫은 상태였다.
진표성이 민첩하게 몸을 움직여 정강필에게서 두어 걸음 멀어졌다. 배도 대충 채웠으니 얼른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만 확인하고.
“강준은 상태 어땠어요?”
“기절시키니까 그 뒤로는 코까지 골면서 자더구나.”
“허어…….”
정강필도 어이가 없는지 진표성을 따라 헛웃음을 지었다. 내심 긴장한 상태로 강준을 틈틈이 살폈다. 또다시 피에 굶주려서 깨어나면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지금도 코골이 소리가 들려오는 거 보니까 아주 잘 자고 있고.”
강준을 넣어 둔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진표성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궁금했던 걸 다 확인한 진표성이 어깨를 으쓱이며 방으로 이동했다.
“불침번 선다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으니까 저는 편하게 잡니다.”
오늘 전투는 진표성도 극심한 피로를 느낄 만큼 쉽지 않았다. 다리의 상처는 나았으나 당장이라도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을 만큼 온몸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래. 너라도 편히 자는 게 낫지.”
정강필이 진표성을 배웅하듯 손을 휘적거리고 한수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수호는 별다른 말 없이 자신과 진표성이 먹은 그릇들을 개수대로 옮기고 있었다.
“좀비들 몰려드는 현상, 이현이랑 관련 있는 거냐?”
한수호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 떨렸다. 한수호가 등지고 있던 몸을 돌려 정강필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니요.”
부엌 안에 울리는 목소리는 고요하고도 낮았다. 정강필을 응시하는 눈동자 또한 동요 없이 굳건했다.
“제가 생각했을 땐 강준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한수호는 현재 정강필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이현의 부모가 하던 연구와 본인이 연관돼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숨겼던 사람이다.
이현이 기억을 되찾는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면 평생을 숨겼을지도 모른다. 그가 한수호에게 보인 호의와 애정이 모두 거짓은 아닐지라도 기만으로 점철되어 있는 건 분명하다.
강준이 이상 반응을 보였을 때 그를 보던 정강필의 눈빛에는 무시하기 힘든 어떠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한수호는 그런 유의 눈빛을 잘 알았다.
철창 안에 갇혀 있을 때 매일같이 보던 눈빛이었으니까.
한수호가 철장 안에서 마주했던 눈빛 중 혐오감이 들지 않았던 이는 이현이 유일했다. 이현의 눈에는 호기심과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을지언정 한수호를 낱낱이 해부하고 싶어 하는 질 낮은 욕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부님도 쉬세요. 불침번은 한 명만 서도 충분하니까요.”
한수호가 대화를 끊고 싶다는 말을 돌려서 했다. 정강필은 한동안 말없이 한수호와 시선을 맞추더니 순순히 몸을 돌려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한수호는 피곤한 눈을 감았다.
‘형, 괜찮아요……?’
맑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새까만 눈동자 또한 생생했다.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시간이 쌓여 갈수록 한수호에게 남은 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과 세상에 대한 분노였다.
입 밖으로 나오는 건 고통에 억눌린 신음뿐이었다.
이현의 물음에 대답하려고 입술을 떼었으나 피딱지가 말라붙어 한마디조차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위해 이현은 무릎을 끌어모아 앉아 차분하게 기다려 줬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괜찮다는 듯 웃어 주는 말간 얼굴에 눈가로 열기가 몰렸다. 한수호는 처음으로 인간을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그의 어깨에 기대어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켜 줄 거야, 반드시.”
어느새 떠진 눈은 이현이 잠든 방문을 고요히 응시하고 있었다. 제게 삶에 대해 가르쳐 준 아이의 인생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한수호에게 매일같이 해가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 * *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다들 기운 내!”
정강필이 다가오는 좀비 떼들을 바짝 구운 오징어처럼 만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현이 가이딩 마력을 방사형으로 퍼트렸다.
쉬지 않고 가이딩을 한 영향으로 심장 쪽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최대한 고통스러운 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품에 안겨 있는 김솔은 곧바로 이현의 상태를 눈치챘다.
“아저씨…….”
“솔아, 괜찮으니까 눈 꼭 감고 있자. 할 수 있지?”
이현이 주변을 둘러봤다.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좀비 떼들과 좀비들이 사체가 되어 쌓인 무더기가 가득했다.
발밑까지 기어 온 구더기 한 마리를 이현이 신발 밑창으로 눌러 죽였다. 이제는 이런 구더기 한 마리쯤은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는 스스로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김솔을 품으로 더욱 바투 끌어안고 이현이 힘을 내 걸음을 옮겼다.
현재 정강필과 진표성은 전방에서 좀비들을 처리하면서 길을 뚫고 있었고, 한수호는 측면과 후방을 방어하는 중이었다.
“으아아! 그만 좀 죽어라, 제발!”
“입으로 싸우지 말고 손을 움직여요!”
신민우와 김민지도 각자 무기를 하나씩 들고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이현도 다시 힘을 내 가이딩 마력을 시동하려고 할 때였다.
이질적인 무언가가 시야에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