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위험한 짓 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진표성이 외부로 나가기 전에 이현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다. 아직 정강필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현을 두고 나가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만큼 바깥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김이현 가이드, 진표성 말대로 강준한테 접근하면 안 됩니다.”
한수호도 다가와 강한 눈빛으로 이현을 내려다봤다. 대답하지 않으면 물러나지 않을 기세였다. 이현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저씨…….”
더군다나 김솔도 김민지의 품에서 내려와 이현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아이부터 품에 안아 들었다.
“솔아, 괜찮을 거야. 팀장님이랑 진표성 에스퍼가 금방 해결해 줄 거니까.”
“네에…….”
김솔이 이현의 목을 끌어안고 숨을 골랐다. 진표성이 이현을 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김민지와 신민우에게도 눈짓했다.
“먹어야 살아. 그러니까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밥 먹고 있어. 버리기에는 아깝잖아.”
입맛이 없어도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감이 더욱 커질 테니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얘도 밥 잘 먹여야 해. 한 수저도 제대로 못 먹었네.”
진표성이 특별히 이현에게는 김솔의 존재를 상기시켜 줬다. 연구원일 때 이현이 어떤 성격인지 일면을 엿봤다. 전투에는 소극적인 사람이 연구와 관련된 일에는 제법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데 거침이 없었다.
“알겠어요. 저희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현이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수저까지 들어 보이자 그제야 진표성과 한수호가 바깥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의 뒤로 걱정 어린 시선이 따라붙었다.
“내가 선두로 나설게. 팀장이 뒤따라와.”
“그래.”
진표성의 근육이 위압적일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옷에 가려지지 않은 피부 위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은빛 털이 돋아났다.
입술 바깥으로는 걸리는 것들은 다 찢어발길 듯한 날카로운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왔다. 짐승의 것에 가깝게 변한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이현을 살피고는 계단 위로 향했다.
두 사람은 이후 말없이 가파른 계단을 최고 속도로 달려서 올라갔다. 금세 문 앞에 다다랐다. 지상에 가까워질수록 어렴풋이 들려오던 소리들이 커져 갔다.
쿠우웅. 쿠웅. 쿠우우웅. 굳게 닫힌 문이 당장이라도 열릴 기세로 흔들렸다. 문틈으로 지상의 흙먼지들이 부옇게 새어 들어왔다.
“후우…….”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진표성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마력을 흘려 넣어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아, 씨발…….”
막을 새도 없이 밀려들어 오는 좀비 떼들에 진표성이 이를 악물었다. 그들을 비집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움직임이 거칠었다. 한수호의 안색도 심각하게 굳었다.
그림자를 움직여 문을 넘어 좀비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패처럼 막았다. 구덩이를 기어오르는 벌레들처럼 꾸역꾸역 몰려드는 좀비 떼를 막느라 그림자의 색이 한층 짙어졌다.
“언제 이렇게 몰린 거야.”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이었다. 진표성이 손톱을 휘둘러 일반 좀비 다섯의 머리를 한 번에 가르고 잠시 숨을 골랐다.
이상하게도 좀비들이 몰리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잠깐 사이에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글거리는 수준일 줄은 몰랐다.
쿠우우웅. 쿠우웅. 좀비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였다. 일부는 바닥으로 넘어져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 좀비 떼들에 순식간에 육편으로 변해 갔다.
“S급 몬스터까지. 진짜 돌아 버리겠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울리던 땅의 진동은 S급 좀비 몬스터 외뿔 구렁이가 만든 거였다.
“하나, 둘, 셋, 넷…….”
게다가 숫자가 하나가 아니었다. S급 좀비 몬스터는 S급 에스퍼들도 상대하기 쉬운 존재가 아니었다. 외뿔 구렁이는 특히 몸체가 커다랬다.
좀비가 된 영향으로 군데군데 살점이 썩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십 미터에 이르는 길이와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 같은 몸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키이이…….”
“키히힉, 키히…….”
외뿔 구렁이 네 마리가 엉켜서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좀비들이 거대한 몸체에 압살됐다. 그 사실 하나만큼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몸체의 위용이 엄청났다.
“외뿔 구렁이를 유인해서 좀비 떼들의 수를 먼저 줄이는 게 낫겠어.”
“나도 동의.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 같네.”
문을 안전하게 닫은 후 진표성의 곁으로 다가온 한수호가 말한 의견에 진표성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오른쪽 어깨를 돌렸다.
완전 수인화한 영향으로 후각이 예민해졌다. 한데 섞여 코끝을 파고드는 악취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당장 이현에게 달려가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싶을 정도로.
“팀장이 오른쪽으로 움직여. 내가 반대 방향으로 갈 테니까.”
진표성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한수호의 양손에서 거무튀튀한 단검 두 개가 형성됐다.
한수호가 단검을 하나씩 외뿔 구렁이의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키히익……!”
“캬학……!”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공격받았다는 걸 알아차린 외뿔 구렁이가 고막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거대한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한수호가 놈들이 있는 방향으로 핏방울을 뿌렸다.
강준에게 피를 먹일 때 상처를 냈던 손끝을 재차 단검으로 그은 거였다. 신선한 인간의 피 냄새에 외뿔 구렁이가 한수호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했다. 거대한 바위 같은 머리통 두 개가 한수호가 있는 방향으로 휙 움직였다.
“크햐악……!”
“캬르르……!”
다른 좀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지를 잃은 괴물들이 겨우 식욕에 휘둘려 한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수호가 좀비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특히 외뿔 구렁이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두 마리가 서로 부딪치도록 유도했다.
신경질이 난 외뿔 구렁이 한 마리가 다른 외뿔 구렁이의 몸뚱이를 물어뜯었다.
“키히이이……!”
물린 외뿔 구렁이가 몸을 꿈틀거리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한수호의 의도대로 수많은 좀비들이 외뿔 구렁이 아래에서 뭉개졌다.
“팀장, 다른 쪽으로 유인해도 좀비들이 계속해서 이쪽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이 아니지?”
“응.”
신선한 먹잇감을 찾기 위해 좀비들은 자연스럽게 몰려다니게 됐다. 가끔은 그게 엄청난 수를 이뤄 ‘좀비 웨이브’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 벙커 주변으로 몰려든 좀비들은 좀비 웨이브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건물들이 산재한 터라 일정 수 이상의 좀비들은 몰려들지 못해서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좀비들이 몰려든 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그들이 먹잇감으로 인식하는 이들은 저 깊은 지하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강준이 좀비들을 불러 모으는 것 같아. ……강준이 아니라면 김이현 가이드가.”
가장 큰 가능성 두 가지였다.
모텔에 잠시 몸을 피했을 때도 비정상적으로 좀비들이 모텔 건물 주변에 몰려들었었다. 지금은 S급 좀비 몬스터 네 마리가 추가되어 더 상황이 위험해 보이는 것일 뿐,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산 넘어 산이구만.”
진표성도 한수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이현의 능력 자체가 베일에 가려진 것처럼 비밀스러웠다. 어떤 효과를 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 번은 우연으로 칠 수도 있지만 벌써 유사한 상황이 두 번이나 발생했다. 두 번째마저도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힘들었다.
좀비들을 끌어당기는 미지의 힘이 있다면 좋은 일은 아니었다. 좀비들을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진짜 가이드 말대로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가야겠어. 지금은 다 추측만 가능한 상황이잖아.”
게다가 이현은 좀비 치료제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소리도 했다. 수석 연구원인 이현의 말인 만큼 신빙성이 있었다.
이현의 성격상 자신도 없는데 그런 소리를 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좀비들을 해치워도 계속해서 몰려든다면 차라리 외뿔 구렁이는 놔두는 게 나아. 움직이면서 좀비들을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한수호가 외뿔 구렁이를 처리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렸다. 지금도 외뿔 구렁이들은 발악하듯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팀장, 벙커가 버틸 수 있을까?”
“오늘 떠나는 건 무리야. 곧 해가 질 테니까. 내일 동이 트기 직전에 움직이는 게 나아. 튼튼하게 지어진 곳이니 하룻밤 정도는 괜찮겠지.”
좀비들이 닫힌 문을 열 가능성은 없었다. 다만 지반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수많은 좀비들이 우글거려서 땅이 계속해서 흔들리는 게 문제일 뿐.
“……얄미운 놈도 다시 데려가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