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64)화 (64/133)

064.

“김이현 가이드.”

한수호가 이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현의 뺨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싸 쥐었지만 이현이 곧바로 한수호의 손을 쳐 냈다.

“흐으으, 아흐…….”

곁을 맴돌던 한수호가 이현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순간보다 현재 이현의 발작이 심했다. 당시에는 금방 까무러쳤었는데 지금은 끊임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한수호의 손길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얌전히 있어.”

진표성이 서둘러 전투 불능이 된 강준을 묶기 시작했다. 아직도 강준의 얼굴에는 입마개가 채워진 상태였다. 더불어 팔과 다리도 쓸 수 없도록 결박했다.

뒤통수가 깨진 강준은 희미한 신음만 흘릴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또한 일반 좀비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완전히 일반 좀비처럼 변했다면 뒤통수가 깨진 순간 사체로 변했을 거다.

뒤처리를 끝낸 진표성이 이현에게 다가갔다. 이현이 김솔의 손길마저 거부하고 있어 김솔은 숨넘어갈 듯이 울고 있었다.

진표성이 아이의 눈가에 가득한 눈물을 닦아 줬다. 서러웠던 김솔이 품에 매달려 왔다. 김솔의 등을 두들기며 진표성이 한수호도 살폈다.

한수호도 김솔 못지않게 큰 충격에 빠진 듯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이 터지고 있었다. 강준의 이상 상태뿐만 아니라 발작을 일으킨 이현에, 점점 지상에 몰려들고 있는 좀비 떼들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있는 게 없었다. 협회 쪽으로 떠나기로 결정을 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진표성이 한수호부터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손을 뻗을 때였다. 그보다 먼저 다가온 정강필이 한수호의 어깨를 강한 힘으로 쥐었다.

“수호야, 정신 차려라. 이현이는 괜찮을 거니까.”

충격으로 굳어 있던 한수호가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현이 자신을 거부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고 제 손길을 거부하는 이현의 모습에 순간 아찔했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이현이 당장이라도 넘어갈 듯이 숨을 헐떡거렸다. 한수호가 고개를 숙인 채 겁먹은 아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이현의 등을 감싸 안고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흐으, 윽…….”

제 품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는 가녀린 몸체를 단단하게 옭아맸다. 이현이 계속해서 발작을 일으키는 걸 지켜볼 수는 없었다.

다치지 않도록 그림자를 움직여 이현의 사지를 고정하고 두 손을 모아 코와 입을 막았다. 거칠게 튀던 이현의 숨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동공조차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새까만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온 건 그 순간이었다.

“한수, 호 에스퍼님…….”

“이제 좀 괜찮습니까?”

이현이 버둥거리던 움직임을 멈췄다. 비릿한 피 냄새가 주변에 진동했지만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한수호의 체향에 빠르게 뛰던 심장이 서서히 진정됐다.

“제가 또, 발작을…….”

오랜 시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것처럼 목소리가 탁했다. 이현이 목을 부여잡고 끙끙거리자 진표성이 부엌에 재빠르게 다녀와 물병을 건넸다.

한수호의 도움으로 이현이 물을 한 모금씩 삼켜 나갔다. 물로 목을 축이자 멍했던 정신도 어느 정도 맑아졌다.

“강준 씨도…… 또 발작을 일으킨 모양이네요.”

“네. 점점 일반 좀비의 본능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현이 엉망이 되어 버린 주변을 살폈다. 미동도 없이 추욱 늘어져 있는 강준은 언뜻 보면 죽은 것처럼 창백했다.

“……아저씨.”

“솔이 많이 놀랐구나. 아저씨 이제 괜찮아.”

김솔이 진표성의 품에서 꼬물꼬물 내려왔다.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우물쭈물하며 다가오는 아이의 모습에 이현이 힘없이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렸다.

한수호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있어 다행이었다. 달려오는 김솔을 받아 낸 몸이 힘없이 휘청였으니까.

이현이 김솔의 등을 토닥이면서 느릿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한수호와 깊은 입맞춤을 나눈 후 잠에 빠져들었다.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후로도 체력이 떨어졌지만 정강필을 만난 후로 더 심해졌다.

이현은 이번에도 꿈을 꿨다. 과거를 여행하다 온 것처럼 꿈은 눈뜬 이후에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정강필은 얼어붙은 이현을 향해 살갑게 웃어 보였다. 이현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다가 몸을 휘청거리자 재빠르게 다가와 부축까지 해 줬다.

‘몸이 많이 약한가 보군.’

“몸이 많이 약하구나.”

꿈속에서 정강필이 말한 내용과 현재의 그가 말하는 목소리가 겹쳐 귓가에 환청처럼 울렸다.

이현이 떨리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살피는 얼굴은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 같았다.

‘부모님이 이 아래에 있는 시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셨니? 정말 이상한 일이네.’

하지만 그는 분명 호기심을 자극해 이현을 기어코 지하로 내려가게 했다. 꿈속의 기억은 이현이 지하실 문 앞에 다다른 장면에서 뚝 끊기고 말았다.

지하공간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남아있는 자료를 찾기 위해 다시 연구실로 돌아갔을 때 처음 발견한 공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현은 스무 살때 지하에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강필 때문에.

이후의 기억도 희미했다. 잠들어 있던 자신이 언제 일어나 거실로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발작을 일으킨 뒤였다.

한동안 피를 봐도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물 좀 더 마셔요.”

이현의 표정이 또다시 멍해지자 한수호가 물병을 들어 올려 이현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김솔은 여전히 이현의 목을 끌어안은 채 훌쩍이고 있었다.

이현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한수호에게서 물병을 받았다. 김솔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놀란 아이를 다독였다.

“솔이도 물 한 모금만 마시자.”

“네에…….”

김솔이 콧물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이현의 눈동자를 한번 살핀 후에야 물을 받아 마셨다.

한결 진정된 김솔의 등을 손으로 도닥거리면서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수호가 휘청거리는 이현의 몸을 부축해 소파까지 데려다줬다.

이현이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를 때 방 안에 숨어 있던 신민우와 김민지도 나왔다. 처참한 몰골의 강준을 마주한 신민우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코끝을 찌르는 피비린내에 그가 코를 막고 소파 한쪽에 걸터앉았다.

“마침 다 나왔네.”

진표성이 모여 앉은 이들의 얼굴을 둘러봤다. 강준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고, 이현의 발작도 가라앉았다. 여기 있는 이들 중 버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 줘야만 했다.

“상황이 좀 정리되면 협회 쪽으로 갈 거야.”

“협회요? 거기는 안전한 거예요?”

새롭게 바뀐 목적지에 신민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코를 막고 있던 손을 뗐다가 느껴지는 역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금 코를 막았다.

“아니,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어. 하프 좀비들이 그쪽에도 침입한 상태니까.”

“그러면 그쪽으로 왜 가요? 이렇게 좋은 데가 있는데.”

신민우는 진표성의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S급 에스퍼들의 귀에는 현재 지상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아우성이 들리지만, 일반 사람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니까.

“지금 위쪽에 좀비들이 바글바글해.”

“그래도 이 밑으로는 못 내려오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

하프 좀비가 섞여 있다면 모를까. 일반 좀비나 좀비 몬스터는 본능이 강해진 대신 이성이나 지능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특히 닫힌 문은 에스퍼의 마력으로만 여닫을 수 있었다.

좀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신민우는 더더욱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의 입장도 이해됐다. 이곳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난 것도 아니다. 고작 하룻밤을 편안하게 지낸 게 다였다.

이전의 생활과 비교했을 때 벙커 안에서의 생활은 5성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지내는 거나 다름없었다. 먹을 것도 풍부하고, 공기도 쾌적했으며, 무엇보다 매일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여기에 있을 수는 없어. 협회에 있는 동료들도 만나야 하고.”

진표성은 신민우에게 화내는 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신민우를 설득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제 동료가 아니라 그쪽 동료들이잖아요. 저는 여기에서 나가기 싫다고요!”

이쯤 되자 진표성의 관자놀이에도 시퍼런 핏줄이 불거졌다. 원래도 얄미웠던 놈이 하는 말마다 혈압을 오르게 한다.

식량이 풍부하기는 하지만 좀비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프 좀비들이 대한민국을 장악해 가는 상황에서 이곳에 언제까지고 머무르는 건 현실에서 도피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너는 여기에 있든가.”

진표성이 마음대로 하라는 듯 신민우에게 선택권을 줬다. 가기 싫다는 놈을 억지로 끌고 가 봐야 사고가 터질 가능성만 높다. 안 그래도 신경 써야 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지켜야 하는 목숨 하나가 줄어든다면 진표성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막상 진표성이 선택권을 내밀자 신민우가 우물쭈물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얼굴이 혼란으로 어두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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