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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63)화 (63/133)

063.

“무사하다는 말만 듣고 무전이 끊겼어.”

“……뭐?”

“아무래도 협회랑 인근에 통신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설치된 것 같아. 부팀장이랑 얼마간 무전으로 대화하기는 했는데 정보가 너무 단편적이야.”

그렇다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수호가 정강필이 있는 벙커 안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강필이 합류함으로써 일행의 전력이 상승한 건 사실이다. 나이가 있다지만 정강필의 경험은 한수호조차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니까.

문제는 정강필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 대해서 숨긴 사람이다. 자신을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난 것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모로 찜찜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미련은 그가 죽었다는 비보를 들은 후로 많이 사라진 모양이다. 한수호는 냉정하게 생각하는 스스로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계속해서 연락 시도해 봐.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협회 쪽으로 향해야 할 것 같으니까.”

“알겠어.”

진표성과의 대화를 마친 한수호가 이현이 잠들어 있을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곧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제 앞을 가로막은 진표성 때문이었다.

“깊게 잠든 거 보고 나왔어. 괜히 들어가서 깨우지 말고 팀장도 좀 쉬어. 꼬맹이도 가이드랑 같이 자고 있으니까. 꼬맹이가 또 잠귀가 밝잖아.”

한수호를 걱정하는 듯 말했지만 그보다는 이현과 한수호를 단둘이 있게 하기 싫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흘러갔다. 상대가 이현이었다면 다소 간질거리는 눈빛이 오갔겠으나 현재 한수호와 진표성의 눈빛은 잘 벼려진 칼날 같았다.

콰앙―!

조용하면서도 살벌한 대치 상태가 끝난 건 무시할 수 없는 소음이 한쪽에서 들려오면서였다.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닫힌 방문으로 향했다.

쾅, 쾅, 콰앙―!

소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철문 곳곳이 둥그런 형태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변이된 건가.”

“확인해 봐야지.”

강준이 갇혀 있는 방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자유롭게 방문을 나설 수 있었지만 강준만은 움직임에 제약을 걸어 둔 상태였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으로 보아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저 사람 이번에는 정말로 좀비 된 거 맞죠?”

굉음에 신민우와 김민지가 문을 열고 나왔다. 신민우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언젠가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는 듯 우그러지는 문을 가리키는 손끝이 벌벌 떨렸다.

“……위쪽에서도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네.”

한수호와 진표성의 고개가 동시에 지상을 향해 들렸다. 지하 벙커를 향해 수많은 기척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원래도 인근에 좀비들이 배회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신선한 피를 흘리는 인간들을 발견한 것처럼 좀비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감각을 기울이자 귓가에 좀비들이 흥분해 내지르는 소리가 어지럽게 섞여 맴돌았다.

“이 상황, 왠지 익숙한데.”

모텔에 잠시 쉬기 위해 머물렀을 때에도 이런 상황이 발생했었다. 분명 모텔의 높은 층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 불러 모으기라도 한 것처럼 좀비들이 갑자기 들이닥쳤었다.

진표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제는 거의 열리기 직전인 문 앞으로 향했다.

“위험하니까 다들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가세요.”

한수호는 신민우와 김민지를 원래 있던 방 안에 들어가도록 유도했다. 강준이 다시 일반 좀비가 됐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진표성이 있으니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간 문이 닫히고 한수호가 몸속의 마력을 순환시켰다.

“한 놈 가둬 뒀다고 했었지?”

어느새 상념에서 벗어난 정강필도 한수호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정강필의 주변으로 닿으면 화상을 입을 듯한 스파크가 튀었다.

“네.”

“그런데 저놈은 왜 저렇게 된 거야? 표성이도 나한테 자세하게는 얘기 안 해 주던데.”

정강필이 말을 꺼내며 한수호의 표정을 힐끔거렸다. 한수호는 진표성이 정강필에게 이현의 능력에 관한 걸 숨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또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젊은 남자애가 뭔가 말하려고 하니까 표성이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타박하더구나.”

김민지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신민우는 생각 없이 조잘거리려다가 진표성의 기세에 눌려 결국 입을 다물었을 테고.

그 시간에 함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마치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현재 문 앞에서 강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진표성의 어깨를 잘했다고 두들겨 주고 싶을 정도였다. 강준이 들어있던 방의 문은 계속해서 호일처럼 찌그러지고 있었다.

“크으으…….”

마침내 한계까지 우그러진 문 너머로 강준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건 또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네.”

진표성이 침음을 흘렸다. 강준은 하프 좀비도, 일반 좀비도, 그렇다고 사람도 아닌 모습이었다. 일반 좀비가 되었다면 두 눈이 회색빛으로 변하는 것은 물론 살점이 썩어 내려야 한다.

하지만 강준의 피부는 창백하게 질렸을 뿐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예민한 진표성의 후각으로도 썩은 내는 강준에게서 맡아지지 않으니 확실했다.

하프 좀비로 되돌아갔다면 눈동자 색이 한쪽은 사람일 때와 같아야 한다. 그러나 강준의 두 눈동자는 일반 좀비처럼 탁한 회색으로 물든 상태였다.

“……새로운 종이구나.”

강준을 보면서 고민에 빠진 진표성처럼 정강필의 얼굴에도 경악의 빛이 서렸다. 하프 좀비가 등장한 후 좀비 치료제가 근시일 내로 나올 거라던 희망은 날이 갈수록 사그라들어 갔다.

그런데 진전이 없는 연구에 한 줄기 빛을 내려 줄 존재가 나타났다. 정강필은 당장이라도 강준을 연구소로 데려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전문 연구원만큼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경험하고, 주워들은 것들이 있었다. 피를 뽑아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사람, 일반 좀비, 하프 좀비의 세포를 구분하는 건 가능했다.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한수호도 정강필의 눈동자에 흐르는 기이한 열기를 알아차렸다. 목소리에는 옅은 희열마저 묻어났다. 한수호와 진표성이 강준을 지금까지 살려 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현 때문이었다.

강준의 변화는 그들에게 중요한 정보였다. 강준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현의 능력에 힘을 잃은 하프 좀비들은 강준 말고도 있었지만 다 좀비들에게 물어뜯겨 죽고 말았다. 게다가 강준은 하프 좀비일 때도 다른 하프 좀비들보다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그 때문에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걸 수도 있었다.

한수호는 강준 말고도 더 많은 비교군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강준 한 명만 놓고 보기에는 일반적인 반응인지, 아니면 특수한 경우인지 구별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한수호의 시선이 이현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 소란에도 이현은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김솔은 숨소리로 보아 일어난 듯한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이현의 곁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강준, 정신 차려.”

진표성이 엄한 목소리로 강준의 정신을 일깨우려고 했다. 강준은 현재 이마가 찢어져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곧장 강준을 제압하지 않는 건 그가 닫힌 문을 열기 위해 머리를 찧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기이한 울음소리만 낼 뿐 어떠한 공격적인 행동도 하지 않아서였다.

“크흐…….”

찌푸려진 미간이 어떻게든 이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드러내고는 있지만 눈빛이 이따금씩 뚜렷해지고 있었다.

“강준.”

“크흐아악―!”

진표성이 한 번 더 강준의 이름을 불렀다. 이성을 되찾아 가는 듯 보이던 강준이 결국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진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쩌억 벌어진 입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한숨을 푸욱 내쉰 진표성이 상체만 변이시켜 강준의 목 줄기를 틀어쥐었다.

“커흑…….”

목에서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센 악력에 강준이 버둥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강준의 손톱이 진표성의 팔에 닿기도 전에 강준의 뒤통수가 바닥에 처박혔다.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붉은 피가 번져 나갔다. 허옇게 눈알이 뒤집힌 강준이 사지를 떨 때였다.

닫혀 있던 문 하나가 소리 없이 열렸다. 반개한 눈을 한 채 걸어 나온 이는 이현이었다.

“아저씨, 위험해요…….”

김솔이 이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나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힘으로는 성인 남성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이현은 잠에서 채 깨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멍한 시선이 바닥에 번져 가는 피에 닿는 순간이었다.

“흐으, 아…….”

이현이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리고 두 귀를 막았다.

“끄흑, 아니야, 아니야…….”

“흐윽, 아저씨…….”

고개를 좌우로 저을 때마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김솔이 울먹거리며 이현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숨이 넘어갈 듯 발작을 일으키는 이현처럼 김솔의 숨도 조금씩 가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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