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58화 (58/133)

058.

“캬아악―!”

하프 좀비가 일반 좀비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김유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등에 찔러 넣었던 행거는 하프 좀비가 일어나는 힘 때문에 튕겨 나갔다. 상처가 찢어져 피가 철철 쏟아지는데도 하프 좀비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살가운 인사나 건넬 걸 그랬다. 언제나처럼 파견 나갔다 무사히 돌아올 줄 알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세상에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지난날의 후회가 눈물이 되어 볼을 타고 흐르는 순간이었다.

“유진아!”

“……오빠?”

환청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유진이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하프 좀비가 코앞에서 얼굴을 들이민 채 정지해 있었다.

부릅떠진 눈은 머리통을 꿰뚫은 손에 한차례 떨리다 생기를 잃어 갔다. 김진수가 손에 묻은 오물을 떨어내듯이 하프 좀비를 치워 버렸다.

“괜찮아? 어디 심하게 다쳤던 거야?”

말라붙었던 핏자국을 씻어 내고 싶었지만 하프 좀비가 의심할까 봐 그대로 놔둔 상태였다. 가이드 정복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김진수가 김유진의 어깨를 붙들고 상태를 살필 때였다. 김유진이 그대로 김진수의 목을 끌어안았다. 뜨겁게 젖어 드는 목덜미에 김진수는 이후 말없이 떨리는 등을 다독였다.

“혜연 씨! 정신 좀 차려 봐요, 흐윽…….”

김하은이 미동도 없이 축 늘어진 심혜연을 붙들고 울부짖었다. 임태한이 김하은의 어깨를 쥐고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심장박동이 완전히 멎었다. 눈조차 감지 못하고 죽은 심혜연을 보며 김하은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신 때문에 심혜연이 죽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머리를 노리고 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쯤 심혜연과 함께 살아남았다고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었을 텐데.

“이곳은 위험하니까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임태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슬픔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정문에 있던 하프 좀비들을 다 해치우고 A급 에스퍼들을 구해 내 전력이 상승했지만, 아직은 그게 다였다.

하프 좀비가 어디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임태한은 내심 협회장까지 그들의 손아귀에 있을 거라 짐작하는 중이기는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쉽게 협회 본부가 뚫리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위기 상황인데 협회장과 그의 측근들은 보이지 않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제 뒤로 따라붙으세요.”

김유진은 김진수가 챙겼다. 임태한은 침대 시트를 가져와 심혜연의 시신 위로 덮었다. 송민후가 김하은의 팔을 끌어당겼다. 분노 가득한 눈으로 빨갛게 물들어 가는 시트를 보던 김하은이 이를 악물었다.

“일단 옥상으로 올라갈 겁니다. 그곳에 도착하면 잠시 숨 돌릴 시간은 있을……. 김진수, 다들 데리고 피해.”

“……부팀장님.”

“얼른!”

복도 저편에서 나타난 무리에 임태한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김진수도 그 광경을 봤기에 우물쭈물했지만 이어 터져 나온 임태한의 목소리에 동생을 비롯한 생존자들을 데리고 반대편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딜 가려고.”

하지만 김진수는 곧 침음을 흘리며 멈춰 서야만 했다. 김진수가 김유진과 다른 이들을 제 등 뒤로 보냈다. 마력을 운용하자 마석이 박힌 반지를 낀 손가락이 화상이라도 입은 듯 뜨거워졌다.

임태한도 반대쪽까지 길이 막혔다는 걸 안 순간 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좁은 복도 가득, 사람의 살갗마저 가를 듯한 흉포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 * *

사라졌던 한수호가 부엌으로 들어오길래 진표성이 그에게 식사하라고 일상적인 말을 건네던 순간이었다.

한수호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문을 뗐다. 한수호의 뒤로 보이는 누군가 때문에 의아해하는 진표성의 눈동자가 엉망으로 흔들렸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다. 대부분의 에스퍼들에게는 전설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기억 속의 모습보다 살이 많이 빠지고, 턱수염까지 덥수룩했지만 분명 아는 이였다.

“……아저씨.”

“진표성, 이놈. 오랜만이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이질적이었다. 진표성이 손을 들어 눈 주위가 벌게지도록 벅벅 문질렀다. 재차 눈을 감았다 떠도 눈앞에 나타난 사람의 환영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아저씨 맞아요?”

“그래, 이놈아.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구는구나.”

“그게 말이라고……!”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몇 년 만에 눈앞에 나타났다. 놀라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저씨, 왜 그래요?”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자 김솔은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와중에 들이닥친 사람 때문에 입맛도 떨어졌다.

불안할 때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켜 줄 존재를 찾기 마련이라 김솔은 고개를 돌려 제 곁에 앉은 이현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이현의 상태가 이상했다. 진표성도 나타난 남자를 보고 놀라기는 했지만, 마치 기적을 목도한 사람과 같았다.

반면 이현은 눈을 깜박이지도 못한 채로 굳어 있었다. 김솔이 심상치 않은 그의 상태에 의자에서 내려와 이현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저씨?”

“으, 응……. 솔아…….”

팔을 붙잡고 흔들자 그제야 이현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떨리는 시선이 김솔의 얼굴에 닿았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김솔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

아저씨는 아직 아픈 걸지도 몰랐다.

이현의 상태를 눈치챈 건 한수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현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호되게 앓았을 때처럼 이마는 뜨겁지 않았다. 미열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혼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을 정도는 아니었다.

“머리가 아픈 겁니까?”

“아, 그게…….”

자신을 향한 걱정 어린 눈길에 이현이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으로만 그칠 뿐이었다. 자신조차 제가 방금 떠올린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 많네. 다들 처음 뵙겠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중년 남성이 건네는 인사에 눈치만 보고 있던 김민지와 신민우가 마주 인사했다. 김민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이기까지 했다.

체격은 건장한 편이지만 눈가에 진 주름으로 보아 나이가 꽤 많은 듯했다.

“이쪽은 가이드구만. 만나서 반가워요. 한수호 대부 되는, 정강필이에요.”

김민지와 신민우에게 수더분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린 정강필이 이현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

“가이드는 어디가 아픈 건가? 안색이 좋지 않구만.”

이현이 내민 손을 잡을 생각도 없이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자 정강필이 손을 내렸다. 머쓱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은 선하기 그지없었다.

“꼬맹이도 있고.”

“……꼬맹이 아니에요.”

김솔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아이는 이현이 정강필 때문에 충격에 빠졌다는 걸 빠르게 눈치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죽었던 사람이 살아서 나타나는 게 말이 되냐고.”

진표성은 아직도 얼떨떨한 눈치였다. 진표성의 말에 정강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 이야기보따리 다 풀려면 하루로는 모자랄 거야.”

“간략하게라도 말해 줘. 혹시 도플갱어, 뭐 그런 거 아니야?”

“에끼, 이놈아.”

정강필이 커다란 주먹으로 진표성의 이마를 때렸다. 예상 이상으로 진표성의 이마에서는 빠악, 소리가 났다. 벌겋게 부어오르는 이마를 매만지면서도 진표성은 뜻밖의 만남이 반가운 눈치였다.

“방에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한수호가 가볍게 이현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이현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니 쉬게 할 생각이었다. 김솔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현의 곁에 따라붙었다.

“솔이도 아저씨랑 같이 들어갈래요.”

“밥…… 마저 먹어야 하는데.”

이현의 시선이 아직 밥이 남은 그릇 위로 닿았다. 자신 때문에 김솔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어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요. 솔이 이제 배불러요.”

그런 이현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김솔이 배시시 웃어 보였다. 밥 먹기 전보다 통통해진 배를 두들겨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 잠시만 실례할게요.”

이현도 자신이 이렇게 일어나 버리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제야 진표성도 이현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갑자기 등장한 정강필 때문에 이현을 살피는 게 늦었다.

“너 왜 그래? 혹시 체한 거야?”

식은땀이 배어난 목덜미를 진표성이 스치듯이 쓰다듬었다. 작은 접촉에도 이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가이딩을 할 때마다 손잡는 것 이상으로 접촉하면서 이현은 진표성과 하는 스킨십에 어느 정도 적응한 상태였다.

비록 오늘 목욕하는 모습을 보인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르기는 했다. 하지만 방금 이현이 보인 반응은 부끄러움보다는 두려움의 기운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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