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임태한이 선두에서 길을 뚫고 다른 이들이 뒤에 따라붙었다. 이나리도 김종현의 몸을 채찍으로 휘감은 후에 움직였다.
“으윽, 읍…….”
김종현의 몸이 이나리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여기저기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성하지 않은 이유였다.
이미 상처 난 자리에 새로운 상처가 생기자 핏발 선 눈이 부릅떠졌다. 에스퍼의 회복력이 좋다고는 해도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또 상처가 생겨 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일부 상처는 곪기까지 했다.
“우리를 얼마나 물로 봤으면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야?”
이나리가 고통스러워하는 김종현을 보면서 혀를 쯧 찼다. 다들 성정이 무던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건 평화로울 때나 그렇다.
고작 권력과 돈 때문에 팀원들을 배신한 김종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나리는 김종현을 묶고 있는 채찍을 더욱 느슨하게 풀었다.
퍼억, 김종현의 머리가 건물 잔해에 부딪쳐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났다. 엉망이던 안면이 새롭게 흘러내린 피로 흠뻑 젖어 갔다.
“이나리, 적당히.”
“알겠어요.”
임태한이 이나리에게 주의를 줬다. 김종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김종현이 흘리는 피 때문에 좀비들의 시선을 끌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나리의 행동은 제발 나 좀 알아봐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나리가 할 수 없이 채찍의 끈을 줄여 김종현을 옆구리에 끼웠다. 김종현이 발악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언제나처럼 무시한 후 이동하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다들 정지.”
임태한이 주변에 흩어진 연기를 끌어모아 자신과 팀원들의 모습을 감췄다. 가이드 센터가 육안으로 보이는 위치에 다다랐다.
슬쩍 훑어봐도 기십을 넘어가는 하프 좀비들이 무장한 채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가 있었네.”
이나리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대다수의 기척은 건물 내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정문 앞쪽에 A급 에스퍼들이 묶여 있는 게 보였다. 하프 좀비들의 능력이 대체적으로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A급 에스퍼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그들이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하고 잡혀 있는 건 그 옆에 보이는 가이드들 때문이었다.
한눈에 봐도 가이드들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김진수가 재빠르게 가이드들의 얼굴들을 살펴봤다. 어디에도 여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 안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에 다 죽여야 해. 곧바로 에스퍼들도 풀어 줘야 하고. 안쪽에서 최대한 늦게 눈치채도록 은밀하게. 다들 할 수 있지?”
임태한이 하프 좀비들 중 가장 강한 놈들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놈들은 자신이 처리할 테니 나머지 놈들을 팀원들이 나눠서 처리하라는 의미였다.
알파 1팀이 재빠르게 수신호를 통해 자신들이 처리할 하프 좀비 를 정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이 준비된 듯 보이자 임태한이 품에서 자그마한 표창 다섯 개를 꺼냈다.
돌멩이 같은 걸로 공격하면 돌멩이에 마력을 싣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아껴 둔 무기였다. 염동력을 가진 에스퍼들과 달리 임태한은 바람의 힘을 이용해 공격해야만 했다.
훨씬 더 마력의 컨트롤이 까다로웠다. 다른 능력은 이목을 끌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사용하기가 적절치 않았다.
“셋 세면 공격해.”
김종현을 제외한 이들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셋, 둘, 하나.”
휘이이익. 표창 다섯 개가 동시에 날아갔다. 다섯의 하프 좀비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기회를 엿보던 A급 에스퍼들의 고개가 위로 휙 들린 순간이었다. 그들의 근처에 있던 하프 좀비들의 머리통 네 개가 동시에 녹아내렸다. 성대도 녹아내린 탓에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금방 풀어 줄게요.”
이낙균이 화염으로 A급 에스퍼들을 속박하고 있던 끈들을 끊어 냈다. 그들을 묶고 있던 끈이 고급 아티팩트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아온 거군요.”
묶여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감격스러운 눈으로 알파 1팀을 돌아봤다. 알파 팀은 1팀부터 10팀까지 모조리 파견 나간 상태였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다 베타 팀 소속이었다. 감마 팀 소속 에스퍼들은 현재 사지가 결박된 상태로 건물 내에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와 주셔서 감사한걸요.”
이낙균이 착잡한 눈빛으로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채 썩어 가는 동료들을 바라봤다. 검은색 정복을 입은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하얀색 정복을 입은 가이드들도 있었다.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다면 그들도 현재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입맛이 썼다.
생존자는 오히려 그런 이낙균을 위로하는 말을 꺼냈다.
“부팀장님, 저는 안쪽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같이 가.”
바깥쪽의 상황이 정리되어 가는 듯 보이자 임태한과 김진수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임태한이 연기를 건물 내부에 자욱하게 퍼트렸다.
이변을 눈치챈 하프 좀비들이 인질을 잡기 위해 닫혀 있던 문들을 열었다. 김하은이 있는 방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움직이지 마!”
김하은이 회복 포션을 달라고 불렀을 때 피를 흘리는 김유진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던 하프 좀비였다. 방 안에 난입한 놈이 눈동자를 굴려 안쪽의 상황을 빠르게 훑었다.
방 안도 뿌연 연기가 가득 차오른 상태였다. 매캐한 연기에 다들 콜록콜록, 거친 기침을 토해 내고 있었다.
김유진은 회복 포션을 마신 이후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한쪽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다른 이들도 각자 적당한 위치에 떨어진 채 앉아 있는 상태였다.
하프 좀비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심혜연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렸다.
“으윽…….”
“뒤지고 싶은 거 아니면 조용히 해.”
우악스러운 팔로 심혜연의 목을 휘감아 그가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김하은이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아티팩트를 뱉어 내 마력을 흘려 넣었다.
타앙, 탕, 탕. 요란한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등을 돌린 하프 좀비를 향해 김하은이 가슴 언저리를 쐈다. 손이 흔들렸지만 다행히 총구에서 나간 모든 총알이 하프 좀비의 몸에 박혔다.
“씨발, 이게 뭔…….”
“혜연 씨! 이쪽으로 와요!”
하프 좀비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핏발 선 눈이 제게 고통을 준 이를 향해 희번덕거렸다.
김하은이 총구를 여전히 하프 좀비를 향해 겨눈 상태에서 심혜연을 불렀다. 한계까지 목이 졸렸던 고통에 눈물 젖은 얼굴로 심혜연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몸부림치면서 손목을 헐겁게 묶고 있던 끈은 풀었다. 김하은을 향해 움직일 때 시야가 뒤바뀌었다.
“이것들이, 계속해서 봐주니까…….”
즉사시키려면 머리통을 날렸어야만 한다. 하지만 김하은은 사격에 서툴렀고 아까운 총알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머리통보다 더욱 큰 과녁판으로 몸통을 골랐을 뿐이다.
“커윽…….”
조금 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택한 결과는 참혹했다. 심혜연의 등을 뚫고 하프 좀비의 손이 파고들었다. 눈물로 범벅이던 얼굴이 입에서 흩뿌려진 피로 점점이 물들었다.
“안 돼……!”
김하은이 충격적인 장면에 굳어 있다가 하프 좀비의 머리통을 향해 총을 쐈다. 그러나 하프 좀비가 고개를 계속해서 움직인 터라 총알은 고작 하프 좀비의 왼쪽 귀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철컥철컥, 총알이 빈 소리가 났다. 마력을 흘려 넣으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도 있지만 송민후가 몰래 지니고 다녔던 물건은 총알의 개수가 정해져 있는 아티팩트였다.
“기다려. 너도 곧 씹어 먹어 줄 테니까.”
하프 좀비가 심혜연의 몸속을 헤집던 손을 빼내고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원래도 인육을 탐했던 놈이다. 부상까지 입자 놈은 더더욱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
으적으적 살 씹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김하은뿐만 아니라 상황을 지켜보던 김유진과 송민후도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같은 공간에서 살아 있던 이가 하프 좀비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장면은 평생 잊히지 않을 악몽이었다.
다들 숨죽이는 시간 속에서 가장 먼저 용기를 낸 건 김유진이었다. 아직도 심혜연의 사지는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생기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뻗어진 손끝이 살려 달라는 듯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유진이 끈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에 있던 행거를 손에 든 후 그대로 하프 좀비의 등에 난 상처 위로 쑤셔 넣었다.
“……아.”
심혜연의 상체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하프 좀비가 신음을 흘리며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빨 사이에 들러붙은 살점에 김유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피가 흥건한 얼굴 위로 기괴한 미소가 떠올랐다. 양 광대뼈에 닿을 정도로 찢어지는 입꼬리에 김유진이 임무에 나가고 없는 제 오빠의 얼굴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