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커윽…….”
강준의 안면이 바닥에 처박혔다. 하지만 강준은 고통보다도 피에 대한 갈망이 더 큰지 이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진표성의 손목을 향해 이를 딱딱거렸다.
“밥이나 처먹어.”
진표성이 강준의 얼굴을 바닥에 문질렀다.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지면을 물들였다. 희번덕거리는 눈이 이번에는 바닥에 꽂혔다.
“……미치겠네.”
진표성의 피를 핥을 수 없게 되자 강준은 제 몸에서 흘러나온 피에 집착했다. 개처럼 바닥의 피를 핥아 먹는 모습에 진표성이 혀를 끌끌 찼다.
이러다가는 피만 먹겠다 싶어 진표성이 들고 온 그릇을 억지로 강준의 얼굴 아래로 집어넣었다.
잠시 멀뚱멀뚱 밥을 내려다보던 강준이 고개를 홱 들었다. 방금 전까지 이성이 사라져 있던 눈에 거짓말처럼 초점이 맺혀 있었다.
“제가 또…….”
강준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피에 미쳐 있는 순간은 술을 취하도록 마신 것처럼 의식이 흐릿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강준이 떨리는 손을 들어 입가를 훔쳤다. 입 주변에 묻어 있는 피가 손등에 묻어났다.
“일단 밥부터 먹어. 너 그러다 아사한다.”
피를 탐하는 괴물이 되면 진표성은 강준을 바로 죽일 것이다. 지금은 아직 이성을 유지하고 있고, 다른 사람을 물어뜯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놔두는 거였다.
진표성이 흐느끼는 강준을 뒤로하고 방에서 나왔다. 방문을 닫고 안에서 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건가요?”
이현이 어느새 진표성의 곁에 다가와 서 있었다. 자신이 가이딩한 결과로 하프 좀비의 능력을 잃은 사람이었다. 연민은 없을지언정 그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다.
괜히 연구직에 몸담았던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듯 이현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했다.
“일반 좀비의 특성이 나타나. 그게 피와 살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만 보이는 게 일반 좀비랑 다른 점이고. 아직은 살이 썩거나, 눈동자가 회색빛으로 변하거나, 이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고 있으니까.”
진표성은 순순히 이현의 궁금증을 풀어 줬다. 위험한 만큼 이현이 직접 강준을 관찰하게 둘 생각은 없어서였다.
“너 밥은 먹고 여기에 서 있는 거야?”
“별로 배 안 고파요.”
“안 고파도 먹어.”
그러다 진표성은 이현이 식사를 마쳤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보다 밥 먹는 속도가 현저히 느린 이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엌 안으로 들어가니 이현의 몫으로 놓인 볶음밥은 고작 두 수저 정도만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손가락에서 피 보면서까지 만든 건데. 맛있게 먹어 주면 안 돼?”
진표성이 양 눈썹을 추욱 늘어뜨렸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신민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소태라도 씹은 것처럼 입 안에서 굴러가는 밥알이 쓰게만 느껴졌다.
“……알았어요. 진표성 에스퍼도 얼른 먹어요.”
이현이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김솔은 두 사람의 대화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이현이 수저를 들자 남은 밥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진표성도 볶음밥을 산처럼 접시에 쌓아 올려 먹을 때였다. 보이지 않던 한수호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팀장, 어디 있다가 이제 와? 밥 다 식겠네. 얼른 먹어.”
“진표성.”
“목소리는 왜 깔아. 표정은 왜 또 그렇게 심각한…….”
진표성이 하던 말을 멈추고 한수호의 뒤쪽을 바라봤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순간 진표성이 들고 있던 수저를 놓쳤다.
채앵, 수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적막이 흐르는 공간을 가로질렀다.
* * *
“하은 씨, 어제 내가 부탁했던 일 다 끝냈어요?”
“아, 팀장님. 잠시만요. 지금 마무리 작업 중에 있어요.”
김하은이 팀장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깐깐한 인상의 팀장은 그런 김하은을 흘겨보더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테이블 아래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팀장에게 엿을 날려 준 김하은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세상이 망조로 접어든 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건 이전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에서 한 손에 꼽히는 대학교를 졸업한 김하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할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능력자 협회는 누구나 일하기를 소망하는 곳이었다.
번듯한 대학교를 나와 협회의 청소부로 취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도 그럴 게 이런 세상에서도 주 2일 이상의 휴일이 보장되고, 각종 수당금이 나오는 곳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게다가 협회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능력자들이 상주하는 곳이다. 보호 아티팩트도 모든 건물을 통틀어서 가장 많이 구비되어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상이었다. 목숨까지 보호받는 안전한 직장은 누구나 꿈꾸는 직장이 되어 버렸다.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김하은이 눈을 부릅떴다. 비록 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어 부하 직원들만 달달 볶는 팀장이 협회장의 먼 친척이라는 든든한 배경으로 들어온 낙하산일지라도 버텨야 한다.
이번 달에 들어올 월급만 생각하면서 모니터에 집중하다가 습관처럼 핸드폰에 매달린 부적을 매만졌다. 거금을 들여서 산 거였다.
신변에 위협될 만한 일이 생기면 부적이 찢어지면서 예고를 해 준다고 했다. 미신일지라도 김하은은 마음의 안정을 위해 당시에 구매하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어……?”
종이처럼 보여도 부적은 특수 처리가 되어 굉장히 튼튼했다. 그동안 물에 젖었던 적도 있고, 커피를 쏟은 적도 두어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부적은 제값을 하듯 멀쩡했다.
그런데 왜…….
“김하은 씨, 아직 멀었습니까?”
“자, 잠시만요…….”
방금 전에 김하은의 자리로 와 닦달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날카로운 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따갑게 울렸다. 김하은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옆에 있던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부적이 찢어졌다.
마치 칼로 자른 것처럼 반듯하게 잘린 단면이 불길했다. 김하은이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일 다 끝낸 겁니까?”
“화장실이 급해서……. 다녀와서 마무리할게요. 죄송합니다.”
“뭐라고요? 김하은 씨!”
등 뒤에서 팀장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김하은의 발걸음 속도는 더 빨라졌을 뿐이다. 굽 낮은 단화가 복도 바닥과 만나 시끄러운 울림을 냈다.
누군가는 그깟 미신에 휘둘리는 거냐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하은은 부적이 찢어지는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어? 하은 씨. 조금 있으면 회의 시간 아니에요?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요?”
“배가 너무 아파서요. 의무실에 가 보려고요.”
“팀장님 때문에 스트레스받았구나. 얼른 다녀와요.”
김하은은 동료의 질문에도 그럴듯한 거짓말을 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앞좌석 밑을 더듬거렸다. 손끝에 닿는 딱딱한 물체에 김하은이 참고 있던 숨을 터트리듯이 내쉬었다.
“제발…… 별일 아니어라…….”
김하은은 D급 에스퍼였다. D급 중에서도 마력 운용도가 낮고, 특별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경우였다. 마력을 이용한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달랐다.
김하은이 차 안에서 꺼내 든 건 한 손에 잡히는 손잡이 같은 물체였다. 심호흡한 김하은이 버튼을 눌렀다. 곧 물체가 키이잉― 소리를 내며 손잡이 위로 김하은의 팔길이만 한 날이 솟아올랐다.
손잡이 부근에 박힌 마석에서 희미한 빛이 터져 나왔다. 능력자들은 대부분 항상 몸에 마석이 박힌 물건을 지니고 다녔다. 보통은 액세서리 형태로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김하은은 일부러 회사에서 일할 때만큼은 마석도, 무기도 몸에서 떼어 놓고 지냈다. 무기를 들고 다니면 그만큼 위험한 일이 생길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후우…….”
버튼을 한 번 더 눌러 날을 집어넣은 김하은이 아티팩트를 품속에 갈무리했다. 일단 몸을 지켜 줄 만한 무언가를 소지하게 되자 불안함이 어느 정도 줄어든 기분이었다.
“팀장, 또 난리 치겠네…….”
이성이 돌아오자 걱정되는 건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듣게 될 팀장의 잔소리였다. 벌써부터 귓가가 따가운 듯했다.
원래도 말이 많은 사람이 무언가 꼬투리를 잡았다 싶으면 한 시간이 넘도록 내내 잔소리하는 성정을 알아서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해?”
김하은이 차를 댄 곳은 지하 1층 주차장이었다. 말단직원들이 가장 많이 차를 대는 층인 만큼 수시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기도 했다.
협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업무 특성상 외근이 잦다. 무기를 꺼낼 때까지는 자신이 무언가에 집중한 상태라 주변의 소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을 둘러보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잠시 밀려났던 불안함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온 순간이었다.
주차장 입구 쪽에서 차 하나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