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반사적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뾰족한 이가 물렁한 살을 파고들면서 피를 냈다. 혀를 움직여 핏방울을 할짝거려 맛봤다.
“맛있어…….”
강준이 무아지경으로 입술에 상처 내고, 피를 빨아 먹는 행위를 반복했다. 광기에 찬 모습에 신민우가 빵을 씹던 행위도 멈추고 입을 벌렸다.
순식간에 강준의 입술이 너덜너덜해졌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도 강준은 제 피를 맛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금세 입술이 희게 질렸다. 계속해서 상처를 내도 피가 나오는 속도가 더디자 강준이 입맛을 다시며 팔목을 내려다봤다.
핏줄이 팔딱이는 게 눈에 맺혀 들었다.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강준이 팔목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쩌억 벌어진 입이 팔목을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그만. 너 이거 몇 개로 보여?”
“…….”
진표성이 강준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흐리멍덩하게 떠진 눈이 진표성의 얼굴을 응시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생각나지 않는 사람처럼 입을 뻐끔거리던 강준의 시선이 멈춘 곳은 진표성의 팔목이었다.
피부 아래 숨겨진 곳에서 참기 힘들 정도로 달콤한 향기가 났다. 팔딱팔딱, 귓가에서 울리는 소리가 제 심장소리인지 아니면 진표성의 맥박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이 그 소리를 인식한 순간 더욱 심해졌다는 거다.
“저…… 너무 목말라요…….”
갈증을 인식하자 막혔던 목소리가 터졌다. 강준이 홀린 듯이 진표성의 손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진표성이 머리채를 잡고 있어 고개를 숙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왜 머리를……. 이것 좀 놔 봐요…….”
술 취한 사람처럼 말이 어눌했다. 강준이 이를 딱딱 소리 날 정도로 부딪쳤다. 그의 시선은 진표성의 손목에 고정된 채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사람, 좀비……처럼 변하는 거죠? 그렇죠?”
입 안에 고인 침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릴 때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신민우가 강준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핏발 선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갔다. 강준과 시선이 마주친 신민우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움츠렸다.
“이 새끼가…… 자꾸만 헛소리를…….”
까드득, 강준의 잇새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숨을 내쉰 진표성이 강준의 목덜미를 짧고 강하게 내리쳤다.
추욱 늘어지는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를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를 보는 것처럼 차가워 신민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너도 얘 자꾸 자극하지 마. 아직 완전히 변이된 것도 아니고, 곁에서 상태 계속 지켜봐야겠으니까.”
“……네.”
불만은 있으나 그걸 곧이곧대로 표현하기에는 눈칫밥이 늘었다. 진표성이 구속구를 꺼내 정신을 잃은 강준의 몸에 채웠다.
“팀장. 어디로 이동할 거야?”
“은신처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한수호가 커다란 자루를 하나 꺼내 강준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무지막지한 손길이라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강준은 앓는 소리를 냈다.
신민우는 진표성은 몰라도 한수호에게만큼은 절대로 대들지 않겠다 남몰래 다짐했다. 자신도 까딱했다가는 강준처럼 자루 안에 처박힐 것만 같았다.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딘데?”
“염창동.”
“꽤 머네.”
진표성이 머릿속으로 현재 위치와 염창동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봤다. 혼자 이동하면 금방 갈 수 있지만 무리를 이끌고, 거기에다가 좀비들의 이목을 피하면서 움직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네가 생존자들 챙겨. 나는 김이현 가이드랑 아이 챙길 테니까.”
“……알았어.”
잠시 왜 팀장이 이현을 챙기냐는 말이 목 끝까지 치밀었으나 지금은 불만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진표성은 순순히 자루의 입구를 꽉 동여맸다.
“저기…… 저도 그렇게 데리고 이동하실 생각은 아니죠?”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했다. 신민우가 다 먹지 못한 빵을 손안에 움켜쥐고 진표성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봐서. 아무리 나라도 세 명을 한 번에 데리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건 무리니까. 한 명은 업는다 쳐도…….”
진표성이 신민우를 아래위로 훑어 내렸다. 그러고 보니 신민우도 자루 속에 담아 움직이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야, 얌전히 따라갈게요……!”
자루 속에 갇히면 시야가 모조리 차단된다. 진표성이 자신을 제대로 데리고 이동하는 건지, 아니면 어디다 던져 버리려고 하는 건지 살필 수도 없었다.
한수호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숨이 막혔다. 언제든지 이 남자는 자신을 버리고 갈 수 있는 냉정한 성격이라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알겠으니까 빨리 빵이나 먹어.”
진표성도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초코바 하나를 꺼냈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단맛이 입 안 가득 퍼져 나갔다. 김솔을 구한 후에 잠시 머물렀던 아파트에서 먹었던 김치찌개가 그리웠다.
“팀장님.”
강준과 신민우를 진표성에게 맡긴 한수호가 이현에게 다가왔다. 이현은 김솔과 김민지와 함께 끼니를 간단하게 해결한 이후부터 한수호의 안색을 살폈다.
피곤한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 그를 봤을 때보다 턱선이 날카로워졌다. 눈 아래 짙게 드리운 그늘도 그의 피로가 상당하다는 걸 알려 줬다.
“어디 아픕니까?”
이현의 부름에 한수호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현을 살폈다. 무사히 깨어났지만 이현은 위험할 정도로 체온이 올라갔었다.
“아니요. 저희 곧 이동할 건가요?”
“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임시 숙소보다는 제대로 된 은신처로 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해가 떠오르면서 좀비들의 기세는 밤보다는 누그러든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도 건물 주변에는 좀비 떼들이 우글거렸다.
보통 좀비들은 살아 있는 인간의 피 냄새가 나거나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게 아니면 다른 먹잇감을 찾아 이동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젯밤 건물 주변으로 모인 좀비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이 내는 소리 때문에 일대를 배회하던 좀비들까지 건물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바람에 한수호는 한숨도 자지 않고 주변을 경계했다. 다행히 좀비들이 옥상까지 밀고 올라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벽을 타고 오를 수 있는 좀비들도 있기에 한시도 안심할 수 없었다.
“폭주 위험 수치 좀 봐요.”
이현이 용건을 꺼냈다. 한수호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능력을 써야 한다. 이현이 몸 안의 가이딩 마력을 점검해 봤다. 좀비들을 무력화하던 순간 이후로 가이딩 마력의 양마저 늘어났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A급 가이드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언저리까지는 다다른 수준 같았다.
“……괜찮습니다.”
“얼른요.”
하지만 한수호는 선뜻 이현에게 제 팔목을 보여 주지 않았다. 이현이 한수호를 곧은 시선으로 올려다봤다. 이현의 얼굴에 어린 단호함에 한수호가 결국 팔찌가 채워진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치였다. 그런데도 한수호는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현이 조심스럽게 한수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한 기운이 맞닿은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홀로 남겨졌을 때 이현은 이 온기가 그리웠었다.
눈을 감고 몸 안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가이딩 마력을 한수호에게 흘려 보냈다. 착각이 아니라면 예전보다도 마력을 운용하는 게 쉬워진 것도 같았다.
이현은 마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력의 양이 는 덕분에 손을 잡은 상태만으로도 꽤 많은 마력이 한수호에게 넘어갔다.
“김이현 가이드. 이만하면 됐습니다.”
한수호가 조용히 이현의 정신을 일깨웠다. 이현의 하얀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들었다. 서서히 뜨이는 눈에 한수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금빛으로 빛나는 빛무리가 이현의 눈동자 안에 담겨 있었다. 테두리까지 금빛으로 물들었다가 원래의 색으로 되돌아오는 광경은 어둠만 가득하던 공간에 빛이 내려온 것처럼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이현의 빛이었다.
이현은 눈동자 색이 변했다는 걸 알면서도 한수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제 이 사람에게는 제 비밀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가이딩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충족감이 번져 나갔다.
한수호를 가이딩할 때면 이현은 불안한 감각에 휩싸였다. 공포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것처럼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심장이 기분 좋은 울림을 내고 있었다.
자신은 이런 감각을 이전에도 느껴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현재 한수호의 위로 그보다 손가락 두 마디는 작은 것 같은 누군가의 형상이 물감이 종이에 번지는 것처럼 스며들었다.
이현이 눈을 두어 번 느릿하게 깜박거렸다.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기억이 떠오를 듯 말 듯 바람처럼 손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현아.’
이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귓가에 떠오른 목소리는 분명 자신이 아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