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지금 해 보자는 거냐?”
조용히 좀 하라는 뜻으로 벽을 쳤는데 되돌아온 건 신경질적인 소리였다. 신민우가 연이어 벽을 강한 동작으로 두들겼다.
쿵, 쿵, 쿵. 두껍지 않은 벽이 주먹 아래에서 엉망으로 흔들렸다. 신민우가 있는 반대편에서는 하얗던 벽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는 중이었다.
몸이 기괴하게 꺾인 최철희의 얼굴은 피에 젖어 이목구비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콧대도 그가 계속해서 얼굴을 벽에 부딪치는 바람에 다 뭉그러졌다.
“씨발, 저 새끼가…….”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줄어들지는 않고 점점 커지자 신민우가 닫힌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스트레스가 쌓여 미칠 지경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최철희라면 상대해 볼 만하다. 살아남기 위해 그와 함께 협력했던 시간 따윈 잊은 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에게라도 화풀이하고 싶었다. 들려오는 소리를 참고 넘길 수 있는데도 일부러 시비를 건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이건 또 왜 이렇게 안 열려.”
쉽게 열릴 거라 생각했던 문은 앞에 놓인 것 때문에 덜그럭거리기만 했다. 신민우와 마찬가지로 최철희도 문을 열려고 하는 듯했다.
옆쪽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들려와 헛웃음이 났다. 자신처럼 최철희도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크햐악……!”
“뭐, 뭐야…….”
예상하지 못한 소리였다. 아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소리다. 다만 모텔에 들어온 후에는 듣지 못했을 뿐이다. 모텔에서 쉰 시간이 오래된 것도 아닌데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옆방의 문이 연신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쪽 문 앞에도 큼직한 가구가 놓여 있어 문을 여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왜 아래쪽에서 소리가…….”
이어지려던 말은 들이켜지는 숨과 함께 스러졌다. 신민우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세상이 변한 후 별의별 꼴을 다 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목격한 광경은 평생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캬학! 캭!”
“으으…….”
다리가 풀린 신민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끔찍한 형상을 한 저 존재한테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정작 몸은 마비라도 된 듯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눈이 희번덕거렸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은 채 고개가 신민우를 향해 휙휙 움직였다.
그때마다 납작하게 눌린 얼굴이 문에 찧어져 질척한 소리를 냈다. 사람이라면 진즉에 죽었어야 할 상처다.
도대체 어쩌다 저렇게 된 건지 반대로 몸이 접힌 상태에서도 최철희는 신민우에게 이를 드러냈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서도 피 묻은 이만큼은 선명하게 보였다. 고간에서부터 뜨끈한 감각이 번졌다.
“오지 마…….”
무거운 물체가 문 앞에 놓여 있는데도 최철희는 제 몸이 부서져라 문을 들이받았다. 문이 붉게 물들어 갈수록 문과 가구 사이에 틈새가 벌어졌다.
당장이라도 최철희가 기어 나와 제 몸을 물어뜯을 것 같았다. 신민우가 희게 질린 얼굴로 몸만 덜덜 떨 때였다.
“언제 물린 거야.”
진표성이 인상을 잔뜩 쓰고 나타났다. 에스퍼의 등장만으로도 목을 조르는 것 같던 두려움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제야 신민우는 제가 오줌을 지렸다는 걸 깨달았다. 두려움에 질렸던 얼굴이 이번에는 수치심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문 닫고 있어.”
신민우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긴장이 풀린 탓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손안에서 문손잡이가 헛돌기만 했다.
한숨을 내쉰 진표성이 문 앞에 있는 가구를 움직여 문을 닫아 버렸다.
“크흐, 캬하악―!”
큰 인류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난리 통에서도 살려서 데려온 사람이었다. 변이가 지금에서야 나타난 걸 보면 좀비에게 물린 상처가 심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다들 피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보니 상처를 살필 겨를도 없었다. 한수호가 한 명씩 다른 방에 집어넣어 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른 이들과 눈앞의 놈이 같은 방에 있었다면 손쓸 겨를도 없이 모든 이들이 변이했을 것이다.
“이렇게 끔찍한 건 오랜만인데.”
최철희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현과 김솔이 봤다면 경기를 일으켰을 만큼 징그러운 형태였다. 몸을 문에 부딪치는데 얼굴이 가장 앞쪽에 있다 보니 이제는 눈알마저 터져 있었다.
진표성이 문 앞에 놓여 있는 가구를 치웠다. 방해물이 사라지자 최철희가 곧바로 네발짐승처럼 움직여 진표성의 발목으로 다가갔다. 딱딱거리는 소리가 적막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고생했다.”
계속 이대로 놔둬 봐야 최철희도 고통스러울 뿐이다. 진표성이 발을 들어 올려 그대로 최철희의 머리통을 으스러트렸다.
방금 전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던 몸이 감전당한 것처럼 부르르 떨리다가 이내 추욱 늘어졌다. 신발 밑창에 달라붙어 끈적하게 늘어지는 체액을 보니 기분이 착잡해졌다.
“……저 사람 죽은 거예요?”
심상치 않은 소리에 방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김민지도 문을 열었다. 코끝으로 훅 파고드는 냄새가 익숙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사람의 살점이 썩어 들어가면 꼭 이런 냄새가 났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악취였다. 맡고 나면 기분이 나빠질뿐더러 독한 가스를 마신 것처럼 머리까지 핑 돌았다.
“보지 마. 봐서 좋을 것 없으니까.”
진표성이 몸을 움직여 자연스럽게 김민지의 시야를 막았다. 수많은 사체를 봐 온 자신도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만큼 끔찍한 광경이었다.
“아저씨는…… 괜찮아요?”
김민지도 충분히 고달픈 삶에 악몽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내내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이현이 걱정되는데 홀로 다른 방에 있다 보니 그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에스퍼들이 이현을 바라보는 시선만 봐도 그들에게 이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기도 힘들었다. 고집을 부려서 그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였다.
김민지는 에스퍼들도 무서웠다. 그들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지켜 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전에 경험한 것들이 있어서였다.
질문을 던지고 나서도 자연스레 진표성의 눈치를 보게 됐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야. 네 몸이나 신경 써.”
다소 차가운 말투였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김민지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다시 방문을 닫으려 할 때였다.
“잠시만.”
닫히는 문 사이로 진표성의 발이 비집고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그 때문에 놀란 눈으로 진표성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움직여야겠다.”
“왜요? 설마 아래층 뚫린 거예요?”
“어. 그런 것 같아.”
진표성이 김민지가 있는 방 안에 들어가 이불을 꺼내 왔다.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최철희의 사체를 이불로 가린 그가 김민지에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팀장, 소리 들리지?”
“응.”
한수호는 이미 이현과 김솔을 함께 품에 안아 든 상태였다.
“하룻밤이라도 편하게 쉬려고 했더니만. 왜 뚫린 거지.”
진표성이 거칠게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이 좀비로 변한 걸 발견하고 처리한 지 몇 분도 흐르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1층에서부터 밀려들어 오는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단은 옥상으로.”
사방이 밀폐된 공간은 방어하기에 용이하지만 그만큼 몸을 피하는 데도 제약이 생긴다. 진표성은 아래층과 현재 층이 이어지는 공간을 막아 볼까 잠시 고민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좀비들의 기척이 기십을 우습게 넘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좀비들이 내는 하울링이 일대에 퍼져 나가 다른 좀비들까지 끌어모으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모텔 건물이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일반 좀비들만 몰려오면 괜찮지만 덩치 큰 좀비 몬스터들이나 렉스터 같은 종류가 몰려온다면 그때는 상황이 더 악화된다.
“야, 나와.”
진표성이 강준과 신민우를 방에서 끌어냈다. 신민우는 여전히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준은 오히려 방에 홀로 갇히기 전보다는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진표성이 그에게 회복 포션을 하나 던져 줘서였다. 비정상적으로 부풀었던 어깨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강준이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진표성의 곁에 달라붙어 섰다. 제일 안전한 장소를 찾아 움직이는 게 약삭빠른 박쥐 같았다.
“좀 떨어져. 징그럽게 왜 이래.”
진표성이 질색팔색하며 강준을 밀어 냈다. 그러나 강준은 오히려 진표성의 팔을 붙잡기까지 했다.
“……맞고 놓을래, 그냥 놓을래.”
이현도 아니고, 다른 놈과 살을 맞대고 붙어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진표성의 미간이 사납게 일그러지고 나서야 강준이 반걸음 물러났다.
“저, 저, 저기……!”
오랜 시간 미적거린 것도 아니었다. 신민우가 검지손가락으로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닫혀 있는 철문이 우그러지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소리만으로도 그들의 집념이 느껴졌다. 신선한 피를 마시고 살을 으적으적 씹어 먹어 그들과 같은 존재로 만들겠다는 염원으로 철문을 서서히 열어젖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