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40화 (40/133)
  • 040.

    발치에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가 엿가락처럼 늘어나 자신을 안아 들었다. 최철희뿐만이 아니었다. 김민지도, 신민우도, 강준도 각자 제 그림자에게 안겼다.

    그림자들이 한수호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이현의 눈은 어느새 감겨 있었다. 평소보다도 살짝 붉은 얼굴 위로 피로가 녹진하게 묻어났다.

    잠에 빠져든 이현과 달리 김솔이 눈을 반짝 떴다. 아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현의 얼굴을 시야에 담았다. 창백한 이현의 얼굴에 김솔의 양 눈썹이 추욱 늘어졌다.

    “눈 감고 있어.”

    김솔이 걱정스럽게 이현의 안색을 살피다 한수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팔에 닿아 오는 이현의 체온이 뜨거웠다.

    얌전히 눈을 감고 있자 귓가로 바람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아우성치는 좀비들의 비명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눈을 감고 있는데도 새까만 암흑이 보이는 게 아니라 죽어 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의 얼굴까지 떠오르자 김솔이 마른 등을 떨며 울음을 삼켰다.

    “이제 괜찮아.”

    한수호가 김솔을 달랬다. 미리 봐 둔 건물에 도착해 곧바로 가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1층 문은 자동차 여러 대를 끌고 와 막아 둔 상태였다. 자동차의 위쪽을 밟고 뛰어올라 3층 창문을 통해 건물 안에 들어갔다.

    “으으…….”

    바람에 눈이 따가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 앓는 소리를 내는 게 들려왔다.

    한수호가 걸음을 멈췄다. 5층에는 비슷한 문이 복도를 따라 양쪽에 지그재그로 여섯 개가 있었다.

    “들어가.”

    한수호가 가장 끝 쪽에 있는 문을 열고 강준에게 눈짓했다. 강준을 안고 있던 그림자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바닥으로 스며들어 갔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진 강준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방 안에 들어갔다.

    한수호가 복도에 있던 장식장 하나를 끌어와 문 앞을 막았다. 안쪽에 벽돌을 집어넣어 놨으니 강준이 문을 연다고 해도 쉽게 열리지 않을 터였다.

    잠깐의 소란이면 그가 수상한 짓을 하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수호는 이어 최철희와 신민우도 각각의 방에 밀어 넣었다. 강준에게 했던 것과 비슷하게 문 앞을 가구들로 막는 것도 잊지 않았다.

    능력은 없지만 돌발 행동을 할 수도 있는 자들이었다. 약간의 조치는 해 두는 게 좋을 듯했다.

    “이 안에 들어가서 쉬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김민지에게도 방 하나를 내줬다. 김민지는 이현과 김솔을 보면서 잠시 망설이다가 곧 고개를 꾸벅 숙이고 얌전히 방 안에 들어갔다.

    김민지의 방문 앞은 막지 않았다. 방의 위치도 자신과 이현이 지낼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배정했다.

    한수호가 복도 끝 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에 이현과 김솔을 내려놓았다.

    꾸물거리며 이현의 품에서 일어난 김솔이 이현의 이마에 자그마한 제 손을 턱 올려놨다.

    “아저씨, 이마가 너무 뜨거워요…….”

    다른 손은 제 이마 위를 짚었다. 고개가 갸웃 기울어지더니 곧 김솔이 한수호를 올려다봤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가 불안함으로 일렁거렸다. 김솔에게 이현은 현재 부모나 마찬가지였다.

    이현이 아픈 게 모두 제 탓 같았다. 이현은 입고 있던 옷마저 벗어 제게 덮어 줬다. 몸이 아래로 순식간에 떨어져 내릴 때 김솔은 두려움보다 제 몸을 감싸는 안온함을 먼저 느꼈다.

    자신도 이현을 지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 너무 어리고, 아무런 능력도 없다. 그 사실이 못내 서글퍼 시야가 이지러졌다.

    “잠시만.”

    한수호가 객실 내에 있는 수건을 꺼내 물병에 든 물로 적셨다. 모텔의 저층은 좀비들 때문에 피해가 극심했으나 위층은 상대적으로 파손된 물건이 거의 없었다.

    이현을 눕힌 객실 안은 핏자국도 없는 곳이었다. 모텔에서 가장 좋은 방인 듯 마력으로 가동되는 작은 냉장고도 있었다.

    수건에 먼지가 조금 쌓여 있지만 툭툭 털어 내니 쓸 만해졌다. 차가운 물로 적신 수건은 적당히 시원했다.

    한수호가 수건을 접어 이현의 이마 위로 올렸다. 얼굴에 비해 수건이 큰 탓에 흘러내리려 했다.

    “제가 할게요.”

    김솔이 서둘러 손을 뻗어 수건 위에 제 손을 올렸다. 미끄러지던 수건이 이현의 이마 위에 고정됐다.

    “잘하네. 아저씨 금방 낫겠다.”

    한수호가 칭찬하듯 김솔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었다. 김솔이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한수호를 향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답지 않게 슬픔이 잔뜩 묻어나는 미소였다. 한수호는 물수건을 하나 더 만들어 피가 남아있는 아이의 얼굴도 닦아줬다.

    “배는 고프지 않아? 금방 먹을 거 만들어 줄게.”

    “저는 괜찮아요.”

    김솔이 의젓한 목소리로 대답했으나 배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아이의 작은 얼굴 위로 홍조가 떠올랐다.

    한수호가 공간 확장형 아티팩트에서 전투식량 두 개를 꺼냈다. 아이와 환자가 먹기 좋을 삼계죽이었다.

    평평했던 봉지의 위쪽 부근에 달린 끈을 조이자 봉지가 부풀었다. 곧 봉지 위쪽에서 뜨거운 김이 폴폴 솟아올랐다.

    “뜨거우니까 조금 식혀서 먹자.”

    “네에.”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해도 아이는 아이였다. 커다란 눈동자가 봉지 안에 보이는 죽을 향해 데구루루 굴러갔다.

    와중에도 이현의 이마에 올려진 수건을 턱 짚고 있는 게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수호가 수저에 죽을 떠 김솔의 입 앞에 가져갈 때마다 새의 부리 같은 입술이 열렸다.

    김솔은 하프 좀비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다. 협박에 그들이 준 밥을 다 먹기는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속에 있는 걸 다 게워 냈다.

    따뜻한 죽은 굶주렸던 배를 채워 주기에 충분했다.

    한수호가 김솔에게 죽을 다 먹일 즈음 세 사람이 있는 룸의 문이 열렸다.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을 진즉 알고 있던 한수호는 놀라지 않았고, 김솔의 눈만 더욱 동그래졌다.

    “생각보다 소득이 좋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진표성의 얼굴이 굳은 건 이현을 보고 난 직후였다.

    “뭐야? 가이드 왜 이래?”

    한눈에 봐도 이현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열에 들떠 평소보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역설적이게도 창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표성의 얼굴도 푸르죽죽하게 죽어 갔다. 큰 보폭으로 이현을 향해 걸어온 그가 이현의 볼을 쓸어내렸다. 이현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걱정으로 세차게 흔들렸다.

    “몸살 같아. 잠시만.”

    한수호가 자연스럽게 진표성을 밀어 내고 이현을 품에 안아 들었다. 미지근해진 물수건을 치우고 이현의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김이현 가이드.”

    “으…….”

    다정한 음성에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계속 쉬게 두고 싶지만 약을 먹으려면 몇 수저라도 죽을 삼키는 게 나았다.

    “콜록, 콜록…….”

    이현이 마른기침을 토해 냈다. 혼몽한 와중에도 이현은 한수호의 품을 파고들었다. 따뜻하고 넓은 품은 이현이 어떤 어리광을 부려도 받아 줄 것만 같았다.

    감기 몸살은 회복 포션으로도 낫지 않았다. 체력을 끌어올려 주는 효과는 있지만 포션은 기본적으로 외상과 내상에 탁월한 효과를 보일 뿐이다. 감기약이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 약 먹고 감기약도 먹은 다음에 다시 잘까요?”

    아이를 어르는 것처럼 다정한 말이었다. 이현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열렸다. 아픈 몸 때문인지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져 시야가 온통 흐릿했다.

    “……네.”

    그러나 한수호의 말은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얌전히 대답한 이현을 칭찬하듯 한수호가 볼을 쓰다듬었다.

    한수호의 그림자가 일어나 덩그러니 놓여 있던 죽을 가져다줬다. 진표성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김솔을 챙겼다. 두 사람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한수호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밀어 내고 이현을 차지하고 싶었다. 참는 건 이현이 현재 아파서였다.

    자신의 치졸한 질투심 때문에 이현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는…… 못 먹겠어요.”

    이현이 고작 죽을 두 입만 먹은 후 고개를 돌렸다. 입 안이 온통 까끌까끌했다. 죽의 고소한 내음은 느껴지지만 입 안에 머금은 순간 삼키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한 입만 더요.”

    한수호가 이현이 먹은 양을 살피고 한숨을 삼켰다. 삼키기 어려울까 싶어서 수저에 뜬 죽의 양도 많지 않았다.

    “힘든데…….”

    “아.”

    계속된 권유에 이현이 결국 입을 조그맣게 벌렸다. 힘겹게 죽을 삼키자 한수호가 이번에는 약을 꺼냈다.

    이현을 바라보는 한수호의 얼굴에 걱정이 번졌다. 씹을 것도 없는 죽조차 삼키기 힘들어했기에 이현이 콩알만 한 알약을 삼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리 줘. 물에 섞어서 다시 줄 테니까.”

    진표성이 알약을 가져가 주먹 안에서 으스러트렸다. 물에 가루로 만든 약을 넣어 섞는 행동이 재빨랐다.

    “천천히 마셔요.”

    한수호가 진표성에게서 받은 물잔을 들고 이현에게 조금씩 먹였다. 이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작은 모래 알갱이가 입 안에 굴러다니는 것 같은 데다 물은 쓰기까지 했다.

    간신히 먹은 죽이 도로 올라올 것 같았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한수호가 먹여 주는 물을 다 삼키고 나자 기운이 빠져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뿌연 시야 위로 암막이 드리워졌다. 한수호의 손바닥을 기다란 속눈썹이 간질였다. 간질거림은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더니 곧 완전히 사라졌다.

    “바깥쪽 상황은 어때?”

    “어떻기는, 좀비 새끼들로 우글거리지. 바퀴벌레 못지않아.”

    잠에 빠져든 이현을 침대 위에 눕히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김솔은 한수호와 진표성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이현의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