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39화 (39/133)

039.

“하아…….”

강준이 옥상 바닥을 한 손으로 짚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다친 어깨의 통증도 잠깐이지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심장이 철렁거렸다. 코앞에서 희번덕거리는 회색빛 눈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의 감각이 떠올랐다.

좀비들의 시력이 퇴화했다고는 하나 완전히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특히 먹잇감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면 퇴화했던 시력이 회복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곧잘 먹잇감을 쳐다보며 움직였다.

아슬아슬하게 좀비들에게서 벗어났다. 진표성이 조금이라도 제 몸을 늦게 끌어 올렸더라면 적어도 코 하나는 좀비 떼에게 뜯어 먹혔을지도 모른다.

축축한 아랫도리까지 느껴지자 쪽팔리게 눈가에 눈물까지 고였다. 이렇게 비참한 꼴을 당하느니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찰나였다.

“나도 그렇게 많이 아는 건 아니야…….”

서동연은 겉보기에는 유들거려도 누군가를 믿는 성정이 아니었다. 최측근으로 둔 하프 좀비도 채 다섯이 되지 않는다.

강준은 능력이 뛰어나 굳이 따지면 간부급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입이 가벼운 탓에 핵심 정보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 하프 좀비들보다는 주워들은 것들이 있기는 했다.

“협회 쪽에 사람을 심었다고 했어. 아주 오래전부터.”

진표성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국제선 청사에 도착했을 때 임무 경로를 마치 하프 좀비들 측에서 알고 있는 듯 보였었다.

협회 본부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 반쯤 확신에 차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예상이 실제로 맞았다는 걸 확인하는 건 다른 일이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협회 내에 있는 동료들의 면면이 빠르게 떠올랐다.

“심은 다음에는 어떻게 했는데.”

“……지금쯤 그쪽은 더 난리 났을 거야. 너네처럼 능력 있는 팀들은 다 비밀 임무를 줘서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니까.”

파스스, 진표성의 손아귀에서 바닥을 굴러다니던 돌멩이 하나가 부스러져 잔해가 되어 버렸다. 진표성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치고는 자세히 알고 있네.”

“그건…….”

엿듣는 게 취미라 그렇다. 진표성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소름 끼칠 정도였다. 강준이 슬그머니 진표성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

“계속 말해. 도망간 서동연 새끼가 어디로 갔을지 예상되는 장소까지도.”

“진짜로 모르는데…….”

“어쩔 수 없지. 낚시 한 번 더 하는 수밖에.”

진표성은 강준이 모른다고 하자 닦달하는 대신 팔을 가볍게 풀었다. 곧장 발목으로 다가오는 커다란 손에 강준이 손을 휘적거렸다.

“마, 말할게……! 나 방금 전에 진짜로 좀비들한테 얼굴 뜯어 먹힐 뻔했다고……!”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바로 그렇게 될 거야.”

잔인한 새끼.

강준이 속으로 진표성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도록 눈을 끔벅거렸다.

“확실한 건 아닌데 인천 쪽에 대장의 비밀 기지가 있다고 들었던 거 같아.”

“인천?”

“응……. 근데 이건 진짜로 정확한 게 아니야. 말해 준 사람도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고 했거든.”

강준이 진표성의 눈치를 살폈다. 언제 그의 손이 날아들지 몰라 어깨가 딱딱할 정도로 경직됐다. 계속되는 어깨의 통증에 저절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서동연이 데리고 있는 하프 좀비들의 수는 총 몇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 그건 진짜 모르는 거라고……!”

진표성의 손이 올라가자 강준이 억울한 소리를 냈다. 거짓을 말하면 뭐라고 할 거면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아는 정보를 말하는 중인데 억울했다.

“그래도 예상 가는 수치는 있을 거 아니야. 너 돌대가리야?”

원색적인 비난에 욱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으나 현재 약자는 자신이었다.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로 여기던 생존자들에게도 밀리는 실정이었다.

지금도 생존자 두 명은 강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중이었다. 한 명이면 어떻게 해 보겠으나 2 대 1은 지금처럼 다친 상태에서는 무리였다.

“일단 여기에 있던 무리는 한 200명 정도……. 살아남은 애들은 다 대장 따라서 간 것 같지만.”

진표성이 해치운 하프 좀비들의 수가 기십을 넘는다. 그런데도 남아 있는 이들의 수가 해치운 수보다 많았다.

게다가 정말로 다른 곳에 서동연의 본거지가 있다면 하프 좀비들의 수는 더 많을 게 분명했다.

전력은 없는데 상대해야 하는 적들의 수는 아군보다 훨씬 더 많은 상황이었다.

귓가에 스치는 일반 좀비들과 좀비 몬스터들의 하울링까지. 난이도가 극악인 게임 속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무기나 아티팩트, 식량같이 쓸 만한 것들 모아 놓은 장소는? 특히 회복 포션이 있는 장소가 중요해.”

“말로 설명하기는 좀 애매한데.”

한수호가 오늘 하룻밤 지낼 곳을 찾으러 갔지만, 식량과 회복 포션 같은 것들은 최대한 많이 확보해 놓는 게 중요했다.

“그럼 그림으로라도 그려. 아니면 목줄 채워 줄 테니까 길 안내하든지. 좀비 새끼들 사이 걸어서.”

“……어디다 그려?”

진표성이 공간 확장형 아티팩트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현재 아티팩트 안에는 식량은 꽤 남아 있었지만 회복 포션이 부족했다.

식량은 다니면서 구할 수 있어도 회복 포션은 반드시 구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구해 놔야 했다.

다행히 이현은 회복 포션을 먹인 후로 피를 토하고 있지 않지만, 언제 상태가 악화될지 모른다. 능력을 사용한 이후 몸이 나빠졌으니 가장 좋은 건 능력을 봉인하는 거였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찮았다. 이현은 자신과 한수호를 가이딩해 줘야 하는 데다 상황에 따라서는 좀비들에게도 가이딩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 또 올 수도 있었다.

“알아보기 쉽게 그려라.”

“……이게 최선이라고.”

강준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종이에 알아보기 힘든 그림을 그려 갔다. 오른손잡이인데 하필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평소에 안 쓰던 왼손을 사용하니 그림이 제대로 그려질 리 없었다.

앞머리가 휘날리도록 한숨을 쉰 진표성이 새 종이를 꺼냈다.

“야, 그냥 말로 설명해. 내가 듣고 지도 그릴 테니까.”

진작 그렇게 할 것이지, 왜 헛고생을 시킨 거냐는 말은 속으로만 했다. 강준이 이후 제 기억을 더듬어 말하는 내용을 진표성이 종이 위로 그려 나갔다.

“회복 포션 찾으면 나도 하나만 줘. ……어깨가 너무 아파.”

강준의 말에 진표성이 그의 어깨를 힐끔댔다. 어깨의 상태로 보아 강준이 엄살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을 살폈다. 대충 어디쯤인지 알 것 같았다. 마침 한수호도 옥상에 다시 나타났다.

“팀장, 아티팩트랑 식량 모아 둔 장소 어딘지 알아냈어. 안전한 장소는?”

“북동쪽으로 200미터만 가면 5층짜리 모텔 건물이 있어. 안에 있는 좀비들은 다 처리하고 왔으니 하룻밤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야.”

“그 정도면 이동할 만하네. 그럼 나는 물품들 좀 챙겨 온다.”

진표성이 한수호가 말한 모텔 건물을 확인한 후 몸을 가볍게 풀었다. 은빛 털이 상체를 가득 뒤덮었다.

“가이드랑 꼬맹이 잘 챙겨.”

한수호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진표성의 모습이 옥상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이번에도 우리는 마지막에 이동시켜 줄 겁니까?”

최철희가 한수호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중에 잡혀 온 남자와 아이가 그들의 일행인 건 알지만, 대우가 너무 차이 났다.

“네. 여기에서 얌전히 기다리세요.”

은근슬쩍 불만을 내비치던 최철희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한수호에게 그는 구해도 그만, 구하지 않아도 그만인 사람이었다.

의무감에 그도 구했다고는 하지만 만약 그가 이현의 안위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이 든다면 한수호는 언제든 그를 버릴 용의가 있었다.

“당신, 협회 소속 에스퍼 아니에요? 그러면 생존자는 다 공평하게 대해 줘야죠.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아 생활하면서. 나도 하프 좀비들한테 잡히기 전에는 모범 납세자였다고요!”

한수호의 속마음을 모르는 최철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신민우는 최철희보다는 눈치가 있었다.

그도 최철희를 따라 목소리를 내려다가 입을 다문 건 검녹색 눈동자를 스치듯이 마주하면서였다.

한수호의 눈동자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無).

최철희가 하는 말에 기분 나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좀비들이 내는 괴성만큼이나 최철희의 말은 그에게 어떠한 의미도 없어 보였다.

“김이현 가이드, 바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이현이 힐끔 한수호의 뒤를 살폈다. 최철희는 제 말이 완전히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한수호의 등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이현은 곧 최철희에 대한 관심을 거뒀다. 당장 한 시간 뒤에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현이 김솔을 품으로 바투 끌어당겼다. 한수호는 익숙하게 이현과 김솔을 한 번에 안아 들었다. 뒤척인 아이가 두 팔을 이현의 목뒤에 둘렀다. 이현은 몸을 틀어 한수호의 목을 끌어안았다.

버티고 버텼던 시간이 한 번에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온몸이 거센 파도에 쓸려 나가는 모래성처럼 무기력했다.

잠이 쏟아지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워지는 건 눈꺼풀이다. 새까만 눈동자가 드러났다가도 느릿하게 끔벅이는 눈꺼풀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한 번에 이동할 겁니다.”

한수호가 이현의 몸을 고쳐 안으며 남은 이들을 둘러봤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김민지는 조금 더 안전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무리하더라도 다 같이 이동하는 게 나으리라.

“어억……?”

분을 못 이겨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던 최철희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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