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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36화 (36/133)

036.

생존자가 숨을 흡, 들이켠 순간 시야가 뒤바뀌었다. 슬쩍 뜬 눈 아래로 자신을 향해 팔을 뻗으며 아우성치는 좀비 떼들이 보였다.

다시 눈을 감자 곧 무릎과 어깨 쪽에서 강한 통증이 일었다. 단순히 바닥에 부딪쳤다고 하기에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니 진회색 형체가 바닥으로 스르르 내려가는 게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네, 네…….”

자신을 던졌던 에스퍼의 동료였다. 표정이 있는지 의문이 들 만큼 차가운 남자의 얼굴에 생존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은빛 머리 에스퍼보다 이 남자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이쪽에 잠시만 앉아 계세요.”

“네…….”

한수호가 두 번째로 날아온 생존자를 챙긴 후 진표성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옥상에도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좀비들이 있어 처리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이현과 김솔을 내려 둔 후 좀비들을 처리하고, 회복 포션을 꺼내 김솔에게 먹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진표성이 바로 뒤따라오지 않아 슬슬 몸을 움직이려던 참이었다. 생존자 두 명을 챙긴 후 옥상 난간에 발을 딛고 섰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진표성이 양 옆구리에 사람 두 명을 낀 채 달려오는 게 보였다. 진표성의 뒤로 좀비 무리가 거대한 용처럼 따라붙었다.

“팀장! 받아!”

진표성이 창틀을 밟고 몸을 띄우며 강준을 한수호에게 던졌다.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는 강준을 한수호가 그림자로 낚아채 바닥에 대충 던졌다.

사다리 중간 부분이 진표성의 발이 닿자마자 뚝 끊어졌다. 무너져 내리는 사다리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던 일반 좀비의 머리통에 철근이 박혔다.

나머지 반쪽은 여전히 끝부분이 옥상 난간에 걸쳐진 채로 허공에서 흔들렸다. 삐걱삐걱 사다리가 흔들릴 때마다 좀비들의 시선이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진표성이 뛰쳐나왔던 창문으로도 거머리 떼 같은 좀비들이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김민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새 제 몸은 진표성에게 공주님처럼 안겨 있었다.

콰직,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몸이 위쪽으로 붕 뜨더니 어딘가에 안착하는 듯했다.

“진짜 빡세네.”

김민지를 땅에 내려 준 진표성이 인상을 쓰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등에 파였던 상처가 더욱 길게 찢어진 것 같았다. 등 쪽에서 뜨끈한 게 흘러내리며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사다리가 중간에 끊어지면서 무리하게 몸을 움직인 영향이었다.

“괜찮아요?”

“……네.”

이현이 김민지에게 달려왔다. 김민지는 현재 부러진 팔이 손대기 무서울 정도로 부어오른 상태였다.

자신도 아픈데 김민지만 신경 쓰는 이현의 모습에 진표성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현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튼튼한 에스퍼고, 김민지는 딱 봐도 어려 보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묘하게 서운했다.

“……나도 아픈데.”

결국 서운한 마음이 말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말을 뱉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자각한 진표성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진표성 에스퍼도 이쪽으로 와요.”

이현의 손에는 회복 포션이 들려 있었다. 김솔에게 먹이고 남은 거였다. 아이인 터라 적은 양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생존자 두 명은 타박상이나 찰과상은 있어도 회복 포션을 발라야 할 만큼 다친 데가 없었다. 강준은 한쪽 어깨가 김민지 못지않게 부풀어 올랐지만 그에게 귀한 회복 포션을 내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회복 포션을 발견한 이들의 입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현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무시했다.

“크흠…….”

이현의 말에 진표성이 헛기침을 하고 슬그머니 다가왔다. 등 쪽의 상처가 잘 보이도록 이현을 등지고 앉기까지 했다.

지친 이현의 얼굴에 잠시나마 미소가 지어졌다. 진표성과 지내다 보면 꼭 남동생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팔 내밀어 봐요.”

그러나 김민지를 먼저 치료해 주는 게 우선이었다. 현재 김민지의 얼굴은 식은땀이 흥건했다.

고통이 심할 때마다 물어뜯은 입술 위에도 상처가 가득했다. 이현의 말에 김민지가 조심스럽게 소매를 끌어 올렸다.

“흐읏…….”

하지만 팔뚝이 너무 심하게 부어서 좀처럼 끌어 올려지지 않았다. 말 못 할 고통이 팔에서 느껴졌다. 눈시울이 뜨끈해지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 되겠다. 잠시만요.”

이현이 조심스럽게 팔소매를 양쪽으로 잡아 벌렸다. 이미 옷이 많이 해진 상태라 쉽게 찢어져 다행이었다.

기괴하게 비틀린 팔을 보자 고통이 더 심해졌다. 김민지가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겠다 싶어 눈을 감았다.

곧 팔 쪽에서 화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통증이 줄어든 것도 거의 동시였다. 김민지가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원래 크기의 세 배 가까이 부어 있던 팔의 부기가 서서히 빠지고 있었다. 다채롭게 물들어 있던 피부색도 본래의 색을 찾아 가는 중이었다.

“회복 포션 덕분에 괜찮아졌지만, 그래도 최대한 충격을 주지 않는 게 좋아요.”

“네, 그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포션을 바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악화됐을지 모르는 상처였다. 뼈가 뒤틀린 채로 굳어 버렸을 수도 있고, 피부가 괴사했을 수도 있다.

회복 포션의 가격은 하급이라도 비쌌다. 심각했던 팔의 상처가 바로 나은 걸로 보아 싸구려는 아닌 듯했다.

김민지가 진심을 담아 이현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꾸벅 숙이는 고개를 따라 몸이 흔들렸다. 또 한 번 지옥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꾸욱, 꾹 억눌렀던 울음이 터졌다.

“고생했어요.”

이현이 김민지의 정수리를 스치듯이 쓰다듬었다. 아직 앳된 얼굴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게 어울렸을 것이다.

“크흠, 흠…….”

진표성이 말아 쥔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했다. 티를 있는 대로 내고 나서야 이현의 관심이 제게 돌아왔다.

마주치는 새까만 눈동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느 순간부터 진표성은 이현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지만 무사히 구한 이현과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다채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진표성이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고 이현에게 제 등을 내밀었다. 통증이 심장으로 번진 것만 같았다. 이현의 손길이 곧 닿는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많이 아플 것 같은데…….”

“괜찮으니까 그냥 발라.”

김민지의 상처도 아파 보였지만 그래도 살이 쩌억 벌어진 곳에 포션을 바른 건 아니었다. 그런데 진표성이 입은 상처는 회복 포션을 바르려면 상처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야만 했다.

회복 포션을 붓는 방법도 있겠으나 그러려면 한 병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상처의 범위가 넓었다.

괜찮다는 진표성의 말에 이현이 별수 없이 검지손가락 위에 회복 포션을 연고처럼 덜어 상처에 발랐다. 근육이 선명하게 굴곡진 등이 움찔 떨렸다.

“많이 아프죠?”

“……아파서 그런 거 아니야.”

따끔거리기는 했으나 이 정도 고통은 그동안 겪은 것에 비하면 우스웠다. 고통보다는 간지러울 정도로 조심스러운 손길에 몸이 반응한 거였다.

손끝에서도 그 사람의 성정이 드러나는 걸까.

상처를 건드리는 손길은 이현처럼 부드럽고 무해했다. 이제는 상처에서 실바람마저 느껴졌다. 이현이 혹시 제가 아플까 봐 입으로 바람을 불어 주는 거였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바르고 있어요. 조금만 참아요.”

진표성은 아프지 않다고 했지만 포션을 바를 때마다 떨리는 등은 다른 말을 했다. 이현이 생각하기에 입보다 솔직한 건 몸이었다.

그가 S급 에스퍼라고 해도 근육까지 손상된 터라 아프지 않을 리 없었다. 상처의 윗부분부터 조심조심히 발라 내려갔다.

상처에만 집중해 제대로 바르려면 바지를 내려야 한다는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현의 손끝이 허리춤에서 머뭇거렸다.

진표성이 앉으면서 바지가 올라간 건지 상처가 바지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잠시만…… 실례할게요.”

이현이 최대한 아래쪽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상처의 아랫부분까지 꼼꼼히 회복 포션을 발랐다. 이미 바른 지 시간이 꽤 지난 윗부분은 새살이 올라온 상태였다.

“다 됐어요.”

“…….”

치료가 끝난 후에도 진표성은 미동이 없었다. 원래 그의 성격대로라면 고맙다고 인사하든, 아니면 다른 말을 하든 시끄럽게 떠들어야 정상이었다.

“진표성 에스퍼?”

혹시 기절이라도 한 걸까 걱정된 이현이 진표성을 부르며 그의 어깨를 쥐었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떨림이 심했다.

“혹시 어디 아프신 거예요?”

현재 이현도 긴장이 풀리면서 몸살이라도 난 것처럼 온몸이 아팠다. 한계 이상으로 능력을 사용하다 기절까지 했다.

회복 포션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리기는 했으나 솔직한 심정으로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 사흘 내내 잠만 자고 싶었다.

자신보다 훨씬 무리한 진표성이니 그가 튼튼한 에스퍼라고 한들 아픈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현이 진표성의 앞쪽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진표성을 치료하면서 앉아 있던 이현의 몸이 밭에서 뽑히는 무처럼 쑤욱 끌어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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