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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33화 (33/133)

033.

진표성이 아는 한수호는 절대 마음이 없는 이에게 입을 맞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이현과 같은 상황 속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다른 방법으로 회복 포션을 먹일 방법을 생각해 냈을 게 분명하다.

이현이 한수호에게 남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목석같던 팀장이 가이드에게만큼은 다정하게 구는 것도 쉽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흥미로운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재밌게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막상 제 감정이 동요하자 모든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이현에게서 한수호를 떼어 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주먹을 꽉 쥐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처럼 손등 위로 불거진 핏줄이 선명했다.

“흐으…….”

이현이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흐릿한 시야로 들어오는 모습에 숨소리가 차분해졌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건 제가 스스로 진표성에게 입을 맞췄던 기억이다.

하프 좀비들과 접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 좀비들을 가이딩했던 감각은 손에 잡힐 듯 말 듯 자신을 약 올리기만 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진표성의 입술이었다. 가이드는 에스퍼와 깊게 접촉할수록 대상을 가이딩하는 게 쉽다.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려고 했으나 필사적으로 마력에 집중했다.

진표성을 가이딩하면서 느껴지는 감각을 확장해 나갔다. 뿌옇게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하프 좀비들이 물러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온몸에서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누군가 배 속에 손을 집어넣어 장기들을 일그러뜨리는 것만 같았다.

역류하는 피를 토해 내는데도 고통은 심해져만 갔다. 시야가 점점 까매지며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만 귓가에서 웅웅 울렸다.

분명 그랬는데 왜 지금은 자신이 한수호와 입을 맞추고 있는 걸까. 입술이 불에라도 덴 듯 화끈거렸다.

진표성과 입술이 닿았을 때는 정말 가이딩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선이 지척에서 얽혀 들었다. 한수호가 고개를 떼어 내는 모습이 느릿하게 망막에 이어 가슴에도 맺혔다.

“김이현 가이드, 정신이 들어요?”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너무나 애틋해 이현은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이현은 항상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생활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그런 사람들은 이현 쪽에서 먼저 거절했다. 하루하루가 고단한 삶이었다. 진심도 아닌 자들이 건네는 마음을 받기에는 이현은 몹시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욱 지친 상태일 텐데 한수호가 내보이는 진심을 무시하는 게 힘들었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마주한 감정에 쉽사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수호가 이제는 다정한 손길로 입가에 맺힌 피를 닦아 내고, 볼을 쓰다듬고 있어서 더 그랬다.

“팀장, 일단 저것들부터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한수호도 이현의 눈동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그의 얼굴만 어루만지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잘라 낸 건 진표성이었다.

상흔이 새겨진 손바닥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통증은 어째서인지 가슴 쪽에서도 느껴졌다.

좀비들에게 영향을 미치던 가이딩 마력은 흩어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문제는 여전히 뻥 뚫린 공간을 통해 살아남은 좀비들이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다는 거였다.

진표성은 한수호에게 말을 걸면서 두 사람을 떼어 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상황이 급박해서 꺼낸 말이라는 걸 속으로 되뇌었다.

“잠시만 기다려요.”

한수호가 김솔과 김민지가 있는 곳에 이현을 내려놨다. 그다음에는 그림자를 움직여 주위의 잔해들을 끌어모아 세 사람의 주변으로 빠르게 쌓아 올렸다.

진표성은 남은 생존자 두 명을 양 옆구리에 끼고 그나마 지대가 높은 곳에 올려 뒀다.

두 사람이 능력을 사용해 생존자들을 지키는 동안 사투는 의외의 장소에서 벌어졌다.

“아아악……!”

“사, 살려 줘…….”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서동연은 이현의 능력을 피해 도망간 상황이었다. 다른 하프 좀비들은 이현의 가이딩 마력의 영향권에 휘말려 능력을 잃었다.

살아남은 일부 하프 좀비들 또한 서동연을 따라 도망갔다. 현재 남은 이들은 사람이 된 상태로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들에게 물어뜯기고 있었다.

처음부터 힘을 가지지 않았다면 상황은 나았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힘이 사라진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하프 좀비들이 속수무책으로 사체가 되어 갔다.

하프 좀비들 중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발악하는 건 주홍색 머리뿐이었다.

강준이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을 들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일반 좀비 하나에게 던졌다.

“캬아아―!”

능력을 잃기 전이었다면 단번에 일반 좀비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좀비는 이마 일부분이 움푹 파인 상태로 손을 뻗으며 다가왔다.

재차 돌멩이들을 들어 던졌으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는 별다른 타격 없이 손을 휘적거리기만 했다.

강준에게 일반 좀비는 심심할 때면 가지고 놀던 존재였다. 강준뿐만 아니라 하프 좀비들 대다수에게 일반 좀비는 놀잇감이었다.

그런데 입을 쩌억 벌리는 좀비가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좀비들은 살점이 썩어 들어 좀비가 된 지 얼마 안 된 이들을 제외하면 다 고만고만하게 생겼다.

낯이 익다고 느껴진 건 좀비가 뻗은 손 때문이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좀비는 손가락이 한 개도 없었다. 주먹을 쥔 것처럼 덩어리진 손이었다.

‘캬악, 캬아아악―!’

‘가만히 좀 있어 봐. 예쁘게 해 주고 있잖아.’

불현듯 어제 제가 했던 짓이 떠올랐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서 손가락을 하나씩 짓이길 때마다 울부짖는 것처럼 일그러지는 얼굴이 우스워 킥킥대며 웃었다.

“씨발…….”

마치 좀비가 제 얼굴을 기억하는 것만 같았다. 탁하게 흐려진 눈이 제 얼굴에 닿을 때면 희번덕거렸다.

“캬아악!”

강준이 지척에 다다른 좀비의 배를 발로 찼다. 다리로는 연신 좀비를 밀어 내고, 손바닥으로는 바닥을 짚어 이동했다.

손이 닿지 않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도끼를 줍기 위해서였다. 잔해들이 손바닥에 박혀 들어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크르르, 캬학!”

손에서 배어나는 피에 다가오던 일반 좀비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좀비의 찢어진 입가에서 뚝뚝 떨어져 내리는 썩은 피가 강준의 바지 위에 흔적을 남겼다.

마침내 강준이 손에 쥐게 된 도끼를 휘둘렀다. 생경한 감각이 손을 타고 팔까지 번졌다.

수백 번을 휘둘러도 무겁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은 도끼를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도 어깨와 팔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캬하아……!”

게다가 일반 좀비는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부위에 도끼날이 박힌 상태로도 움직이고 있었다. 원래는 머리통을 깨부수려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도끼의 무게에 의도와 상관없이 방향이 바뀐 거였다. 두개골이 깨지지 않은 좀비는 여전히 포악했다.

도끼의 손잡이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피 냄새에 발광하면서 좀비가 땅을 발바닥으로 힘차게 박찼다.

“이이익―!”

강준이 손아귀에 힘을 줘 좀비의 어깨에 박힌 도끼를 빼내려고 아등바등했다. 두 발로는 좀비의 배를 밀어 팔에 힘을 더했다. 방금 전에는 다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진액이 이제는 가슴을 넘어 턱 언저리에까지 떨어져 내렸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을 줘 봤지만 문제가 생겼다. 강준이 좀비의 배를 발로 밀어 내면서 좀비의 발이 땅에서 떴다.

좀비는 딱딱 소리를 내면서 오로지 눈앞에 있는 살점을 물어뜯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강준이 서둘러 다리를 굽혔다. 좀비의 무게는 가벼워졌지만 도끼날이 뼈에 박힌 건지 도통 빠지지 않았다.

“제발, 좀……!”

어깨 쪽에서 뼈가 어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만큼 아팠지만 강준은 좀비들에게 물렸을 때의 아픔을 잘 알았다.

하프 좀비가 됐다는 건 이미 한번 사람일 때 좀비들에게 물렸다는 방증이었다. 그때의 고통에 비하면 어깨뼈에 이상이 생긴 것 정도는 버틸 만했다.

“씨바알―!”

어떻게 이어 온 생인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하프 좀비의 능력을 잃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닥치자 오기가 생겼다.

강준이 이를 악물고 손에 힘을 줄 때였다. 빠직. 불길한 소리가 귓가에 맺혀 들었다.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캬하악―!”

강준의 두 팔이 뒤로 넘어갔다. 손에 잡히는 무게가 지나치게 가벼웠다. 여전히 좀비의 어깨 위로 드러난 도끼날이 보였다.

도끼는 뽑히는 대신 일반 좀비의 몸에 박혀 있기를 선택했다. 강준의 몸에서 힘이 턱 풀렸다. 주변을 스윽 훑어도 도끼를 대신할 만한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가까워지는 회색빛 눈동자에 눈을 감았다. 등신처럼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끈적한 액이 목덜미에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다가오는 역한 숨결에 차라리 좀비가 목을 단번에 물어뜯어 주기를 바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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